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 의문의 소녀 (4)

"우왁!?"

등골을 훑고 지나가는 오싹한 감각에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숙였다.

퍼엉!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내 뒤에 있던 벽이 폭발음과 함께 폭발했다.

"좋은 배짱이구나. 혼자서 날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느냐? 얼마나 더 죽여야 더이상 날 쫒지 않을 생각인 것이냐?"

그렇게 말하며 소녀는 등 뒤로 스파크를 튀기는 수십개의 검은 에너지로 이루어진 구체를 만들어내었다.

"자, 잠깐만!? 무슨 이야기야? 난 적이 아니라고!!"
"거짓말 하지 마라! 더 이상 속지 않는다!"

당황한 목소리로 말하는 내 말에 그렇게 대답한 소녀가 등 뒤에 만들어내었던 검은 에너지의 구체를 나를 향해 마구잡이로 쏘아대었다.

"우왓!? 위험하잖아! 잠깐! 이야기좀! 하자고!!"
"쫑알쫑알 시끄럽구나! 그냥 죽어라!"

이어지는 공격을 내가 모두 피해버리자 소녀는 짜증섞인 목소리로 말하며 검게 빛나는 에너지가 휘몰아치는 격류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파츠츠츠츠츠-!!

위험하다. 뭔진 모르겠지만 저건 엄청나게 위험하다. 라고 내 본능이 미친듯이 경고를 울리고 있었다.

"우왓!? 자, 잠깐!! 뭘 할 생각이야!!"
"죽이고 죽이고 죽이고, 또 죽이고, 계속해서 죽여도, 너희는 포기라는것을 모르는구나. 어째서 그렇게나 날 죽이려 하는 것이더냐. 내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기에... 그렇게까지 날 죽이려 하는 것이냐...!!"

분노에 찬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는 것과 달리, 소녀는 페리안에서 보았던 그 표정과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적의를 담은 그 목소리가, 분노에 가득 찬 그 외침이, 나에겐 마치 아무도 도와주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벼랑끝에 몰린 체 도움을 손길을 구하는것만 같은 그런 슬픈 목소리처럼 들려왔다.

"너도... 이 세상도. 모두 사라져라!"

그와 동시에 소녀를 휘감은 에너지의 격류가 어두운 빛으로 빛나기 시작하던 그 순간이었다.

"이런이런... 젊은 사람들이라 그런지 혈기왕성하구만, 잠시 머리좀 식히는게 어떻겠는가?"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에너지의 격류가 흩어지듯 사라졌다.

"아니!?"

갑작스러운 상황에 소녀가 당혹스러운 듯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일단 잠깐 진정하게나, 저래 보여도 자네의 생명의 은인이니까 말일세."
"뭐라고...?"

사제의 말에 소녀가 혼란스러운 듯 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난 그저 너와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였다니깐..."

그런 소녀를 보며 나는 억울한 목소리로 투덜거림과 동시에 옷에 묻은 먼지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난 네놈들을 믿지 않는다! 당신! 내 몸에 무슨짓을 한것이냐!?"
"음? 그게 무슨 소린가?"

소녀의 말에 사제가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다는듯 대답했다.

"방금 내 공격을 무효화시키지 않았느냐!"
"아아? 그거 말인가? 자네의 힘에 내 힘을 약간 개입시켰지. 간단한 방법이라네."
"뭣...?!"

사제의 말에 소녀는 흠칫 놀라며 말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네 이건 나만 아는 방법이거든."
"그렇다면 더욱 수상한 녀석이로구나."

그렇게 말하며 소녀는 사제를 노려보며 말했다. 타겟팅이 바뀐건 좋은데 이대로 갔다간 더 큰일이 벌어질것만 같은 예감에 나는 둘 사이에 끼어들며 소리쳤다.

"진정하라구! 난 그저 너와 이야기를 하고 싶을 뿐이야! 당신도 그만해!"
"...."
"하아... 알겠네. 늙은이가 간만에 너무 흥분한 모양이야. 사과하도록 하겠네."

내 말에 사제는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소녀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그런 사제를 보며 소녀는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이고 있었지만 조금전 보다는 확실히 표정이 조금 풀어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 좋다. 나도 그만하도록 하지."

