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 의문의 소녀

어딘지 모를 숲의 한 가운데,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듯 어두웠고 한때 숲의 푸르름을 책임지던 나무들은 검은색으로 말라죽어 으스스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또한 공기는 축축하고 동시에 퀴퀴한 냄새가 났으며 사방에 얽히고 섥힌 거미줄들은 겹겹히 쳐져 그 자체로 침입자를 막아내는 장애물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타앙-!!]

그러던 그때, 삭막할 정도로 고요하던 숲에 한발의 총성이 울려퍼졌다.

[크워어어억...]

그와 동시에 신음소리를 내며 몸통에 커다란 바람구멍이 난 몬스터가 힘없이 쓰러져 마치 부서진 유리조각처럼 산산조각나 사라졌다.

사람과 거미가 반쯤 섞인 괴물의 시체가 썩어들어가고 있는 모습의 몬스터. [휴머노이드 스파이더 좀비]였다.

[그르르르...]

그리고 그 뒤로, 으르렁거리는 신음소리와 함께 수십마리의 몬스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휴머노이드 스파이더 좀비와 그 상위 몬스터인 휴머노이드 스파이더 와이트였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허리춤에 찬 산탄총을 꺼냈다. 총구를 짧게 자른, 일명 '소드 오프 샷건'이라 불리는 유형의 산탄총이었다. 손 안에서 산탄총을 가볍게 돌리자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탄환이 장전되었다.

[크아아아악-!!]
[크워어어어!!]
[우워어억!!]

그와 동시에, 우두머리처럼 보이는 와이트가 괴성을 지르자 그에 응답하듯 신음소리와 함께 괴성을 지르며 좀비들이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가장 앞서 달려드는 좀비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자 총성과 함께 총구를 벗어난 산탄에 좀비들의 몸체가 퍼버벅 하는 둔탁한 소리를 내며 찢겨나갔다.

하지만 그럼에도 좀비들은 멈추지 않았다. 더욱 격렬하게, 살아있는 존재에 대해 적의를 드러내며 달릴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좀비들을 향해 권총과 산탄총이 연이어 불을 뿜었다.

[캬아아아악-!!]

한발, 두발, 총성이 울릴때마다 좀비들이 짚단처럼 쓰러져갔다. 단순히 본능에 의해 무작정 달려오기만 할 뿐인 좀비들은 좋은 과녁이나 마찬가지였다.

몇발의 총성이 더 울리고. 마지막 좀비가 산산조각 나 사라짐과 동시에 와이트가 괴성을 내질렀다. 동포의 죽음에 분노한 것일까? 아마 아닐 것이다. 언데드에게 그런 지성은 존재하지 않았다. 남아있는 것이라곤 살아있는 존재에 대한 적의. 그것 뿐이었다.

천천히 숨을 내쉬며 자세를 잡았다. 평범한 좀비들과 달리, 와이트는 훨씬 위험한 존재였다. 무작정 살아있는 존재들을 공격하는 저급 언데드들과는 달리 와이트는 생전의 지능을 어느정도는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르르르르...]

쉽지 않은 상대라는걸 알아차린 모양인지 와이트는 나를 향해 달려드는 대신 으르렁거리며 나를 주시했다. 분명 빈틈을 노리는 것이었다.

[캬앗!]

그리고 그 순간, 와이트가 괴성을 지르며 나를 향해 도약했다.

날카로운 손톱의 궤적이 번쩍임과 동시에 나는 옆으로 몸을 굴렸다. 그러자 와이트는 나를 향해 도약하던 그 기세를 그대로 이어 손을 땅에 짚으며 그대로 내 복부를 향해 발차기를 날렸다.

"크읏!!"

두자루의 총을 교차시켜 와이트의 공격을 막아내며 나는 신음소리를 흘렸다. 와이트의 발톱과 총기가 스치며 불꽃이 튀었다. 아슬아슬했다. 만약 독기를 머금은 손톱에 조금이라도 스쳤다간 높은 확률로 마비에 걸릴수도 있었기에 조심해야만 했다.

그와 동시에 와이트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지만 재빠른 움직임으로 뒤로 도약한 와이트가 거리를 벌렸다.

[케케케케케....]

