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의 요새-기략님(송결×벤자민)

원래 송결 X 벤자민 -판타지 시대

"벤자민!"

그가 나에게 환히 웃어주었다. 그의 웃음이 나를 녹일만큼 다정했고, 닿을 수 없음이 한탄스러운 그 따스한 웃음.

"예, 도련님."
"에에, 나빠. 벤자민도 나 이름으로 불러줘."
"송 결님. 어쩐 일이신가요?"
"나랑 놀러가자!"
"예에? 지금 공부시간 이시온데.."
"쉬잇, 벤자민 얼른 따라와요."

또 그 무서우신 분에게 얼마나 야단을 맞으시려고. 결님을 따라가면서도 걱정이 앞섰다.

"여기야! 이쁘지 않아?"
"와아.."
"내가 찾았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결님이 자랑하셨다. 푸흐, 귀여우셔.

흐드러진 꽃밭 사이로 다채로운 꽃들이 채워졌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서 계신 결님, 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솔직히 꽂 따위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결님이 훨씬 아름다웠다.

"결님."
"응?"
"결님이 훨씬 이쁘십니다."
"흣, 그..그런 말은 부끄러워..!"

결님도 언젠가 아내를 맞으시겠죠. 그 옆자리는 결코 제가 될 수 없음을 알기에,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요. 십 대의 결님을, 이십 대의 결님을, 모든 시간의 결님을 제 눈속에 담으렵니다. 이 사랑이 끝맺지 못함을 알기에, 저는 결님을 마음속에만 담으렵니다.

"이제 가셔야합니다. 공부시간이 늦으셨습니다."
"조금만 더, 벤자민. 이 아름다운 광경을 두고 가려니 아쉬워."
"내일 또 오시면 되죠."
"같이 와줄거야?"
"...결님의 말이라면"


지옥이라도 가겠나이다.


-


"그게 무슨..."
"이제 너도 혼처를 정할때가 아니더냐? 다행히 마땅한 혼처가 몇 있더구나."
"아버지."
"어허, 토달지 말거라."
"제가, 사랑하는 이가 있사옵니다."


으흠, 송 백작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기색을 내비췄다.


"그 사람이 저와 이어지지 못할 건을 아옵니다. 차라리 홀로 늙어가게 해주소서."


결도 자신의 처지를 안다. 아마 억지로 하게 된 결혼을 아버지는 탐탁지 않아 하여 벤자민을 구박하겠지. 그래, 그런 것 보다는 차라리 이게 나아. 무엇보다, 벤자민이 어떤지 나는 모르니까.

"그리 간곡하게 부탁하니, 알았다."
"감사드립니다."

송 백작 역시 더 이상 토를 달지 않고 결의 선택을 존중해주었다.

-

"결님, 얘기 들었습니다."

마주 앉은 자리가 불편했다. 그는 이렇게 대할 자가 아닌데,

"벤자민, 편히 있어"
"결님, 저는 당신의 가장 가까운 수족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당신이라는 소리가 그리 달콤하게 들릴 리가 없는데, 사랑에 빠진 남자는 이리도 멍청하더냐.

"결님이 사랑에 빠진 그 '소녀'가 궁금합니다."
"아직 네게 들려줄 때가 아니야."

벤자민이 충격 먹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한발짝 물러났다.

"차는 맛있어?"
"예."
"벤자민은 라벤더 꽃을 좋아하는구나."
"라벤더 향을 좋아할 뿐, 꽃을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벤자민이 가만가만 결의 물음에 답하였다.

"무슨 꽃 좋아하는데?"
"서귀나무를 아십니까?"
"저기 피어있잖아. 나무에 핀 꽃 좋아해?"
"...그런 편입니다."


서귀나무의 꽃말은 '당신만을 사랑하오'.


-
"송 백작님!"
"그렇게 부르지 말랬잖아, 벤자민."
"결님."
"다른 사람에게는 호칭으로 불려도 벤자민에게만큼은 이름으로 불리고 싶어."