그렇게 말하며 소녀는 옆에 있던 작은 테이블에 앉아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럼, 나와 이야기가 하고 싶다고 했었지. 자, 해보거라,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들어보도록 하마."
"아하하하..."

그런 소녀의 말에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자리에 앉았고 소녀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려다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무엇이냐? 갑자기 왜 고개를 돌리는 것이냐. 나와 이야기를 하고싶다고 하지 않았느냐. 빨리 말하거라 난 참을성이 없으니까 말이다."

그런 내 반응에 소녀가 의아함과 경계가 동시에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했고 그런 소녀로부터 나는 최대한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너 말이야... 일단 옷부터 좀 입는게 좋지 않겠어?"
"그게 무슨 말이냐? 옷이라니? 지금 입고있는게 옷이지 않느냐?"

그런 내 말에 소녀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말했다.

"일반적인 사람은 그걸 보고 옷이라고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아까는 상황이 너무 급박한 나머지 눈치채지 못했지만 소녀는 지금, 페리안의 광장에서 처음 보았을때 걸치고 있던 넝마조각이라고밖에는 할 수 없는 다 해어진 로브를 제외한 아무것도 입고있지 않았었던 것이었다.

"귀찮은 녀석이구나, 맨몸이 보이지만 않으면 상관없지 않느냐."
"그건 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 말에 나는 어이가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옷이 필요한가? 마침 여성용 사제복이 남는게 있긴 한데 필요하다면 주겠네."

그런 나와 소녀의 대화를 듣던 사제가 그렇게 말하며 방 한쪽에 있던 상자에서 여성용 사제복을 꺼내어 소녀에게 건네주었다.

"이걸 입으면 되는 것이냐?"
"입기 싫으면 입지 않아도 된다네."

그렇게 말하며 사제복을 건넨 사제는 천천히 문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으왁!? 잠깐만!! 너 도대체 뭘 하는거야!?"

그리고 그 다음 순간, 자리에서 일어나던 나는 얼굴을 붉히며 소녀를 향해 소리쳤다. 그도 그럴것이 난데없이 소녀가 걸치고 있던 넝마조각... 아니 로브를 벗었기 때문이었다.

"음? 옷을 입으려면 벗어야하지 않느냐?"
"저, 적어도 다른사람들이 나가면 갈아입으라고!!"

그런 내 말에 소녀는 의아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말했고 그런 소녀를 향해 나는 소리치듯 대답하고는 밖으로 도망치듯 뛰쳐나왔다.

"괜찮은 겐가?"
"뭐가 말이지?"

얼굴을 붉힌체 심호흡을 하던 나를 향해 묻는 사제의 말에 나는 쉽게 진정이 되지 않는 가슴을 억지로 가라앉히며 대답했다.

"좋은 구경 할 기회를 놓쳤잖나."
"...."
"너무 그런눈으로 보진 말게나, 남자라면 누구나 가질법한 자연스러운 본능이니까 말일세."

황당한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사제를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바라보자 늙은 사제는 넉살좋게 허허하는 웃음 소리와 함께 손을 내저었다.

"다 입었다만 이제 된것인가?"

잠시후, 방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나는 심호흡을 하고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나는 말문이 막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처음 봤을때 부터 생각했던 것이었지만 소녀의 외모는 아름답다는 말로 채 표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소녀의 긴 흑발과 검은 수녀복이 소녀의 새하얀 피부와 대비되어 완벽하다라는 말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잘 어울리고 있었다.

거기에 황금빛 눈동자는 처음 봤을때부터 느낀 것이었지만 불가사의한 아름다움을 담고 있었다.

여신이 있다면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소녀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음? 뭘 그렇게 빤히 보는거냐? 뭔가 묻기라도 한 것이냐?"

넋놓고 자신을 바라보는 내 시선에 부담감을 느끼기라도 한 것일까 소녀가 약간 불쾌해 보이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 아아아아- 아니야 아무것도..."

그런 소녀의 말에 나는 당황한 목소리로 말끝을 흐렸다.

"자, 그럼 이제 네 용건을 들어보도록 하지. 그래, 나와 이야기가 하고싶다고 했느냐?"
"맞아."
"그래, 하고싶은 이야기가 무엇이냐? 빨리 하는게 좋을 것이다."

