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우연인가

(채현 시점)

"자, 얘들아, 이번에 전학생이 왔는데 역대급이다, 너희가 그렇게 원하던 존예 여학생이다. 기대해도 좋아."

교탁 앞에서 부반장이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뭔데ㅋㅋㅋㅋ 어떻게 생겼는데? 말 좀 해봐라ㅋㅋ"
"음... 일단 금발이야. 외국인인듯."
"뭐야, 외국인이야?"

연우가 놀라며 물었다.

"응, 그리고 키가 겁나 커, 내 생각엔 한... 170 정도 되어보였는데?"
"아, 난 키 큰 여자 별론데."
"근데 ㅈㄴ게 예쁘다니까ㅋㅋㅋㅋ 외국 여자 무시 못해ㅋㅋ 심지어 S라인 미침."

부반장의 노골적인 말에 기분이 나빠졌다. 여자애들은 자기들 얘기 하느라 바빴고, 원래 여미새인 애들만 그 얘기를 듣고 있었다. 다시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점점 음악이 귀에 익숙해져 콧노래가 흘러나올 때 즈음 선생님이 들어왔다. 귀에서 이어폰을 빼고 교탁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앞문을 보자 금발 머리카락이 눈에 띄었다.

'아, 쟤인가?'

"큼, 주목! 얘들아, 오늘 전학생이 왔어. 이름은 하엘이라더라. 외국인이니까 너희가 잘 좀 챙겨주고. 너희가 알아서 친해지렴."

언제나 저 담임은 맘에 안 든다.

"자, 하엘아, 들어와라."

앞문이 열리는 순간, 활짝 열린 창문에서 벚꽃 향을 잔뜩 머금은 바람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그 애가 들어왔다. 바람에 흩날리는 금발 머리카락, 신비한 푸른 눈, 아침 햇살과 같은 하얀 피부에, 큰 키, 곧게 핀 자세를 가진 여자애 하나가 들어왔다.

순간, 심장을 크게 요동쳤다. 그 애를 소개하는 담임의 말은 들리지 않고, 그 애가 수줍어하며 머금은 미소만이 내 눈에 들어왔다. 그 애와 눈이 마주치자 그 애는 싱긋 웃어보였다.

눈치 챈걸까?

일부러 옆자리가 빈 걸 티내려 옆자리에 올려놨던 짐들을 정리해버리고는 옆자리 책상을 손가락으로 살살 두드렸다.

"하엘아, 어디에 앉을래?"
"음... 빈자리가 3곳이나 있네요?"
"응, 아무대나 앉아도 된단다."
"어... 저기 첫째 분단 끝자리요."
"채현이 옆자리 말이니?"
"저 남자애 이름이 채현인가요?"
"응, 여자애 옆에 앉는 게 편하지 않을까?"
"괜찮아요, 제가 창가자리를 좋아해서요."
"뭐, 너가 좋다면야. 저기 가서 앉으렴."
"네."

그 애가 나에게 서서히 다가온다. 그 애가 다가올 수록 얼굴은 뜨거워지고 심장은 더 요동쳤다. 이런 감정 오랜만이다.

"안녕, 너가 채현이야?"
"어? 으응, 공채현이야."
"아~ 난 하엘이야, 프랑스에서 왔어."
"어... 반가워."
"응, 나도 반가워."

그 애는 가방에서 필통과 노트를 꺼냈다. 그러고는 가방을 더 뒤지기 시작했다.

"어? 어? 이상하네?"
"왜 그래?"
"아... 저기, 진짜 미안한데... 내가 교과서를 안 가져왔나 봐... 나 교과서 좀 같이 봐도 될까?"
"아, 얼마든지!"
"정말? 고마워."

하엘이가 날 향해 방긋 웃어주었다. 웃을 때 보조개가 생기는 구나...

그 애가 내게 가까이 오자 그 애에게서 샴푸향이 확 느껴졌다. 달콤하면서도 자연스러운 머스크 향 같았다. 그 애가 머리카락을 귀 뒤로 쓸어 넘길 때마다 내 시선은 어디로 갈 줄 몰랐다. 1교시가 다 끝나고 그 애 주변으로 애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그 애들과 웃으며 얘기하는 넌... 정말 빛과 같았다. 반대로 난 음침하다며 뒷담만 먹는 애인데... 이런 나에게도 다가와주는 너가 너무 좋다.

길게 긴 앞머리 때문에 너가 안 보인다고 생각할 때 즈음 머리를 자르러 가랴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파란 포스트잇에 컴싸로

'머리 다듬으러 가기'

라고 적어놓을 때 즈음 너가 내게 다시 말을 걸었다.

"머리 자르러 가게? 같이 갈까? 나도 가야하는데."
"어? 너랑?"
"응, 내가 아는 헤어 스튜디오 있는데, 같이 가자."
"어..."
"혹시 싫어?"
"아, 아니. 좋아. 오늘 하교하고 같이 가자."
"그래!"

너에게 한 발짝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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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2-07-26 22:05 | 조회 : 400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