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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3. 2혜성고등학교 입학식 ]


바람이 분다. 벚꽃은 개화를 하려고 하는 지 나무에 작은 핑크색 봉우리들이 보인다.
날씨가 풀릴 듯 하면서도 시원한 바람이 분다.





“자, 우리반 반장은 정 혁으로 결정되었어요.”

시끌벅적 투표를 지나 조용하게 만든 말이었다. 투표 후 엎드렸던 학생들도 책상에서 머리를 떼지 않은 채로 박수를 쳤다.
반장 선거는 우리의 없던 8교시를 만들어 낸 주범이었다. 담임 선생님이 종례를 하고 혁에게 손짓을 했다. 혁은 당연하다는 듯 선생님과 교무실로 향했다. 그리고 다른 학생들은 가방을 얼른 챙겨 교실 밖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교무실에서 마주 앉은 선생님이 온갖 서류를 혁에게 내밀었다.

“이거는 청소 당번표, 이거는 비상 연락망, 이거는 진로 희망….”

그 중에서도 청소 당번표는 번호대로 이미 정리가 되어있었다. 정 혁은 서류를 다 받은 뒤에 담임 선생님의 쓰레기통만 비워 달라는 부탁으로 쓰레기통을 가지고 분리수거장으로 향했다. 분리수거만 하고 혁도 하교를 할 수 있었다.
분리수거장은 체육관 건물 뒤편에 배치되어 있었으며 우리들이 수업할 때, 선생님들이 주로 흡연장으로 쓰곤 한다.

“야 X됐다. 빨리 불 꺼”
“아, 뭔데.”
“발걸음 소리 안 들리냐?”

말소리에 걸음을 멈췄는데도 정 혁의 발소리를 들은 듯했다.
타는 듯한 냄새와 담배 냄새가 살짝 났지만 발걸음에 불을 끈 것 같아 정 혁은 조용히 다가갔다. 여러 명의 남학생들이 담배를 피운 듯했다.
저 멀리 있는 한 남학생은 슬리퍼를 바닥에 비비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갈색 머리 남자아이가 있었는데 또래들보다 키가 작고 희어 눈에 띄었다. 그저 재밌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선생님 아니네. 너도 피냐? 나 라이터 좀.”

저 아이의 머리 색은 자연 갈색인걸까. 눈에 띄던 그 아이가 담배를 물며 나에게 불을 켜 달라는 듯이 얼굴을 쭉 내밀고 있었다.

“그냥 가자. 얘 우리 반 반장이야.”
“왜? 나도 펴보고 싶다니까?”
“담임한테 꼰지르면 골치 아프단 말이야. 가자”

정 혁이 아무 말도 안하고 있으니, 혁과 같은 반인 아이가 가자고 다그쳤다.
명찰을 보니 김해빈이라고 써져 있는 듯했다. 정 혁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해빈아, 그거 그렇게 잡는 거 아닌데.”

혁은 쓰레기통을 내려놓고 셔츠 안쪽 주머니에 있던 라이터를 꺼내 얼굴을 계속 내밀고 있는 해빈의 턱을 한 손으로 잡고 다른 한 손으로 라이터를 켠 다음 물고 있는 담배에 불을 붙여주었다. 해빈은 살짝 당황한 듯 고개를 돌리려고 했지만 혁에게 잡힌 턱이 움직이지 않았다는 걸 알았고 어느새 제 손에 라이터가 쥐어져 있었다.

“날 호구로 아네. 여기는 걸리니까 저 건물 뒤로 가서 피웠으면 좋겠다. 피는 김에 그것도 좀 치워주고 라이터는 선물.”

정 혁이 자리를 떠나면서 했던 말이었다.
아직도 얼타고 있는 친구들과 해빈은 쓰레기통과 서로를 바라볼 뿐이었다.

“쟤 뭐냐?”




정신 없는 새학기는 이미 끝났다. 혁도 반장이라는 타이틀에 적응했고, 이미 만들어진 무리와 그렇지 않은 애들이 보였다. 하루하루 선생님들의 수업 준비를 돕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두 달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5월의 체육대회는 정말 재미없게 보낼 생각이었고, 혁은 다른 반을 지나갈 때마다 창문으로 흘긋 봤지만 매일 엎드려 있는 해빈을 한 번씩 보고갔다. 반장인 혁의 주위에 앞서가는 무리들이 말한다.

“혁이는 왜 안한대?”
“체육 특기생이었다는데? 그래서 안전 요원으로 넣었나봐”
“진짜? 무슨 운동했대?”
“나 태권도 했어.”

