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공 X 복수수 27회



희미하게 의식이 돌아오며 동시에 분명 아직까지 눈꺼풀을 닫고 있음에도 몸과 머리가 무거웠다. 코 끝에서는 얼얼한 어제의 독했던 알코올 향이 모두 가시지는 않고 희미하게 남아 맴돌았다. 아, 이게 그 어른들이 말하시던 숙취라는 거구나. 따로 배우지 않아도 대충 알 수 있었다. 대체 언제부터 얼마나 잤던 걸까, 열린 창문 사이로 바람이 쌩쌩 드나드니 그 쌀쌀함에 저절로 몸이 떨렸다. 정신이 얼마나 없었으면 저렇게 창문을 열어놓고 잠이 들었는지...

추위를 차단하기 위해 몸을 일으켜 조심스레 한발 내딛자 제 발로 따뜻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그리고 동시에 으응- 하고 잠꼬대까지, 순간적으로 놀라 밑을 보니 윤기가 자고 있었다. 아, 그랬었지 제가 윤기와 함께 잠이 들었던 것이다. 창밖을 보니 아직 해가 뜰까 말까 하는 새벽이었다. 새벽 공기는 언제나 쌀쌀하면서도 맑았다. 그렇게 창문을 밀어 닫아두고는 순간적으로 숙취로 인한 어지러움에 비틀거리던 것도 잠시. 제 방 벽을 짚고 서서 자연스레 어제의 필름을 되돌려 보게 되었다.

고작 고딩이라는 신분으로 우리는 함께 술을 깠고 또 그 후 얼마나 들이켰는지- 첫 잔은 아마 태어나서 처음 맛보는 독한 술맛에 헛구역질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또 술에 취해 바보처럼 히히덕대고 속이 안 좋아져 토를 하려는 저를 윤기가 챙기고... 더이상 나머지는 떠오르지가 않았다. 그러다

"아... 깼어? "


제 움직임에 윤기도 얼마 지나지 않아 인기척을 느끼고 잠에서 깬 것이다. 일어나자마자 아픈 머리를 부여잡았던 자신과는 다르게 윤기는 꽤나 멀쩡해 보였다. 눈을 비비적거리며 두리번대던 윤기는 아차 하더니 제게 물어왔다.

"너 손목은"

"응? 손목? "

"어제 다쳤었잖아, 설마 필름 끊겼냐? "


그제서야 벽을 짚고 있던 손목이 따끔거리는 것을 느꼈다. 정말 바보인가... 어쩌다 이렇게 다친 거지? 또다시 중간이 꼬여 엉망이 된 필름을 하나하나 풀어 보았다. 그러자 문득, 어제 자신이 스스로 날카로운 쇠부치로 부모가 주신 몸 귀한 줄도 모르고 정국 생각에 엉엉 울며 다짜고짜 상처를 내다 윤기가 그걸 본 것이 떠올랐다. 제 친구에게 그런 꼴을 보여준 것이 이제서야 창피하고 후회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함께 미운 정국의 얼굴도 떠올랐다.

제 처음을 그렇게나 허무하게 원치 않았던 관계로 줘버리고, 몸도 마음도 아주 만신창이가 되었다.

단지 순수하게 좋아했을 뿐이다. 운동도 잘하고 잘생긴, 주변에 많은 친구들이 있는 네가 부러웠다. 차가운 듯한 표정 속에서 뜨겁게 빛나는 눈동자가 왠지 모르게 좋았고 또 끌렸다. 나는 그냥 네가 좋았을 뿐이다. 근데 그런 넌 나에게서 많은 것들을 빼앗아갔다. 친구도, 마음도, 순결도 모두 가져가버렸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을까 하고 번들거리는 연고가 상처 위로 덮여져 있는 제 손목을 바라보며 또다시 고민에 빠지고, 우울해하고 있던 참에 윤기가 자리에서 일어나선 자신의 겉옷을 챙겨입고 바닥에 굴러다니는 빈 술병들과 종이 컵을 하나 둘씩 주워 봉지 안에 담기 시작했다.

"아...! 내가 치울게"

"됐어, 너 지금 숙취 때문에 어지럽지? 다 아니까 저기 가서 물이나 마셔"

"진짜 괜찮은데, 나도 도울게... "


그렇게 말하며 어정쩡하게 윤기의 옆으로 가 초록색을 띄는 뚜껑들도 하나씩 봉지에다 주워 담으며 우리 사이엔 어색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아마 어제의 일 때문이겠지... 하고 생각하던 그때 윤기가 또다시 말을 걸어왔다.



야 해장이나 하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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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12-29 05:02 | 조회 : 4,207 목록
작가의 말
Gelatin

진짜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여러분... 많이들 기다리셨을 텐데 너무 늦게 왔어요 ㅠㅠ 죄송합니다 정말... 제가 요즘 정신이 없었네요. 연재 완결하겠다는 그 공략 꼭 지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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