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세리의 비밀 (4)

아침이 밝아왔다. 오지 않았으면 좋았을텐데.

“무슨 벌써 아침이야…”

대충 씻고 나와서 화장대 앞에 앉았다. 눈은 아직 살짝 멍이 든 채였고, 눈 바로 옆에는 작은 상처가 나 있었다. 상처에 연고를 바르고 쿠션으로 상처와 멍을 가렸다. 화장을 거의 다 끝내고 립을 바르려 하는데 뭔가 오늘은 립을 바르기 싫었다. 립밤만 바르고 교복을 입은 뒤, 가방을 챙겨 집을 나왔다.

집을 나오자 집 앞에서 언제나 기다리고 있던 친구들이 온데간데 없었다. 혜주도, 채영이도, 민주도.

“아.. 뭐야…”
“세리야!”

누군가 내 이름은 힘차게 불렀다. 깜짝 놀라 뒤를 돌자 내 뒤엔 하엘이가 날 보며 싱긋 웃고 있었다.

“깜짝이야… 웬일이야..?”
“엥? 무슨 소리야? 당연히 같이 등교하려고 불렀지.”
“아…”
“얼른 가자, 우리 이러다가 지각해!”
“으, 응.”

오늘은 언제나 데려다 주던 오빠도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하엘이와 둘이서 걸어가게 되었다. 하엘이는 어제 일은 기억도 나지 않는지 평소처럼 태연하게 있었다. 분명 저것도 가식이겠지? 저러면서 학교에 도착하면 날 모르는 척 할거야.

학교 정문 앞에 도착하자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날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선생님들의 비웃음, 학생들의 속삭임.

“세리야.”

갑자기 하엘이가 날 크게 불렀다.

“응? 왜?”
“저런 말 신경 쓰지 마. 난 너 믿어.”
“어?”
“자, 가자!”

하엘이의 큰 목소리를 들은 탓일까 사람들의 비웃음과 시선이 줄어들었다. 하엘이 말처럼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그게 한 번에 되는 일이 아닌듯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하면 할수록 더 신경이 쓰였다. 어찌저찌 교실에 도착하자 교탁 앞에서 수다를 떨고 있는 채영이와 민주가 보였다. 둘은 날 보고는 더 크게 웃었다.

주혜는 남자애들과 같이 게임을 하느라 날 보지 못했다. 책상에 앉자 한 남자애가 내게 말을 걸었다.

“야.”
“어? 왜?”

태연한 척 그 남자애를 향해 싱긋 웃었다.

“너 화연고 대신 전해드립니다 봤어?”
“응?”

남자애의 말이 끝나자 아이들의 시선이 내게 꽂혔다. 아…

“아, 아니? 거기에 뭐 올라왔어?”
“…아냐.”

화연고 대신 전해드립니다에 올라온 사실을 부정하려고 입고 온 유명 명품 브랜드의 아우터와 머리핀이 걸리적 거렸다. 그때 오빠한테서 전화가 왔다. 기회다 싶어 큰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어, 오빠! 무슨 일이야?”

또 아이들의 시선이 나에게 꽂혔다.

“세리야, 오늘 오빠가 바빠서 못 데려다 줬네. 뭐 타고 갔어?”
“아.. 나 친구랑 걸어갔어.”
“그래? 그래도 조심해라.”
“응!”
“그래.”
“응, 오빠! 고마워! 나 이제 끊을게.”
“어, 끊어라.”

전화가 끊기자 아이들은 당황스러운지 어색하게 행동했다. 일부러 전화의 소리를 크게 해놔서 애들에게 오빠와 나의 대화가 들렸을것이다. 오빠가 날 걱정하는 듯이 말하는 걸 듣고 당황스러운가 보지.

대화를 들은. 채영이와 민주, 그리고 주혜가 내게 다가왔다.

“세리야, 왜 나한테 인사 안 했어? 안 온줄 알았잖아!”

민주가 내게 가식을 떨며 말했다.

“아… 너희 얘기하고 있길래.”

최대한 차갑게 답을 했다. 민주는 조금 불편한 티를 내곤 채영이에게 어떻게 좀 해보라는 듯 눈빛을 보냈다.

“아, 세리야, 우리 이번주에 학교 끝나고 쇼핑하러 갈건데 같이 갈래?”
“쇼핑? 나 어제 오빠랑 해서…”

거짓말을 쳤다.

“오빠랑? 알겠어! 그러면 다음에 같이 하자!”

채영이와 민주가 도망치듯 자리를 피했다. 주혜는 내 옆에 털썩 앉으며 내게 속삭였다.

“너, 화연고 대신 전해드립니다 봤지? 너 되게 티나.”

그러고보니 주혜를 생각 못했다. 주혜는 되게 눈치도 빠르고 상황파악도 잘한다. 주혜는 내 옆에서 날 빤히 쳐다보았다.

“아니, 안 봤어. 대체 뭐가 올라왔길래 그래?”
“봤구나, 너 연기 진짜 못한다.”

주혜는 내 떨리는 눈동자를 봤는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하고는 내게 밴드 하나를 주고는 갔다. 설마 하며 거울을 보니 쿠션으로 잘 가렸다 생각한 상처가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컨실러를 챙겨 화장실로 갔다. 상처를 컨실러로 가리며 입으로는 작은 소리로 주혜에 대한 욕을 한바가지 쏟아냈다.

“세리야…”

내 뒤에서 다 들은 듯한 표정을 하고 있는 하엘이가 보였다.

“어?”

하엘이는 손에 들고 있던 밴드와 아이스팩을 세면대에 두고 날 바라봤다.

“너 화연고 그거 본거지?”
“…응.”
“그거 진짜야?”
“…”

하엘이에겐 차마 거짓말을 하기 힘들었다. 이미 주혜에게도 다 들킨 상황에 하엘이에게 거짓말을 치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었다.

“사실… 그 내용 반은 맞는데… 반은 아니야. 그러니까 오해는 하지 마.”
“어떤 내용이 맞는 거고 어떤 내용이 틀린 건데?”

하엘이의 표정이 굳었다.

“그.. 내가 집에서 무시 당하고 그러고 사는 건 맞는데… 무슨 오빠한테 몸을 판다느니 그런 말은 진짜 아니야.”

눈물이 나왔다. 학교에서 마저도 무시 당하고 살기 싫어서 거짓말을 치며 살았던 건데…
이제 다 들켰다.

하엘이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어떤 말을 할지 모두 보지도 듣기도 싫었다.

“저.. 하엘아. 미안해.”

눈물을 흘리는 내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 화장실을 나왔다.

하엘이가 준 밴드는 이미 세면대 위 물에 젖어 쓰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그게 마치 내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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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2-11-26 11:44 | 조회 : 348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