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사의 마왕님 23화

용사의 마왕님 23화

부제 : 작은 웃음



아까부터 밖이 소란스럽다. 문 넘어 알렉스가 누군가와 싸우는 소리 때문에 시끄럽다.

아무나 와서 조용히 시켜줬으면.

"시끄러워.."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두 귀를 베개로 막았지만, 여전히 시끄러운 건 시끄러웠다. 한동안 계속되던 소란은 어느새 조용해졌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알렉슨가. 아니면 날 구하러 온 세일까. 아니, 그럴 리가. 마왕은 날 구하러 오지 않아. 구하러 왔으면 진작에 날 구했을 거야.

"태일."

부드럽고도 싸늘한 목소리가 문 쪽에서 들린다. 당장 이불에서 나와 확인하고 싶었지만, 목소리마저 나의 착각일까, 보고 싶은 마음에 환청이 들린 걸까, 너무 두려웠다.

"태일."

한 번 더 들려오는 목소리. 이불에서 벗어나지 말라는 내 의지와는 전혀 다르게 내 몸은 이미 이불을 벗어나 문 쪽을 바라봤다.

"...세이..?"
"그래."

난 아무런 생각 없이 침대에서 벗어나 마왕에게 달려갔다. 갑작스럽게 자신을 안아 당혹스러울 텐데, 그는 날 더욱 꽉 안았다.

마족이라 얼음보다 차가운 온기였지만, 오늘따라 그는 나와 같은 따뜻한 온기를 가지고 있었다.

"세이. 진짜 세이야?"
"....진짜다."
"보고 싶었어.."

왜 이제 왔냐고, 왜 지금 왔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소매에 묻은 검붉은 피를 보는 순간 묻고 싶었는 말과는 다르게 엉뚱한 말이 나왔다.

"소매에 묻은 피는 뭐야. 다쳤어? 어디 봐봐. 많이 심해? 왜.."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아픈 곳은. 다친 곳은. 황태자, 그 자식이 그대에게 무슨 짓을 하지 않았나."
"그런 거 걱정됐으면 빨리 왔어야지."

자신 소매에 묻은 피보단 날 걱정하는 마왕의 모습에 장난으로 가볍게 말한 거였지만, 그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진다. 괴로운 표정을 하는 마왕에 내가 더 괴로웠다.

천천히 손를 뻗어 건들면 울거 같은 표정을 하고 있는 마왕의 뺨을 스쳐 푸른 눈동자 아래를 문질렀다.

"이런 표정 볼려고 한 말는 딱히 아니였는데."
"늦어서 미안해. 더 빨리 오지 못해서.."

말하다말고 뒤돌아 버린 마왕에 잠시 당황했지만 곧이어 어깨가 들썩거리는 넓은 그의 어깨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조심히 울고 있는 마왕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조금씩 마왕의 움직임이 잦아지는 걸 확인하고 허리를 감싼 두 팔을 풀고 그에게 말을 걸었다.

"집에 돌아가고 싶어."

내 말에 마법이 걸린 것처럼 뒤돌아 날 바라보며 차갑기 못해 서늘한 손으로 내 뺨을 부드럽게 만진다.

"그래, 돌아가자. 한시라도 빨리."
"응.."

부드러운 손길에 나도 모르게 눈이 점점 감겼다. 곧이어 가슴이 뚫릴 정도로 시원한 박하향이 내 코에 들어왔다. 익숙한 향기였다.

"...추워.. 어라.. 내가 언제 잠들었지.."

언제 잠들었는지 난 넓은 침대에 누워있었다. 방안은 앞을 보기 힘들 정도로 어둡고 추웠지만 동시에 아늑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세이랑.."

마왕이 날 구하러 왔었다. 난 그를 안았고, 그도 날 안았다. 온기가 느껴졌다. 그런데 내 옆에 아무도 없다.

"...꿈이야?"

아니, 그럴 리가.. 난 분명 세이를 만나서 안았다. 아직도 그의 온기가 손에 남아 있었다. 나는 황급히 이불을 걷어차고 침대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

"태일님? 에리샤, 태일님께서 일어나셨습니다."
"태일님, 몸은 괜찮으세요? 일주일간 안 일.."

