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숲을 향해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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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을 향해


우뚝 솟은 건물들과 차들로 혼잡한 거리. 그 가운데 현대식으로 지어진 거대한 연구소. 좀 더 깊이 있게 말하자면, 모든 이야기의 시작을 담고 있는 곳. 오늘도 연구소 정중앙 연구소장실은 시끌벅적했다.

“그러니까 설명을 해 보라고요-”

콰앙- 뼈밖에 없는 가느다란 주먹이 책상으로 쏟아졌다. 분노를 담은 책상이 무지막지하게 흔들리며 큰 소리를 내었다. 그러나 그 앞에 앉아 있는 연구소장의 표정은 흔들리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몇 번이나 말했잖느냐, 이화양! 그 방법 외에는 별 다른 방도가 없다고!”

화양은 어처구니가 없는 연구소장의 대답에 설핏 웃음을 터뜨렸다. 대답은 변함없었고, 굳게 앙다문 입은 흔들리지 않는 방패와도 같아 보였다. 어디까지나 화양에게 제한된 이야기지만.
그녀는 지지 않겠다는 듯이 손에 쥐고 있던 신문기사를 책상에 쾅 얹었다. 꾸깃꾸깃 구겨진 흔적이 제목을 가렸다.

“그렇다고 살아있는 생명을 이런 식으로 이용해요? 아빠가 사람이야?”

『생명의 숲 연구소, 반인반수 수인들을 강제 포획해 생채실험…』 화양은 기사 제목과 그 옆에 붙여져 있는 사진들을 가리켰다. 연구소장의 표정은 떨떠름해졌으나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어쩔 수 없다. 바이러스의 백신이 그들의 피 속에 함유되어 있으니까.”

“증거 하나 없는 뻔뻔스러운 대답이잖아요! 어떻게 백신이 함유되어 있다고 확신해요? 설령 있다고 쳐도, 죽어버린 수많은 수인들은요? 수인 포획 때문에 망가질 대로 망가진 숲은요?”

어느새 귀를 막고 뒤돌아 선 연구소장에게서 들려오는 답은 없었다. 화양은 주머니에 욱여넣은 비슷한 주제의 기사들을 모조리 책상에 쏟아 붓고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연구소장실 문을 박차 열며, 화양은 끝까지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연구소장을 흘겨보았다.

"짜증나.."

몇 년 전부터 현재까지, 화양은 수많은 생명의 숲 생명체들이 포획되어 연구소로 끌려오는 장면들을 목격했다. 반인반수 수인을 기본으로, 몇 번의 탈피와 진화를 끝낸 포식자들과 식물들, 그 모두.
그들의 목적은 정확했다. 알파-17 바이러스 백신. 무려 인구의 30퍼센트라는 큰 사망자를 낳으며, 전 세계를 위협해온 역대 최악의 바이러스. 많은 단체들이 백신을 개발하려 아등바등해왔다. 생명의 숲 연구소는 그에 포함될 뿐, 더 나아가지 않는다. 방역지침에 의해 한 발짝도 나오지 않는 사람들과 대유행해진 바이러스라는 현실도 변하지 않는다.

연구소 일동은 생명체들의 피에 백신이 함유되어 있을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그들만 믿는 사실이었다. 화양의 생각은 많이 달랐다. 훨씬 더 친환경적이고, 사상자를 줄일 수 있으며, 어떤 측면에서 보면 가장 쉬운 방법이기도 했다.

“숲 중심부에만 가면 모든 게 다 해결될 텐데.”

화양은 도서관에서 빌려온 『생명의 숲에 관한 100가지 사실』의 끝 부분을 열었다. 이 글을 비롯한 여러 가지 학자들의 분석 결과, 알파-17 바이러스의 백신은 생명의 숲 중심부, 정확히는 생명의 숲 '산'의 꼭대기에 있었다. 강력한 에너지와 회복력을 지닌 생명의 숲 중심부. 초인적이며 놀라운 숲 생명체들의 힘의 근원이 그곳이었다. 그렇기에 숲 생명체들이 영생도 하고, 초능력도 가지는 것이겠지.

강력한 회복력에 좀 더 초점을 두자면, 숲 중심부의 추출액은 마시기만 해도 상처가 아물고 전신이 회복되는 그런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바로 알파-17 바이러스의 백신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생각과는 달리 생명의 숲 연구소 일동은 죄 없는 생명의 숲 생명체들의 피가 백신이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연구랍시고 또 수인들을 포획해오는 건 아니겠지?’

화양은 항상 그렇듯 발길이 닿는 곳으로 막힘없이 걸었다. 어느덧 연구소 가장 꼭대기에 위치한 병실에 다다랐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방호복을 여미고, 단추 하나하나를 잠근다. 답답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물경 인구의 30퍼센트 사망자를 낳게 만든 바이러스. 그 바이러스 감염자가 병실 안에 있으니까. 하지만 화양은 그 감염자를 감염자라 여기지 않았다.
화양이 숨을 들이킨 후 병실로 들어갔다.

