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여우-RINHYE(수현×지운)

수현X지운



"왕비님, 결코 사랑에 빠지시면 안되옵니다. "



그 말을 끝으로, 나는 왕비가 되었다.



-



"중전마마!"
"어찌 그리 뛰느냐."
"하아 하아, 합궁일이 정해졌다 하옵니다"
"올것이, 온 모양이로구나."


난 남자다. 그러니까 애초부터 중전마마따위, 어울린적 없었다. 들키면, 우리 가문은 끝인가.
미소에 씁쓸함이 감돌았다.


"중전마마..."
"오늘은 잠들기 어려울것 같구나. 가문에서 가져온 차를 내거라"
"예"



-



"합궁일이 정해졌다...라"
"주상전하, 부디..."
"알아, 아니까 작작 하지? 초혼도 아닌데"


체통따위 지키지 않고 막말하는 왕에 한숨이 나오는건 어쩔 수 없다. 서른도 채 되지 않은 왕의 두번째 혼인 이었다. 저번 왕비는 폐위되었다. 늘 투기(질투)만 일삼던 국모였다. 폐위는 통쾌했지만 재혼한 왕비의 얼굴은 하늘에 별따기 만큼 보기어려웠다. 그러나 늘 기억속에 머물러 있는 얼굴이 었다. 우물쭈물 하는 모습도 사랑스러웠고, 처음봤던 날 울던 모습도 귀여웠다.
왕, 그는 이미 사랑에 빠져있었다.



-



"허어, 그러니까...왕비가 남자라?"
"예. 그렇사옵니다"
"큭큭,"
"어찌 그리 웃으십니까? 왕비가 남자라 함은 왕손이 끊긴다는 것입니다! 부디, 왕비를 폐위하고 권 가에게 벌을 내리소서!"
"아직 합궁도 안했는데 어찌 그리 말하느냐?"
"예?"
"이몸이 친히 확인하도록 하겠으니, 그만 나가보라"
"주상전하!"
"영의정! 내가굳이 두번 말해야겠소? 이만 물러가시오"
"전하...!"
"말 같지도 않은 소릴.."


나가는 영의정의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던 왕은 한마디했다.


"내, 그걸 몰랐을 것 같은가 영의정?"



-



합궁일, 6월 초하루날 해시(9시~11시)


"중전마마, 자선당으로 뫼시겠나이다"
"내 금방 가겠네"


눈앞까지 닥친 위기에 의외로 목소리가 담담했다.


"여봐라, 가문에서 내온 차를 챙기거라. 곧 채비해 자선당으로 향할 터이니"


어쩌면 궁궐에서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밤, 최대한 조용히 잠들고 싶었다.


"예 마마."



-



"주상 전하 납시오!"
"중전, 먼저 와있었구려!"
"예 전하"
"술 한잔 하시겠소?"
"잠을 깊이 자지 못해 차를 준비하였나이다"
"이 좋은 날에 술이 빠지면 되겠소? 자자, 한잔만 받으시오"
"딱 한잔만 받겠나이다"



밤이 깊고 술도 깊으니 이 얼마 좋은 날인가.
그대, 술 한잔 받으시오.



-



"어찌하여...! 제게 이런일이 생겼단 말입니까.."


술한잔으로 취해버린 중전을 보며 왕은 그저 담담히 웃었다.


"허면, 어떤 일을 하고 싶었소?"
"좋은....가 되고 싶었습니다.."


웅얼거린 탓에 제대로 듣지 못하였다. 야속한 중전은 한잔만에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잠든이를 취하는 취미는 없거늘... 쯧쯔, 여봐라 상궁들은 물러가 보아라. 중전이 잠이 들었으니 합궁은 후일로 미뤄야 겠구나"
"예 전하"


사박거리는 발걸음 소리와 함께 상궁들이 물러났다. 그래도 일일히 문을 재껴 확인한 왕은 조용히 중전을 깨웠다.