그리고는 마치 웃는듯한 소리를 내며 와이트가 자신의 손톱을 핥았다. 몬스터 주제에 도발을 해?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머리 위로 총구를 들어올렸다.

다음 순간, 총성과 함께 총구가 불을 뿜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허공을 향해 쏜 탄이 명중 할 리가 없었다.

영문모를 행동에 와이트는 순간 당황한 듯한 반응을 보였지만 곧 빈틈이라 인식한 모양인지 나를 향해 괴성과 함께 도약했다.

"100년은 멀었어."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그렇게 말한 그 순간, 어디선가 날아온 총알이 와이트의 다리를 꿰뚫었다.

[카핫-!!?]

허공을 향해 쏘았던 탄환, 그것이 지형지물에 부딪치며 도탄되어 결과적으로 와이트에게 명중한 것이었다.

외마디 비명과 함께 와이트가 쓰러졌고 나는 쓰러진 와이트를 향해 다가가 와이트의 머리를 밟으며 몸부림 치는 와이트의 머리에 총구를 가져갔다.

[캬아아아악!!]

다음 순간, 외마디 괴성과 동시에 총성이 울려퍼졌다. 부서진 와이트의 머리로부터 찐득한 검은 체액이 흘러나옴과 동시에 와이트가 움직임을 멈추고 뒤이어 유리처럼 부서져 사라졌다.

"그나저나 이 녀석은 어딜 간거야?"

허리춤에 권총과 산탄총을 넣으며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거미줄이 너무 빽빽하게 쳐진 탓인지 방향을 잡을 수가 없었다.

"어디보자 지도가 분명..."

그렇게 말하며 지도를 꺼내던 그때였다.

[키에에에에에에-!!]
"비켜비켜비켜어-!!"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성과 함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음 순간, 우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나무들이 부서지며 인간과 거미가 반쯤 섞인듯한 기괴한 모습을 한 거대한 몬스터가 괴성을 지르며 나타났다.

[휴머노이드 스파이더 하이브 마더] 이곳 [사람의 먹는 숲]의 보스이자 휴머노이드 스파이더들의 여왕개체였다.

"오예-!! 이거 신나는데?!"

그리고 그런 [페러사이트 스파이더 하이브 마더]의 머리 위에서 매달린 체, 한 소년이 신나는 듯한 목소리로 소리치고 있었다.

"난 전투중인데 넌 한가하게 놀고 있냐."
"그게 아니라... 으아아아악-!?"

내 말에 소년이 뭐라고 대답하려던 순간, [휴머노이드 스파이더 하이브 마더]가 괴성을 지르며 다시 날뛰기 시작했다. 그 바람에 소년은 비명인지 뭔지 모를 소리를 내며 날뛰는 거대한 거미 괴물과 함께 저 멀리 사라졌다.

"저 녀석..."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황당해하던 그때, 나무 사이로 언데드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좀비와 와이트, 그리고 거미줄 미라. 다양한 종류의 언데드들이 인해전술이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의 무리를 지은 체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양손에 든 권총과 산탄총을 홀스터에 집어넣고 등에 매고 있던, 마치 관을 연상시키는 모습을 한 가방을 땅에 내려놓았다.

가방의 뚜껑을 가볍게 걷어차자 튕겨나가듯 뚜껑이 열렸고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공허한 어둠이라고밖에 표현 할 수 없는 무언가로 가득 찬 공간이었다.

어둠 속으로 손을 뻗자 손끝에 무언가 닿는 감각이 느껴졌다. 주저없이 그 물건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가방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다름아닌 커다란 연료탱크가 달려있는 대형 화염방사기였다.

"벌레와 언데드라... 잘 타겠네."

그렇게 중얼거리며 화염방사기의 벨브를 열었다.

[으워어어어어-!!]

그리고 그 순간, 화염방사기의 점화기에서 타오르는 불꽃에 본능적인 두려움이라도 느낀 것일까. 주변의 언데드들이 일제히 비명에 가까운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그런 언데드들을 향해 나는 방아쇠를 당겼다.

[크에에에엑-!!]
[키아아아아악-!!]

화염방사기의 분사구로부터 엄청난 기세의 불꽃이 뿜어져 나옴과 동시에 숲이 불길에 휩싸였다.

