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탈출했다(2)

여성, 코델리아는 인기척에 반가움을 비쳤지만, 아이가 모습을 드러내자 실망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아이는 정령의 말을 들은 것을 후회했다.
정령들의 말을 따라 찾아왔지만, ‘코델리아’ 라는 여성은 아이를 반기지 않았으니까.

“코델리아!”

“주인님.”

실피드와 어스웜이 동시에 코델리아를 불렀다.
그 목소리에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실피드…랑 어스웜? 너희들이구나.”

실피드는 아이처럼 꺄르르 웃으며 코델리아의 주변을 돌았다.
코델리아의 눈이 반달모양으로 휘어졌다.

“보고 싶었어. 그 동안 뭘 했길래 내 부름에도 안 왔던 거야?”

“제약이 있었거든. 하지만 이제는 괜찮아. 아이가 다 풀어줬거든!”

‘아이’ 라는 단어에 코델리아의 시선에 아이에게로 향했다.

“흐음. 저 아이도 정령사구나. 어디서 데리고 온 거야?”

“…신전.”

나지막하게 울리는 아이의 목소리에 코델리아의 얼굴이 굳어졌다.

“방금 신전이라고 했니?”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를 죽음으로 내몬 이들은 신관들이었고, 아이의 지옥은 신전이었다.
코델리아는 신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녀는 신전이 무능하다고 여겼고, 그녀는 신전을 이렇게 말하곤 했다.
‘아무것도 없는 길 가다가 넘어져서 골로 갈 새끼들’ 이라고.

“난 거기를 별로 안 좋아하는데. 하도 분리수거도 안 되는 쓰레기들이 많아서.”

코델리아는 지금 우회적으로 말한 것이다.
그녀는 자신을 내친 것이었다.
아이는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감도 배가 되었지만 티를 내지 않았다.
아이는 내쳐지는 것이 익숙했다.

“그럼 갈게요. 시간 뺏어서 죄송합니다.”

아이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돌아섰다.
그 모습에 당황한 것은 정령들이었다.
실피드가 빠르게 날아 아이 앞을 막아 섰다.

“잠…잠깐만 기다려봐!”

“실피드. 난 신전에서 키운 애들은 안 받아. 무능하면서 지랄 맞아.”

살벌한 그녀의 말 뒤에 잔뜩 가라앉은 어스웜의 목소리가 들렸다.

“주인님. 주인님께서 보시기에 신전에서 키운 것 같은가?”

“신전에서 나왔다며. 그럼 그 곳에서……”

코델리아는 말을 하다가 멈출 수 밖에 없었다.
그제서야 눈에 들어온 탓이었다.
왜소한 아이의 체구와 아이답지 않는 메마른 눈동자가.
희망 같은 긍정적인 감정은 찾아볼 수 없는 표정에 코델리아의 가슴이 철렁했다.
아무리 그녀가 악인(惡人)이라고 한데도, 저런 아이를 내쫓을 만큼 쓰레기는 아니었다.

“이런 짐승만도 못한 것들.”

코델리아는 이를 갈며 화를 삼켰다.
그녀는 아이를 불렀다.

“아이야, 이름이 뭐니?”

“에메랄드. 거기서 그렇게 불렸어요.”

코델리아가 미간을 찌푸렸다.
신관들이 무슨 생각으로 아이에게 보석의 이름을 붙였는지 짐작이 갔다.

‘아이의 눈동자 색 보고 붙였겠지.’

코델리아의 미간은 펴질 줄을 몰랐다.
아이는 혹시 심기를 거스른 건가 싶어 눈치를 보았다.

“아이야, 그 이름이 마음에 드니?”

“아니요……”

“내가 너의 이름을 지어줘도 좋을까?”

아이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코델리아의 입 고리가 부드럽게 올라갔다.

“헤레이스.”

순간 그녀의 에메랄드 눈동자의 그리움이 깃들었다가 사라졌다.
이제 보석 이름 대신 정식으로 이름을 받은 헤레이스는 ‘헤레이스’ 란 말만 속으로 되풀이하며 새겼다.
이름을 듣고 정령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주인님, 그 이름은!”

어스웜이 발작적으로 소리치자 코델리아가 우아하게 웃어 보였다.
하지만 그 미소 넘어 애틋함과 죄책감이 엿보였기에 정령들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어때? 맘에 드니?”

코델리아가 상냥하게 묻자 헤레이스의 눈동자에 빛이 돌아왔다.
헤레이스는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처음 짓는 미소인지라 어색함이 묻어 나왔지만, 그 누구도 그를 나무라지 않았다.
오히려 코델리아는 헤레이스를 마주보며 웃었다.

“내 이름은 코델리아. 코델리아 데비루스야. 제국의 유일한 정령 술사라 불리고 있는데, 이제 너도 있으니 유일은 아니게 됐구나. 이제부터 정령 술을 제대로 배울 테니, 각오는 해두는 게 좋을 거야.”

“네, 스승님!”

헤레이스가 힘차게 대답하자 코델리아는 흡족한 듯 웃었다.
아무래도 이 아이와는 잘 맞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정령을 소환한 신전의 아이. 행색을 보아하니, 신전에서 고운 대접은 받지 못한 듯 했다.
코델리아는 헤레이스를 안았다.
헤레이스는 낯선 온기에 잠시 몸을 굳었지만, 이내 포근함에 몸을 맡기기로 했다.
눈꺼풀이 무거워지고, 헤레이스의 두 눈이 감겼다.
이윽고, 아이의 고른 숨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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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0-09-01 13:01 | 조회 : 825 목록
작가의 말
루나삐

본 소설은 자유 연재로 연재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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