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공 X 복수수 24화

참 길게도 베었네,

자신이 서툴게 베어 생겨버린 이 상처는 아마 오랫동안 흉터로 남게 될 것 같았다. 미관상 좋지 않은 상처가 쓰라리기까지 했지만 일부러 딱히 가리거나 치료를 하진 않았다. 이 보기 싫은 상처가 앞으로 자신이 정국을 잊기 위한 제 다짐의 표식이라 여기며, 태형은 아픈 상처에 여러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물론 자신의 생각만큼 사랑하는 사람을 잊는다는 것이 그리 쉽진 않겠지만, 가슴 아픈 사랑은 이대로 허무하게 끝을 맺게 될 것이다. 이젠 더이상 해피엔딩 따윈 바라지도,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다며 행복한 결말을 짓기엔 너무 멀리 와버린 제 자신이 비참해 울컥- 눈물이 고장난 수도꼭지마냥 멈추질 않았다. 스스로가 직접 팔에 새긴 이 상처가 아무는 날, 자신이 정국에게서 받은 상처도 함께 지워지길 바라는 태형이었다.

널 오랫동안, 아주 오랫동안 좋아했지만 이젠 널 놔줄게

난 너무 지쳤어 정국아

-

"하아..., 진짜 존나 피곤하네"

하늘이 검게 물들어갈 때쯤, 드디어 지긋지긋한 학교에서 풀려나 바라던 자유의 몸이 된 윤기는 오늘 하루 담을 넘어 학교를 탈출하지 않고 끝까지 버텨낸 자신이 대단하다며 스스로에게 박수를 보냈다. 춥고 어둡고, 날이 추워지더니 해도 몇 달 전에 비해 꽤나 빨리 떨어지는 것 같았다. 까맣고 별 하나 보이지 않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자니, 학교를 마쳐 행복하던 기분도 다시 우울해짐을 느꼈다. 학교에서 하루종일 시달리다 이제서야 자유를 맛본다니, 이것이 대한민국의 고딩인 것이다. 중학교 2학년 때 이후로 끝난 줄만 알았던 중2병이 다시 한 번 찾아온 것만 같은 윤기였다.

오늘 하루 태형이 조퇴를 하고나서 혼자 학교에 남게 되어 심심했던 윤기는 학교에서 내내 수업은 지랄, 뻘짓을 하거나 무기력하게 잠만 자댔다. 그러다 뒤로 쫓겨나기도 했지만 뭐,

낮에 자지 못했던 잠을 학교에서 다 자느라 자신의 폰을 확인하지 못했던 윤기는 뒤늦게 태형이 떠오르며 아차 싶었던 건지, 자신의 폰 화면을 키자 바로 보이는 태형의 문자를 확인했다.

-학교 마치고 시간 돼? -

" ... 얘가 어쩐 일로, "

윤기는 태형의 문자를 확인하고는 잠시 해가 서쪽에서 떴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뭔가 할 말이 있어보이는 태형에 일단 지금 가겠다고 답장을 넣었다. 전엔 조금 헤매었지만, 이젠 능숙하게 길을 찾아 태형의 집으로 향할 수 있었다.

.

"나 참..., "

태형의 집앞에 도착한 윤기의 손에는 초록빛의 소주병이 담긴 까만 봉지가 들려있었다. 술을 뚫는 것이 한두 번이 아닌 윤기는 이미 익숙하다는 듯, 모자를 푹 눌러 쓴 채로 평소 자주 들리는 호락호락한 편의점을 골라 들어가선 자신의 것이 아닌 민증으로 어리버리한 알바를 속였다. 미성년자가 술을 뚫는다니 비난받기에 충분한 행동이었으나, 윤기는 지금 자신의 행동에 대해 딱히 별 생각이 없어보였다. 녹색의 술병들은 윤기가 움직일 때마다 자기들끼리 부딪혀 시끄러운 소음을 만들어냈다. 무엇보다도 학교를 다녀온 윤기의 손에 술이 들려있던 이유는 그 누구도 아닌 태형 때문이었다. 오늘 자신에 집에 아무도 없다며 술이 마셔보고 싶다는 태형의 갑작스러운 말에 윤기도 처음엔 당황스러운 듯 보였지만 지금은 술을 사들고 태형의 집, 현관문 앞에서 문이 열리길 기다리고 있었다.

얘가 진짜 왜 이러냐, 몸도 안 좋은 게 술이 마셔보고 싶다니-

초인종을 눌러보기도 하고 문을 두드려보기도 했으며, 전화까지 걸어보았지만 그럼에도 문이 열리지 않자, 이상하게 생각한 윤기는 호기심에 현관문을 직접 밀어보았다. 뭐야 열려있네, 문이 열려있는데도 멍청하게 서서 기다렸다니 살짝 민망해지는 윤기였다. 그렇게 들어갈까 말까, 문앞에서 조금 망설이던 윤기는 오늘 태형의 집엔 태형만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멋쩍은 듯 실례하겠습니다- 하고 조심스레 말을 내뱉으며 태형의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나저나 참 이상했다. 태형의 집안은 너무나도 고요했고 공기도 차갑게 식어있었다. 다시 한 번 태형을 불러보았지만 역시나 묵묵부답, 이리저리 집안을 둘러보던 윤기는 태형의 방으로 추정되는 방의 문을 살짝 열어보았다. 그러자,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이불을 뒤집어쓰고 힘없이 무릎을 끓어안고있는 태형의 모습이 보였다. 태형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자신의 앞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있는 윤기의 얼굴을 확인하더니 이내 입을 뗐다.

"... 왔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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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09-24 05:14 | 조회 : 4,945 목록
작가의 말
Gelatin

텍스트가 날아가서 다시 써왔습니다! 늦어서 죄송하고 기다려주시는 분들 모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ㅠㅜ 그럼 오늘도 즐감 후 하트와 댓글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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