불지옥이라는게 아마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타오르는 불꽃 사이에서 언데드들이 괴성을 지르며 쓰러져 가는 광경에 나는 가볍게 휘파람을 불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이정도면 충분하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벨브를 잠궜다.

숲을 모두 태워버릴 기세로 뿜어져 나오던 불길이 천천히 사그라들었다. 불길이 휩쓸고 간 자리에 남은 것은 곳곳에서 아직 꺼지지 않고 숲을 태워나가고 있는 불꽃과 검게 탄 땅, 그리고 완전히 타버린 나무와 언데드들이 남긴 재였다.

"으윽..."

매캐한 연기와 함께, 쓸데없을 정도로 잘 재현된 단백질 타는 고약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그 냄새에 나는 표정을 찌푸리며 화염방사기를 가방속에 집어넣었다.

"우와아아악!?"

그리고 그 다음 순간, 또 다시 괴성과 함께 조금전의 그 몬스터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 소년은 여전히 [휴머노이드 스파이더 하이브 마더]의 머리위에 올라타 있었다.

"언제 끝낼꺼야? 그놈만 잡으면 된다고."
"응? 벌써? 좋아 그럼... 삼연찍기!!"

내 말에 소년이 아쉽다는 듯 말하며 등에 지고있던 거대한 배틀액스를 들어 올려 우렁찬 기합소리와 함께 [휴머노이드 스파이더 하이브 마더]의 머리를 내리쳤다.

[키이이이익-!!]

단 한번의 공격이었지만 받은 충격이 상당했던 모양인지 [휴머노이드 스파이더 하이브 마더]가 휘청거리며 괴성을 내지르고는 약이 오른듯 더욱 날뛰기 시작했다.

"으와악!? 이걸 버텨? 그럼 이건 어떠냐! 사연찍기! 오연찍기!"

날뛰는 [휴머노이드 스파이더 하이브 마더]의 머리 위에서 그렇게 소리치며 소년이 배틀액스를 계속해서 휘둘렀다.

[샤아아아아악-!!]

세번, 네번 배틀액스가 휘둘러 질 때마다 [휴머노이드 스파이더 하이브 마더]의 갑각이 금이가며 부서져나갔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우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휴머노이드 스파이더 하이브 마더]의 머리 갑각이 완전히 부서졌고 [휴머노이드 스파이더 하이브 마더]는 괴로운 듯한 비명을 지르며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좋았어! 자, 그럼 이제 끝내보실까!? 어스퀘이크 스트라이크!!"

그렇게 외치며 소년이 머리 위로 거대한 배틀엑스를 들어올렸다. 동시에 소년의 배틀엑스가 붉은 섬광에 휩싸였다. 뒤이어 소년은 눈부신 광채를 내뿜는 배틀액스를 무방비 상태의 [페러사이트 스파이더 하이브 마더]를 향해 힘껏 내리쳤다.

콰아아아아아앙-!!

그리고 그 순간, 폭격이라도 떨어듯한 어마어마한 폭발이 일어나며 충격파가 내 몸을 덮쳤다.

"크윽... 하여간 위력하나는 알아줘야한다니깐..."

그 엄청난 위력에 혀를 내두르며 그렇게 중얼거린 나는 피어오르는 먼지에 얼굴을 찌푸리며 소매로 코와 입을 가렸다.

"휴우... 재밌었다."

잠시 후, 자욱히 피어오른 흙먼지 사이로 소년이 걸어나오며 도끼에 묻은 초록빛 체액을 털어내었다.

건장한 체격에 햇빛에 많이 노출된 탓인지 조금 짙게 탄 구릿빛 피부, 푸른 하늘을 보는 듯 한 하늘색 눈동자와 하늘색 머리카락이 인상적이었고 얼굴에는 가로로 길게 이어진 흉터가 있었다.

얼핏 보면 험상궂어 보이기도 했지만 특유의 미소와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머리 위로 솟은 개의 귀. 그리고 살랑거리는 꼬리 때문인지 험상궂다는 느낌보다는 활기차 보인다는 느낌이 먼저 드는 인상이었다.

쿠르트, 현실 이름은 박창혁. 수인족 광전사 유저로 알고 지낸지 꽤 되는 녀석이었다.

"뒤 조심해라."
"응?"

