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사의 마왕님 01화

용사의 마왕님 01화

부제 : 신의 기사, 용사



오늘도 늘 그래왔듯이 긴 가발을 꺼내 머리에 고정하고 옷장에서 여자 교복으로 갈아입었다. 방을 나가기 전에 거울 속 나를 바라봤다. 거울 속에 나는 누가봐도 여학생으로 보인다.

"우리 딸 잘 잤니?"
"네. 어머니도 잘 주무셨어요?"
"피부가 안 좋아 보이네. 참 이거."

신문을 읽으며 커피를 마시고 계셨던 어머니는 2층에서 내려오는 날 발견하시곤 신문을 접고 나에게 다가와 흰 약통 2개를 건네주신다.

"생일 선물이야. 마음에 드니?"
"..마음에 무척 들어요. 어머니, 감사해요."

각각 "키 억제제" 와 "변성기 억제제" 가 적혀있다. 나는 익숙하게 약통을 받았다. 어머니는 내 뺨을 두 손으로 감싸며 묻는다.

"우리 딸, 생일 축하해."

약통을 가방에 넣고 집에서 나와 등교했다. 내가 나타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한순간에 몰려드는 남학생들.

"민지야! 좋은 아침! 아침은 먹었어?"
"응. 먹었어."
"그, 그래? 우유 있는데 먹을래?"
"아냐. 괜찮아. 마음만 받을게."

오늘 학교 생활도 별거 없었다. 두 손 가득 남학생들에게 받은 선물들을 들고 후문으로 나가면 늘 한쪽에 검은 승용차가 주차되어있다. 차에 탑승하자 기사님은 날 웃으며 반긴다.

"나오셨습니까."
"오래 기다리셨어요?"
"아닙니다. 그 선물들은 어떻게 할까요?"
"버려주세요. 어머니는 몰라도 아버지는 싫어하시니까."
"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출발한 차는 어느 레스토랑에 도착한다. 안으로 들어가 아버지의 이름을 말하면 늘 그랬듯 안쪽에 있는 VIP석으로 안내해준다. 아버지는 날 보자마자 눈썹을 찌푸리신다.

"네 엄마는 아직도 널 딸처럼 꾸미고 다니냐? 이혼할 때 널 내가 데려 왔어야 했는데."
"후회해도 소용없는 거 아시잖아요."
"지금이라도 아빠한테 오지 않으렴?"
"제가 가면 혼자 남을 어머니가 불쌍하잖아요."

아무런 말 없이 식사를 시작하시는 아버지를 따라 나도 밥을 먹기 시작했다. 1시간 정도 지났을까, 식사를 끝낸 아버지는 식탁 아래에 있던 쇼핑백을 나에게 건네준다.

"생일 축하한다."
"...이건.."
"또래 남자애들이 자주 입는 옷들이다. 옷장엔 여자애들 옷 밖에 없을 거 아니야. 네 엄마 몰래 입어."
"..감사합니다.."

아버지는 가발을 쓰고 있는 내 머리를 쓰다듬고 방을 나간다. 나도 아버지께 선물 받은 쇼핑백과 가방을 들고 레스토랑을 나와 차에 탑승한 아버지께 인사했다.

"태일아."
"네?"
"잊지마라. 너는 내 아들이야. 내 아들, 신태일."
"...당연히 잊지 않았죠."
"다음에 보자."
"조심히 가세요."

아버지가 탄 차가 완전히 보이지 않자 나는 가까운 공중화장실로 향했다. 남자화장실과 여자화장실 가운데에 서서 잠시 고민했다. 어디로 들어가야할지.

주변에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고 남자화장실에 들어가 가장 끝에 위치한 칸으로 들어가 아버지가 선물해주신 옷으로 갈아입고 나와 세면대 거울에 비친 나를 보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평소와 똑같은 길을 걷고 있는 중 많은 사람들이 나를 향해 소리치거나 얼굴색이 창백해진다.

"학생!!! 거기서 나와!!!"
"....어?"

내 발 밑에 생긴 작지만 깊은 싱크홀. 떨어져도 계속 떨어져도 땅에 닿지 않았다. 웅성거리던 사람들 소리와 사이렌 소리가 방금까지 들려 왔는데 이젠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고요한 어둠 속으로 나는 계속 떨어진다.

