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미래시 1}

짝, 고개가 돌아가며 슬리데린 휴게실의 학생들의 시선이 쏠리는게 느껴졌다.

현실감각이 싹 사라졌다.

뭐, 이 하나는 제대로 인지하고 있었다.

내 뺨을 때린 이 아이는 레귤러스 블랙.

내 해포 차애라는 사실.

차애한테 뺨 맞으니까 어떠냐고?

그딴걸 왜 묻냐.

"아, 손 하나는 더럽게 맵네."

내가 투덜거렸다.

우리 후배님은 악에 받혀 이렇게 소리질렀고.

"당신은, 당신은!
왜 그렇게 살아요.
왜 그렇게 중립적이냐고요!!"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내 중립적인 태도가 언젠가는 문제가 될 줄 알고 있었지만 시기가 이렇게 앞당겨질 줄이야.

"항상 자기 일 아니라는 듯이 굴고.
딴 사람들은 생각도 안 하고!!"

"..ㅎ."

"당신이 세상의 전부에요?
왜 주장을 하나로 굽히지 않냐고요."

빽, 하고 소리지르는 귀여운 후배님도 무표정으로 가만히 서 있는 내 변함없는 태도에 지쳐가고 나도 나 자신에 지쳐간다.

매일 이런 식이지.

참 한결같다고 해야 할까.

그래, 내가 틀렸지.

네 말은 다 맞고.

순수한 28가문 중 3위 안에 드는 고귀함을 자랑하는 블랙 가문에서 고이 자란 우리 귀공자님의 심리를 누가 알겠어?

누군지는 몰라도 나는 아니다.

"레리, 내가 확고한 결정을 내리길 바라는 거야?"

내가 픽, 하고 웃으며 물었다.

"네, 제발 그냥 하나로 정해요 리즈.
머글 태생들은 옹호한다고 하던 그 반대던 하나를 하라고요!!
박쥐처럼 왔다갔다 하지 말고!"

"진짜 고르라고?"

"네."

"넌 내가 내 입장을 알려주길 바라는 거지?
나랑 연을 끊는게 아니라."

"당연한거 아닌가요?"

"근데 말야, 그 말은 너무나 모순적이란 거 아니?
내가 무슨 답을 할 줄도 모르는데.
어차피 왕이랑 여왕 되면 계속 볼 텐데 이런 건 그때 물어봐 주면 안돼?"

지금 내 의견을 말하게 되면 살짝 곤란해지는 데, 내가 이어진 말을 삼키며 물었다.

"…"

휴게실이 갑자기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아마도 부드러운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던 내가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싸늘한 표정을 지었기 때문이거나 차기 왕과 여왕을 무게감 없이 입에 올려서겠지.

열린 창문에 살갗을 가를 듯한 차갑고 날카로운 바람의 줄기가 검은, 마치 지금의 나를 투영하는 듯한 검은 중장발을 가볍게 흔들었다.

그는 내 머리카락 때문에 내 얼굴을 보지 못했다는 거에 수많은 전생들의 기억까지 내걸수 있다.

이러는 게 하루 이틀인가.

오늘은 얼렁뚱땅 넘어갈 생각 없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한국의 속담이 생각나 필터링도 안 거치고 그대로 내 의견을 털어놓았다.

"뭐, 알려줄게.
네가 원한다면야 레리.
너에게 타임 터너가 있기를."

"그게 무슨 소리..!"

"그래 맞아, 난 사실 우리 기숙사던지, 아님 순수혈통들이던지 모두 그런 건 아니겠지만 머글태생을 차별적인 시선이 기분 더러워.
머글이 뭔 오물이야?
난 그렇게 너희와 똑같은 인간인 그들을 경멸하는 자들을 보면 속이 울렁거려.
구역질이 난다고."

"당신도 순수혈통이면서 배신자가 되길 바라는 거에요?"

"응.
객관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맞는, 윤리성이 있는 순수혈통들을 통칭하는 게 배신자라면야."

"당신, 미쳤어요..?"

"내가 미친년처럼 보인다면, 뭐.
괜찮아.
레리.
네가 나와 진정으로 친하게 지내고 싶다면 그 말도 안돼고 쓸데도 없는 논리부터 갈아치우고 오는 게 좋을 거야."

"리즈.
리즈 에덴.
나는 당신을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네요.
난 그 쓰레기들까지 포용하는 그 모습에 진절머리가 나요."

"어머?
내가 그렇게 친절하게 보였다니 다행이네.
근데 내가 행사하는 건 포용력이 아니라 네가 그렇게 자랑스럽게 여기는 순.수.혈.통.의 권린데 말이야.
난 적어도 내 빌어먹을 혈통 덕분에 이런 말을 해도 머글 옹호주의라고 끌려가진 않으니까 마음대로 내 주장을 펼칠 수 있잖아.
난 주어진 권리를 쓰레기통에 버리기까지 하는 바보는 아니라.
레리, 서로 사상이 반대되는 친구는 있을 수 없으니까."

난 왼쪽 검지에서 내 탄생석인 아쥬르말라카이트와 레귤러스 블랙의 탄생석인 화이트 지르콘으로 만든 반지를 빼내 던져 주며 말했다.

"이거나 받고 꺼져.
만나서 기분 더러웠고, 다신 보지 말자 레귤러스 악튜러스 블랙."

난 그대로 휴게실의 문을 발로 차고 나가버렸다.

뭐 이대로 연은 끝인 거지.

새로 시작하지 않는 한.


***


"으..응?"

내가 침대를 짚고 앉았다.

분명 무슨 꿈을 꾼 것 같은데.

옆 침대에서 들리는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안심된 나는 다시 잠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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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3-12-05 11:32 | 조회 : 125 목록
작가의 말

왔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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