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공 X 복수수 25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지금의 태형은 평소 자신이 알고있던 태형이 아니었다. 빛을 잃어버린 암흑과도 같은 눈동자가 깊고 깊었다. 빨려들었다간 정말 길을 잃어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주인을 알 수 없는 바닥의 동그란 핏자국, 자국을 시선으로 따라가보니 저 멀리 떨어져있는 커터칼의 칼날에 붉은 피가 묻어있는 것이 보였다. 태형은 몸을 잔뜩 움추린 채, 덜덜 떨며 자신의 손목을 가리고 있었다. 대충 눈에 보이는 이 상황들로 짐작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였다.



자해



태형은 점점 망가져가고 있었다.



-



"야 너 이게 대체, "



" ... 보이는 그대로야"



윤기의 시선을 피하며 죄인마냥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로 힘없이 구석에 앉아있는 태형, 윤기는 그런 태형을 바라보며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 말이 잘 나오질 않았다. 그 자리에 멈춰서선 둘 사이에 약 5초간의 정적이 흘렀다.



손에 들려있던 봉지를 바닥에 툭- 내려놓자, 차가운 술병끼리 서로 부딪혀 또다시 날카로운 소음을 일으켰다. 그리고 듣기싫은 소음과 동시에 윤기는 태형에게 가까이 다가가, 뒤집어쓴 이불을 재빨리 걷어내고 태형의 몸 상태를 이리저리 살폈다.



"ㅅ, 싫어 하지 마...!! "



"김태형"



" ... 흐윽, "



태형의 손목을 낚아채자, 아픈 듯 미간을 찌푸리며 이리저리 몸부림을 친다. 본인 스스로도 자해가 잘못된 행동이라는 걸 자각하고 있는 건지, 손목을 보여주기 싫어했다.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오는 윤기는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쉽게 진정하지 못하고 눈물을 글썽이며 자신을 밀어내는 태형을 부드럽게 감싸 안아주었다. 자신의 품에 안긴 채로 눈물을 흘리며 마른 어깨를 덜덜 떠는 태형이 가여웠다. 등을 쓸어주니 이때까지 혼자서 많이 아팠다는 듯, 대성통곡을 해댔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흘렀을까, 태형의 울음소리가 조금씩 잦아들었다.



-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가볍게 씻고 온 태형은 이제서야 진정이 된 듯, 숨을 고른다. 윤기는 그런 태형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댔다.



"왜 네 몸에 상처를 내"



" ... "



"네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그러냐, 어? "



시무룩- 윤기의 꾸중을 듣던 태형은 잔뜩 풀이 죽어버렸다. 아까 실컷 울었던 탓에 눈가가 붉어진 채로 코를 훌쩍이는 태형의 모습이 마치 조그만 어린아이 같았다.



"팔 이리 가져와"



" ... 싫어"



바닥의 피와 커터칼을 대충 잘 처리한 윤기는 이제 태형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태형을 불렀다. 그러자 태형은 예상 외의 반응을 보였다.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자신의 팔을 끝까지 뒤로 숨긴 채 내어주지 않았다. 뭔가 이유가 있는 걸까, 의문이 든 윤기는 태형을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러자 태형이 말을 내뱉었다.



"나 정국이 잊으려고, "



"뭐? 진짜냐? "



"응 진짜야, 그러니깐 이 상처는 내 다짐으로 남겨두고 싶어"



" ... 나 참, "



태형의 말을 들은 윤기는 벌써부터 뒷목이 당겨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태형의 눈빛이 결코 거짓처럼 느껴지진 않았다. 자신의 친구 태형의 몸에 가슴아픈 흉터가 남았다는 점은 윤기도 별로 좋지 않았다. 하지만 태형의 다짐을 헛되게 하고 싶진 않았다. 오히려 태형은 정국에게서 벗어나야만 했다. 그랬기에 윤기는 손에 쥐고있던 반창고를 도로 자신의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분명 힘들고 아프겠지만 자신이 정국에게서 완전히 벗어나, 제 상처입은 마음이 치유될 때까지 이 상처를 긋고 긋고 또 그을 것이라 다짐한 태형이었다.



이미 망가져가고 있다. 돌아가기엔 조금 늦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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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09-30 22:53 | 조회 : 4,927 목록
작가의 말
Gelatin

늦어서 죄송합니다 ㅠ 모두 보고 싶었어요! 부족한 글이지만 즐겁게 읽어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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