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화

77화









하여운도 오늘 나에게 뭔가 할 얘기라도 있는건지 문을 열고 내 옆의 애들이 아닌 나와 눈을 마주친 채 그 자리에 서있었다.

어떻게 쟤를 눈에 띄지 않게 불러내나 머리가 아파왔는데, 굳이 내가 안건들여도 하여운 쪽에서 먼저 다가올 것 같았다. 하여운의 눈빛을 나만 느꼈던게 아니었던건지, 자리에 가지않고 옆에 계속 있던 이도하가 슬며시 말을 걸어왔다.





"쟤 너 쳐다보는거 맞지"

"...그런 것 같은데.."

"......"





메인공 후보가 메인수를 바라보는 눈빛은 전혀 아니었다. 확실하게 얘네도 하여운에 대한 좋은 감정이 이제는 전혀 없는 것 같았다.

뭐 나한테는 잘된일이었기에..아니 윤설에게는 잘 된일이었기에 하여운이 안타깝지도 않았다. 애초에 하여운이 했던 행동들이있는데 윤설이 지금 하여운을 안타깝게 생각할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너무 원작파괴지만 내가 여기 들어온 것 부터가 원작대로는 흘러간다고 할 수 없게 되니까, 그냥 그부분은 신경쓰지 말자'



하여운을 대하는 공들의 요즘 대우를 생각했을 때, 하여운이 조금 안쓰럽다고 생각했는데 윤 설이라는 아이가 당했던 일들을 생각해보면 내가 괜한 오지랖을 떨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괜히 윤 설에게 미안했다. 윤 설에 대한 죄책감이 더 들었으면 들었지, 이제는 하여운에 대한 감정은 별로 없었다. 신기하게도 분노마저도 별로 생기지 않았다. 여러 생각을 하던 도중에 큰 소리에 깜짝놀라면서 뒤를 쳐다봤다.





"준이 왔어~ 설이는 왜그렇게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는거야"

"시끄러 너때문인거 안보여?"

"나는 승호한테 물어본거 아닌데..?"

"하.."





백승호는 성 준과는 더 할말이 없는 듯 고개를 돌려버렸다.

하여운은 성 준의 큰소리에 정신차린건지 자리에 가서 앉았다. 하여운이 내 뒷자리였기에 내 뒤통수는 레이저로 쏘는 듯한 느낌이 들 만큼 쑤신느낌이 들었다. 김태겸도 언제온건지 백승호에게 자리를 비키라고 했고, 백승호도 자신의 자리가 아닌걸 알고 있었기에 별말없이 자리를 비킨 후 한숨을 다시 크게 내쉬더니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백승호마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자, 이도하와 성준도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이제서야 내 주변이 조금 조용해진 것 같았다. 얘네가 조용히 하자 반 자체가 조용해졌다.

남고는 조금 더 떠들썩한거 아닌가 싶었지만, 내가 있는 곳이 소설 속, 심지어 꽤 오글거리는 인소 속이라고 생각하면 뭐 거의 인소말로 하자면 사대천왕같은 애들이 입을 다물면 반 자체가 조용해지면서 눈치를 보는것도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애들이 거의 다 왔는데도 윤지는 오질 않은 것 같아서 먼저 연락해볼까 생각했는데, 먼저 윤지에게 문자가 왔다.





[설아.. 쏘리 나 오늘 엄마랑 어디 가야할 것 같아서 학교 못갈 것 같아... 초반이라면 걱정되었을 것 같은데, 지금은 걔네가 나보다 더 챙길테니까 걱정은 안되네 ㅋㅋㅋㅋㅋ 연락이 저녁까지 안될 것 같으니까 걱정하지말고 오늘도 좋은하루~]





누가봐도 윤지가 쓴 것같은 텐션에 조용하게 웃음이 나왔다.

나도 윤지의 문자에 알겠다는 답변을 보내고 휴대전화를 껐다.

윤지의 문자에 집중하고 있던건지, 옆에서 김태겸이 언제부터 쳐다보고 있었던건지도 알수 없었다.





"...왜?"

"아니, 뭐가 그렇게 재밌나 싶어서."

"그냥 윤지연락"

"....설아"

"어?"

"너는 우리가 안ㅁ"



"자리에 앉아 다들."





김태겸이 무언가를 말할 생각이었던 것 같은데, 문학선생님이 들어와서는 이미 다 앉아있는 우리들에게 앉으라고 했다.

김태겸의 말을 듣지 못한 나는 슬그머니 물었지만, 김태겸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그냥 넘겨버렸다.

뭔가 중요한 말같아서 계속 여러 방법을 통해서 물어봤지만, 김태겸은 개무시를 했다. 무시하기가 힘든건지 얼굴을 숙이고는 자는척을 했다. 어지간히 알려주기 싫은가보다 싶어서 나는 그냥 포기했다.



그렇게 다짐한 것보다 조용하게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심지어 하여운도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고 그냥 무언가를 계속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4교시인 체육시간이었지만, 오늘 마침 체육선생님이 개인적인 일로 인해서 오질 않았다고 했고 그냥 자습을 하라는 소식이 반에 전해졌다.

