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일 처음 보고 든 생각은
-참 얌전하다, 감정이 없어 보인다, 쓸쓸해 보인다.
그 아이는 태어난지 1년이 채 안되어 보였다. 그런데 자신의 팔에 덕지덕지 주삿바늘과
링거바늘이 꽂혀있는데도 전혀 당황하지도 울지도 않았다.
들어온 나를 보고도 그저 흥미로운 눈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솔직히 그래서 더 관심이 갔다.
왠지 울지는 않지만 아이의 마음은 상처로 가득한 듯 했다.
울지 않고 있지만 울고 있는 듯 했다.
그리고 그 모습이 너무 쓸쓸해보여서.
허전해보여서.
그 위로 나의 여동생의 모습이 겹쳐보였다.
그저 누워있던 채로 아무것도 못하는 그녀와 똑같은 눈동잘 하고 있는 그 아이.
그리고 여동생을 잃고 나서 사라졌던 감정들이 다시 내 마음에 싹을 튀우기 시작했다.
미안함, 자괴감, 죄책감, 자기혐오감..
대부분, 아니 다 부정적인 느낌이었지만.
그런데 늘 좋은 사람이라 생각했던 나의 은인, 소장님이 처음으로 못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 조그만 아이 앞에서 못 하는 말이 없는 그런 소장이 끔찍했다.
...혐오스러웠다. 나도 그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리고 자신에게 곧 다가올 불행을 눈치챘는지 울기시작한 그 아이가 너무 안쓰러웠다. 불쌍했다. 지켜주고 싶었다. 미안했다. 도와주지 못해 미안해.
내가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울 때 갑자기 그 조그만 손가락이 움직이며 내 손을 같이 맞잡았다.
마치 날 위로하듯이. 날 이해한다는 듯이.
'오빠 괜찮아, 울지마, 오빠'
여동생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환청과 함께 진심으로 위로받는 기분에.
자기도 울고있는 주제에 나를 달래주려는 듯한 그 손이 전해주는 따뜻한 온기에
막혀있던 감정의 응어리를 난 뚫을 수 있었다.
그날 정말 많이 울었고 아이는 단 한번도 나의 손을 뿌리치지 않고 같이 울어주었다.
* * *
그 아이에게는 늘 신경이 쓰였다.
그 꼬맹이는 참 신기했다. 내 말을 알아듣는거만 같았다.
난 그 아이와 있을 땐 마음이 편해져서 무슨 말이든 할수가 있었다.
이 연구소의 비밀도, 나의 죄책감도, 내가 얼마나 형편없는 인간인가에 대해서도,
그 아이에게 하나 얘기하지 않았단 건 내가 그 아이의 모습에 가끔 내 여동생을
투영해서 본다는 것.
내가 여동생이 있었고 그 여동생이 죽었다는, 왜 죽었다는 그 이야기는 일체 한 번도
해준적이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점점 친해졌다.
내가 울 때면 그 고사리 같은 손으로 늘 내 눈가를 닦아주는 그 느낌이 너무 좋아서
그 아이를 품에 안을 때야 뭔가 가슴 깊은 곳에서 채워지지 않던 곳이 채워진 듯한
기분이 들어 행복했다. 그 아이와 있을 때면 나 마저 순수하고 깨끗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생각했다.
넌 내가 꼭 지켜줄게
더 이상 소중한 것을 눈 앞에서 잃는 바보같은 짓을 하진 않을거야.
실순 더 이상 용납하지 않아.
무슨 일이 있어도.
-번외편 {라온시점} Episode. 미안해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