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 , 쾌락 ( 3 )

″ 지금까지 본 사람들 중에서, 제일 슬퍼보였어, 그게 다야.
하지만…그 때 본 널 잊을 수 없어서, 라고 말한다면. 믿어 줄래ㅡ? ″



씁씁히 웃으며, 덧붙여 말했다.
차마 너가 과거의 나랑 비슷해 보여서, 라고는 입 밖으로 꺼내지도 못한 채.



*** 도진 시점 ***



″ 지금까지 본 사람들 중에서, 제일 슬퍼보였어, 그게 다야.
하지만…그 때 본 널, 잊을 수 없어서. 라고 말한다면.
믿어 줄래ㅡ? ″



주혁의 말을 듣고 있자니, 눈시울이 시큰거리며, 고통과 쾌락으로 인해 맺힌 눈물이
감동인지, 놀람인지 모를 감정 때문에 더욱 더 눈물이 맺혀서 흘러내렸다.



주혁을 오랫동안 만나진 않았지만, 주혁이 절대 ㅡ할래?, 라거나 ㅡ해줄 수 있니?
라는 등의 공손한 말따위 쓰지 않을거란 걸, 알고 있었다.



그런 사내가, 그런 오만한 남자가.
제 자신에게 부탁하듯, 애절한 어조로 말했다.
당연히 믿을 수 밖에 없지 않은가ㅡ?
설령, 그 남자의 말이 설탕발림이라도, 다섯 살 짜리도 눈치 챌 거짓말이이여도.
절대로 믿을 수 밖에 없었다.
아니, 믿지 못하는게 말이 안됐다.



사실, 제 자신도 왜 주혁에게 호감을 품었나ㅡ? 라고 묻는다면, 꽤나 망설일 것이다.
몇번 씩이나, 강간아닌 강간으로 몸을 부딫힌 것 밖에 없는데.
그리고 몸을 섞었다고 해도, 서로 마음을 나누고, 믿고 의지할 수 있던 것도 아니였다.
근데, 도대체 왜ㅡ?
아마도, 단 한번도 제대로 된 애정을 받지 못한 자신에게.
누군가가 호의, 애정을 품고 다가왔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도진의 외모나 다른 기타 등등으로 인해 호감을 품고 다가온 이들은 많았다.
그 사람들을 쉽게 거부하거나 내치진 못했지만, 그래도 이상한 마음을 품고 다가온
사람들은 확실히 내쳤다.



그러나, 이 남자는 뭔가 달랐다.
다른 이들과 같은 욕망을 갖고 다가왔음에도, 도진이 도자기 인형이라도 된 듯.
그렇게 소중하게 다루는 이는 처음봤기 때문이다.
저건 너무나도 모순적이지 않은가.
그 누구보다 도진, 제 자신을 더럽히고 싶다는 욕망이 뚜렷하게 보이는데도.
그렇게나 자신의 마음을 감추고, 숨기고, 없애고 다가온 이는 없었다.



세상에, 어떤 사람이 자신의 욕망보다 자신이 호감을 품은 사람의 안위를 생각하겠는가.
뭐.. 있기야 하겠지만, 도진이 만나본 사람 중에는 없었다.



″ …제가 그렇게 남을 신뢰하지 못하는 사람 같나요? ″



자기도 모르게, 말이 뾰족하게 나갔다.
아, 이거 고쳐야되는데.



내가 알게모르게 얼굴에 딱 티가 났나본지, 주혁이 몇번 쿡쿡ㅡ, 거리며 낮게 웃더니
낮게 속삭였다.
그렇게 넌 나에게 빠져나갈 수 없어ㅡ, 라고 외치듯이.



″ 아니ㅡ, 오히려 너무 잘 믿어서 죄지. ″



주혁이 행복해죽겠다는 표정으로 도진의 눈가에 가볍게 버드 키스를 했다.



아, 어떡해.
진짜, 진짜, 내가 이렇게 감정기복이 심했나?



얼굴이 전부 토마토처럼 빨갛게 익어버렸다.
제기랄, 망할 얼굴.
남한테는 포커페이스 소리 자주 들었는데, 이 남자한테만 무방비 상태가 되어버리니.



″ …하?, 뭐 제가 어린 아이인 듯 다루시네요?
그나저나, 이 손이나 떼시죠? ″



아까부터 은근히 자신의 허리를 쓰다듬는 주혁의 손을 잡아채며 말했다.
그러자, 주혁이 단 한번도 도진에게 지어준 적 없는, 순수한 어린아이 같은 표정으로 웃었다.
지금까지도, 아니 앞으로도, 볼 수 없을, 미소를 보고 있자니 괜히 얼굴이 빨개져왔다.
평소처럼 능글맞고 음흉한 미소도 아니고, 온갖 비뚤어진 감정들이 모인 비웃음도 아닌.
순수한 웃음이 너무나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 글쎄, 니가 좋아서 힘들겠는걸. ″



주혁이 아까와 같은, 순수한 미소를 지으며 평소보다 약간의 하이톤의 목소리로 나긋나긋히 말했다.
그러며 도진을 꼬옥 안더니, 도진의 어깨에 기대고, 몸을 잘게 떨며 덧붙였다.



″ 너무, 너무 좋아서… 견디기 힘들어. ″



주혁이 말하는 말을 듣고, 도진은 느꼈다.
아, 쾌락을 이런 식으로도 맛볼 수 있구나, 라고.



도진도, 주혁의 넓은 등을 꼬옥 안아주며, 말했다.



″ 저도, 좋아요. ″



아마도, 세상에서 제일 서투를 고백이 두 사람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서투를 고백이지만, 누구보다도 행복할, 그런 고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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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5-18 21:34 | 조회 : 3,922 목록
작가의 말
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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