에리샤와 아델이다. 그럼 세이는? 익숙한 사람들과 복도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왕이 보이지 않아 이 모든 것들이 꿈이라 생각되었다.

"태일님?!"

날 걱정하는 에리샤의 외침이 뒤에서 들려왔지만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그저 마왕이, 세이가 있을 그 곳으로 달려갔다. 한참을 달려 도착한 어느 문 앞.

문 앞을 지키고 있던 기사들은 갑작스러운 나의 등장에 당황했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문을 열었다. 문은 얼마나 무거운지 힘껏 열어야 열렸다.

"태일?"

처음 보는 마족들과 익숙한 얼굴, 발렌시아 경을 옥좌에 앉아 내려다보고 있는 마왕이 눈에 들어왔다. 날 어이없게 쳐다보는 마족들과 날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발렌시아 경을 지나쳐 마왕에게 걸어갔다.

커다란 빨간 카펫이 깔려진 계단을 올라가 옥좌에 앉아 있는 마왕을 주저없이 앉아 그의 품 안으로 더욱 파고 들었다. 파고 드는 내가 걱정스러웠는지 마왕은 턱을 괴고 있던 팔을 풀어 날 안아준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왜 옆에 없었어.. 세이를 보기 전까진 꿈인줄 알았어.. 세이가 구해주러 온것도.. 세이에게 안긴 것도..모든게."
"...그래서 맨발로 여기까지 뛰어온건가."

그제야 내가 맨발을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맨발로 먼 거리를 걸어와 발에는 상처가 났는지 따끔했다. 마왕은 작은 고통에 움찔거리는 내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며 입을 연다.

"우선 그대 발부터 진찰을 받아야하니 회의는 나중으로 미루도록 하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마족들 가운데 웃고 있던 발렌시아 경과 눈을 마주쳤다. 발렌시아 경은 입모양으로 괜찮냐고 물었지만 대답해주기도 전에 마왕이 날 안고 회의장을 빠져나왔다.

"태일님! 그 몸으로 여기까.."
"하이텔을 불러와라."
"하이텔 경은 무슨 일로.. 힉, 발은 또 왜 그러세요..!"

에리샤는 상처가 난 내 발에 조심스럽게 손을 올렸다. 그 바람에 의해 다시 아파와 에리샤의 손에서 발을 빼고 싶었으나 마왕에게 안겨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읏.. 에리샤, 아파.."
"어떡해.. 많이 아프세요? 그러게 왜 맨발로 나가셔서! 아니지, 그런 태일님을 못 막은 아델 경이 문제죠!"
"아니, 갑자기 저는 왜... 아닙니다. 제 잘못입.."
"하이텔을 불러오라는 내 말이 안 들렸나."

마왕의 말에 아델은 하이텔 경을 데리고 오기 위해 황급히 어딘가로 달려갔고 에리샤는 여전히 마왕에게 안겨있는 내 곁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멀리서 하이텔 경과 아델이 함께 오고 있는 것을 확인한 마왕은 그제야 주변에 있는 아무데나 들어가 날 의자에 앉혔다.

"일주일동안 의식이 없.던 분이 여기까지 맨.발로 달려온게 참 대단하십니다."
"...칭찬, 아니죠?"
"당연하죠. 이 말이 어떻게 들리면 칭찬으로 들립니까."

하이텔 경은 잔소리를 해가며 열심히 상처난 발에 약을 바르고 븡대를 감는다. 한순간에 두 발이 새하얀 붕대로 감겨 발가락조차 움직이기 불편했다.

"아델 경이 막으시지 않으셔서 태일님이 다친거라고요."
"그건 제가 잘못한 일이긴 하지만, 에리샤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둘 다 잘못한 일이다. 그보다 상태는 어떤가." "당분간은 움직이지 않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푸흐."

새하얀 붕대를 감은 두 발과 걱정하고 있는 저 넷 사람을 보니 웃음이 새어나왔다. 드디어 집에 돌아왔다는 안도의 웃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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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5-07 23:18 | 조회 : 1,992 목록
작가의 말
하얀 손바닥

절 기억해주실 분들이 계실까, 하는 마음을 가지면서 연재했었는데.. 절 기억해주시는 분들이 많이 계셔서 놀랐어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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