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시작

"카밀라, 너 요새 기침을 자주 하네? 감기야?"
"글쎄... 감기면 며칠 새에 나을텐데 아직도 안 나아서... 모르겠네."

칼럼의 말을 듣자 요즘 따라 기침을 자주 했던 기억이 났다.

"그럼 많이 아픈 거 아니야? 오늘은 나도 약속이 있어서 간호를 해줄 수가 없는데... 어떡하지? 많이 아파?"
"아니야, 괜찮아. 별로 안 아파. 곧 낫겠지."

아, 이렇게 아팠을 때 아밀론 공작이 간호 해줬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참 따뜻했는데...
그게 놀음이었다는 걸 정말 믿으라는 건가

"얼른 다녀와. 아, 그리고 곧 가문을 이을 거라면서? 축하해."
"어? 어, 고마워."
"근데 그럼 카틀로우 공작은 어떻게 되는 거야..?"
"아... 형은 프뢸리히 공녀 저택에서 살기로 했대. 둘이 이미 약혼했다 하더라고."
"정말 날 있었구나..."
"어? 뭐라고?"
"아니야, 잘 다녀와."
"응, 얼른 올게."

칼럼이 문을 나섰다. 의자에서 일어나 침대로 향했다.



발에 무언가가 걸렸다. 발로 시선을 옮기니 편지 봉투 하나가 눈에 띄었다. 편지 봉투로 몸을 숙여 열어보니 아밀론 공작과의 서신이 몇 십장이 들어있었다. 서신 몇 장을 집어 펼쳐 읽어보았다. 편지에서 흐르는 미묘한 기류와 로맨틱한 분위기가 내 몸을 간지럽게 했다.

이 때 진짜 좋았는데...

"아."

또 무슨 쓸 데 없는 생각을...

"프뢸리히 공녀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갑자기 프뢸리히 공녀에 대해 궁금해졌다. 입고 있는 줄무늬 티셔츠와 검은 롱 드레스 위에 점퍼를 걸치고 바를 나왔다. 바를 나오자 코로 들어오는 텁텁한 공기가 익숙하다. 시야를 가리는 안개와 뚝뚝 떨어지는 부슬비가 알 수 없는 오묘한 기분을 만들어 냈다. 기침을 하며 손수건으로 입을 가렸다 때는 순간.

"꺄악!"

손수건에 묻어 있는 대량의 피가 날 놀라게 했다. 다시 바에 들어가 거울을 보니 입 근처에 핏방울이 묻어 있었다.

"이, 이게 뭐야..?"

*

오랜만에 공작을 만나서 그런가... 기분이 정말 짜릿했다. 오랜만에 만나 카밀라의 사형을 취소해 주고는 날 사랑하도록 만들었다. 조금 잔인한가 싶었지만 이게 잔인하다니...

"그 뒤에 벌어질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손가락을 가득 채운 루비와 사파이어, 다이아몬드 반지들이 햇빛에 반사되어 빛났다. 그래, 내 모습은 이래야지. 보석함을 열어 반지들을 모두 다시 담고 왼손 약지의 반지까지 모두 뺐다. 보석함을 닫고 옆에 있던 붉은 벨벳 드레스를 입고 붉은 벨벳 장갑을 꼈다.

"음..."

다시 보석함을 열어 왼손 약지에 루비 반지를 끼고 다시 장갑을 꼈다.

"샐리, 오늘은 카틀로우 공작이 오는 날이지?"
"네, 5시 즈음에 도착하신다 하셨습니다."
"1시간 정도 남았군, 내 머리 좀 해줄 수 있나?"
"물론이죠."

내가 등받이가 없는 의자에 앉아 좀 기다리자 옆에 높은 쿠션 탁자를 두었다. 그러고는 뜨겁게 달궈진 굵은 쇠막대를 이용하여 곱슬 머리를 쫙 폈다. 그렇게 30분 정도 머리를 피고 머리를 달궈진 쪽빗으로 머리를 다시 폈다. 머리가 상하지 않게 기름칠을 하고 다시 분칠을 했다.

20분 정도 남으니 얼굴에 파우더를 칠하고 눈과 입술 화장을 했다.

"하... 머리 정도만 하면 되지... 무슨 화장까지 하나?"
"그래도 오늘은 입술 정도는 해야 할 것 같아서..."
"그래... 그 정도는 해야 사람 꼴이 나겠지."

피로한 눈을 다시 붙이고 피로함이 사라지자 다시 깼다. 공작이 오기까지 5분 남았다. 공작이 올 때까지 소파에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사실 별로 좋아하지 않는 책이지만 날이 날이니 만큼 책을 억지로 읽기 시작했다. 이 소설책의 내용은

"이기심과 물욕에 적셔진 귀족들은 부지런한 평민들에 비해 멍청하고..."

"이딴 책은 어떤 사람이 통과시키는 건지..."

그때,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공작이 온 건가?
의자에서 일어나 치마를 살짝 들어 올려 1층으로 내려갔다. 예상대로 1층에는 공작의 하인들과 하녀들이 공작을 호위하고 있었다. 그 사이 단연 눈에 띄는 아밀론 공작은 심란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전 날 잠을 자지 못한 건지 눈 밑은 다크서클이 내려와 원래 하얀 피부가 다크서클과 대조 되어 훨씬 피곤해 보였다.