혁은 두 여자아이들의 사이에 머리를 집어넣고 말했다. 정 혁은 중학교 시절, 주니어 대표에 뽑혀 아시아 주니어 선수권 대회에서 수상 이력이 있었다. 평균 나이에 비해 국가대표 선발도 일찍 되었지만 발목 부상으로 인해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아직은 무리하면 안되는 발목 때문에 안전요원으로 발탁되었다.
궁금해하는 저들에게 웃으며 대답해주었고 아이들은 이해를 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치면 혁이가 봐주는 건가 봐!!”
“헐, 정말? 너가 다쳐서 가 봐!”

다른 쪽에서 수군대는 여학생들의 목소리에 피곤해진 정 혁은 안전요원이라고 적힌 현수막 자리에 앉았다. 다른 아이들보다 키가 커 눈에 띄긴 하니 관심이 없는 게 이상한 정도였다. 남자 축구 경기 다음으로 여자 피구 경기가 지나고 마지막 순서인 계주 달리기까지 왔다.
이대로라면 1반인 혁의 반이 우승할 것 같았다.
여태껏 안 보이던 해빈이 계주 달리기에 마지막 주자로 나왔다. 정 혁은 앉아서 턱을 괴고 해빈을 계속 쳐다봤다. 경기는 무르익고 있었고, 해빈이 1등을 한다면 2반이 역전승을 하는 것이었다. 혁은 해빈을 보며 생각했다.

‘저렇게 뛸 수도 있는 애였구나. ‘

라고 생각하는 순간 해빈이 1등으로 들어와 역전승을 했다.

“야!! 1등했…흡..다…헉...허억…”

해빈은 숨이 가빠 보이는 듯, 골인을 한 후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아이들이 몰리는 데에는 한순간이었다.
정 혁도 놀란 듯 자리에서 바로 일어나서 해빈이 쓰러진 곳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거리가 꽤 있었지만, 운동했던 정 혁에게는 짧은 거리였다. 곧 도착한 정 혁은 바로 해빈을 들쳐 업고 양호실로 달려갔다. 등에 업혀 있는 해빈이 계속해서 호흡을 제대로 못하는 소리가 들렸다.
정 혁은 보건실에 도착하고 해빈을 앉혔다. 해빈에게 숨을 참아보라고 했는데 마음대로 안 되는 것 같아 주위를 둘러본 정 혁이 봉지를 발견하고 안에 있던 솜을 다 뺐다. 그 뒤엔 봉지로 해빈의 입과 코를 막았다. 수축하기만 하던 봉지가 점차 부풀어 오르는 걸 반복하더니 이내 해빈의 호흡이 안정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비켜.”

안정을 찾은 해빈이 정 혁을 짜증나는 듯이 한 팔로 밀쳤다. 맞은 순간 정 혁은 해빈의 팔을 잡고 어느새 접혀 올라간 티를 내려주고 팔을 조심스럽게 내려 놓았다.

“이러면 티가 나잖아. 해빈아.”

아무 말도, 아무런 행동도 못하는 해빈이 반대쪽 팔로 정 혁이 내려준 옷깃만 만지작거리듯 옷을 가만두지 못했다. 그러다 이내 결심한 듯, 양손에 주먹을 쥔 해빈이 얘기했다.

“고맙다는 인사는 기대 안해줬으면 좋겠다. 난 누구한테 약점 잡히는 거 싫어서.”
“그래, 너 편한대로 해.”

해빈은 의외로 수긍적인 정 혁의 태도에 화가난 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대답했을 뿐인데 도발적인 대답으로 들려서 일까.
해빈이 팔을 계속 가렸던 이유는 제 팔에 상처 때문이었다.

***

“한 번만 해보자. 이거 정말 힘들게 구한 거란 말이야.”
“싫다고. 주사자국 남으면 어떻게 할거야.”
“안 남는데. 부작용 나타나는 것도 극히 드물다고 그랬어. 선배들이 구해준 건데 진짜 귀한거라고 했다고.”
“하…”

해빈은 계속 망설였다. 이런 자유로움은 좋았지만 계속해서 친구들이라고 말하는 것들이 이상한 걸 가지고 오면 항상 고민이 됐다.
만약에 내가 부작용자가 된다면? 이라는 상상을 매일같이 하곤 했지만 괜찮을 거라는 친구들과 자기들도 해봤는데 아무렇지도 않았다는 등 이야기를 하면 해빈은 팔랑귀가 되곤 했다.
이내 해빈은 건들지 말아야 할 것에 손을 대버린 것이다.

