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뛰었다. 그녀는 내 앞에서 계속 뛰어갔다. 나는 그런 그녀를 뒤따랐다. 세리나는 내게 마약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잠시의 즐거움으로, 인생을 송두리째 앗아간다는 무시무시한 약이라는 걸. 그녀와 나는 정처없이 떠돌았다.

택시를 타고 아주 먼 곳으로 갔고, 택시에서 내려 우리는 서로 손을 잡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백사장에 도착하기도 했다. 파도는 모래알을 부셨고, 우리는 그 위를 걸었다. 약을 했을 때와는 또다른 느낌이었다.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면, 그녀의 웃음을 보면, 마음이, 심장이 두근거렸다. 또 그 얼굴을 보자면 내 얼굴이 달아올랐다.


"유진, 저것 봐. 노을이 져가."
"응."
"예쁘다, 그치?"
"....... 세리나가..."
"응?"
"세리나가 더 예뻐."


그녀는 놀란 눈으로 나를 보았다. 나는 차마 그녀와 눈을 마주치지 못해 시선을 회피했다. 그녀에게서 아무런 반응이 없자 나는 조심스럽게 세리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황혼이 그녀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 처럼, 그녀의 모습은 너무 아름다웠다. 우리는 서서히 가까워졌고, 노을이 사라짐과 동시에 입을 맞추었다.

며칠을 그렇게 지냈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주로 노숙을 했고, 세리나가 챙겨온 돈으로 편의점에 가 작은 빵을 사서 서로 나누어 먹었다. 아마 이 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을거다. 행복. 그래, 난 행복하다는 마약을 마신 것 같았다. 매 순간순간이 즐거웠다.

그 행복이 깨지기 까지는 그리 큰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였다. 갑자기 경찰들이 몰려와 우리를 끌고 갔다. 도착한 곳은 세리나의 집이었다. 세리나의 부모님 뿐만 아니라 알렉스까지 그곳에 있었다. 알렉스는 감정없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저 거지새끼가 어디서 감히 우리 딸을!!"
"아빠, 아니야! 내가 가자고 한거야! 유진은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어!!"
"네가 홀린거야! 어디서 굴러먹은 쓰레기가!"
"건드릴게 따로있지, 주제도 모르고!"
"그만해!! 유진, 듣지마! 귀 막아!"


세리나가 고통스럽게 소리쳤다. 알렉스가 내게 다가왔다.


"이 앤 제가 맡죠."
"... 그래, 그렇게 하렴."
"그럼."


알렉스는 내 팔을 잡고 세리나의 집을 나왔다. 마지막까지 본 세리나의 얼굴은 나를 향한 걱정으로 가득했다. 알렉스는 나를 세리나의 집 앞에 있는 차 안에 던져놓고는 자신도 올라타 어디론가 빠르게 운전했다. 도착한 곳은 알렉스의 집이었다. 그는 나를 억지로 끌고 집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그는 내 뺨을 내리쳤다.


"아... 윽..."


다른 놈들과는 수준이 달랐다. 나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뺨을 매만졌다. 알렉스가 내 앞으로 다가와 머리를 잡아 올렸다.


"아..."
"울어?"
"아, 아, 아니.. 아, 안울어.. 아윽..."


나는 재빠르게 부정했다. 알렉스가 피식 웃더니 부어오른 내 뺨을 몇번 만지며 말했다.


"왜 간건데?"
"..아.. 으아.."
"대답해."


알렉스가 내 뺨을 양쪽에서 꽉 쥐었다. 너무 아팠다. 마치 예전처럼, 그 애들이 나를 괴롭힐 때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나는 두 손을 모아 빌었다.


"미, 미안.. 미안... 미안해요.. 자, 잘모, 못했어, 요..."
"하..."


알렉스가 나를 바닥에 내던졌다. 그리고는 거실에 있는 모든 물건들을 바닥에다 내던졌다. 쾅 쾅 거리는 소리가 났고, 나는 겁에 질려 두 팔로 머리를 감싼 채 구석으로 기어가 몸을 웅크렸다. 알렉스가 갑자기 내게 책을 던졌다. 꽤 단단한 책이라 맞은 곳이 많이 아팠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비싸보이는 도자기도 던졌다. 덕분에 깨진 도자기조각에 베여 피가 올라왔다. 그 외에도 알렉스는 손에 잡히는 것들을 내가 있는 쪽으로 전부 던졌다. 맞는 것 보다 맞지 않는 것들이 훨씬 많았지만, 무서운건 매한가지 였다.


"야."
"......"


무서워서 떠느라 알렉스가 부르는 걸 듣지 못했다. 그러자 알렉스가 화가 난 걸음으로 내 곁에 다가와 뒤의 벽을 발로 찼다.

쾅!!


"흐이이익!"
"유진."
"으, 응!"


나는 두려움이 가득 담긴 눈으로 알렉스를 올려다 보았다. 그는 내 멱살을 잡아 나를 들었다. 너무 무서워 멱살을 잡은 그의 손을 건드릴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나는 경련이라도 일어난 것 처럼 몸을 달달 떨어댔다.


"내가 전화하면 재깍재깍 오라고 그랬지."
"..응, 응."
"근데 왜 안받아. 왜 안와!"
"히익..!! 미, 미안,.. 미안해..!"


전화는 세리나가 절대 받지 말라고 해서 아예 전원을 꺼버렸다. 그 때 전화를 한 모양이다. 알렉스가 많이 화가난 것 처럼 보였다. 알렉스는 나를 바닥에 다시 던져버렸다. 깨진 도자기 위로 던져져 도자기 조각들이 내 몸을 파고들었다.