병실 안에는 한 병약한 여성이 창문 밖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핼쑥하고 뼈밖에 남아있지 않으며, 걱정스러울 정도로 창백한 얼굴. 의사들의 말론 족히 몇 달을 버텨준 감염자의 얼굴 치곤 기력이 좋다고 하지만, 화양은 그저 야윈 얼굴로만 보였다.

“별로 안 아파? 이제 걸어 다닐 수 있어?”

화양이 그녀에게 질문하자마자 여성이 몸을 돌렸다. 야윈 얼굴에 씁쓸한 미소까지 더해지자 더 안쓰러웠다. 그녀가 화양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둘은 방호복도 막지 못할 기세로 서로의 몸을 꽉 끌어안았다.

“응. 이제 별로 아프지도 않고, 곧 있으면 링거도 뗄 수 있을 것 같아.”

“다행이다. 엄마. 진짜 다행이야.”

화양은 환하게 웃으며 포옹을 멈추려던 여성을 마저 껴안았다. ‘이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는 거야.’ 화양의 속삭임에 엄마의 눈동자가 돌연 병원복과 화양이 낀 장갑으로 움직였다. 갑자기 환했던 그녀의 웃음이 씁쓸하게 변했다.

“미안해, 화양아. 엄마가 이 모양이여서…”

“아냐, 엄마! 뭘 미안해하고 그래. 아빠가 백신 개발하려 열심히 연구하고 있다는 거 알잖아. 엄마랑 방호복 벗고 지낼 수 있는 날이 머지않아 올 거라니까?”

느껴보지 못한 희망의 질감이 부드럽게 마음을 감싸 안았다. 뇌 속에서 기대가 들끓는 걸 모자라 화산처럼 펄펄 솟아올랐다. 화양은 활짝 웃으며 벽 정중앙에 걸린 벽시계를 바라보았다. 초침과 분침은 화양이 그토록 싫어하는 열두 시를 가리켰다.
화양은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한 봉투를 꺼냈다. 봉투 속에는 알약 중에서도 꽤나 큰 빨간색 알약이 한 묶음씩 들어 있었다. 화양은 한 묶음을 찢어 약을 꺼냈다.

“으… 먹어본 약 중 제일 쓰고… 먹으면 머리도 띵해지고…”

“그래도 꼭 먹어야 돼. 알잖아, 네 불치병은 약 없인 절대 나을 수 없다는 거.”

화양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학교도 안 다니고, 일주일에 한 번씩 링거를 맞으면서 진찰도 받잖아. 끔찍한 희귀병이자 불치병을 앓고 있는 내가 뭘 탓하겠어. 화양이 생각을 그대로 읊으려다 엄마의 표정을 보고 목구멍 아래로 삼켰다.
화양은 학교에 가고 싶었다. 땀범벅이 되어 몸을 격하게 움직이는 체육 시간도, 삼삼오오 모여 의견을 나누고 장난도 치는 모둠 활동 시간에도 참여하고 싶었다. 몸에서 기운이 솟느냐, 다리에 힘이 들어오느냐 질문하는 돌팔이 의사도 싫었다. 특유의 병원 냄새가 진동하는 연구소는 더더욱 답답하고 숨 막혔다.

그녀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나란히 생각하다가 알약을 곧장 삼켰다. 그저 기분 탓이겠지만, 머리 정수리 부분이 살짝 줄어든 느낌이 들었다. 우연의 일치로 붕 뜬 머리카락이 가라앉기도 했다. 흐물흐물한 연체동물로 진화하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다리의 힘이 줄어든 것처럼 느껴지는 건 또 왜일까.

‘부작용인가? 먹을 때마다 이러네.’


* * *


그로부터 정확히 이틀 뒤였다. 12시가 되기 전까지 어느 때와 다르지 않은 하루라고 생각했다. 화양은 알약 한 묶음을 서둘러 삼킨 뒤 걸음을 재촉했다. 목적지는 역시나 병실이었다. 면회 주기가 너무 제한되어 있다는 볼멘소리를 중얼거리는 그 순간이었다.

콰아앙!

“악- 뭐야?”

순간 꼭대기 층과 연결되어 있는 계단에서 구급대원 여럿이 미끄러지듯 달려 나왔다. 화양은 막무가내로 자신을 밀치고 달려가는 구급대원들을 흘겨보았다. 순간 그들이 지고 있던 응급 카트에 눈이 갔다. 너무나도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엄마?”

