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나는 그를 거부하지 않았다. 아니, 거부하지 못했다. 알렉스는 내 품을 계속해서 파고들었고, 나는 아픔을 참기위해 이를 물었다. 왜 그를 거부하지 않았나 라고 물어본다면, 그를 거부해도 이 행위는 절대 멈출 수 없기에, 내가 더 아파지기에, 나도 사람이기에 아픔을 무서워해서 라고 답했을 거다.

박힌곳이 너무 쓰라렸다. 나는 눈을 감았다. 이 쓰라림보다는 그의 얼굴을 보는게 더 고통스러웠으니까. 그렇게 알렉스와 일주일을 보냈다. 그와의 일주일은, 예전과 다를게 없었다. 어머니에게 버림받고 갈곳이 없던 내가 돌아와서 보냈던 그 일주일과.

내 몸에 옷이 걸쳐지는 일은 없었고, 나는 그의 침실에서 한발짝도 나가지 못했다. 잠을 자고 있을 때도, 잠을 자지 않을 때에도 그는 시종일관 내 아래에 박아댔다.


"윽,.. 우으..."


참다못해 신음소리가 입밖으로 나가면 그의 움직임이 둔해졌다. 그간 너무 울어서 눈물이 나지 않을 것 같았는데 이상하게도 눈물이 끊임없이 흐르고 있었다.

이 눈물은, 사랑한다고 말한 리타드를 배신한 채 다른 남자와 몸을 섞고 있는, 그에 대한 죄스러움이었다. 이건 리타드를 향한 내 죄책감과 양심 이었다.

내가 눈물을 흘리자 알렉스는 내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 거친손길이 리타드와 비교되었다. 그 손길을 뿌리치고자 머리를 움직였다. 갑자기 알렉스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왜 그러지? 이제 끝난건가?


"하..!"


커다란 마찰음과 함께 내 고개가 재빠르게 돌아갔다. 저도 모르게 떠진 눈은 알렉스가 아닌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왼쪽 뺨이 화끈거렸고, 입에서는 또 짭짤한 맛이 났다.


"씨발.."
"악..! 아윽... 욱.!"


아픔에 신음소리를 내면 멈추었던 그가 이제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이 전보다 더 거세게 차고 올라왔다. 지금까지의 행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나는 침대 시트를 쥐고 몸을 꼬았다. 육체적인 아픔이 나를 집어삼키는 것 처럼 아래에서 부터 올라왔지만, 알렉스의 움직임이 심해질 수록 리타드가 생각이 났다. 그의 생각에 아래의 아픔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으흑! 으아! 악, 윽!"
"... 니새끼는 지금, 이 순간에도, 준, 그놈을 생각하고 있지."
"아윽! 욱, 우으윽.!"
"씨발, 진짜 죽여버릴거야. 다 죽여버릴거라고."


알렉스가 뭔가에 홀린 듯 중얼거렸다. 그는 내 다리를 자신의 어깨에서 떼어내어 침대위로 눌렀다. 몸이 반으로 접혔다. 이제 도망갈 수도 없어 나는 고스란히 그를 받아들였다.

애초부터 그곳은 남자를 받아들이기 위해 만들어 진 곳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는 수없이 알렉스를 받아들였다. 그럼에도 그곳은 알렉스에게 익숙해지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알렉스가 무서웠으니.


"으흑! 흑! 아욱!"
"우리가 몸을 섞은게 얼만데, 사실은 너도 좋지?"
"악! 그, 그만..! 흐익! 아악!"
"닥쳐, 좋으면 좋다고 말해."
"아, 아! 아으, 아! 윽!"
"얼른 말 하라고!"


알렉스가 초조한 듯 말했다. 네가 뭘 초조해 하는거야? 그렇게 해야할 사람은 나야. 혹시나, 혹시나 네가 리타드를 죽이면 어쩌지. 네 기분이 상해서 날 때리는 대신에 리타드를 죽이러 가면 어떡하지. 그럼 나 정말 죽어버릴 것 같은데..

알렉스는 점점 더 거칠게 움직이다 내 안에 싸버렸다. 드디어 끝이 났다. 하지만 온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박히는 것도 이렇게 힘이 들었다. 리타드와 함께 있을 때는 그렇게 힘든 줄 몰랐는데.

알렉스는 내 안에 싸놓고도 빼지 않았다. 나는 눈물을 잔뜩 흘려 새빨게진 눈으로 알렉스를 보았다. 가만히 날 내려다 보고 있던 알렉스가 백금발 머리를 뒤로 쓸었다. 파란 눈동자가 꼭 지옥을 밝하는 등불 같이 빛났다.

언젠가 부터 쳐져있던 암막커튼에 바깥사정을 모르겠다. 알렉스는 우리가 섹스를 할 때에도 불을 켜 놓고 있었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침대위에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었다. 알렉스는 그런 내 머리카락을 고이 쓸어 주었다. 조금 기분이 좋아진 것 처럼 보였다.

알렉스는 날 일으켜 자신의 위에 앉혔다. 덕분에 알렉스의 것이 더 깊숙히 들어왔다. 이런 체위는 몇번 해 보지 않어 어색했다. 거기다가 내가 움직여야 했기에 많이 민망했고, 많이 아팠다.

리타드와 할 때엔 내가 자진해서 한 적이 몇 번 있었지만, 알렉스는 리타드가 아니기에 난 이 체위가 싫었다. 안에서 알렉스의 것이 커지는게 느껴졌다. 힘없는 나는 그것을 고스란히 느끼며 그의 품에 기대었다. 힘만 있었으면 그에게서 떨어졌을 것이다.