이쪽으로 다가오는 쿠르트를 보며 말하자 쿠르트는 영문을 모르겠다는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뒤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 순간,흙먼지 속에서 자그마한 크기의 거미가 튀어나와 쿠르트를 향해 달려들었다.

"으아악!? 깜짝아!!?"

화들짝 놀라며 소리치는 쿠르트였지만 그 와중에도 운동으로 다져진 반사신경 덕인지 달려드는 거미를 손으로 낚아채었다.

[키이이익-!! 키익-!!].

자그맣다고는 해도 왠만한 사람 머리통보다 큰 크기의 거미가 쿠르트의 손에 잡힌체 독니를 뻗으며 신경질적으로 버둥거렸다.

[휴머노이드 스파이더 하이브 마더(본체)] 숙주로 사용하는 몸체가 파괴되면 튀어나와 마지막으로 자신을 공격한 플레이어를 덮친 후, 다시 감염시켜 다시 숙주로 만드는 성가신 능력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었다.

"햐~ 깜짝 놀랐네, 늘상 잊어버린단 말야..."

그렇게 말하며 쿠르트가 [휴머노이드 스파이더 하이브 마더(본체)]를 잡은 손에 힘을 줘 그대로 작은 거미를 쥐어 터트려버렸다.

"으윽..."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얼굴을 찡그렸다.

"이제 끝났지?"

그렇게 말하며 손수건을 꺼내 손에 묻은 체액을 닦어낸 쿠르트는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런것 같은데."

주변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잿더미가 된 숲과 몬스터들이 죽으며 떨어트린 아이템들이 전부였다. 대부분은 쓸모없는 잡템들이었지만 개중에는 꽤나 값이 나가는 소재들도 하나 둘 떨어져 있었다.

"우선 물건부터 챙기자고."

그렇게 말하며 나는 땅에 떨어져있던 기분나쁘게 꿈틀거리는 주머니 같은 물건을 집어들었다. 그 순간 빵빠레 소리와 함께 나와 쿠르트의 머리 위에서 폭죽이 터지는 듯한 이팩트가 나타났다.

[퀘스트 완료 - 사람을 먹는 숲.]
1/1 - [페러사이트 스파이더 하이브 마더의 신경독 주머니 획득.]

-몬스터의 수준이 낮아 스킬이나 스테이터스의 획득은 없습니다.

"크하-!! 재밌었다. 기회가 되면 이거 길들여서 장사해보는것도 괜찮지 않을까?"
"글쎄, 너처럼 제정신이 아닌 녀석들이라면 타보려고 할 지도? 자, 그럼 슬슬 돌아갈까?"

그렇게 말하는 쿠르트의 말에 나는 피식 하고 웃어보인 뒤 주머니에서 귀환 스크롤을 꺼내 그것을 반으로 찢었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환한 빛이 눈앞을 가득 매우고 몇초정도 지났을까, 환한 빛이 사라지자 가장 먼저 눈에 보인것은 높게 쌓여진 성벽 너머로 보이는 압도적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거대한 나무였다.

구름위까지 뻗어 그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나무. 세계수(世界樹 : World Tree) 위그드라실, 이 세계의 시작이라는 설정을 가진 거대한 나무였다.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돌리자 하얀 벽돌로 이루어진 석조 건축물들이 세련미를 뽐내고 있었다. 넓은 광장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오가며 말들이 끄는 마차들이 길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제도(帝國) 페리안.

나인가르드를 이루는 아홉대륙중 하나인 미드가르드 대륙, 그곳에서 가장 중앙지역을 차지한 거대 제국인 페리안 제국의 수도였다.

"아으으으...."
"으갸갸갸갹...!!"

전송이 완전히 끝나자 온몸에서 느껴지는 찌릿한 감각에 나와 쿠르트가 신음소리를 내며 가볍게 몸을 풀었다.

그 감각은 마치 정좌 자세를 한시간 정도 한 후에 자리에서 일어나면 들 법한 느낌이 온 몸에서 느껴지는 듯 한 감각과 비슷했다. 수백번도 더 경험한 감각이었지만 도무지 적응이 되질 않았다.

유저들 사이에서 일명 전송후유증이라고 불리는 이 현상은 나인가르드 온라인이 서비스되기 시작할때부터 있었던 불만사항중 하나였지만 이것만큼은 제작사인 아스가르드 코퍼레이션에서도 고치질 못해 이젠 나인가르드 온라인에서 하나의 아이덴티티로 굳어버린지 오래였다.