"아, 카틀로우 공작, 오셨습니까?"
"... 내가 들어갈 방은 어디지?"
"... 하인들도 앞에 있는데 무례하시게 반말에 안부 인사도 없으시다니... 농으로 받겠습니다. 공작께서 들어가실 방은 저기 2층 왼쪽 2번째 방입니다. 제 방의 바로 앞이니 제가 안내 해드리죠. 샐리, 하인들이 머물 방은 샐리가 안내해 주도록."
"네."

그와 계단을 올라가며 주변에 하인들이 있나 고개를 돌려 봤다. 아무도 없군.

"좋으시겠어?"
"갑자기 왜 그러는 거지?"
"방금 들으셨지 않습니까? 하녀들이 공작의 외모를 칭찬하던데... 심지어 제 앞에서 얼굴을 붉히는 자도 있었죠."

*(아밀론 시점)

그녀의 얼굴이 조금 일그러졌다. 기분이 나쁘신 거겠지.

"그런가? 이 몸의 외모가 적당히 수려하셔야지."
"어련하시겠어요."

그녀의 속셈은 이미 눈치챘다. 자기 방 바로 옆에 둬서 1분 1초 마다 감시하려는 거겠지. 그녀는 찰랑거리는 머리를 귀 뒤로 넘기고 나를 힐긋 쳐다봤다. 일부러 그녀를 보지 않은 척 하자 그녀가 피식 웃었다. 그녀의 날카로운 눈매가 감겼다가 다시 떠졌다. 누가 봐도 일부러 눈을 오랫동안 감은 것이었다.

방문을 열어보니 생각보다 넓은 방에 침구와 책상과 같은 필요한 건 다 있었고, 방 안에 하나 더 있는 문을 열어보니 작은 서재 하나가 나왔다. 생각보다 준비를 많이 했네.

"여기서 지내면 돼. 필요한 게 더 있으면 말하고."

그녀는 그 말만 남기고 방을 나갔다. 창문을 활짝 열고 공기를 쓰읍 들이마셨다. 상쾌하고 깨끗한 냄새가 나는 것만 같았다. 황실 근처 도시에서만 살다 이런 곳에서 사니 기분이 묘했다. 앞에 보이는 울창한 숲이 날 편안하게 만들었다.

"카밀라도 숲 좋아했는데..."

...

"아... 이제 카밀라 생각은 접어야 하는데..."

볼을 살짝 꼬집고 카밀라 생각을 접고는 방에 짐을 풀 준비를 했다. 먼저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천으로 만들어진 상자에 들어 있는 옷을 옷장에 모두 집어 넣고 책을 책장에 다 꽂아 두었다. 그리고 서류를 책상 위에 놓아두고 빗으로 한껏 올렸던 머리를 내렸다. 긴 앞머리가 눈을 콕콕 찔렀다. 이런 느낌이 싫어서 머리를 감으러 수건 하나를 챙겨서 하인 준을 찾으러 1층으로 향했다. 그리고 지나가던 하녀 아루니아에게 준을 불러 달라 말했다.

"아... 준이요? 준은 지금 심부름을 하러 저택에 없는데요... 다른 하인을 불러 드릴까요?"
"아니네, 그냥 혼자 씻지."

혼자 2층 욕실로 들어가 문을 닫고 머리를 감은 후, 목과 어깨에 수건을 걸치고 나왔다.

"아."
"어..."

프뢸리히 공녀와 마주쳤다. 그녀는 눈을 커다랗게 뜬 채,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 봤다. 그러고는 어울리지 않게 볼을 붉게 붉히고 자리를 피했다. 나는 조금 당황하여 프뢸리히 공녀의 이름을 불렀지만 그녀는 그대로 방에 들어갔다. 그녀가 왜 저러는지 의문을 품고 방에 들어가 거울을 보며 수건으로 머리의 물기를 간단하게 털고는 공녀의 방에 노크를 했다.

똑똑똑

"프뢸리히 공녀, 무슨 일이지?"
"..."
"공녀?"
"...그냥 가요!"
"아... 알았네. 곧 같이 저녁을 먹지. 준비하고 천천히 나오게나."

나도 방에 들어가 세미 바지에 흰 셔츠를 입고 머리를 빗으로 빗고 1층으로 내려갔다.

"어? 공녀, 갑자기 왜 도망간 거지?"
"네? 제가요?"
"방금 내가 욕실에서 나왔을 때, 그때 도망갔지 않나?"
"하... 무슨 소리야? 나는 욕실 근처에 간 적도 없는데. 그렇게 라도 내 관심을 끌고 싶은 거야?"
"아니... 분명 공녀가 욕실 앞에..."
"아뇨, 안 갔다고요."

공녀는 손에 들고 있던 위스키 병을 만지작 거리다가 다시 말을 걸었다.

"그건 뭐 알겠고, 식사하고 같이 술이라도 마실래요?"
"뭐... 그러지."
"네, 그럼 식사하시고 10시 쯤에 제 방으로 오십시오."
"그래."

조금 불안하긴 했지만 같이 술을 먹자 약속을 하게 되었다.

#19세기 #전염병 #혐관 #퓨전사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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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2-09-29 18:22 | 조회 : 417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