베터리가 다 닳아버린 인형처럼 늘어진 나는 그의 손길에 따라 움직였다. 그 어떠한 쾌감도, 그로부터 나오는 쾌락도 느낄 수 없었다. 그걸 느끼기엔 나는 너무 아팠으니까.

알렉스는 내 어깨에 머리를 묻고 목덜미를 깨물었다. 그의 이가 아팠지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의 몸에 기대고 있었다. 잠시 후 입을 떼어낸 알렉스는 나를 제 품에 꼭 안았다.


"유진."
"......"
".. 너 내말 듣고있지."
"......"
"듣고 있다고 생각할게."
"......"
"우리 유럽으로 가자."
"... 뭐..?"
"이제야 대답하네."


알렉스가 날 제 몸에서 조금 떨어뜨린 뒤 눈을 마주치게했다.


"...... 아버지가 보내준댔어. 머리나 식히고 오라고."
"... 근데 거길.. 내가 왜가.."
"넌 가야지."
"......"
"나 없으면 넌 혼자잖아."


혼자 아니야. 이제 리타드가 나한테 있어. 그러니까, 나 절대 혼자 아니야.


"싫다고-.."


알렉스가 갑자기 날 끌어안았다. 왜 사람을 끌어안았다가 떨어뜨렸다가 하는거야?


"-싫다고 하지마."
"......"
"넌 어떻게든 갈거야. 맞지?"
"......"
"너한텐 나뿐이잖아."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알렉스는 내게 입을 맞추고 다시 허리를 움직였다. 나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고 허공만을 바라보았다. 내가 알렉스와 유럽에 가게되면, 그러면 리타드를 보지 못하겠지. 그건 싫다.


"... 아니면 네 어머니라는 여자가 있는 나라로 갈까?"
".. 어, 어?"


어머니라니.


"그 나라로 가서 그 여자가 잘 사는지나 좀 볼까?"
"...... 아니..."


나는 힘없이 대답했다. 배에 가득 찬 알렉스의 것이 신경쓰였다. 무엇보다 그녀는 죽기보다 보기 싫었다. 아직도 가끔 그녀에 대한 꿈을 꾼다. 내가 꿀 수 있는 최악의 악몽을.

난 그녀때문에 이렇게 알렉스에게서 벗어나지도 못하고 잡혀 살아왔다. 그녀가 미웠다. 어쩌면 알렉스보다, 아버지 보다도 더 미워할 지도 모르겠다.


"거긴 싫어.."
"그럼 유럽으로 가자."
"......"
"넌 한번도 해외로.. 아니, 이 주 자체를 벗어난적이 없잖아."
"......"
"그러니까 나가보자는거야. 마음에 들면 거기서 살자, 둘이서."


둘이서라니. 그런 끔찍한 소릴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있네. 그건 싫어. 난 리타드에게 갈거야. 리타드는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내 쪽지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내 생각은 하고 있겠지?

내 안에 한번 더 사정을 한 알렉스는 나를 욕실로 데리고 갔다. 일주일 내내 씻지 못해서 찝찝했는데, 다행이었다. 또 갑자기 다정스레 구는 알렉스가 적응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나는 그의 다정함을 무시하려고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정말 힘들 것 같았으니까.


"...... 넌 일 없어.?"
"일?"
"응."


알렉스가 요 근래 집에서, 아니 내 곁에서 한발짝도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평소엔 밖을 돌아다니는 걸 보아서 분명 바쁘게 일하는걸로 생각했는데. 내가 정말 궁금하다는 듯 묻자 알렉스는 고개를 휙 돌리며 말했다.


"많아."
"아..."
"....... 그건 왜."
"어? 아, 그, 그냥..."


사실 언제 리타드에게로 도망칠까 계획을 짜려면 우선 알렉스가 이곳에 없어야 했다. 대충 둘러대자 눈치빠른 알렉스가 또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새끼한테 가려고?"
"아, 아니.."
"너, 내가 말했지."


알렉스가 날 억지로 침대위에 눕혔다. 나를 내려다보는 그가 새삼스래 무섭게 느껴졌다.


"넌 거짓말 하는거 존나 티난다고."
"......"
"씨발, 나갈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까 도망갈 생각 하지마."


침을 꼴깍 삼켰다. 다행히 알렉스는 그대로 물러났다. 아, 지금은 그렇게 기분이 나쁘지 않나보다. 그래도 덕분에 밖으로 나갈 수 있는 확률은 대폭감소했다. 아니, 사실 거의 불가능이었다. 차라리 리타드가 이 집을 치고 들어오는게 도망칠 확률이 더 높았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구석쪽으로 기어가 앉았다. 예전부터 구석만 찾는 버릇이 생겨버려 나는 언제나 의도치않게 구석에 가서 앉아있었다. 그러고보니 리타드랑 있을 때엔 구석에 앉은 적이 없었다. 그도 그럴게 하루종일 붙어 있었으니까.

마침 알렉스의 휴대폰에 전화가 걸려왔다. 알렉스는 잠시 화면을 들여다보더니 전화를 받았다.


"누구야."


그 너머로 리타드의 목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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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9-24 23:35 | 조회 : 2,766 목록
작가의 말
류화령

비축분을 열심히 올리기로 했습니다. 헤헿 그리고 '오늘뱜은'은 20화+에필로그+특별편으로 끝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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