한동안 계속 되는 어둠과 떨어짐에 떨어져 죽는 것도 두려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언제쯤 땅에 떨어져 죽을지,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중, 밑에서 밝은 빛이 들어오며 물에 빠졌다.

"뭐.."
"드디어 나타나셨다!!"

유럽 중세시대에서 볼만한 옷차림을 한 사람들은 물에 빠진 나를 보며 환호하기 시작한다.

"대체, 여기가 어디야."
"용사님..!!!!"

이상한 곳에 떨어지고 쫄딱 젖어 정신 없는 타이밍에 어느 남자아이가 물에 빠진 날 간절하게 바라보며 용사라 칭한다.

"..용사?"
"용사님! 제발 황녀님을 꼭 구해주세요!!!"
"잠깐 대체 무슨 말.."
"다들 비켜라!!!"

내가 빠진 분수대 주변으로 모여있던 많은 사람들이 한순간에 모세의 기적처럼 길을 턴다. 그 길을 통해 기사들처럼 보이는 남자들이 성큼성큼 다가와 내 앞에 무릎을 꿇는다.

"용사님을 뵙습니다. 나오시죠."
"...아, 예."

한 기사가 날 분수대에서 빼주고 담요를 내 어깨에 감싼다. 정신 없이 기사들은 날 데리고 어딘가로 향한다. 조금 많이 걸었을까, 디즈니에서 나올법한 성이 내 눈 앞에 나타났다. 커다란 성문이 열리며 한 중년 남자분이 걸어와 내 손을 붙잡는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용사시여"
"용사라니, 무슨 말을 하시는지 모르겠거든요?"
"전부 설명 해드리겠습니다."

중년 남자의 단 한번의 손짓으로 뒤에 대기하고 있던 시녀로 보이는 여자분들이 날 어느 방으로 데려가 따뜻한 욕조 안으로 넣는다.

"저 혼자 씻.."
"용사님, 안됩니다. 불편하시면 말씀해주세요."

불편한 샤워를 마치고 욕조 옆에 준비해둔 깔끔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와 또 어딘가로 날 안내한다. 정신없이 뒤따라 도착한 곳은 영화속에서나 봤던 알현실.

"오셨습니까?"
"...네. 옷, 감사합니다."
"별거 아닙니다. 음, 이야기가 길어질 듯하니 앉으시죠."

우선 내 앞에 있는 사람은 ''''''''스칼렛'''''''' 제국의 황제. 그런 위대한 사람이 나에게 머리를 숙이는 이유는 내가 하늘에서 내려준 ''''''''용사'''''''' 이기 때문이란다.

8년전, 조용했던 마계에서 700년만에 마왕이 바뀌었고 그 바람에 인간계에도 큰 영향을 줬다고 한다. 예를 들어 한달동안 해가 구름에 가려 추위만 가득했다던가 등등.

이보다 심각한 일은 모든 제국민들이 사랑하는 ''''''''황녀'''''''' 가 마왕에게 납치 당했다고한다. 납치 당한지 5년동안 기사단을 만들어 마계로 내려가 황녀를 구출하려고 했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가고 ''''''''스칼렛'''''''' 제국에는 어둠이 찾아왔다고 한다.

이를 두고 보지 못한 ''''''''황후'''''''' 은 하루에 3번씩 신전에 찾아가 황녀를 구출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신께 기도를 해왔다고 한다. 그로부터 정확히 1년째 신은 방법을 알려줬다.

"성 앞에 분수대를 만들어라. 그리하면 나의 기사, "용사" 를 그대들에게 보내겠다."

신의 말씀을 기준으로 정확히 2년이 지난 오늘. 내가 분수대에서 나타났다고한다. 신의 기사, 용사인 내가.

"저 용사가 아닌.."
"신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용사는 한번도 보지 못한 밤하늘 같이 어두운 검은 머리와 눈동자를 가졌다고."
"그거 갖고 제가 용사라뇨..!"
"공주를 구출해주신다면 모든 걸 드리겠습니다. 그게 돈이든 제국이든."

싱크홀에 빠졌는데 한순간에 황녀를 구출해야만하는 용사가 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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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2-17 21:08 | 조회 : 4,028 목록
작가의 말
하얀 손바닥

헿, 새 작품을 가져왔어요. 이번에도 예쁘게 봐주세요! 새 작품은 암녕, 한솔 엄마와 같은 연재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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