소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러자 소녀는 의자에 앉아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나는 너에 대해서 알고싶어."
"나에 대해서? 이상한 녀석이구나 그런걸 왜 알고싶은 것이냐?"

그런 내 질문에 소녀는 의아함과 경계심이 반쯤 섞인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하긴 누구라도 초면에 이런 이야기를 한다면 경계하는것이 당연했다.

"혹시 나 기억하고있어?"
"모른다."
"윽..."

너무 딱 잘라 말하니까 나름대로 상처받는데 이거...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말을 이어나갔다.

"기억이 날진 모르겠지만 어제 저녁즈음에 페리안에서 난 너를 봤어."
"어제 저녁? 페리안...? 아, 건물들이 잔뜩 세워져 있던 그곳이냐?"

거기까지 말하던 소녀가 나를 바라보더니 놀란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잠깐, 기억난다. 넌 분명히... 갑자기 눈앞에서 사라져버렸던 그 녀석이로구나."
"기억나?"
"그래, 기억나는군, 어쩐지 낮이 익다 했었다."

그렇게 말하는 소녀의 표정이 조금전보다는 약간이지만 부드러워진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소녀는 다시 경계심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서, 왜 다시 내 앞에 나타난 것이냐? 너도 그녀석들과 한패인 것이냐?"
"아, 아냐! 난 모른다고 그런 녀석들은!"

그렇게 말하는 소녀의 말에 나는 손사레를 치며 말했다. 그런 내 대답에 소녀는 여전히 반신반의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방금도 말했지만 난 너에 대해 알고 싶을 뿐이야."
"..."

꺼내선 안될 질문이었던 걸까... 소녀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말하고싶지 않다면 말하지 않아도 돼. 그냥 잊어버려."

그런 소녀의 반응에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소녀의 기분을 나쁘게 했다간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이었다.

"모른다..."
"뭐?"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소녀는 나를 향해 말했고 그런 소녀의 대답에 나는 얼빠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도 내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만 인간이 아니라는건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뿐, 나도 내가 무엇인지 모른다. 깨어났을땐 어딘지 모를 숲속이었고 그 뒤로부터 계속해서 알수없는 녀석들이 따라붙으며 날 공격해왔다."

그렇게 말하는 소녀의 목소리에는 슬픔과 분노가 느껴지고 있었다.

"알 수 없는 녀석들이라는건... 그 녀석들이지?."

소녀의 말에 그렇게 대답하며 나는 페리안의 광장에서 보았던 존재들을 떠올렸다.

푸른 빛으로 빛나는 날개를 펼치고, 신성함마저 느껴지는 순백의 갑주와 손에는 돌격용 기병창을 지닌 갑옷입은 천사들을.

"어째서야? 그 녀석들이 왜 너를 노리는건데?"
"나도 모른다."

이어지는 내 물음에 소녀는 침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

그리고 그런 소녀의 대답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어째서 소녀가 그렇게까지 슬픈 표정을 지어보이는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끝을 알수 없는 고독 속에서, 도움의 손길을 바래왔지만 돌아오는것은 자신을 향한 적의 였다.

상처입고, 도움을 바라며 손을 내밀지만 또다시 상처를 입고, 점점 상처투성이가 되어가는...

그렇게... 소녀는 서서히 무너져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돕고 싶었다.

10년전의 나와 너무나도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는 이 소녀를...

"말도 안되잖아 그건..."
"뭐?"

그런 내 말에 소녀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말도 안됀다고 그런건! 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했잖아! 그런데 어째서...!!"
"닥쳐라!"

그 다음 순간, 소녀의 격앙된 목소리와 함께 주변의 공기가 거칠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뒤이어 살기마저 느껴지는 목소리로 소녀가 소리치듯 말했다.

"날 동정하는 것이냐? 착각 하지 말거라! 난 동정따위 필요없다! 그저 날 가만 내버려 두기를 원할 뿐이란 말이다"

그렇게 말하며 소녀는 다시한번 조금전에 보았던 검은 에너지로 이루어진 구체들을 만들어내었다.

하지만, 내 눈엔 그런 소녀의 모습마저 가엾게 느껴졌다.

마치 겁에 질린 어린 동물이, 무의식적으로 주변으로 다가오는 모든것을 공격하려는 것 처럼, 소녀의 모습도 그것과 다르지 않아 보였다.

