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70화




집에 들어서자마자 평소처럼 아버지가 부엌에 앉아계셨다.
이제는 내가 묻기도 전에 아버지는 윤 철과 그 여자의 근황을 알려주며 둘이 먹으면 된다고 말씀해주셨다.

아버지가 조금씩 나에게 마음을 열어가는게 내가봐도 느껴졌다.
윤 설이라는 사람에 대한 오해들을 풀고 싶으니까, 얼른 아버지랑 친밀감을 높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손 씻고 와서 앉아라."
"사장님께서 작은도련님 기다린다고 2시간째 하나도 안드시고 계셨어요."
"그걸 굳이 얘기 할 필요는 없습니다."
"네~"


아주머니는 아버지가 나와 저녁을 먹기 위해서 2시간이나 가만히 앉아서 부엌에서 대기중이셨다고 말씀해주셨고, 아버지는 민망한지 내게 빨리 손을 씻고 오라고 하셨다.

'오늘이면 물어봐도 되지 않을까.. 나에 대한 생각이 바뀐부분이 있는지 없는지.. 그리고 정말로 내가 사고를 당했는지'

나는 여러가지를 생각한 후에 자리에 앉았다.
아주머니가 보이지 않자, 아버지는 오늘은 빨리 퇴근하셨다며 말씀해주셨다.
확실히 둘만 있으니까, 어색함이 느껴지는 것 같긴 했다.

'이 상황에 물어볼 수 있으려나....'

아직 시기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여러가지말고 적당히 떠보는 식으로 물어보려고 고개를 드는 순간 아버지와 눈이마주쳤다.

사람이 살다보면 눈이 우연히 마주치는 경우가 있다고 하지만, 이 경우는 다르다.
누가봐도 빤히 쳐다보고 있다가 마주친 경우다.
아버지는 전혀 신경도 안쓴다는 식으로 쳐다만 보고 있었다.

'할 말이 있는건가..'


"왜요?"
"...."
"하실 말씀이 있어서 그러신거 아닌가..해서..."
"아까"


'아까?'


"집 앞에서 왜 소리지른거냐"
"...네?"
"집 안까지 다 들리던데"


'아까 지른 소리라면..'


"혼자 있던 것도 아닌 듯 하던데"
"아...그..태겸이랑 같이 "
"......"
"태겸이 알죠?그..."
"안다."


아버지의 표정이 좋지 않아보였다.
왜 저런 표정인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아무말도 하지 않고 그냥 밥을 퍼먹었다.


"요즘은 잘 지내나보지."
"....네?"
"아직까지 잘 지내니까 같이 얘기도 하고 그러는거 아니냐"
".....아... 맞아요."
"한동안 안 노는 듯 하더니, 아니었구나."
"제가요?"
"그래. 너 말이다."
"...."
"난 그래서 싸운 줄 알았더만, 요즘은 잘 지내나보구나."
"아... 조금의 오해가 있어서 풀었어요, 그래서 잘 지내게 됐어요."


아버지가 봤을 때에도 내가 모르는 척 하는게 눈에 보였다는 거겠지..
그러면 엄청 붙어다녔다는 소리다.
김태겸을 비롯한 애들의 말만 들어도 엄청 친했던 사이라는 건 알 수 잇었긴 하지만 말이다,

'그니까 뽀뽀도 스스럼없이 한건가.. 그 정도는 원래 아무것도 아닌 것 처럼 하던 사이여서 그런가..'


"그래서 그나저나 소리는 왜 지른거냐"
"갑자기 뽀뽀ㅎ....네?"
"....뭘 해?"
"아...네? 뭘해요?"
"......."
"와아.. 배부르다. 오늘따라 너무 피곤하네..와.. 잘주무세요 아빠."
"....어딜 ㄱ"


어딜가냐는 아버지의 말이 뒤에서 분명히 들렸지만, 나는 전혀 듣지 못한 척 했다.

'어쩔 수 없잖아.. 눈이 너무 무서웠는걸'

나는 그냥 방에 올라와서 옷을 갈아입고는 침대에 누웠다.
그러다가 아까 김태겸이 해줬던 말들을 정리하기 위해서 노트를 꺼냈다.

윤 설이 쓰던 일기장에 일기를 이어쓰려고 했었지만, 나랑 일기는 맞지 않는다는 결론이 맺어졌다. 도저히 써지지도 않고 뭔가가 오글거려서 쓰려고해도 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처박아놓은, 내가 봤을 때와 그대로인 일기장과 펜을 한 자루 챙겨서 침대에 누웠다. 오늘 내가 들은 얘기들을 정리를 해보기 위해서였다.

