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원치 않던 조우

언제부터 잠든 걸까.

두 눈을 떴을 때 나는 익숙한 유리방 안이었다.

...

'분명 라온 옆에 있었었는데'

놀다가 잠든건가.

확실히 애기라서 그런 지 잠을 많이 자야하네.. 귀찮게.

'라온이랑 모래랑 더 얘기하고 싶었는데'

그렇게 생각하며 얼굴을 찌푸리며 벽을 버팀목 삼아 일어났다.

'오우, 드디어 성..'

공이 아니라 실 패 ! ☆

'아이씨, 좀만 더 하면 됬는데'

역시 아직은 4발이 편하다. 4족보행 만세!!

그리고 뭔가 불 꺼진 연구소 복도에서 인기척이 느껴지는 듯했다.

'라온? 라온인가?'

소리가 나는 쪽으로 귀를 쫑긋거리며 유리창에 얼굴을 밀착했다.

하지만.

어둠에서 한 발짝 내딛은 그것은, 밤눈이 밝은 나에게 보이기 시작한 얼굴은.

"아, 오랜만이네."

... 전혀 예상하지 못한, 딱히 보고 싶지도 않았던 사람과의 조우였다.

검은 머리를 가진, 빨간 눈을 가진... 악마같은 그.

내가 태어나고 2번째로 만났던 그, 내게 실험을 지시한..

"어라? 알아보는 눈치다?"

소장이었다.

내가 탐탁치 않은 눈으로 쳐다보는 게 많이 티가 난 것일까.

나는 그저 흘깃 그를 쳐다봐준 다음 까칠하게 뒤돌았다.

(뭐..4족보행하는 애기 주제에 그래봤자 얼마나 까칠해보이겠냐만은..)

"...확실히 건강해보이는군. 마음에 들어."

'니 마음에 들으라고 그러는 거 아니니까 꺼져주지 않으련?'

아 혈압, 후하후하. 참아야 하느니라. 나는 애기다. 아무것도 모른다.

"너한테 투입하고 있는 약물이 뭔지 아는가?"

'근데 저 자식 내가 말을 알아듣는 걸 눈치챈건가. 왜 자꾸 말을 걸어'

보통 아기처럼 보이게!

배시시..

"아부바부!! 아댜댜!"

'오 신이시여, 제발.'

젠장!! 망할 발연기!!

뭔가 소장이 킥킥대는 거 같다! 기분 나빠!!!

"큭.. 너한테 주입하던 건 독이야. 근데 생각보다 잘 해독해내네. 원래 이 정도 독이면 보통 실험체는 다 죽던데. 특히 너같은 애기는 말이야"

'... ...'

솔직히 그 말은 충격받았다. 유리방 안에 갇혀있는 혼혈들은 대부분 나보다 훠얼씬

나이가 많아 보였다. 물론 앳되보이는 외모도 있지만 혼혈들은 워낙 느리게 늙으니..

그런데 마치 그는 나같은 아이가 여러 명 이었다는 듯 말했다.

'... 내가 처음이 아니란 건가.'

솔직히 나만 이런 고통을 느껴야 한다는 거에 불만을 느끼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정말 내가 혐오스러웠다.

나만 고통받는다고 내가 제일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나 말고도 이곳에서 고통받다 죽어간 이들이 있는데.

나는 오늘도 내 생각만 했구나.

'나도 결국 어쩔 수 없는 이기적인 아이인건가.'

그렇게 혼자서 생각에 잠겨있을 때 그는 또 다시 말했다.

"뭐 어떻게 되든 좋아. 그런데 말이야 1달안에 너와 라온은 다신 못 만나게 될 꺼야."

'?!'

"역시... 알아듣는군, 그 떨리는 눈동자는 알아들었단 뜻이 다분해 보이는군."

'젠장할..'

됐고 라온이랑 내가 못 만난다는 게 뭔 개소린지나 말해 이 개새끼야!!

주먹을 쥔 쪼끄만 손에서 아픔이 느껴졌다.

하지만 손보다 그저 말만 들었을 뿐인데도 호흡이 가빠져 오는

머리가 하얘지고 심장이 멈추는 듯한 이 느낌이 더 아팠다.

"나는 곧 너를 불로불사 실험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할 거야. 아마 너가 최연소 실험체가 되지 않을까? 대부분 지금까지 제일 어렸던 게 15살 실험체였으니까."

"불로불사 실험엔 아무나 참여할 수 없지. 그리고 라온은 널 동정하는 거야. 불쌍히 여기는 것 뿐이야. 착각하지 마렴, 아가야. 라온은 겨우 너만 보고 이 괴롭고도 아픈 실험에 참여할 리가 없거든."

"그도.. 착한 척, 사람다운 척 하지만 이기적이고 못된, 자기밖에 모르는 모순적인 인간일 뿐이거든."

'헛소리!'

주먹을 쥔 손으로 유리창을 두드렸다.

쿵. 쿵.

그는 그런 날 마치 동물원 속 원숭이라도 되는 듯 재밌다는 듯이 웃다가 내가 유리창을 두드릴 때 그대로 뒤를 돌아 마치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이 어둠 속으로 사라져갔다.

그리고 그 때쯤 나도 지쳐 유리창에서 주르륵 미끄러져 주저앉았다.

아-. 차라리 모든 게 꿈이라면.

하지만.. 그럴 린 없겠지. 손이 이렇게 퉁퉁 붓길 시작하는 걸 보면.

그래도 다행이야. 피는 안 나서, 피 나면 라온이 걱정할텐데.

라온한텐 얘기 안 해야지. 더 이상 피해끼치는 건 그만할래.

응. 그럴래. 대신 남은 시간을 행복하게 보낼래.

그래, 그거면 될꺼야.

아마도... 아마도... 아니 그래야만 하거든..

유리벽에 조용히 기대있던 그녀는 이제는 익숙해진 차가운 바닥에 스르륵 누웠다.

어느새 많이 자란 머리카락이 사락 내려오는 소리를 내었다.

사실은 좀 힘들다.

원망스럽다.

내가 원하는 건 큰 것도 아니고 그저 평범하게 사랑받는 거였는데.

왜 하필 나지.

나만 왜.

나만 이런 것도 아닌데 또 이기적인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난 결국 이것밖에 안 되는 아인가보다.

조용히 그렇게 차가운 바닥에서 그 바닥보다 더 차가워지기 시작한 심장을 느끼며 눈을 감고 조용히 한 방울 한 방울 참지 못한 울음을 새어보냈다.

안 그럼 언젠가 뻥. 터져버릴것만 같아서.

내가 견딜수 있을만큼만 부풀어 오르게 조금씩 조금씩 새어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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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05-04 00:47 | 조회 : 1,508 목록
작가의 말
유실리아

동인 차트에서 이영싫 이라 되있는 팬픽을 뒤에서부터 하나씩 보다가 기를 다루는 아이란 작품을 보고 제 분량이 적은 걸 반성했습니다...흑.. 정엘 팬픽 라일라이 적으시는 꽃날님에 비해도 전 분량도 적고 필체도 쓰레기에요...ㅠㅠ 반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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