"자, 그럼 찢어지자고. 넌 보상, 난 잡템 처분하러."
"알았어."

가볍게 스트레칭을 마친 쿠르트의 말에 나는 그렇게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전 [사람을 먹는 숲]에서 얻었던 소재들을 처분하기 위해 쿠르트는 흥얼거리는 콧노래와 함께 상점가로 향했고 그 모습을 보며 나는 후드를 눌러 쓰고는 퀘스트의 보상을 위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 *






현실의 시간으론 곧 해가 뜰 시간이었지만, 게임상에선 저녁 노을이 지고 있었다. 언덕 위에서 바라보는 페리안의 전경은 그야말로 절경이라고 밖에 할 수 없었다.

"정말 멋지단 말이지."

그렇게 중얼거리며 나는 조금 더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길을 걷기를 약 10분 정도. 내 눈앞에 거대한 요새처럼 보이는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제국군 사무소, 일반적인 중소규모의 도시라면 의뢰소가 따로 설치되어 있어 그곳에서 의뢰를 수주했지만 제국의 수도답게 이곳에선 제국군 사무소가 그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보상을 받기 위해 정문을 향해 다가가던 그때, 한 무리의 사람들이 사무실 건물 앞에 모여 웅성거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봐! 갑자기 문을 닫아버리면 우린 어쩌라고!?"
"사려고 벼르고 있던 아이템이 있었단 말이야! 빨리 보상 내놔!!"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트러블이 일어난 모양이었다.

"무슨 일이지?"
"아니 글쎄 갑자기 제국군에 비상대기령이 걸려 전원 소집령이 떨어졌다면서 업무를 중단한다지 뭔가?"

내 물음에 무리에 속해있던 남자들 중 하나가 황당하다는 듯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비상대기령?"

몸 성한 성인 남성이라면 누구나 떠올릴법한 끔찍한 기억이 떠오른 난 거의 반사적으로 얼굴을 찌푸렸다.

"우리도 잘 모르겠네, 아무리 비상대기령이라도 그렇지 아무런 공지도 없이 갑자기 이렇게 업무를 중단해버리니 사람들이 화를 내는게 당연하지 않겠나."
"난감하네..."

남자의 말에 그렇게 중얼거리며 쿠르트에게 연락하기 위해 메신저 화면을 띄우려던 그때였다.

[운영진에서 안내말씀 드리겠습니다. 현재 게임 시스템상의 심각한 버그가 발견되어 수정작업을 진행하기 위해 페리안 지역을 일시적으로 서버에서 격리조치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페리안 내부에 계신 유저들은 순차적으로 로그아웃을 실시할 예정이오니 차질없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머릿속에 직접 울려퍼지는 듯한 목소리가 말을 마침과 동시에 나를 비롯한 페리안 내의 모든 유저들의 주변에 밝게 빛나는 장벽이 씌워졌고 이어서 사람들의 모습이 사라져가기 시작했다.

"또냐..."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걸로 이번주에만 열번째, 몇달전부터 나인가르드 곳곳에서 발생하는 정체불명의 버그로 인한 강제 로그아웃이었다.

나인가르드 곳곳이라고는 했지만 실상은 항상 내가 가는 곳이라면 하루에 한두번은 일어나는 일이었다.

10분정도 지나면 격리조치는 끝나고 다시 게임에 접속할 수 있겠지만 몇달이라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운영진에서는 이렇다할 버그 수정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나인가르드가 끝을 알 수 없는 광활한 세계인 만큼 격리조치는 극소수의 유저들만이 경험해본 상황일 뿐, 대다수의 사람들에겐 자신과 전혀 상관 없는 사소한 문제일 뿐이었다.

물론 이 상황을 거의 매일같이 겪는 나를 제외하면 말이었다.

한숨을 쉬며 쿠르트에게 연락을 보내기 위해 커뮤니티 화면을 띄웠지만 아니나 다를까 장벽의 영향인지 먹통이었다.

"하아..."

한숨을 내쉬며 장벽에 몸을 기댄 나는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붉게 물든 하늘, 어쩐지 그 하늘의 색이 평소와는 조금 다르다고 느끼던 그때였다.