"안 먹은거 아니 일어나시오"
"...갔습니까(소곤)"
"푸흐, 그렇소"
"이 짓도 힘드네요. 되도 않는 술주정이라"
"좋은 뭐가 되고싶었으냐?"
"...좋은 아버지가 되고싶었습니다"
"권 가의 효는 유명하지 않더냐?"
"여기까지만 하죠. 가문의 치부따위 제 알 바가 아닙니다"
"어찌 남자의 몸으로 왕비의 자리에 들어왔느냐?"
"원래 약속 되었던 누나가 전 날 야밤도주를 한 터라 별 다른 도리없이 제가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 차는 무엇이더냐?"
"불면증을 해소해주는 차이옵니다"
"밤도 깊고 상궁도 없으니 합궁을 시작할까?"
"남자의 몸으로 어찌.."
"권 가가 대대손손 몇백년 가까이 죽 자손을 이을수 있던 이유가 있다. 바로 남자도 임신할 수 있다 게지."
"예...?"
"권가는 그리하여 왕들과 계약을 맺었다. 권력과 한명의 아이를. 한 아이가 허수아비 왕비가 되는게야. 그럼 왕은 마음놓고 다른 사랑하는 이와 만나고 권가는 권력을 쥐게 되지. "
"끔찍해요. 잔인하고요. 그 어린 소녀는 무슨 죄죠?"
"그래서 내 너에게 사랑을 주지 않으려 했거늘,"


왕은 천천히 왕비의 머리를 쓸어넘겼다.


"이미 홀려버렸더구나."
"전하....!"
"이름을 불러주겠느냐?"
"수..현아"
"기억하고 있었구나. 나를"


외면하고 있었지. 이건 말도 안된다고 되새기면서. 소꿉친구가 왕이 되고 나는 왕비가 되는 그 상황자체가 억지라고 여겼으니까.


"전처럼 편히 대해"
"너를 사랑할 수 없다고 했어"
"괜찮아. 외사랑은 늘 해왔으니"
"뭐? 또 누구한테!"
"너한테"


멈칫- 하던 왕비는 빨개진 얼굴을 가리고자 이불에 얼굴을 숨겼다.


"벗어"
"...?!"


동그래진 눈으로 수현을 바라보고 있으나 수현은 개의치 않았다.


"벗어 지운아"


망했다.



-



"벌써 8개월째라구요"
"곧 태어나겠다."


볼록해진 배를 쓰다듬으면서 수현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너와 닮았으면 좋겠다. 빛을 닮은 아이가 태어났으면.


"늘 사랑해, 지운"
"수현아. 알고있지? 난 늘 네편이야"



-



탕-


"흐으...."
"그러게, 제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절대 사랑에 빠지지 말라고. "
"원손...원손만은.."
"걱정마시지요, 잘...지켜드리겠나이다"
"그.,렇다면 미련은 없습니다"


지운은 비교적 천천히 말을 이었다. 어둠에 가려졌던 살인자의 얼굴이 달빛으로 천천히 드러났다.


"아버지"
"마마, 이제 정녕 가실 시간 입니다. 곧, 주상께서 오시겠지요"
"한방에, 미련없이 부탁드립니다"


탕- 한번더 총성이 울렸다. 또 한번의 죽음이 왕을 덮쳤다.



-



"원손이 장성하여 이제 왕위를 물려주어도 되니, 나는 이만 물러나겠다."
"아바마마, 아니 되옵니다!! 아바마마!"
"부디 좋은 왕이 되거라, 아들아"


미련없는 뒷모습으로 왕은 떠났다. 아무도 찾지 않는 곳으로.



-



"나 왔어... 지운아"


씁쓸한 미소를 띠며 수현이 지운의 무덤을 쓰다듬었다.


"바보야, 혼자 가면 어떡해."



그때의 넌 이 불행을 알기라도 했던걸까.

나에게 그런 말을 해준 이는 네가 처음이었다고 얘기조차 못했건만. 이제 돌아올 수도 없는 널 그린다.

아름다웠던 옛 모습, 울던 귀여운 모습, 발그레하던 첫날밤. 내 기억 깊숙이 각인되어 눈 감을 때 마다 떠올려.





사랑해, 권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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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01-14 23:16 | 조회 : 2,465 목록
작가의 말
월하 :달빛 아래

팬픽 쓴게 좀 될거예요, 아마? 차곡차곡 모아놓은게 풀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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