많은 것들이 생각보다 더 얽혀있다고 확신했다.

메모하는 것들 가운데에 쓰여진 하여운이라는 이름에 동그라미를 몇번을 친건지 모르겠다. 그렇게 하나 둘 씩 정리를 해가면서, 내가 알아내야할 것들을 하나씩 적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적고 있는데, 갑자기 울리는 전화소리에 나는 펜을 쥐고 적고있던 손을 멈추고는 휴대전화를 바라봤다.


"...은호 형?"


나는 나에게 전화를 건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을 하고나서야 전화를 받았다.
괜히 또 하여운이나, 윤 철 같은 사람이랑 전화했다가 기분을 망치기가 싫었기 때문이다.


"여보세요? 은호 형?"
"응. 설아 아직 안들어간거야?"


'....아 맞다. 전화하기로 했었는데, 나도 모르게 까먹고 있었던 것 같다.'


"...들어..들어갔어요. 전화해야되는데 까먹었어요. 아버지가 저녁먹자고 해서.."
"그렇게 먹고 또 먹은거야? 설이 살찌겠다."
"..저 쪄도 되거든요? 그리고 얼마 안 먹었어요. 그냥 아버지가 기다리고 계셔서 몇숟가락 든거에요."
"그래그래. 잘했어. 넌 좀 쪄야돼. 변명 안해도돼요."
"...근데 막 놀리고 그러네."


내 말에 은호 형이 웃는 소리가 들렸다.
은호 형은 목을 가다듬더니 말했다.


"태겸이랑은 얘기 잘 했어?"
"...네 듣고 싶었던 얘기들도 들었고, 알고 싶었던 것도 들었고 많이 했어요. 얘기.."
"그랬구나. 사실 아까 엄청 따라가고 싶었는데, 너도 그렇고 태겸이도 아끼는 동생이니까 내가 조금 참았어. 잘했지"


칭찬을 바라는 듯 엄청 밝게 말하는 형의 목소리에 나도 그냥 웃었다.
그러자 형은 진심이라면서 농담이 아니라는 식으로 얘기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내게 사과를 했다.


"미안해 설아."
"네? 뭐가요?"
"아까.. 그 연락.."


솔직히 이 형이랑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다가 그냥 서로 호감이 있는건데 이렇게까지 내게 설명을 해주려는 부분에서 순간 감동을 받았다.

'게다가 나도 할 말이 없는걸..'

아까 김태겸의 만행이 있었는지라, 형에게 뭐라할 말이 없었다.


".....아니에요. 그냥 쌤쌤이 해요."
"..뭐가?"
"네?"
"쌤쌤이 하자는 말은 그런 일이 있었다는거야? 오늘 무슨일 있었던거 아니지?"
"...아...."
"설아?"


'이걸 얘기해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해봤지만, 나중에 내가 얘기안하고 김태겸이 얘기해서 알게 되면 더 속상하지 않을까 싶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얘기했다.


"......형 있잖아요, 제가 그 애들이랑 어렸을 때 부터 친했던 거 아시죠?"
"알지. 내 동생도 거기 있으니까."
"그런데.. 많이 친했나봐요. 스킨쉽 같은거 자연스럽게 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알죠 그 형도 엄청엄청 친한 친구랑은 자연스럽게 할 ㅅ"
"뭐했는데.."
"....."
"설아?"
"....그냥 그 뭐지.. 볼에 뽀뽀정도? 정말로 친해서 그런 것 같아요, 오랜만에 옛날처럼 얘기해서 좋았나봐요. 그래서 그.. 자기도 모르게 옛날버릇이 나온게 아닐까요?"
"옛날버릇이라..."
"...형?"
"응. 얘기해 설아."
"......아니에요."
"그래. 형이 잠깐 할 일이 있어서 오늘은 조금 일찍 끊을게. 오늘은 윤 철 집에 없지?"
"...네"
"그래 잘자고. 학교에서 봐."


형은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굳이 얘기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냥 얘기하지 말걸 그랬나...'

나는 이상한 생각은 그만하자고 중얼거린 뒤 아까하던 노트정리를 계속했다.
그렇게 다시 집중하고 있는데 또 휴대폰이 울렸다.

아까와는 다른 벨소리가 끊임없이 울렸다.
단톡방에 초대가 된 듯 했다.

'....뭐야 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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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1-08-08 21:57 | 조회 : 1,665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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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zima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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