“야… 존나 멋져. 그치? 우리를 위해 같이 맞아준 거잖아.”

저마다 해대는 말들을 들으며 해빈도 킥킥댔다. 그렇게 해빈은 왜곡의 세계로 간 것이다.
다음 날, 일부러 눈에 안 띄는 팔뚝 안쪽에 주사를 했었다. 하지만 빨간 반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씨발, 이게 뭐야?
해빈은 바로 어제 같이 있었던 친구들에게 전화를 했다. 신호음이 몇 번이나 갔을까. 잠에서 깬 듯한 목소리로 받았다.

“어… 왜?”

딱 들어도 목이 잠긴 목소리였다. 물른 목소리에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왜? 왜냐는 소리가 나오는 거야 지금? 부작용 나타나는 거… 드물다며…!! 드물다고 그랬잖아 네 입으로!!!!”
“뭐… 무슨 부작용인데…”
“흉터 생겼잖아… 어쩔거냐고!!!”
“하…”

곧이어 한숨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왜 그딴 거 가지고 지랄이야 지랄은.”
“뭐? 씨발놈이… 뭐라 했냐?”
“좋다고 맞을 땐 언제고 이제 와서 지랄이냐고. 그깟 주사자국이 왜?”

할 말을 없게 만들었다. 분명 강요하는 분위기 아니었나? 별 기대도 안한 전화에 화만 잔뜩 받은 해빈은 욕으로 마무리를 하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고요한 시계 소리. 거울 속에 비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몸이 투시되어 보이는 기분이었다. 자기 자신 뒤에 다른 자신이 해빈을 보며 웃는 것 같았다. 그럴리가 없다고 생각을 하면 할수록 여기저기에서 나의 환영이 보이는 것 같았다. 해빈을 보며 웃는 둥, 팔 한 쪽을 들고있는 둥 자세를 취하곤 했다. 팔 안쪽에 있는 붉은 반점들이 더 자라나지는 않을까. 하며 온 신경이 흉터로 가있다 보니 가려운 것 같아서 긁기도 해보고, 소매를 올려 직접 내려다보곤 했다. 붉은 반점들은 긁은 해빈의 손톱으로 인하여 주위를 다 빨갛게 만들었다.
씨발…씨발…씨발…
해빈은 그렇게 팔 안쪽에 자신의 약점을 안고 살다 중학교를 졸업했다.

***

누구에게 보여진 적은 처음이었고, 그 대상이 정 혁이었다는 것도 마음에 안 들었다. 생각해보면 분리수거장에서의 만남도 그다지 좋지 않았던 것 같다. 된통 내가 한 방 먹었기 때문에.
해빈은 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뒤를 돌아보니 혁이 한 다리를 무릎 꿇은 자세로 봉지에 다시 솜을 넣고 있었다. 시선이 느껴졌는지 혁이 솜을 넣다가 고개를 들어 해빈과 눈이 마주쳤다. 눈을 마주치는 순간 정 혁의 뒤에 환영의 혁이 흐리게 보이는 듯 했다. 혁의 환영이 해빈의 팔을 바라보는 듯한 시선에 움츠려 들었다.
다른 곳을 바라보는 것 같은 해빈의 시선에 정 혁은 자신의 뒤를 돌아 보았지만 아무것도 없다는 걸 확인하더니 해빈의 등을 지고 솜을 넣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해빈은 혁이 저를 보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안심했다.

‘눈치만 드럽게 빨라선…’

그렇게 쾅 소리가 나며 보건실 문이 닫혔다. 그곳엔 부스럭 거리는 소리만 남았다.











[ 킥킥, 1등해서 뭐하게?
1등한다고 네 처지가 뭐가 달라질 것 같아?
아무도 널 봐주는 사람은 없을텐데.

어차피 넌 혼자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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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이 짧은 것 같아서...

폭스툰을 옛날에나 한창 이용했다가 최근에 다시 보여서 저장용 겸 피드백도 들을 겸 작성해봅니다.. 전개가 꽤 빠르다고 느끼실 것 같은데 피드백, 오타 지적 환영하는 편입니다. 저는 스토리를 알고 읽는거랑 모르고 읽는거랑 차이가 꽤 크다고 느껴요. 그래서 독자들이 서운해 할 전개 속도 일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느끼실지 궁금해요. 써둔 게 있기 때문에 분할해서 올려야 하는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나눠야 할지 감도 안 오네요…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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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3-02-05 18:29 | 조회 : 980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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