"어라...?"

무언가를 본 나는 얼빠진 목소리를 내었다.

광장의 한 가운데, 사람들이 사라지고 텅 비어 쓸쓸해보기까지 하던 그 광장의 한 가운데, 언제부터인가 누군가가 서 있었다.

뒷모습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길게 뻗은 검은 흑발로 봐서는 소녀임에 틀림없었다.

어째서 격리조치가 된 이 시점에 움직이는 NPC있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며 소녀를 바라보던 나는 소녀에게 말을 걸기 위해 입을 열었고 그 순간이었다.

마치 음소거를 한 듯 세계에서 소리가 사라졌다. 그리고 그 다음 나를 덮친건 눈부신 섬광이었다.

"우왁!?"

갑작스럽게 엄청난 섬광이 눈에 들어오면서 느껴지는 통증에 나는 손으로 빛을 가렸고 그 직후, 엄청난 굉음이 귀를 찌름과 동시에 흙먼지를 동반한 폭풍이 나를 덮쳤다.

하얀 빛으로 반짝이던 장벽이 적색으로 물들며 수많은 시스템 에러 메세지를 띄웠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에 혼란스러워하며 주변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지만 보이는 것이라고는 자욱하게 피어오른 흙먼지 뿐이었다.

그리고 몇초정도가 지났을까 엄청난 기세로 몰아치던 폭풍이 잦아들고 내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나는 숨을 삼켰다.

페리안이 불타고 있었다.

깔끔했던 거리는 폐허가 되어있었고 검은 연기가 사방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폭발이 일어났던 그 중심부는 운석이라도 떨어진게 아닐까 라고 생각 될 정도로 거대한 크레이터와 부서진 오브젝트들이 사라져가며 남기는 유리 조각처럼 보이는 빛의 파편들이 흩날리고 있었다.

운영진이 말하던 버그라는게 이걸 말하는 건가? 그렇게 생각했지만 곧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때까지 수많은 버그를 겪었지만 이런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러던 그때, 크레이터의 가운데, 조금전 보았던 그 소녀가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엄청난 폭발의 여파에도 불구하고 소녀는 폭발이 일어나기 전 그 자리에서 미동조차 하지 않은 체 초점없는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소녀는 도대체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며 소녀의 시선을 따라 하늘로 고개를 돌림과 동시에 나는 숨을 삼켰다.

천사. 그것 말고는 딱히 표현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푸른 빛으로 빛나는 날개를 펼치고, 신성함마저 느껴지는 순백의 갑주와 손에는 돌격용 기병창을 지닌 갑옷입은 천사들이 어둠이 내려앉는 하늘을 가득 매우고 있었다.

"어째서..."

그 순간 하늘에 있던 존재들을 바라보던 소녀가 입을 열었다. 뇌리를 파고드는 청아하고 아름다운 목소리는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순간적으로 넋을 잃는듯한 느낌마저 들게 할 정도였다.

"어째서... 너희는 그렇게까지 날 죽이려 하는 것이냐."
"뭐...?'

그리고 그 말에 난 무의식적으로 소녀의 말에 대답하고 말았다.

혼잣말을 하듯 내뱉은 말이었지만 들렸던 것이었을까? 소녀가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

그리고 소녀의 얼굴을 본 순간 나는 무의식적으로 숨을 삼켰다.

눈처럼 하얀 피부에.

칠흑같이 검은 흑발.

빨려들어갈것만 같은 황금색 눈동자가 신비로울 정도로 반찍이는, 아름답다로는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그런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소녀의 눈망울에서는 투명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눈물을 본 순간 내 머릿속엔 단 한가지 단어만이 떠올랐다.

왜?

도대체 무슨 이유로, 어째서 소녀는 저렇게 슬픈 얼굴로 울고 있는걸까?

무엇이 소녀를 저렇게 슬프게 만들었을까? 그렇게 생각함과 동시에 가슴 한편이 이상하리만치 아려왔다.

미친듯이 뛰는 심장의 고동을 느끼며 나는 소녀를 향해 천천히 손을 뻗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왠지 그렇게 해야할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나는 게임에서 로그아웃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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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9-02 00:16 | 조회 : 1,842 목록
작가의 말
Cellistia

죽어라 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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