후회공 X 복수수 19화

시간이 어느정도 흘러, 태형은 정신이 들었다. 그러나 이미 많이 지친 탓에 감긴 눈을 뜰 힘조차 나지 않았다. 더 자고 싶어- 잔인한 현실을 대면하고 싶지 않아 몸을 좀 더 웅크리는 태형이었다. 눈을 뜨는 순간 새까맣고 지저분한 창고에 자신 혼자 외롭게 덩그러니 놓여있을 것만 같아 무서웠다. 아무도 자신을 구하러 오지 않았을까 봐, 사람들로부터 잊혀져버렸을까 봐 두려웠다. 그러나 참 이상하게도 지금 자신은 창고라기엔 너무 편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은 춥지도 괴롭지도 않았다. 태형은 누군가가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준 것이길 바라며 서서히 눈을 떴다.

" ...? "

침대 위, 조그만 강아지 무늬의 자수가 순서있게 나열되어있는 하늘색 이불. 그리고 좁은 벽과 약간의 약품냄새, 이곳은 아마 보건실인 것 같았다. 누가 데려다준 거지- 아직 상황파악이 잘 되지 않던 태형은 주위를 둘러보다, 자신의 옆 침대로 누군가 등을 지고 누워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윤기...? "

동글동글 예쁜 두상이 아무리 봐도 윤기 같았다. 태형은 침대에서 일어나 아까 정국에게 밟힌 탓에, 아픈 다리를 절뚝거리며 옆 침대에 누워있는 아이의 얼굴을 조심스레 확인했다. 역시 자신의 예상대로 누워있던 아이는 윤기가 맞았다. 어, 그러고 보니

자신의 더럽혀졌던 교복은 온데간데없고 깔끔한 체육복이 몸에 걸쳐져있었다. 체육복 상의 지퍼를 살짝 내리고 카라를 잡아늘려 이름표를 확인해보니, 체육복 주인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민윤기

-

"이걸 어쩌지... "

자신이 지금 윤기의 체육복을 입고 있어도 되는 것인지 걱정이 되었다. 그렇다고 벗을 수도 없는 노릇, 태형은 우물쭈물 자신의 옆에서 새근새근 잘만 자는 윤기의 눈치를 봤다. 자신은 항상 윤기한테 도움만 받는다. 민폐는 아닐까, 괜히 주눅드는 태형이었다.

"너 뭐하냐? "

"히익...! "

옆에서 자꾸만 부시럭거리며 인기척이 들자, 윤기는 잠에서 깨어났다. 눈을 뜨니 보이는 것은 자신이 입혀준 체육복을 만지작거리며 어린 강아지마냥 낑낑대고 있는 태형이었다. 뭐지, 비몽사몽한 상태로 윤기가 태형에게 말을 걸자, 어쩔 줄을 몰라 안절부절하던 태형이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봤다.

.

"몸은 좀 어때"

"으응, 괜찮은 것 같아... "

"그건 빌려주는 거니깐 편하게 입어도 돼"

"아 고마워"

윤기가 자신의 옷을 직접 갈아입혀줬다는 것이 민망한 건지, 입을 앙 다물고 침대에 앉아 이불을 만지작거렸다. 둘 사이에선 잠시 정적이 흐르고 그런 태형을 지켜보던 윤기가 먼저 입을 뗐다.

"설명해"

"어? 뭘? "

"왜 그렇게 된 건지 설명하라고"

"아... 저, 그게... "

너무나도 단호한 윤기에 태형은 쉽게 말을 내뱉지 못했다. 정국이 윤기에게 혹여 해코지를 하진 않을까, 나약한 자신 때문에 애꿎은 윤기가 불행해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되었다. 그날 정국의 협박은 계속해서 태형의 머릿속을 맴돌며, 태형에게 두려움을 심어주게 되었다.

자신과 있으면 윤기가 위험하다. 태형은 결심한 듯 주먹을 꼭 쥔 채,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윤기에게 말했다.

" ... 윤기야"

"어 왜"

"더는, 더는 나한테 다가오지 말아줘... "

그렇게 태형은 윤기를 지키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말을 내뱉었다. 자신을 도와준 윤기에게 이런 말을 내뱉다니, 태형은 가슴이 아파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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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09-14 03:45 | 조회 : 5,803 목록
작가의 말
Gelatin

늦어서 죄송합니다 ㅜㅜ 이번에도 즐겁게 보셨다면 하트와 댓글 부탁드립니다~ ♡♡ 모두 잘 자고 아침에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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