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작문 X] 못 써도 글귀는 남기고 싶어서 2.5

<1>

그 비는 누구를 위한 여우비였을까?

<2>

인생이 한 번뿐인 것처럼
후회도 한 번뿐이라면 좋았을 텐데.

<3>

하늘이 어둡네, 내 마음처럼.
하늘이 맑네, 내 마음도 모르고.

<4>

장애인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면,
경계선 지능을 모르는 사람들은 더 많다.

글이라는 매체보다 그림이나 노래라는 매체가 받아들이기 좋을 텐데.
어떻게 해서든 내 눈이 너무 안 좋아지기 전까지 그림을 터득해야 한다.

<5>

저는 제 눈에 벌레와 같이 살아요.

형태도 안 보이게 지나가는 고마운 실벌레들과
징그럽게 형태를 보여주며 늦게 지나가서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지렁이들과
가끔씩 벌레도 이도 저도 아닌 공 모양과 함께예요.

피곤할 때면,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흰 화면이면, 눈을 감을 때면, 잘 때면,
하늘을 볼 때면, 흰색이면, 빛이 보이면...

특히 햇빛이나 빛이 보일 때 눈을 감으면 흰색의 벌레들에게 색이 입혀져요.
붉은색, 붉은색과 보라색, 다양한 색이 보이는데 이걸 광시증이라 한다네요.

저는 비문증과 광시증, 둘 다 있는데
너무 슬픈 건 시신경이 망가졌을 때
치료방법이 없는 것처럼 제가 겪고 있는 증상
역시 치료방법이 없어 공생하듯이 살아가야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증상에 걸리고 나서부터 밖에 나가는 게 꺼려져요.

다른 사람들은 온전히 보이는 세상이
제게는 제 기능에 하자가 생긴 것처럼
세상을 온전히 볼 수가 없어서요.

그래서 컴퓨터 화면을 어둡게 해 놔요.
일정 시간이 되면 화면에 노란 끼가 생기게도 해 놨어요.

어느 때에는 엑셀 창을 키고 함수 연습을 했다가
긴 지렁이를 보는 순간, 기겁할 정도였거든요.

무서워서 잠들고 싶지 않을 때가 많아요.

겁에 질리고 무서워하는 사람에게
본인은 안 보인다며 꾀병이라 받아들이지 말아 주세요.

정말 힘들어하는 사람은 상처를 심하게 받아요.
마치 좋아하는 사람을 떠나보낼 때처럼요.

<6>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오는 그때까지도
저는 계속 추락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을 거예요.

<7>

디카페인 콜드 블루가 사약처럼 썼다. 물에 희석해서 마셨지만,
그 씀이 인생의 쓴맛을 대신하는 거라면
진정한 쓴맛을 알기에 희석해서 마시지 않으려 한다.

<8>

난 안 걸리겠지, 하고 넘겼던 질환 2개, 이명과 비문증.
걸리고 나니까 내 생각이 안일했고
누구나 걸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9>

내가 어떻게 하면 좋겠어?
생각만 하지 말고 입 밖으로 의견을 내 봐.
일찍 일어나서 내 시간을 네게 할애할게.

<10>

네가 내 안에 있는 불문율을 깨지 않는 이상엔
난 네게 다정하지 않은 친절만 베풀 거야.

<11>

내가 사랑을 대하는 방식은 다정이고,
내가 우정을 대하는 방식은 친절이다.

<12>

참 어이없고 한심하게도
내 천성 때문에, 너와 나눈 그 정 때문에,
아직도 네게서 정을 떼지 못하고 다정한 내가 있다.

<13>

내가 가진 정보를 가지려는 사람은 쉽게 떠나고,
날 좋아해 주는 사람은 오래 머문다.
이 사실을 인지했다면 날 좋아하게끔 만들어야 한다.

어떻게 해서든 좋아할 만한 걸 들고 와서,
누구보다 더 빠르게 교류하면서.

<14>

처음에는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내 사람들만 챙기려고 하는 심리에 이해가 가.

결국 나도 내 사람들만 챙길 거고,
내 사람들이 아닌 사람들은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날 테니까.

남는 사람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날 좋아하는 사람들밖에 없어.
아무리 사람 수가 많아도 날 좋아해 주지 않으면 공허함은 계속돼. 변함없이.

내가 다른 사람을 좋아해도 다른 사람이 날 좋아하지 않으면 그게 무슨 소용이야.
그래서 내가 껍데기로만 이웃하는 걸 싫어하는 거야.

싫어하게 되면, 관심이 없어지면 떠날 거라는 걸 아니까.
난 관심 있고 좋아해도 나만 힘들잖아.
이런 관계를 지속했다간 망가지는 건 나밖에 없어.

누군가가 날 싫어한다는 건 익숙해져야 하는 일이고
나 역시 친절로, 무관심으로 대응하면 그만인 일이지만
그럴 때마다 상대방의 관심과 호감이 내게 0이면
나도 상대방한테 관심과 호감은 0이야.

난 우리가 쌓아온 그 정과 추억, 소통이 0으로 리셋되는 게 싫어.
1년마다 초기화한다고 해서 우리가 나눈 것들이 사라진다는 것도 싫고.
우리가 남긴 흔적들이 자기가 좀 그렇다는 이유로 지워지는 것도 싫어.

네가 지운다고 해서 우리의 관계가 지워진다고 생각하는 거 같은데,
난 지워지지 않았어. 아직 남아 있어. 나만 괴로워해야 한다면 우리는 끝내는 게 맞아.

억지로 소통하며 관계 이어갈 바에야 끝내는 게 맞지.
그동안 내가 너무 구질구질하게 붙잡은 탓도 있을 테고.

우리는 맞지 않는데, 그치?
우리가 나눈 것들은 모두 한여름 밤의 꿈이지?

그래서 없던 걸로 치부하고 싶은 거지?
너에게 있어 우리가 나눈 건 삭제되면 그만인 거지?

근데 난 너의 그런 마인드를 이해하고 싶지도 않고
네가 존중받길 원한다면 너도 날 존중해야 할 거 같은데.

그래도 마무리는 덜 아프게 헤어지자.
예쁘고 고운 말 쓰며 헤어지자.

마지막까지 나만 아팠어도
마무리는 서로 담백하며 나누며 끝내자.

<15>

넌 나와의 관계가 아무런 관계가 아닐 순 있어도
내게 있어 하나하나 소중하게 이어온 이 관계는 아무런 관계가 아닌 게 아니야.
무척 소중해서 버리고 싶지 않은 관계란 말이야.

내가 이렇게 얘기해도 넌 끝내 이해하지 못하겠지.
그래, 알고 있어. 우리는 서로 맞지 않는 거였잖아.
그러니까 당연히 이해 못 하지. 내 입장 안 돼 보면 넌 날 이해 못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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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2-07-11 00:24 | 조회 : 443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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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yee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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