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탈출했다(3)

아이가 잠든 것을 확인한 코델리아는 지나치게 가벼운 몸무게에 얼굴을 찌푸렸다.

“돌아가면, 고기부터 먹여야겠어.”

데비루스 후작 가는 무가(武家)였다.
그랬기에 코델리아도 부모님을 따라 어릴 적부터 검을 쥐었다.
소질이 없어 금방 관두고 정령 술을 익혔으나, 그래도 평범한 영애들보단 건강한 편이었다.
코델리아는 집으로 돌아가는 즉시 헤레이스의 건강식과 근육이 붙을 운동을 준비시키기로 마음 먹었다.

“그럼, 실피드, 어스웜. 오랜만에 만나서 정말 기뻤어. 이제 부르면 올 거지?”

“물론이야! 코델리아랑 아이가 부르면 날아 올 거야!”

“언제든지 불러주게, 주인님.”

코델리아와 잠든 헤레이스는 두 정령들의 배웅을 받으며 탑을 나섰다.
어느덧 바깥은 별이 빛나는 밤이었다.
잠시 밤하늘을 올려다보다가 코델리아는 대기 중이던 마차에 몸을 실었다.
편하게 헤레이스를 그녀의 무릎 위에 눕히고, 코델리아는 아이의 머리카락 끝부분을 조심스레 만졌다.
코델리아는 잠든 헤레이스를 빤히 쳐다보다가 그리움이란 감정이 올라오자 마차 창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를 닮은 아이를 봐서 그런 것일까?
오늘따라 그가 미치도록 그리워졌다.
사색에 잠기다 보니,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어느덧 마부가 마차의 문을 열었다.
한 손은 마부의 손을, 한 손은 잠든 헤레이스를 잡았다.
저택의 문을 여니,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가족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리아, 이제 오는 거니? 많이 늦었……”

밤하늘 색 머리칼과 핏빛 눈동자를 가진 남자, 후작이 집무실에서 나와 말을 하다가 멈췄다.

“어미가 늦으면 마부를 시키든, 정령을 날려보내든 하라고 했잖니. 어머, 그 아이는 누구니?”

연갈색 머리칼과 코델리아와 같은 에메랄드를 가진 여자, 후작부인이 집무실에서 따라 나왔다.
그녀는 코델리아가 안고 있는 아이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1분이라도 더 늦었으면, 당장 마탑에 처 들어갈 뻔했어, 누나.”

후작과 닮은 생김새의 청년, 디아브가 계단을 내려오다가 코델리아가 안고 있는 헤레이스를 보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내려왔다.

“뭐야, 누나. 누구 애야?”

“글쎄. 정령들이 데리고 왔거든. 나와 같은 힘을 가진 아이야.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

후작부인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는 후작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찔렸다.
윽.
신음과 함께 후작의 날아가버린 정신이 돌아왔다.

“왜 그러니?”

“고기, 그리고 이 아이에게 맞는 운동법이 필요해요. 또한 그 무능한 치들이 기어이 선을 넘었어요.”

코델리아가 무능하다고 대놓고 말하는 이는 한정되어 있었다.
이를테면 신전이라던가.
두리뭉실하게 이야기를 했지만, 그녀의 가족들은 눈치껏 알아들었다.

“일단 아이를 방으로 옮기자꾸나.”

코델리아는 헤레이스를 안고 계단을 올라갔다.
그러자 어미를 따르는 오리들처럼 그녀의 뒤를 가족들이 따랐다.
코델리아의 맞은 편 방에 눕히고 방을 나서자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오늘은 다같이 밤을 샐 모양이었다.

“제 방으로 가요. 다 설명해 드릴게요.”

방으로 들어가고 가족들은 푹신한 소파에 모여 앉았다.

“이제 설명해 보렴.”

“제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마탑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어요.”

코델리아의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그러했다.
평소처럼 마탑에 있을 때, 정령들과 함께 아이가 등장했다.
아이는 그들의 예상대로 신전에 있었으며, 아무래도 학대를 당한 듯 했다.

“이런 짐승만도 못한 것들 같으니!”

후작부인은 귀부인에 걸맞지 않게 상스러운 욕을 뱉었다.
학대 얘기를 듣고 후작부인이 화를 내지 않을 거라고는 가족들 중 그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기에 익숙한 듯 맞장구를 쳤다.

“아이를 내쫓을 수가 없었어요. 그랬다간 개죽음을 당할 게 뻔하잖아요.”

“우리 딸은 너무 착해서 이 아빤 걱정이란다.”

그 말에 디아브가 기겁했다.

“아니, 아버지. 누나는 착한 게 아니라 폭력……윽!”

코델리아가 우아하게 웃으며, 디아브의 발을 야무지게 밟았다.
디아브는 후작 부인과 닮은 그 미소가 제일 무서웠다.
칼을 든 기사들보다 저 미소를 짓는 모녀(母女)가 더 공포스러웠다.
코델리아가 발을 때자 디아브는 허리를 숙여 발을 문질렀다.
충격을 받은 발은 어느덧 붉게 변해 있었다.
코델리아는 태연하게 웃었다.

“아이의 이름은 ‘헤레이스’ 로 지었어요. 아이가 허락한다면, ‘레이’ 라고 부를 생각이에요.”

장난기가 넘쳤던 가족들이 이름 한번에 얼어붙었다.
후작이 눈물이 글썽이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리아…너. 아직도……”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만 같은 후작에 코델리아가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그런 거 아니에요. 그냥…그렇게 부르고 싶었어요. 절대 아버지께서 생각하시는 그런 게 아니에요!”

가족들은 그 말을 온전히 믿지는 않았으나, 이름을 지어준 당사자가 그렇다고 하니, 그냥 묻어주기로 했다.
후작은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가다듬으며 말했다.

“그래.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니?”

“레이에게 정령 술을 가르쳐 줄 거에요. 훗날 그 힘으로 스스로 발돋움 할 수 있게 만들 거에요. 스승이란 그런 존재이잖아요?”

“그래, 너라면 잘 해낼 테지. 우린 지켜보마. 대신 아이의 근육을 키우는 것은 어미에게 맡기렴.”

후작부인의 말에 코델리아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사단장으로서 집을 자주 비우는 후작보단 후작부인이 제격이었다.
또한 기사들이 존경해서 우러러보는 기사들 중 후작부인 또한 들어가니, 시간만 된다면 함께 대련을 해도 좋을 것이었다.

“레이의 체력이 길러질 동안은 이론 위주로만 수업할 생각이에요. 그리고 고기 좀 많이 먹여야겠어요. 너무 말랐잖아요.”

“주방장에게 미리 말해 놓을 테니, 걱정 말렴.”

“네. 알겠어요.”

코델리아와 가족들은 새벽이 밝아올 때까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결국 잠을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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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0-09-01 13:02 | 조회 : 1,123 목록
작가의 말
루나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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