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공 X 복수수 8화

찌걱찌걱- 태형의 귓가로는 민망할 법도 한, 살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축축하고 기분 나쁜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의 태형이 윤기를 지키기 위해 몸을 내주고 얻은 것들은 수치와 고통. 이 두 가지가 다였다. 쾌락? 행복? 그딴 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정신없이 정국의 아래에 깔린 채로 이리저리 정처없이 흔들릴 뿐이었다. 마치 사나운 맹수에게 거침없이 물어뜯기는 초식동물과도 같은 꼴이었다.

.

그렇게 배려 하나 없이, 거칠고 짐승 같던 성관계도 어느덧 시간이 흘러 끝이 났다. 정국의 것을 막무가내로 받아내게 된 뒤는 이미 붉게 부어올라, 마저 삼키지 못한 정국의 씨앗들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허벅지를 타고 흐르는 정액들이 불쾌했고 수치스러웠다. 그리고 관계 도중 몇 번의 손찌검으로 인해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되어있었다. 허탈한 듯, 허공에다 대고 피폐한 웃음을 흘려냈다. 입꼬리는 올라가 있었으나, 태형의 눈에선 맑은 눈물이 뺨을 타고 수도꼭지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정국을 사랑하는 만큼 가슴이 아팠다. 나는 오늘 여기서 너와 무엇을 한 거지, 차라리 꿈이라면 좋을 텐데-

정국은 그렇게 바닥에 널부러션 죽은 것마냥 별 큰 미동 하나 없이 숨만 힘겹게 고르고 있는 태형을 내려다보며 혀를 찼다. 자신이 원하던 걸 이뤄냈다. 그런데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오히려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세게 얻어맞은 듯, 정신이 멍했다. 태형은 항상 정국을 이상하게 만들었다. 괜스레 이상한 기분이 들자, 정국을 굴릴만큼 굴려놓고 태형을 차가운 바닥에 둔 채, 자신 혼자 씻으러 화장실로 들어갔다. 태형은 정국이 씻는 동안 아직 완전히 돌아오지 않은 정신을 애써 붙잡고 비틀대며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허리에서 느껴지는 척추가 끊어질 듯한 고통에 이미 울어 젖어있던 눈에선 다시 한 번 눈물이 절로 핑- 돌았다. 다시 바닥으로 주저앉게 되었다. 다리도 이미 풀려있었다. 지금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으며, 받아들이고 싶지도 않았다.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악몽이었다.

"... 아파"

그게 태형이 사랑 하나 없던 관계 이후 내뱉은 첫 마디였다.

.

따뜻한 물줄기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씻겨내려가는 거품을 말없이 바라보던 정국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것 하나는 정확했다. 정국은 지금 만족스럽지도, 행복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샤워를 마친 뒤, 근육질인 정국의 몸에 있던 물기들은 전부 수건으로 흡수되었다. 그런 몸과는 다르게, 아직 완전히 마르지 않아, 조금 젖은 머리를 한 정국이 화장실에서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나왔다. 나오자마자 정국의 눈에 들어온 것은 태형이었다. 아까와는 다른 자세를 한 채 바닥에 누워, 지친 듯 곤히 잠들어있었다. 바닥에는 흐릿하게 말라붙어있는, 검붉은 피가 보였다. 아까의 강제적인 정사 도중, 그것을 견뎌내지 못해, 여린 태형의 애널이 찢어지면서 묻은 혈흔이었다. 정국은 눈살을 찌푸리며 자신의 방바닥을 대충 물티슈로 닦아냈다. 그러다 태형을 바라보았다.

잔뜩 울어 반짝이며 젖어있는 긴 속눈썹과 가는 턱선, 그리고 오똑한 코가 보였다. 넌 지금 이 순간까지 아름다웠다. 태형의 얼굴을 감상하던 정국이 시선을 좀 더 내려 태형의 몸을 봤을 때, 태형의 몸에 남은 상처와 말라붙은 정액이 그닥, 보기 좋진 않았다. 이 이상한 기분이 싫어, 정국은 상처투성이인 가녀린 몸 위로 이불을 덮어, 태형의 몸을 가려냈다. 그렇게 죄책감과 자신이 만들어낸 불행도 이불과 함께 가려내며 감정을 회피했다.

정국은 자신 때문에 망가져버린 태형을 외면하고 태형을 바닥에 둔 채, 자신은 침대 위로 올라가 나름대로 지친 마음을 달래보려 눈을 감았다. 마음이 편하지 않은 정국은 자꾸만 쉽게 잠에 빠져들지 못하고 뒤척였다.

둘은 참 씁쓸한 모습이었다.

29
이번 화 신고 2018-09-01 21:39 | 조회 : 6,287 목록
작가의 말
Gelatin

여러분들 연재가 조금 늦어진 부분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ㅜㅜㅠ 이 못난 작가의 글을 항상 봐주시는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이번에도 많은 하트와 댓글 부탁드립니다~!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