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공 X 복수수 26화



"야 안주도 없이 괜찮겠어? 술 처음 마셔본다며, "

"... 괜찮아"


정말- 이젠 눈에 뵈는 게 없는 건지, 어떠한 걱정도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힘들 뿐이었다. 이러다 모든 걸 놓아버리는 것은 아닐까, 태형의 맑고 아름다웠던 눈동자는 날이갈수록 서서히 빛을 잃어만 갔다. 때묻지 않았던 순수함도 점점 타락에 물들고 있다. 그런 태형의 모습은 제 3자의 입장에서 봐도 꽤나 위태로워 보였기에 괜히 옆에 있던 윤기까지 마음이 조마조마해지곤 했다.

-


"야 태형아 집에 술잔 있냐? "

"... 없어"

"그럴 줄 알았다"


태형의 집엔 술잔이 없었다. 왜냐하면 현재 태형의 집안은 태형의 어머니와 학생 신분인 태형밖에 살지 않았다. 태형의 아버지는 멀리 일을 나가 바쁜 탓에 연락이 끊긴 지 오래였다. 그랬기에 태형의 집안에선 딱히 술을 마실 사람이 없어, 술잔이라는 것은 태형의 집에선 필요없는 물건이 되었다. 어차피 있어봤자 아무도 사용하지 않을 테니까,

술잔이 없기 때문에 태형은 술을 마시려면 윤기가 함께 사온 종이컵에 술을 따라 마실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와 함께 사용하는 집안의 컵으로 차마 독한 향을 술술 풍겨대는 소주를 들이부을 수는 없었다. 적어도 아직 양심은 남아있었나 보다.


뭐, 애초에 미성년자가 술을 뚫고 그 뚫은 술을 함께 마신다는 행동부터가 꽤나 범죄였지만 말이다.


-


솜이불을 뒤집어쓰고 무릎을 모아 앉은 채 구석에서 종이컵에 담겨진 투명한 액체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겉으로 보기엔 물과 별 다를 점이 없어보였지만, 물과 술은 확실히 다른 성분을 띄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가만히 있던 태형이 손을 뻗어 술이 담긴 종이컵을 천천히 들어올리더니 그대로 자신이 스스로 팔에 새긴 상처에 술을 조금씩 들이부었다.

" ... 읏, "

차가운 칼날이 여린 피부를 가르고 지나갔을 땐 얼마 되지 않아 칼날이 지나간 자리에 붉은 피가 송글송글 맺혔었다. 그러나, 그 핏망울들은 금새 굳어 하나의 흉한 상처를 이루어냈고 아까 만들어낸 그 상처 위로 술을 흘려보내니, 정말 소름돋을 정도로 따가운 것이 마치 평소 자신의 몸과 마음을 아프게 했던 정국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아팠다. 미간이 절로 찌푸려지며 고통에 신음하게 되었다. 아깐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도 모르게 충동적으로 그었기에 몰랐지만,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상처가 불에 타는 것만 같았다. 벌어진 상처 사이로 스며드는 알코올로 인해 따가움은 배가 되어 돌아왔고, 그 고통 덕에 정신이 확 드는 기분이었다. 이제서야 실감이 났다. 이건 틀림없는 알코올이라고, 이건 분명 물이 아닌 술이라고,

난 지금 살아있다고-


그리고 그걸 옆에서 지켜보던 윤기는 경악하며 태형을 다그쳤다.


"야 김태형, 미쳤냐? 상처에 균이라도 들어가면 어쩌려고 그래...! "

" ... "

"아니, 이게 술을 마시라고 줬더ㄴ, "

" ... 윤기야"


태형은 식겁을 하며 주변에 있던 휴지를 다급하게 몇 장 뜯어 자신의 상처 부위에 묻은 술을 조심스레 닦아주는 윤기를 멍하니 지켜보더니, 그대로 윤기의 품에 안겨 얼굴을 묻었다. 윤기의 품은 따뜻하면서도 포근했다. 순간적으로 그 포근함에 묻혀 정국도 잊을 수 있을만큼,

너는 내가 이런 추태를 보여도 경멸은 커녕, 여전히 나를 걱정해주는구나-

태형은 언제나 그랬듯, 이번에도 역시 다정하게 대해주는 윤기의 행동에 순간적으로 울컥해 울음을 삼켜내려 윤기의 옷깃을 손에 쥐었다. 그 행동은 마치, 더이상 무언가를 잃고 싶지 않다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윤기도 그런 태형을 내치지 않고 말없이 태형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 ... 윤기야"

"응"

" ... 우린 친구야? "


태형은 여전히 윤기의 품에 얼굴을 묻은 채로 윤기마저 자신의 곁을 떠나진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서로의 관계를 확인하는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윤기는 태형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태형은 그제서야 안심이 된다는 듯이 편히 눈을 감았다.


" ... 고마워"


우리

조금만 더 이러고 있자

아주 조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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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12-02 21:32 | 조회 : 4,804 목록
작가의 말
Gelatin

여러분들 곤방와~ 오랜만에 올리죠?? 다들 보고 싶었어요 ㅎ3ㅎ 다음 연재는 하트가 10이 넘으면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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