결님이 환히 웃으셨다. 그 웃음이 너무 환해 나는 눈이 멀었다.

-

벌써 그 뒤로 3년이 흘렀다. 결님은 자라나 젊은 나이에 백작을 하시고 되었고, 연로하셨던 결님의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그때 나는 펑펑 울어 무슨 가족같이 우냐며 핀잔 받았다. 그렇지만 내가 결님과 만나게 해주신 분이다. 그 분이 없었다면 나는 여전히 어둠에 홀로 잠식돼 살아갔을지 모를 노릇이다.


"결님.저는 이제 어느 처소로 옮기면 됩니까?"

결님이 백작이 되시던 날, 나의 물음에.

"응? 벤자민은 내 곁에 있어야지!"

그 밝은 대답에 나는 또 할 말을 잃었다.


-


"벤자민, 내곁에 있어줘서 고마워"

문득 회상이 끝나고 보니 결님이 천천히 고개를 어깨로 기댔다. 두근거리는 기분이 좋은 가슴 떨림이 나를 질식시킨다.

"달이 참 예쁘다, 그치?"

어쩌면- 하는 나쁜 상상을 해본다. 이뤄질 리 없는, 그 나쁜 상상.

"예, 결님."
"벤자민, 지금 이 순간만이라도 나에게 '결'이라고 불러줘."

달빛이 정원을 장식하고 까만 밤하늘에 박힌 별이 반짝 거릴 때.

"결...아."

단 한 마디에 나쁜 짓을 한 것 마냥 가슴이 왜 이리도 아픈가.


아아, 나는 그 한 마디에 알아버린 것이다.


그대와 나의 신분의 벽은 벅차도록 높아서,


우리는 영영 이어질 수 없음을,


-


"결님, 그게 무슨....!"
"벤자민, 나는 싫어?"
"그런 게 아닙니다, 결님. 분명 사람들이 욕할 겁니다. 또한 먼저 가신 백작님께..."
"벤자민, 나는 너의 의견을 묻고 있는거야. 어때, 나는 싫어?"

싫을 리가 있겠어요? 그토록 품어왔던 사람인데.

"결님. 저는 이뤄지지 못할 사랑을 숱하게 봐왔습니다. 그래도 저는 두렵습니다. 당신을 욕먹일까봐. 저는 단지 그게 두려울 뿐입니다."

천천히 얘기하는 벤자민의 눈동자에 생생한 두려움이 어렸다. 자신은 상관없었으나 그의 주인만큼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 죽도록 싫었다.

"부디..."
"나는 벤자민 좋아."
"예?"
"나는 벤자민이라는, 내 눈 앞에 있는 너를 사랑한다고."


결님이 웃었다. 나는 굳이 그 기쁨을 드러내지 않았다. 말도 안되는 얘기-라며 애써 부정했던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그러니까, 결혼해주세요. 벤자민."


흐으, 가느랗게 울음소리가 밀려나왔다. 꾸역꾸역 삼켰던 마음이 다시금 피어올랐다.

아, 잔인한 사람. 그토록 꾹꾹 눌렀건만. 당신의 단 한마디로 봇물같이 터져나오는 마음을 어찌해야 할까요.


"서귀나무의 꽃말은, 당신만을 사랑하오."

내가 좋아했던 말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달콤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그는 말을 이었다.

"나 역시 벤자민, 당신만을 사랑하오."

그의 품에 안겼다. 그에게 키스를 선사했다.
혀와 혀가 얽혀 야릇한 소리를 내다가 떨어졌다.

"이거 허락인거지?"

배시시, 결의 얼굴에 웃음이 피어올랐다.

"사랑해, 결아."

귓가에 속삭인 그 말은 그 어느 말보다도 달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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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01-15 15:31 | 조회 : 1,880 목록
작가의 말
월하 :달빛 아래

학원가기 싫어여...((울적 8시에는 [그대가 죽기 전에] 외전 갖고 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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