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그 후의 이야기-외전1

툭-

차가운 공기에 빨개진 코 위로 새하얀 눈 결정체가 올라앉았다.

올해는 역대급 추위인 만큼 지나가는 사람들도 다 하나같이 꽁꽁 싸매고 다녔다.

주위에 위치한 상가들에서는 크리스마스 캐럴송이 들려오고 남녀 모두가 하하호호거리며 웃고있었다.

“….벌써 2년인건가”

손을 들어 흩날리는 눈송이를 받은 그가 공허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하아-

새하얀 입김이 공기 중에 퍼져나갔다.

달빛에 반지가 반짝였다.

그를 보는 눈이 슬프기 짝이없다.

성현은

겨울이 싫었다.

크리스마스또한 싫었으며.

이제는 이 모든것이 싫증이났다.

“준호….야-”

애타게 이름을 불렀다.

“음? 선배 왜요?”

뒤에서 준호의 발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화들짝 놀란 그가 휙하고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뒤에서 그를 부르고 있었던것은 그의 애절한 마음이 만들어낸 환청일 뿐이었다.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분명.

지금도 이렇게 서있으면.

이름만 부르면 나에게 달려올 것 같은 준호가 눈에 아른거린다.

그 활짝 웃으면 접히던 반짝이는 남색 눈이.

올라간 입꼬리가.

흔들거리던 금색에 가까운 밝은 갈색머리가.

오로지 자신만을 담고있던 눈이 그리웠다.

12월 20일.

오늘은 준호의 생일이다.

“챙겨주고 싶었는데...”

그럴 줄 알았는데.

-선배. 우리 내 생일날 영화보러가요! 심야영화!!!

주머니 속에서 영화표 두 장이 느껴졌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왜 하필 골라도 이딴 영화를 골라서…

자신이 직접 고르면 준호가 생각나 아랫사람에게 시킨 예매였다.

그랬더니 골라온 영화가 하필이면 이런 제목이라니.

보자마자 눈물이 떨어지려는것을 간신히 막고 그 사람을 해고시켜버렸다.

모르고 그랬을 것라는것은 알고있지만.

그랬지만.

가슴이 욱신거리는것은 어쩔 수 없었다.

반짝이는 조명들.

리스가 달려있는 커다란 트리.

북적거리는 도로.

나를 뺀 온 세상은 아무렇지않게 돌아가고있었다.

‘나는..나는 이렇게 아픈데.’

터벅터벅걸어 영화관으로 들어갔다.

벌써 시간은 10시를 가리키고있었다.

지이잉-

자동문이 열리고 영화관 직원들이 한줄로 서서 자신을 마주했다.

“어서오세요, 부회장님.”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고 엘레베이터를 타고 상영실로 향하였다.

아무도 없는 영화관은 조용했다.

작년에도, 제작년에도.

그리고 올해에도.

그를 위하여 전세를 낸 영화관이지만.

표는 두 장 이고.

“보는 사람은 한 명...”

들어간 상영실 가운데에 털썩 주져앉았다.

곧이어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되었다.

-이보쇼! 우리 매향이 못보았오?

-그 아리따운 처자를 말하는겐가? 그 아씨 보름 전 세상을 뜬걸로 알오우. 참 바른 아씨였는데 말이오…

멍하니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어릴 적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인해 헤어졌던 남매.

여동생을 찾기위해 시골에서부터 한양으로 상경해왔지만.

들려오는 소식은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여동생의 묘지 앞에서 오열하는 오라버니와 그런 그를 꼭 껴안으며 말없이 눈물을 흘리는 여동생의 영혼은 관객들의 가슴을 울리기에는 충분하였다.

흐릿해져가는 동생의 영혼을 잡으려 허공을 허우적거리는 주인공을 향하여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오라버니. 사랑합니다..

-선배, 사랑해요…

툭. 투둑-

후두둑 떨어지는 눈물.

왜 저 대사에 준호의 마지막 말이 겹쳐 들리는 것일까.

“끅…흐윽…준호야…준호야-”

애타게 불러보았다.

너도 저 영화 속 여동생처럼 영혼만이라도 좋으니 내 앞에 나타나면 좋을텐데.

그리웠다.

사무치도록 그리워서 미칠 것 같았다.

준호를 따라가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었다.

하지만.

그렇게되면 남을 가족들과.

나를 살리기 위하여 목숨까지 희생한 준호가 생각나 차마 실행에 옮길 수 없었다.

하도 만져대서 반질반질해진 반지가 준호와의 추억을 되새겨주었다.