확실히 남자애들이라 그런지, 체육활동 대신에 자습시간이 주어지니까 엄청 불만족스러운 얼굴들을 하고 있는 모습들이 보였다.

반애들은 일주일에 별로 되지 않는 체육시간을 잃기 싫었는지, 반장인 이도하에게 다가가서 이름을 불러댔다. 이도하의 얼굴은 난감한 것 같은 표정이면서도, 무언가 흥미롭다는 표정을 동시에 지니고 있었다. 이도하는 알겠다며 백승호의 오른팔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왜"

"선생님들 너 눈치 많이 보니까. 너도 데려가려고"

"미친놈"

"칭찬고마워"





이도하는 미친놈, 이중인격자새끼, 또라이 같은 욕을 내뱉고 있는 백승호를 아무렇지 않게 끌고 교무실로 내려갔다.

반애들은 이도하가 나가자마자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옆자리에 앉은 김태겸도 언제 고개를 든건지 옷을 꺼내기 시작했다.





"빨리 갈아입어 너도"

"...? 아직 허락 못받았잖아."

"이도하가 갔는데 저거 하나 허락 못받을 것 같냐?"

"아.,..."

"빨리 입어..아니 여기서 벗지말고 화장실 가!"

"놀래라. 왜 소리를 질러! 원래 여기서 갈아입었잖아."

"...이제는 안돼. 이미 자각한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더하려고. 빨리 화장실갔다와. 기다릴테니까"

".......밀지 ㅁ"





나는 내 체육복과 함께 우리반에서 내쫓겼다.

내가 내 옷 갈아입는다는데, 지들 옷을 벗기겠다는 것도 아니고 왜 저렇게까지 민감하게 반응하나 싶었지만, 그냥 화장실로 향했다.



그렇게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서 반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거기서 마주친 사람에 의해 걸음이 멈춰졌다.

하여운도 내가 여기 있었다는 걸 알고있었다는 듯 전혀 놀라지도 않고 나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오늘 얘기 좀 하자. 점심먹고 매점쪽으로 와."

"........."

"너도 궁금한거 많을 거 아니야. 나도 너한테 할말이 조금 많거든?"





하여운은 그 한 마디를 남기고는 화장실에서 먼저 빠져나갔다.

나는 어벙벙한 상태를 하고 있다가 나를 찾으러온 김태겸에 의해서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되었다.





"...."

"왜 그렇게 멍때리고 있었어?"

"아무것도.. 그냥 배고파서?"

"이거 끝나면 점심시간이니까 좀만 참아. 애들한테 너 데리고 간다고 했으니까 빨리 가자."

"강당이래?"

"아니, 운동장에서 자유롭게 하래. 이도하가 말하자마자 바로 허락했다네"

"..."

"내가 걔네 때놓는다고 얼마나 하씨.."

"...고생했어?"

".....가자"





김태겸은 이제서야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눈치를 챈 듯 내쪽은 쳐다도 보지 않은채로 걸었다. 혼잣말을 하려했는데, 너무 크게 얘기를 한 것 같았다. 나도 모르는 척 좀 할걸.... 싶었다. 그렇게 아무말도 하지 않고 운동장에 도착했고, 먼저 와있었던 하여운과도 눈이 마주쳤지만 하여운이 먼저 고개를 돌려버렸다.



나도 뻘쭘해서 그냥 모른척 스탠드에 앉아있었다.

우리 광공 후보들은 역시나 열심히 뛰어다녔다. 그 이도하마저도.

역시 광공의 자격중에는 운동신경도 있는 것 같았다. 아니면 저렇게까지 4명다 잘할수는 없을 것이다.

공과 만년간 원수관계였던 나와는 정말 다른 세상 사람들 같았다.



'소설 속 세상이더라도 얘네한테는 이게 자기들 세상이겠지.. 내가 이곳에 이 몸으로 있는게 맞는걸까'



이곳이 소설속이라는걸 다시 한번 깨닫게 될때마다, 정말 죄책감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솔직하게 말해서 내가 기억이 나는 부분의 이수한의 인생은 그렇게 좋은 인생이라고 할 수는 없었고, 아무것도 모른채로 내 몸으로 간 윤 설은 이수한의 세상을 견딜 수 있을까. 이수한은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는 인생을 살고 있을텐데. 믿었던 애인한테 배신당하는게 그나마 가장 마지막기억이었고, 정말 최악의 기억이었다.



나는 윤 설의 몸에 들어와서 매일이 즐겁고, 눈도 호강하며 지내고 있었는데, 윤 설은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을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친구 좀 만들어 놓을 걸 그랬다. 내가 해줄수 있는 가장 큰 일이었을텐데.. 이제는 해줄수도 없는 일에 후회를 하고 있을 때, 언제 끝난건지 축구경기는 끝나있었고, 이미 애들은 내 옆에 앉아있었다.