그런 소녀의 모습을 보며 미친듯이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나는 소녀를 향해 말했다.

"왜 그런 거짓말을 하는거야?"
"뭐...?"
"어째서 그런 거짓말을 하는거야? 넌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잖아, 어째서야?"

그렇게 말한 다음 순간, 굉음과 함께 뒤쪽에 있던 벽이 폭발했다.

튀어오른 돌 파편에 맞아 뺨에 작은 상처가 생겼지만 지금 중요한건 그게 아니었다.

"네가 뭘 안다고 떠드는것이냐? 거짓말이라고? 네가 뭔데 거짓말이라고 하는 것이냐!"

내 말에 소녀는 금방이라도 나를 공격할 듯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소리쳤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소녀로부터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소녀는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자신의 약함을 감추기 위해 일부러 강한 척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것을 반증하듯 소녀의 어께가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아니, 난 알아. 넌 거짓말을 하고 있어."
"닥쳐! 닥치란 말이다!!"

내 말에 그렇게 소리치며 소녀가 다시한번 에너지탄을 만들어 나를 향해 날렸다. 하지만 이번에도 에너지탄은 나를 맞히는 대신 내가 서있던 뒤쪽의 벽을 맟추며 사방으로 파편을 흩뿌렸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고, 이어서 소녀를 향해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다면 어째서 울고 있었던거야?"

그 순간, 소녀가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소녀의 주변에 떠 있던 에너지탄들도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 그건..."

그런 내 말에 소녀는 할 말을 찾지 못한 듯 한참을 머뭇거렸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이었다.

"우... 우으..."

소녀는 눈에서 눈물을 흘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소녀가 무슨 짓을 저질렀건, 설사 그것이 용서받을 수 없는 죄라고 하더라도.

적어도 나만큼은 그 고통을 덜어주고 싶다고 생각하며 나는 소녀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세상 모두가 너의 적이라고 해도. 나만큼은 네 편이 되어줄테니까. 그러니까 무서워하지 않아도 괜찮아."
"....!!"

내가 그렇게 말한 그 순간, 그런 내 말에 소녀는 여전히 눈물을 흘리며 놀란듯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직후였다.

"흑... 흐윽... 흐아아아아앙-!!"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던 것일까. 결국 소녀는 울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그런 소녀를, 세상에 거절당하고, 끝없는 고독에 점점 무너져가고 있던 소녀를, 나는 살며시 안아주었다.

"흐윽... 흐극... 흐아아아-!!"

그렇게 내 품에 안긴체 소녀는 한참을 오열했고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서럽게 울어대던 소녀가 조금씩이지만 울음을 그치기 시작했다.

"저, 정말이냐...? 히끅...!! 방금 한 그 말 약속할수 있겠느냐?"
"그래 물론이야."

얼마나 서럽게 울었는지 부어오른 얼굴로 눈물을 글썽거리며 묻는 소녀의 말에 나는 미소를 지어보이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리고 잠시 후, 소녀는 조금전보다 훨씬 부드러워진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아주 잠깐이었지만 가벼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러고보니 아직 자기소개도 안했네. 난 벨레드."

그런 소녀를 향해 나는 그렇게 말하며 손을 내밀었다.

"...."
"왜 그래?"

하지만 소녀는 악수를 하는 대신, 자신을 향해 내밀어진 손을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내 얼굴과 내 손을 번갈아가며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벨레드라고 했느냐? 이건 무슨 의미이냐?"
"뭐? 아아... 모르는거야? 이건 악수라고 하는거야."
"악수...?"

내 말에 소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나는 당신을 공격할 의사가 없습니다. 라는 의미에서 빈 손을 보여주는게 시초라고는 하는데...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어, 그냥 환영의 표시라고 생각하면 편할꺼야."
"으음... 그런것이냐, 이, 이렇게 말이냐?"

그렇게 말하며 소녀는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 나는 그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으음... 이게 악수인 것인가, 나쁜 기분은 아니구나. 그래, 벨레드라고 했었지? 내 소개를 하마, 내 이름은... 재앙이다."
"뭐?"

그 말에 나는 얼빠진 목소리를 내었다. 내가 잘못 들었나?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다시한번 소녀를 향해 물었다.

"방금 뭐라고...?"
"내 이름은 재앙이다."