"아욱..."


피가 줄줄줄 흘렀다. 알렉스는 저 알바 아니라는 식으로 그대로 날 놔두고 2층으로 올라가버렸다. 나는 아픔에 눈물을 흘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도자기 조각들을 하나하나 손으로 빼냈다. 정말 많이 아팠다.


"흐... 아흑..."


아픔과 슬픔의 신음소리가 입에서 하염없이 흘러나왔다. 내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일주일정도, 나는 알렉스의 집에서 지냈다. 전처럼 마약을 하지도, 입을 맞추지도 않았다. 알렉스는 날 볼 때 마다 욕을 내뱉고 가끔 먹을 것을 나눠주었다. 상처가 곪아가는 것 같았다.

일주일이 지났을 때, 일어나보니 나는 알렉스의 침대위에 누워있었다. 아, 이런, 어떻게. 나도 모르게 알렉스의 침대위에서 잠들었나보다. 아무리 피곤하다고 해도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마침 알렉스가 보이지 않기에 나는 얼른 침대에서 내려왔다.

팔을 보니 붕대가 감겨있었다. 뿐만 아니라 상처난 곳이 전부 치료되어 있었다. 이건 언제 이렇게 된거지? 하지만 생각도 하기 전에 침실문이 열리고 알렉스가 들어왔다. 나는 쫄아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알렉스의 시선을 피해 바닥에 쭈꾸리고 있었다.


"왜 바닥에서 그지랄이야."
"미, 미안... 자, 자, 잘못했.. 어.."


나는 알렉스를 향해 빌었다. 제발 때리지만 말아줬음 좋겠다는 심정으로. 알렉스는 내 옆에 옷가지를 던졌다.


"입어."


나는 그의 말에 따라 얼른 옷가지를 주워들어 입었다. 너무 급하게 갈아입느라 알렉스가 앞에서 보고 있다는 사실마저 잊어버릴 정도였다. 옷을 다 갈아입자 알렉스가 내 팔을 잡고 나와 차에 나를 밀어넣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학교였다. 내가 차에서 내리자 알렉스는 날 내버려두고 혼자 가버렸다. 그렇다고 차마 그를 따라 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나는 그와 한참이나 떨어져 걸었다.

아, 휴대폰. 옷을 뒤졌다. 분명 새옷에 없을 휴대폰이 손에 쥐어졌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것이었다. 전화목록에는 알렉스의 번호만이 저장되어 있었다. 상관없었다. 어차피 이 전에는 알렉스와 세리나 뿐이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세리나를 찾아야 한다. 세리나에게 사과를 해야한다. 그녀가 나 때문에 그녀의 부모님과 사이가 나빠지는 건 정말 싫었다. 나는 얼른 올라가 세리나의 반으로 향했다. 그 반은 세리나뿐만 아니라 알렉스와 그의 무리들이 있는 반이라는 걸 까먹고 나는 문을 열었다.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쏠렸고, 나는 알렉스의 발 밑에서 피를 흘리며 맞고 있는 사람을 보았다.


"힉..!"


나는 자리에 주저 앉았다. 가만히 보니 나를 괴롭히던 놈들 중에 하나였다. 내 몸에 담뱃불을 지진놈. 나는 차마 알렉스의 곁으로 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가 매서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해 나는 그저 주저앉은 채로 가만히 있었다. 그러자 알렉스가 자리에서 일어나 내 곁으로 다가왔다. 알렉스는 주저앉은 나를 일으켜세우며 물었다.


"왜 왔어?"
"......"
"하... 유진."


알렉스의 한숨에 섞인 목소리에 나는 그가 화가 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얼른 그에게 대답을 해야만 했다.


"세, 세리나... 를 보러... 왔는데..."
"뭐?!"


아, 아까보다 더 화가난 것 같았다. 알렉스는 내 멱살을 잡고는 그대로 바닥에 던져버렸다. 붕대에 팔이 감겨 아프지는 않았다. 어디선가 비웃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알렉스의 무리들, 나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던 애들이 쓰러진 나를 보며 비웃었다.


나는 얼른 고개를 내렸다. 그들과 계속 눈을 마주하면 정말 움직이지 못할 것 같았다. 그 때,알렉스네 무리들 중 누군가가 말했다.


"알렉스, 이제 다 끝난거야?"
"...... 뭐가."
"이제 우리가 '이거' 가지고 놀아도 되?"
"...... 마음대로."


알렉스는 그 말을 끝으로 반을 나갔다. 나는 그의 뒤를 보지 못했고, 그들은 내게 다가왔다. 한 여자애가 쓰러져있는 나를 일으켜세웠다. 그녀는 갑자기 내 윗도리를 들췄다.


"..? 뭐야? 맞기라도 한거야?"
"......"
"아, 쟤 벙어리야? 왜 말을 안해."
"아, 아, 아니... 안, 맞았어..."


지금 바닥에 쓰러진, 나를 괴롭힌 놈이 한 말을 따라 유추해보면 알렉스의 무리들은 그놈들이 괴롭힐 때와는 차원이 다를 것이다. 무서웠다. 이젠 어떻게 되는거지? 사지가 멀쩡하기는 하게 될까?


".. 세리나가 끌고 다닐 때 부터 알아봤는데-"


'세리나'라는 말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보니 세리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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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9-16 23:50 | 조회 : 2,664 목록
작가의 말
류화령

'유진'이란 이름은 미국에서 남자아이에게 쓰는 이름이라고 알고있습니다. 사실 디즈니영화 '라푼젤'의 남주의 이름을 따 왔어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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