왔으면 부르면 되는걸 나를 쳐다보고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는게, 조금 많이 민망했다.

윤 설의 얼굴은 내가 생각하기에도 잘만들어진 얼굴이었지만, 나는 이런 얼굴에서 살았던게 아니었기에, 이런 시선은 아직 많이 부담스럽다.

정신을 차리고는 부르지 그랬냐며 먼저 말을 했고, 내 말이 끝나자 성 준은 자신이 주말에 꾸었던 꿈얘기를 해줬다.

완전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를 계속 했지만, 오히려 그게 성 준 다웠고, 재미도 있었기에 그냥 계속 들었다 .

성 준이 꽤나 말을 재미있게 잘한다는걸 새삼스럽게 오늘 다시 알게 되었다.



'.....오늘? 새삼스러워? 내가 왜.. 나는 성 준 옛날 모습같은건 모르는데,. 내가 느끼는 감정이 아닌 윤 설이 느끼는 감정인건가..'



나는 계속 내 머리를 쿡쿡 찌르는 생각들을 아무렇지 않은듯 넘겨버렸다.

그러다보니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고, 다들 우렁찬 소리를 지르면서 밥을 먹으러 뛰어갔다.

마치... 좀비같은 느낌이었다.



나도 밥을먹으러 가기 위해서 일어나려했는데, 앞에 손들이 보였다.





"...왜?"





'얘네는 설마 내가 스탠드에서 일어나는 것도 못할거라고 생각하는건가? 아니면...'





"너네 설마 나 여자로 생각하는거야?"

"....뭐?"

"아니 왜 무슨 여자친구 대하듯이 하는데? 뭐 소중한거 대한다는 듯이 왜그래?"

"........"

"뭐야.. 왜그러는데?"





나는 내가 느낀 위화감에 얘들에게 내 생각에 대해서 물었지만, 애들은 진지하게 듣더니 갑자기 자기네들끼리 쳐다본 후에 나를 다시 돌아보며 웃었다. 그것도 엄청 큰 목소리로.





"우리가하 너를 여자로 생각흡.."

"아니 왜 웃는데?"

"설이 너가..큽..."

"........."





백승호는 아예 울려고 하는 것 같았다.

아니 내가 그리 웃긴 말을 한 것도 아닌 것 같은데, 그냥 얘네가 남고에 있어서 그나마 예쁘게 생긴 이얼굴을 여자처럼 대하는게 아닌가 싶어서 물어본 말이었다. 그렇게 된거면 한대씩 때려주려고 했던거였는데...





"설아."

"....왜"

"쟤네는 모르겠지만, 나는 너한테 잘보이려고 하는 행동이야."

"...."

"설이 너가 남자던 여자던 날 도와준건 변하지 않고, 그리고 여기있는것도 변하지 않았고, 내가 한 행동들도 없어지지 않았으니까. 너랑 더 잘 지내려고 그러는거야"



"이도하 꺼져. 개오글거리니까. 윤 설 저딴 이중인격자 말 듣지마"





백승호는 이도하가 말하자마자, 이도하를 밀쳐버리더니 나를 잡고 일으켜서는 데려갔다.

뒤에 애들도 멍때리다가 따라오는게 보였다.





"나도"

"어?"

"나도 너 여자로 생각한적 없다고. 나 여자애들한테 하는거 니가 못봐서 그래. 내가 널 여자로 생각해서 이 짓을 하는거면 내가 미친거겠지"

"........."

"가자."





나는 조금은 안심을 하고는 백승호의 손에 이끌려서 급식실로 갔다.

뭐, 내가 진짜 안끌려가고 싶었으면 물어버려서라도 이손을 치워냈겠지만 오늘만 봐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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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급식을 먹고 반으로 올라온 후에 나는 화장실을 가겠다고 말하고는 매점쪽으로 갔다.

계속 따라온다던 애들을 따돌리느라 생각보다 조금 시간이 지체가 되었고, 얼른 뛰어서 매점에 도착했을 때, 기다리던 하여운이 손짓을 하고는 뒤로 휙돌아서 걸어갔다.



이번에도 하여운만 따라서 걸었는데, 순간 주변이 조용해지면서 사람들이 없어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때 그 공간이었다. 하여운과 처음 대화했을 때, 하여운이 데리고 간 곳이었다.





"....야 하여운 어디까지"

"이제 얘기하자."

"..........."

"너 뭐야. 너가 이수한이라는 사람을 어떻게 알지?"

"......너야말로 뭐야?"

"......."

"넌 이수한을 왜 아는데?"

"하.. 나만큼 이수한을 잘 아는 사람도 없을걸?"

"그게 뭔소리야. 니가 뭘아는데"





'하여운이 나를 어떻게 안다는건데'





"내가 이수한을 어떻게 아냐고? 내가 쓴 소설 인물을 내가 모를리가 있을까?"

"..........뭐?"





순간 내 머리를 누가 세게 친듯한 착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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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2-02-27 22:57 | 조회 : 1,332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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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zima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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