그리고 그런 내 눈을 보며 소녀는 꿋꿋히 자신을 재앙이라 칭했다.

"...."
"그, 그런 눈으로 보지 말거라. 나라고 해서 이런 이름을 원해서 가진것이 아니니 말이다."
"그게 무슨 말이야?"

그렇게 말하는 소녀의 말에 의아해하며 묻자 소녀는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어갔다.

"나도 잘은 모른다. 하지만 희미한 기억속에서, 누군가가... 아니 사람들이 날 재앙이라고 부른것 만큼은 기억하고 있다."

그렇게 말하며 투정부리듯 말을 이어나갔다.

"나도 이 이름을 좋아서 쓰는게 아니다. 그래도... 내가 유일하게 기억하는것. 내 과거의 유일한 단서이기때문에 쓰고있는 것 뿐이다."
"그렇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자신의 과거에 대한 유일한 단서... 인가.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소녀를 향해 미소를 지어보이던 그때였다.

[여기 있었나?]
"!?"

어디선가 들려오는 남자의 목소리에 나는 허리춤에 찬 권총을 꺼내어 소리가 난 방향을 향해 겨누었다.

[과연... 그렇게 쉽게 죽지 않는다는 것이로군.]

그리고, 부서진 천장 너머로 보이는 밤하늘을 배경으로 누군가가 서 있었다.

긴 로브를 걸친, 사람의 형상을 했지만 얼굴 대신 불쾌한 공허만이 자리잡은 이형의 존제...

"네놈..."

그 모습을 본 소녀가 살의가 담긴 표정을 지었다.

[정말 끈질기군. 바퀴벌레보다 더 끈질겨.]
"언제나... 언제나 그렇게 사람을 내려다보며 깔보듯이 말하지 말란 말이다!"

남자의 말에 그렇게 대답하는 소녀의 외침과 함께 소녀는 나에게 쏘아냈던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무수히 많은 에너지탄을 만들어 남자를 향해 쏘아내었다.

파츠츠츠츠-!!

하지만 에너지탄들은 닿기도 전에 남자가 펼친 방어마법에 가로막혀 사방으로 스파크를 튀기며 허무하게 사라졌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운영진에서 안내말씀 드리겠습니다. 현재 게임 시스템상의 심각한 버그가 발견되어 수정작업을 진행하기 위해 페리안 지역을 일시적으로 서버에서 격리조치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페리안 내부에 계신 유저들은 순차적으로 로그아웃을 실시할 예정이오니 차질없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자, 잠깐 난 아직 할 일이..! 젠장! 이거 치우란 말이야!"

시스템 메세지와 함께 나타나 주변을 가로막은 프로텍트를 주먹으로 두들기며 소리쳤다.

[네녀석의 처리는 나중에 하도록 하지.]

그런 나를 향해 그렇게 말하며 그 존재는 로브 사이로 손을 내밀었고 그와 동시에 하늘을 수많은 빛으로 물들이며 수십가지의 마법진들이 허공을 수놓기 시작했다.

마법사 클래스의 스킬들도 어느정도 알고 있는 나였지만 불길한 공명음을 내며 하늘을 가득 매운 마법진들은 전혀 본적도 들은적도 없는 것이었다.

[제발 부탁이니 이번엔 죽어주길 바란다. 솔직히 말해서... 이젠 지겹거든.]

그렇게 말함과 동시에 각각의 마법진에서 파괴적인 빛의 격류가 소녀를 향해 쏘아졌다.

프로텍트에 보호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것만 같은 감각과 함께 눈부신 섬광이 번쩍였다.

"우왁!?"

눈앞을 가득 매운 눈부신 섬광에 반사적으로 나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그 직후, 어마어마한 굉음과 함께 대폭발이 일어났다.

하늘높이 버섯구름이 치솟고 엄청난 폭풍이 주변을 덮치며 모든것을 산산조각 내었다.

세상의 종말처럼 보이는 그 광경을 보며 내가 전율하던 그때였다.

"이런이런... 이렇게 될 꺼라고 예상은 했지만 말일세."
"....!?"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내 눈에 들어온것은 다름아닌 사제인지 뭔지 모를 늙은 노인의 모습이었다.

"당신!? 어떻게..."

그 모습을 본 나는 경악했다.