영화가 끝나고 뒤이어 어제 맡겼던 영상이 나왔다.

-음냐..음냐…선배 보끔밥…못생겼어..젤리세상..커어어

-하나.쪽! 둘. 쪼옥! 셋. 쪼오옥! 됬어요? ㅎㅎ

-아 찍지마여!!! 이씨…나 화난 거 안보여요?

-엥? 형이라고 불러달라고요? 으윽…ㅎ..혀, 혀어ㅓ…으악!! 못하겠어!!!!

-악! 잡지마요!! 으아악!!!!

-헤헤…선배 사랑해요..ㅎㅎ

매 순간 순간을 남겨두고 싶어 사귀고나서부터 간간히 찍었던 영상들과 사진들이 재생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데..

밤이 깊어져갔다.

올해도 어김없이 영화관에서 밤을 지세우겠지.

준호를 생각하고 그리워 할 수 있는 유일하게 허락된 날이니까.

그 사건 이후.

아버지와 자신. 그리고 찬호형의 힘과 권력. 돈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처벌을 내렸다. 박현수의 아버지. 특종에만 미쳤던 여기자. 준호를 괴롭혔던 아이들. 그리고 뒷세력들까지.

한바탕 청소를 끝냈을 즈음.

대한민국은 믿었던 정치인의 검은 과거에 실망하는 사람들과 처벌받는 그들의 모습에 환호하는 국민들. 그리고 준호를 추모하는 사람들까지 각양각색으로 모습을 띄우고 있었다.

준호의 죽음은 한동안 시끄러울정도로 보도되었고. 그의 기일이 오면 뉴스에서 특집으로 방송을 내보내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마저도 크리스마스에 왠 죽은사람 소식을 전하냐는 반발때문에 수그려졌고. 이제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몇몇 없었다.

어머니는 충격으로 한동안 말을 하지 못하시고 식음을 전폐 하시다가 아버지의 걱정어린 눈물과 말에 다시 기운을 차리셨다. 과거와는 많이 달라지신 모습이었지만 아버지와 성현은 그래도 정신을 차려주신 어머니의 모습에 감사했다.

유품은…

전부 그대로 두었다.

성현과 준호가 같이 쓰던 방에 그대로 남아있었으며 그 무엇 하나 건들지 않았다.

하지만.

유일하게 없어진 것이 하나 있었다.

“반지...”

준호의 손가락에 껴있던 반지는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샅샅이 뒤져보았지만 사라지고 없었다.

참담했다.

웃으면서 떠난 그의 모습이 지워지지 않는다.

아직까지 현재에 있지 않고 과거에 머물러있는 자신도 싫었지만 과거에서 나오고싶지 않았다.

과거를 떨쳐내면 정말로 준호와의 연이 끊어지는 것 같아서.

그의 성격은 완전히 뒤바껴버렸다.

얼음장처럼 차가워지고 모든 것을 잊기 위해 공부와 일에만 매진하였다.

덕분에 성적은 전국1등을 달렸고. 수능또한 올백. 지원서를 넣은 대학교는 넣는 족족 다 붙고 외국학교에서 스카웃 제의까지 들어왔지만 그는 한국에 남아 학업과 함께 아버지의 직장에 들어가 일에 매진하였다.

2년 사이 아버지의 회사는 더욱 더 크게 성장하여 대한민국 대표 기업으로 자리잡았고 성장하는것에 크게 도움을 준 성현은 자신의 실력을 인정받아 어린 나이에 부회장 자리에까지 앉을 수 있었다.

선자리도 곧잘 들어왔다.

그와 이어지고 싶은 기업들이 줄을 섯지만 성현은 그 어떤 사적인 자리에도 나가지않고 말 그대로 일만하며 살았다.

그런 그의 유일한 휴식처가 바로 오늘.

준호의 생일이었다.

‘올해가 지나가면 또 내년이 오고 내년이 지나가면 또 내후년이 오겠지.’

준호가 없는 미래들.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이 자신의 눈 앞에서 흘러갔다.

“보고싶다.”

반지에 그의 투명하디 투명한 눈물방울이 툭하고 떨어졌다.




-12.20

25
이번 화 신고 2018-12-18 13:32 | 조회 : 4,080 목록
작가의 말
솔레다

으하하하ㅏ!!! 진짜 제가 왜 그림그리고 있는지 ㅋ 결과물이 만족스럽긴 하지만 난 글작간데 ㅋㅋ 머 전 독자님들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겁니다 ㅋ 큐엔에이 많은 질문 부탁드러요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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