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화

79화



한동안 넋이 나간채로 서있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가만히 서있었던건지 일단 교실로 돌아가려고 발을 떼는 순간 주저앉아버렸다.
하여운이 한 말도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지도 않은채로 날아다니고 있었고, 내가 지금 누구인건지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
하여운은 후련한 표정으로 이 자리를 먼저 벗어나는게 보였기에 더 화가 났다.

'왜 괜히 사람 심란해지게 그딴말은 내뱉고 가는거지'

혼자 생각해봤자 나오지 않는 답에 주저앉아있는 다리를 펴보려고 하였지만, 말을 듣지 않았다.
마치 내 몸이 아닌 것 처럼 말이다.
그렇게 계속 주저앉아있는데, 커다란 그림자 하나랑 손하나가 눈앞에 보였다.
나는 누구인지 확인할 정신도 없이 그냥 앞에 내밀어진 손을 잡았다.


"너 화장실 간다며"
"........"
"왜 쭈그려 앉아있는데"
"......."
"말 안하려고?"
"어. 안하고 싶어."
"........그래 하지마 일단 일어나 빨리. 먼지 다묻게 뭐하는거야 앉아서"


내가 말하지 않겠다고 하자,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김태겸은 내가 앉아있는게 불만인건지 잡혀있는 내손을 들어올렸다.
나를 일으켜세우고는 불만스러운 눈빛으로 사람을 째려보고 있었다.


"왜. 그렇게 째려봐도 안말할거야. 못해 아직은"
"알겠다고, 그건 아까 얘기 끝난거고 너 표정관리부터 하지그래"
"......."
"이대로 들어가면 너 바로 들켜. 뭔일있는지. 아마 애들 다 니가 화장실 안간 것 쯤은 알고 있겠지만."
"티가 많이 나?"
"그 울것같은 표정부터 그만두라고. 말하기 싫으면"
"......."
"가자. 지금이라도 올라가서 아무렇지 않은척 해."
"어"


나는 김태겸의 팔에 이끌려서 교실로 올라갔다.
아까까지만해도 기분이 더럽다 못해 짜증나고 화가나고 열받았는데, 지금은 또 괜찮은 것 같은 기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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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로 올라오니까 애들이 다 내자리 주변에서 얘기를 하고 있었다.
하여운은 먼저 올라갔지만, 교실이 아닌 다른곳으로 간건지 교실에는 없었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자리에 가서 앉았고, 애들의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았지만 끝까지 무시한채로 엎드려버렸다.

내가 들은 얘기들을 정리해보는 시간이 나에게는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니까 하여운말은 내 원래 세상도 지금 이 세상도 다 자기가 쓴 소설 속 이야기라는 거고, 나는 여기에서도 거기에서도 하여운의 농락에 시달리는 그냥 엑스트라 조연이었다는 말이겠지..'

한번 더 읊어보며 내 처지를 생각해봤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화만 더 날 뿐이었다.
자신이 쓴 글 때문에, 나뿐만이 아니라 윤 설이라는 한 캐릭터도 자살을 선택할 만큼 힘들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텐데, 어쩜 그렇게 뻔뻔한 태도를 지닐 수가 있는건지 나로써는 더이상 이해가 불가능했다.

그렇게 계속 생각에 휩싸인지 얼마나 된건지 수업종이 울렸고, 애들은 다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 듯 했다.
김태겸은 내가 걱정되는건지 3초에 한번씩 사람을 쳐다보고 있었다.
오히려 그게 신경쓰여서 더 이상 아무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무슨 수업을 들었는지도 김태겸의 시선과 하여운의 이상한 말들 때문에 생각도 나지 않은상태로 계속 시간이 흘러서 결국 하교시간이 다가왔다.
오늘은 들릴곳이 있었기에 늘 그렇듯 기사님에게 연락을 드렸고, 종이 치자마자 달려나갔다.

뒤에서 나를 부르는 것 같긴 했는데, 그 말을 딱히 들을 여유조차 없었다.
나는 지금 당장 확인을 하러 갈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달려서 도착한 곳은 서점이었다.
내가 원래 나의 세상에서 이 책을 봤었던 기억이 있었기에, 이 세상에서도 원래 나의 세상에 관련된 책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소설 쪽으로 가서 미친듯이 책들을 뒤져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별다른 것은 찾지 못했다.
나는 커다란 한숨을 쉬었다.


"그래가지고 땅이 꺼지겠어?"
".....악 깜짝아"
"놀라는게 생각보다 느리네."
"....지훈이 형?"
"왜이리 오랜만인 것 같지"
"그러게요.."
"뭘 그리 뒤지는 중이었어?"
".....아무것도 아니에요."
"음.... 그래? 시간 좀 있으려나?"


왜인지 모르게 오랜만인 것 같은 지훈이 형이 질문에 대답도 듣지 않은채로, 내 손을 이끌고 서점을 나섰다.
그래서 나는 뒤에서 책 한권이 떨어지는 것을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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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2-05-16 23:24 | 조회 : 1,404 목록
작가의 말
gazimayo

안녕하세요 ! 1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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