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나는 알렉스의 집으로 왔다. 거실에 내 집에 있던 내 짐들이 놓여있었다.


"이건..?"
"아, 이제 이게 거기 있을 필요가 없으니까."
"..?"
"이제부턴 여기가 네 집이야. 괜히 그런걸 구해다 줬지. 아무리 홧김에라도.."


알렉스는 말 끝을 흐렸다. 어차피 상관없었다. 그 집에가도 감시당하는건 매한가지 였으니. 그것보다 리타드에게는 무슨 말을 해야하지? 날 이해해 줄까. 얼른 리타드에게로 가야하는데...


"지금, 그 새끼 생각하는거지?"
"어..? 아, 아니.."
"웃기고 있네."


알렉스가 위협적이게 내게 다가왔다.


"니놈은 거짓말 하는거 존나 티나. 어설프게 그러지 말지?"


나는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갑자기 알렉스가 내 옷을 잡아 찢었다. 아, 이건 리타드가 내게 준 옷인데. 나는 너무 놀라 소릴 질렀다.


"뭐, 뭘하는..! 하, 하지마.!"
"닥쳐."


덕분에 나는 속옷하나만을 걸친 알몸신세가 되었다. 나는 거실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알렉스가 찢어버린 옷조각을 부들거리는 손으로 하나하나 집어들었다. 알렉스가 크게 혀를 한번 차더니 내 배를 걷어찼다. 손에 쥐고 있던 옷조각들이 나폴거리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컥..!"
"그게 그렇게도 좋아? 어?!"
"으욱.."


알렉스는 내 뒷목을 집어들었다. 너무 아팠다. 그간 리타드와 함께 하느라 잊어버렸던 고통이라는 감각이 만개했다. 나는 눈물을 후두둑 흘렸다. 알렉스는 그대로 날 바닥에 집어던지고는 내 위에 올라탔다.

그날의 악몽이 되살아 나는 것 같았다. 나는 크게 손을 휘저었지만, 돌아오는건 주먹뿐이었다. 또 뺨이 부어올랐다. 리타드와 함께하면서 사라졌던 상처들이 다시 생겨나기 시작했다. 강간같은 섹스가 시작되었다.


"악.. 아흑.. 아파... 아파..."
"... 후.."


그 때도 그랬다. 그 때, 아프다고 울면서 그에게 빌었는데 그는 거침없이 내 뺨을 때렸었다. 나는 계속해서 울었다. 딱딱한 거실바닥에 닿는 등이 너무 아팠다. 알렉스는 마치 삽입하는 것이, 넣고 움직이는 것이 마치 중요한 과제인것 처럼 진지한 얼굴로 허리를 흔들었다.

리타드는, 리타드는 이러지 않았다. 그는 다정했다. 내 몸 하나하나를 소중히 여겨주었다. 알렉스의 움직임이 점점 격해지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안에 뜨겁고 역겨운 것이 퍼져나갔다. 알렉스는 땀에 젖어 흐트러진 내 머리칼을 만졌다.


"... 그놈이랑은 하루종일 해댔지?"
"......"
"그 놈이 너에대해서 알아버려도 널 받아줄까."
"......"
"그 놈이라고 다를것 같지? 니가 매달렸던 여자들 처럼, 그냥 네가 불쌍해서 그런거야."
"악, 으윽.."


알렉스가 갑자기 움직였다. 아팠다.


"지나가던 비맞은 작은 개를 보면 동정심이 들지. 그거랑 같은거야."
".. 아흑. 윽. 아!"
"너 때문에 사람들이 무슨짓을 당했는지 알면."
"윽, 아아..!"
"그래도 그놈이 널 선택할까."


알렉스의 말은 날 마치 지옥으로 끌어당기는 듯 했다. 아픔에, 무서움에 언제나 피해버렸던 시선을 처음으로 맞추었다. 눈물이 가득했지만, 그래도 그의 시선을 피할 생각은 없었다. 알렉스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뭐야, 할말이라도 있어?"
"윽! 흐악! 아, 아!"
"없지?! 당연히 그래야지. 그게 '정상'이잖아?!"


알렉스는 화를 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상하게 그 속에서 웃음이 보였다.

'정상'. 알렉스는 그게 정상이라고 말했다. 모두가 날 버리는게, 결국 내가 갈 곳은 아무데도 없는게 정상이라고 했다. 이 비명은 아래에서 차고올라오는 알렉스의 움직임 때문인건가. 아니면 어쩌면 리타드도 그럴지 모른다는 무의식이 주는 두려움인건가.

하지만 난 알렉스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알렉스 역시 내 눈을 피하지 않았다. 기절하기 전 까지 나는 알렉스를 계속 바라보았다. 리타드와 함께있는 동안 내 안의 무언가가 변하기라도 한 것 처럼.

눈을 뜨니 나는 이불에 감싸져 알렉스의 품에 안겨있었다. 알렉스는 내가 깬 것을 모르는 것인지 내 손가락을 만지작 거렸다. 그가 억지로 새겨버린 문신을 아주 소중하다는 듯 쓰다듬었다. 나는 그걸 볼 때마다 내 몸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것 같은데, 알렉스는 아닌가보다. 그가 잡고있던 내 손을 주먹을 쥐어버렸다.