순간 헛것을 본 것이라 착각했다. 눈을 몇 번 깜빡였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 현실이 붕 뜬 것처럼 흐려지는 풍경이었다. 화양은 몇 번이나 자신의 눈을 비비고 흐릿해지는 정신을 다잡았다. 구급 카트에 눕힌 사람의 모습이 변하지 않았다. 분명히 엄마였다.

“헉- 허억-”

다리에 힘이 들어오지 않았다. 무슨 상황인지 제대로 분간이 가지 않았으나 하나는 확실했다. 지금 엄마의 상태가 생명에 지장이 갈 정도로 심각하다는 것. 화양은 덜덜 떨리는 다리를 감당하지 못하고 풀썩 주저앉았다.

‘이럴 리가.. 이럴 리가 없어...'

어지럽게 의문을 표출하는 뇌와 달리 몸이 본능적으로 일어섰다. 화양은 온 힘을 다리에 주고 응급 카트를 쫓기 시작했다. 다리가 후들거리며 몸이 몇 번 주저앉았다. 다물리지 않는 입에서 하염없이 떨리는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허억, 흐, 흐아.."

응급 카트를 뒤쫓아 달려갔지만 이미 엄마는 수술실로 들어간 후였다. 화양은 굳게 닫힌 수술실 문을 짚고 미끄러졌다. 그러더니 이내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리고 눈물이 떨어졌다. 한 방울, 두 방울, 세 방울. 방울에서 눈물로, 눈물은 더 격정적인 표현으로. 화양은 모든 것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악착같이 쌓아올린 희망의 모래성이 단숨에 무너져 내렸다.

“흑, 흐윽..”

뒤늦게 상황을 깨닫고 달려온 연구소장도, 나오라고 몸을 끌어당기는 응급 요원도 화양을 일으키진 못했다. 응급 요원이 지쳐 쓰러질 때까지 화양은 바닥에 주저앉아 계속해서 눈물만 흘렸다. 일으키다 못해 지친 연구소장이 화양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묵묵히 울음을 들어주는 것. 연구소장이 지금 해야 할 일은 그것밖에 없었다.
화양은 몇 시간째 울다 지쳐 눈을 감았다. 한 번 눈을 깜빡였을 뿐인데, 세상이 흐릿해져가고 몸에서 힘이 빠졌다.
"이화양!"
마지막으로 보인 다급한 얼굴이 기억나지가 않았다. 화양은 말라버린 눈물자국을 닦지도 못하고 쓰러졌다.










진정제를 맞아도 지독한 불치병 덕에 마음은 진정되지 않았다. 화양은 띵한 머리를 붙잡고 일어났다. 불안의 덩어리들이 몇 초도 채 되지 않아 가슴에 쌓였다. 정말 죽는 거야? 아직 백신이 개발되지 않았는데, 때를 놓쳐 평생 못 일어나면? 더 아파지면? 공허한 마음에 눈물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화양은 수술이 끝났다는 말을 듣기 무섭게 병실로 달려갔다.

"...엄마.”

제대로 쉰 목에서 쇳소리 비슷한 것만 날뿐, 제대로 된 단어가 흘러나오지 못했다. 그 뒤로 고요한 적막이 병실을 채웠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엄마와 함께 바라보았던 벽시계가 저녁 여덟 시를 가리켰다. 엄마는 그 아래 침대에서 산소 호흡기를 문 채 잠들어 있었다. 팔에 꽂힌 수십 개의 호스들과 복잡하게 뒤엉킨 의료 장비들. 방역을 위해 설치된 거대한 유리 막이 상황을 현실로 이끌었다. 희망의 모래성이 이제는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평온해 보이는 얼굴에 화양은 원망이 치솟는 걸 주체하지 못했다.

“왜 다 나아질 때가 되면 다시 아파지는데. 왜, 왜 항상 이런 식이냐고..”

이미 말라버린 눈물자국에 다시 한 번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화양은 유리 막을 몇 번이고 두들겼다. 엄마가 바이러스에 감염된 이후 둘 사이에 두꺼운 벽이 생겼다는 것쯤이야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래, 다 알고 있었어... 이게 전부 헛된 희망이었다는 거.
화양이 피가 한 두 방울 맺힐 정도로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연구소장이 병실로 들어오기 무섭게 화양은 병실에서 도망치듯 뛰쳐나왔다.

“이제 더는 못 기다려. 나는 멍하니 상황을 지켜보는 벙어리가 아니야.”

세상을 원망하는 공허한 눈동자가 무슨 생각을 담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눈동자로 변했다. 단서라도 되는 마냥 『생명의 숲에 관한 100가지 사실』을 꽉 쥐었다. 그로부터 몇 주 뒤,

“소장님! 소장님 따님이 사라졌습니다!”



화양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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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2-11-29 20:52 | 조회 : 443 목록
작가의 말
SoEy_10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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