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공 X 복수수 9화

시린 새벽이 지나, 아침이 찾아왔다. 방 안은 조용했고 여전히 씁쓸한 분위기가 맴돌았다. 그런 무거운 공기 속, 태형이 먼저 잠에서 깨어났다. 눈을 떠보니 낯선 곳, 태형의 방이 아닌 정국의 집이었다. 태형은 멍하니 자신의 몸 위에 덮여있는 이불과 주변을 번갈아보다, 정신을 차리고 뒤늦게 상황 파악에 들어갔다. 어제의 일들을 모두 선명하게 기억해낸 태형은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어, 몸을 일으키는 순간 어제의 일들이 꿈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듯, 허리와 엉덩이에선 강한 통증이 느껴졌다. 태형은 갑작스러운 통증이 느껴지자, 그 자리에서 인상을 쓴 채, 옅게 신음하다가도 참고, 아픈 몸을 일으켜 세워 바닥에 널부러져있는 자신의 속옷과 교복을 챙겨입었다.

그렇게 침대 위에 곤히 잠들어있는 정국을 보고는 아랫입술을 꾹 문 채, 정국의 집에서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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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형이 나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정국의 휴대폰에선 등교를 위해 항상 그래왔듯, 미리 맞춰놓은 알람이 울렸다. 듣기 싫은 알람소리가 연속적으로 계속해서 울려대자, 정국은 잘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뜨고, 미간을 찌푸린 채 휴대폰 알람을 껐다. 그렇게 반강제적인 아침을 맞이하게 된 정국은 태형이 떠나고 온기조차 남아있지 않은 바닥을 내려다봤다. 마치 어젯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태형의 흔적이라곤, 어젯밤 정국이 태형에게 덮어주었던 구깃한 이불이 다였다.

이유모를 씁쓸함이 정국에게도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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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형은 오랜만에 만져보는 듯한 자신의 휴대폰을 키자, 폰 화면으로는 수많은 제 어머니의 부재중 전화가 떠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태형은 학교가 아닌 자신의 집으로 향하였다. 지각? 화가 난 선생님? 그딴 건 지금 지칠대로 지친 태형에게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단지, 정국의 얼굴을 보고 싶지도, 학교에 가고 싶지도 않았으며, 더럽혀진 몸을 한 채 윤기를 똑바로 쳐다볼 수도 없을 것만 같았다. 지금은 그저 따스한 손길이 필요했다. 갓 태어난 조그만 강아지가 낑낑 울어대며 제 어미의 품을 찾아가듯, 태형도 자신의 어머니가 보고 싶었다. 제 어머니는 태형이 어렸을 때부터 항상 제가 아파할 때마다 말없이 어린 태형을 품에 안고 천천히 등을 쓸어주셨다. 태형의 어머니는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태형은 그런 어머니가 지금, 너무나도 보고 싶었다.

한 편, 정국은 1교시가 지나, 곧 이어 2교시가 찾아와도 계속해서 소식 하나 없이 학교를 오지 않는 태형에 마음이 초조해졌다. 태형은 항상 저의 괴롭힘에도 지각과 등교거부를 하지 않고, 학교를 잘 나왔던 아이였기에, 더욱 불안했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정국은 또 다시 태형을 걱정하는 제 자신이 싫어, 괜스레 자신의 마음을 부정하며 화가 났다. 태형이 학교를 나오지 않은 이유는 정국 자신이 제일 잘 알았기에 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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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곳보다도 익숙한 자신의 집 문을 열고 집 안에 들어가자, 어젯밤 말없이 집에 들어오지 않은 태형을 걱정해, 밤을 새우신 듯한 제 어머니가 식탁 위에 엎드려 잠들어 있었다. 태형은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보자 울컥- 시야가 눈물로 인해 흐릿해지며 목구멍이 턱턱 막혀왔다. 자꾸만 새어나오는 울음을 참고 제 어머니의 가녀린 몸 위로 담요를 덮어드리자, 어머니가 잠에서 깨어나 태형을 보자마자 불안했던 가슴을 쓸어내리며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인 태형을 걱정했다며 확 끌어안으셨다.

자꾸만 차오르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결국 눈물을 흘리며 태형이 제 어머니에게 안겼다. 어머니의 품에 어린아이처럼 얼굴을 묻었다. 따스했다. 조금씩 진정이 되었다. 그리웠었다.

"태형아, 정말, 엄마는 네가 무슨 일이 생긴 줄만 알았단다... "

" ... 흐윽, 엄, 마... "

" 태형아? 태형아 우니? "

" ... 엄마 "

"얘가 왜 이래,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응? "

어머니는 결국 울음을 터뜨린 제 아들 태형을 걱정스레 바라보며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기분에 태형을 진정시키려, 부드러운 손길로 등을 쓸어주었다. 그러고는 제 아픈 가슴을 최대한 태형의 앞에서 드러내지 않고, 다정한 목소리로 태형에게 물었다. 그러자 태형이 울음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너무 아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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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09-02 22:52 | 조회 : 6,077 목록
작가의 말
Gelatin

연재가 늦은 점 죄송합니다 ㅜㅜ 이번에도 즐겁게 감상하신 뒤 많은 하트와 댓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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