"깼어?"


대답하지 않았다. 아직 허리가 많이 아팠고, 기분이 좋지 않았으니까. 참 이상했지. 리타드가 만져주는 건 그렇게나 가슴이 설레이는데 왜 알렉스는 그렇지 않을까.


"... 놓고 싶지 않아."


그가 주문을 외듯 내게 말했다. 나를 안는 그가 무섭기보다는, 너무 무거웠고, 강한 힘으로 거세게 안아보이는 그 때문에 아팠다. 뒤에서 날 안고있는 알렉스는 내 얼굴을 볼 수 없기에 몰랐겠지만, 난 분명히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처음이었다.


"이대로 놓으면 넌 그놈에게로 날아가겠지."
"......"
"이상하지. 저번에도 그런 적이 있었는데."
"......"
"그 땐, 이렇게 불안하지 않았어."


알렉스가 내 어깨에 자신의 얼굴을 파묻었다. 날 놓아주지 않는 그가 너무 갑갑했다. 벗어나고 싶었다. 나는 알렉스가 사슬처럼 묶어버린 팔을 풀기위해 몸을 움직였다.


"가만히 있어."
".... 불편..."
"그냥 이렇게 있어."


날 안는 알렉스의 힘이 점점 더 강해졌다. 그는 나를 안고 있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풀어주었다. 엉덩이가 너무 아파 차마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했다. 나는 알렉스가 원망스러웠고, 그의 뒷모습을 그저 바라보았다.

그의 등에 새겨진 문신, 그의 팔에 새겨진 문신은 내게 새겨진 것과 무엇하나 다를 게 없었다. 똑같은 무늬를 그대로 새겨서인지, 알렉스가 없는 곳에서도, 심지어 그에게서 도망친 곳에서도 그가 꼭 함께있는 것 같았다. 불쾌했다.

알렉스는 먹을것을 가져왔다. 거부하면 맞을것이 분명했기에, 나는 순순히 그가 내미는 것을 받아먹었다. 진흙을 씹어먹는 것 같았다.


"맛없으면 맛없다고 말해."
"......"
"... 다른거 줄테니까."


자기네 집에서 아무것도 먹지말라고 한게 언젠데. 나는 알렉스를 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나는 속에서 터져나올 것 같은 음식을 한계까지 몸 안에 집어넣었고, 덕분에 한접시를 다 비웠다. 알렉스는 다시 부엌으로 갔고, 나는 소파에 기대어 앉았다. 아까보다 아픈 부분이 괜찮아 졌다.

리타드는 지금 쯤 돌아왔을까? 내 쪽지는 보았겠지? 얼른 돌아가야 하는데. 분명 리타드가 걱정할거란 말이야.

알렉스가 부엌에서 돌아왔다. 알렉스는 내 옆에와 나를 안고는 침실로 들어갔다. 그는 내가 기억하는 내에서 처음으로 날 조심스럽게 자신의 침대위에 눕혔다. 매일 던지듯이, 아니면 내가 그의 말에 따라 스스로 올라가는 것 뿐이었는데, 새로운 경험이었다.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알렉스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나한테 왜 이러는거지? 이번엔 또 뭘 하려는거야? 나를 눕힌 알렉스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 아무것도 안해."


알렉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슬며시 한 쪽 눈을 떴다. 알렉스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 얼굴은, 어디서 본 것 같았다. 어디서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알렉스는 이불을 바르게 덮어주고는 자신도 침대위에 올라왔다.

그리고는 나를 자신과 마주치게 돌려 눕혔다. 나는 반항하지 않고 그의 손길을 따랐다. 어차피 반항해 봤자 소용없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그는 이불에 돌돌 말린 나를 끌어안았다.


"자자."


내 등을 토닥여주었다. 뭐야, 뭐지? 도대체 왜 이러는거야? 너무 당황스러워 아무런 말도 안나왔다. 알렉스를 올려다보니 그는 눈을 감고 있었다. 잠이 오질 안았다. 그래도 눈을 감았다.

그러자 리타드가 나왔다. 리타드는 다정한 목소리로 계속해서 내 이름을 불러주며 내 등을 토닥였다. 나는 조금 웃은 것 같았다.

리타드의 환상을 깨버린건 알렉스의 목소리였다.


".. 그새끼랑 만나지마."


나는 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저 깨져버린 환상에 공허함만 느낄 뿐 이었다. 알렉스는 계속 말을 이었다.


"앞으로 만날 생각도 하지마. 여기 있어."


얼른 리타드를 만나야만 하는데. 어서 도망쳐야 하는데.


"계속 그러면."
"......"
"그 새끼 정말 죽여버릴 거야."


리타드가 알렉스는 자신을 못건드린다고 말했다. 그러니 리타드는 괜찮아.


"그놈이 준의 가족이든 뭐든 상관없어. 그냥 죽여버릴거야. 아니,"
"...?"
"어떻게서든 마지막에 마지막 까지 찢어 발기고 괴롭히다가 죽여버릴 거야."
".!!"
"그러니까 갈 생각 하지마. 여기가 네 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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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9-24 10:21 | 조회 : 2,753 목록
작가의 말
류화령

난 집착공이 그렇게 좋더라...♡ / 21화+에필로그로 끝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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