그도 그럴것이 방금 일어난 대폭발 속에서 별것 아닌것 같아 보이는 노인이 상처하나없이 멀쩡한 모습을 본다면 누구라도 이런 반응을 보일 수 밖에 없었다.

"자세한건 묻지 않아줬으면 좋겠군. 뭐 일단 이자는 내가 맡도록 하지."

그렇게 말하며 사제가 허공으로 손을 뻗었다.

"이건...!?"
"우왓!? 뭘 하는 것이냐!?"

그와 동시에 나와 소녀의 발 아래에 환한 빛의 고리가 생겨났다. 이동 마법진의 기적 버전인 흐레스벨그의 깃털. 사제 중에서도 신관 정도는 되어야 사용할 수 있는 최상급 기적이었다.

"당신 도대체 정체가 뭐야!?"
"때가 되면 다 알게 될것이라네, 적당한 때가 될 때 까지 이 소녀를 잘 부탁하도록 하지."

사제를 향해 경악하며 묻자 사제는 나를 향해 대답 대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그렇게 말했고...

"어쩌피 때가 되면 싫더라도 알게 될테니 말일세."

동시에 마법진이 환한 빛을 뿜으며 내 시야는 환한 빛에 잠겼다.






* * *






"잘 있었나?"

소년과 소녀가 사라진 낡은 신전이었던 폐허, 하늘에 떠 있던 남자는 눈앞의 늙은 사제를 향해 말했다.

"우리 구면이었던가? 난 그저 늙은 사제일 뿐이네만."
"네 계획은 어렴풋이 알고 있다. 정말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하나?"

사제의 말에 남자는 시치미 떼지 말라는듯 말했다.

"으흠...? 뭐라고 했나? 나이가 들었더니 귀가 영 안좋아서..."
"새 몸은 어떤가? 좀 적응이 되나? 그 몸을 유지하기 위해 몇이나 되는 인간을 죽였나?"

그런 남자의 말에 조금전까지 보이던 장난스러운 태도는 온데간데 없이 사제는 공중에 떠 있던 남자를 날카로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적어도 자네들보다는 덜 죽였다네. 그 이야기는 그만 하지. 나 또한 자네들과 다를 바 없는 괴물이니 말일세."

자조하듯 말하는 사제의 말에 남자가 말을 이어나갔다.

"아직도 생각을 바꾸지 않았나? 이건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이라는걸 어째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지?"
"우리 모두... 웃기지도 않는군. 그 우리 모두에 저쪽 세계의 사람들은 들어있지 않겠지. 내 생각은 바뀌지 않네. 이 미친 짓은 반드시 멈춰야만 하네."
"...."

그렇게 말하는 사제의 말에 남자는 침묵했다. 그리고 잠시 후.

"오늘은 이만 물러가도록 하겠다. 하지만 다음에 만난다면 넌 우리의 적이다."
"좋을대로 하게."

사제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남자의 몸이 녹아내리듯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흉흉한 색으로 물들었던 하늘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며 사제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갔어요?"

그리고 그 순간, 어느세 다가온 것인지 사제 뒤에 누군가가 서 있었다. 로브를 걸치고 있어 자세한 모습은 알 수 없었지만 굉장히 어리다는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좀 늦었구나."
"연락받자마자 바로 달려왔거든요? 그나저나 이건 무슨 난리래요?"

폐허가 되어버린 주변을 보며 소녀가 의아한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무래도 우리 생각보다 좀 빠르게 일이 진행될 모양이구나."
"흐흠... 그 말은..."
"그래, 그 아이가 나타났구나."
"벌써요? 생각보다 좀 빠르네요."

그 말에 소녀는 짧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고 그리고 그런 소녀를 향해 사제가 말했다.

"넌 그들을 따라가려무나, 난 이제 슬슬 움직여야 할듯 하니 말이다."
"네에~ 할아버지도 조심하시구요."
"내 걱정은 말고 그들을 따라가려무나, 이래보여도 아직 팔팔하니 말이다. 아차 그러고보니...!!"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돌린 사제의 눈에는 폐허가 된 도시의 모습밖에 보이지 않았다.

"원 녀석... 빨리도 가는구만."

그렇게 말하며 사제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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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9-30 00:03 | 조회 : 1,478 목록
작가의 말
Cellistia

이보시오! 의사양반! 의사양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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