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사의 마왕님 12화

용사의 마왕님 12화

부제 : 날 가두는 울타리



호박색 눈동자를 가진 윈더과 친구가 된 후, 그와 자주 이야기를 나누었다. 차갑기만 할 거 같은 겉모습과는 다르게 따뜻한 친구였다.

윈더는 먼저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지만 윈더와 대화를 하다 보면 시간이 빠르게 지나간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에리샤, 윈더가 안 보이네요?"
"오늘 일손이 부족한 곳에서 데려갔어요."
"일손이 왜 부족한데요?"
"요 며칠 동안 성에 머물게 되실 손님 때문에 부족한 거 같아요."

손님? 아, 잊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도 갑자기 찾아온 손님 때문에 마왕이 바로 갔었던 일이 있었는데. 윈더와 얘기 나누다가 잊어버렸어.

"손님이 누군데요?"
"제가 손님의 이름을 말씀드리기 힘들어요. 궁금하시면 발렌시아 경이나 마왕님께 여쭤보셔야 할거 같아요."
"...귀한 손님인가? 이것만 대답해주세요. 귀한 손님, 맞아요?"

내 질문에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방을 나간다. 방에 혼자 남은 나는 침대에 누워 천장에 그려진 그림을 보며 멍을 때리고 있었다. 천장에 그려진 그림을 보며 혼잣말을 하며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윈더라도 있었으면 심심하진 않았을 텐데."
"윈더? 처음 듣는 이름인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와 침대에서 황급히 일어났다. 한쪽에 자리 잡은 책상에 기대 나를 못마땅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마왕?"
"고작 이틀 못 봤다고 금세 마왕으로 돌아왔군."
"그게 무슨.. 아, 세이 갑자기 무슨 일이야."

애칭을 바로 잡고 불렀지만, 여전히 못마땅하게 쳐다보고 있는 마왕이었다. 그러다가도 순간순간에 나오는 마왕의 싸늘한 표정에 저절로 어깨를 움칠렸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윈더는 남자 이름인데. 누구지?"
"...여기와서 처음으로 사귄 친구."
"친구라. 난 그대에겐 친구를 허락한 기억이 없는데."

마왕은 책상에 기대고 있던 두 팔을 들어 팔짱을 낀 채 침대에 앉아 있는 날 바라봤다. 아니 분명 마왕은 날 바라봤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내려다보고 있다고 느꼈다.

"그대는 내가 잠시나마 시선을 돌리면 내가 만들어둔 울타리를 벗어나. 흰 장미 촉수도, 창문에서 뛰어내리는 것도."

처음 만났던 마왕의 차갑고 싸늘한 눈동자가 날 비추고 있다. 마왕은 아리꼽게 쳐다보곤 침대에 걸쳐 앉아 있는 나에게 다가와 턱을 잡아 올린다. 잠깐의 고통에 눈썹을 찌푸렸다.

"제발 그대는 내 울타리 안에서 가만히 있어. 전부 그대를 보호하려고 하는 일이니. 네 말 이해했나?"

울타리 안에 있는 게 날 보호하는 일이라고? 순간 내가 보고 있던 마왕이 어머니로 보였다. 늘 날 자신의 울타리에 가두려는 어머니가 눈 앞에 나타났다.

[엄마 옆에만 있으면 돼. 엄마 시선에서 벗어나지마.]

[엄마 원망하지마. 전부 너를 위한 일이야.]

몇 시간전에 먹었던 레몬파이가 역류를 할것만 같아서 황급히 자신의 턱을 잡고 있던 마왕의 손을 치고 입을 가렸다.

"우윽...흐..읍.."
"에리샤! 당장 하이텔을 불러와라!"

분주하게 움직이는 소리와 떨리는 손으로 내 손을 잡으며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에리샤의 모습을 끝으로 주변이 어두워졌다.

밤마다 한 손엔 레드와인 들어있는 와인잔을 들고 학원에 갔다온 내 가발을 만지막거린다. 벽에 걸려진 원목 선반에 레드와인이 들어간 잔을 올려두고 따뜻하면서도 차가운 품으로 날 안는다.

[우리 민지는 엄마 말을 잘 들어서 이 엄마는 너무 행복해.]

어렸을 때였다. 어렸다고 그랬지만 중학교 2학년때 일이었다. 무슨 바람이 불렀는지 그날따라 '신민지' 가 싫었다. 가발을 벗고 아버지가 어머니 몰래 사줬던 옷을 입고 마트에 갔었는데 하필이면 집에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와 마주쳤다.

[어떻게 내 말을 거역할 수 가 있어? 모두 널 위한 일인데. 엄마를 이해 못하는 거니?!]

그날 처음으로 어머니에게 매를 맞았다. 종아리에는 붉은 피가 흘렀지만 어머니는 개의치 않고 날 때리셨다. 그날 밤, 어머니는 언제나처럼 술에 취해 방에 들어와 사과하셨다.

[민지야 미안해. 엄마가 잠시 실성했어. 우리 예쁜 딸이 엄마 시선에 벗어나서 놀라서 그랬나봐. 우리 딸은 엄마 이해하지?]

날 위한다고 그 좁은 올타리 속에 가두는 어머니가 역겨웠다. 마왕만은. 세이만은 날 가두지 않을거라 생각하고 있어서인지 자신의 울타리 안에 가만히 있으라는 마왕의 말이 나에겐 충격이었다.

당신을 보면 웃음이 나오게 되었는데. 이제 겨우 숨통이 트여 행복이라는 걸 느끼게 됬는데. 모든게 절망으로 바꼈다.

"헉..으.."
"괜찮으십니까?"
"하, 하이텔..?"

분명 침대에 앉아 있었던 나는 어느새 누워 있었다. 옆에는 마지막에 봤던 마왕이 아닌 주사기를 들고 있는 하이텔 경이 있었다. 지금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이 방에 유일하게 있는 하이텔 경을 바라봤다.

"제가 도착했을땐 이미 태일님께서 쓰러지셨습니다. 거의 사흘동안 쓰러져 계신거 같습니다. 몸은 괜찮습니까?"
"..저, 마왕 앞에서 쓰러졌어요.."
"네. 많이 걱정하셨습니다."

하이텔 경의 말에 울거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던 마왕의 마지막 모습이 생각났다.

"마왕. 지금 마왕 어디에 있어요?"
"아마 알현십에 계실.. 가시는 건 안됩니다. 불러오겠습니다."
"아뇨. 직접 만나야해요. 만나서 괜찮다고 말해야줘해."

하이텔 경은 그 몸으로 무리라며 날 말렸지만 나는 고집을 부려 문을 열고 마왕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에리샤와 아델조차도 어디로 갔는지 그들의 머리카락도 보이지 않았지만 딱히 신경쓰지 않았다. 나에겐 그들보다 마왕이 먼저였으니까. 다리가 풀린건지 바닥에 쓰러졌다.

문만 열면 마왕이 있는데 하필 이때 풀려 버린거야. 복도에는 아무도 없어 도움을 요청 할 수도 없는데.

- 끼익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열리고 처음 보는 남녀가 나왔다. 그 중 남자는 쓰러진 날 발견하고 황급히 날 일으켜준다. 힘이 풀려 있는 상태인지라 일으켜준 남자에게 기댔다.

"괜찮으십니까."
"..네.. 저, 감사합니다."
"무슨 일이지? ...태일?"

알현실에서 나온 마왕은 도와준 남자로부터 데리고 와선 내 어깨를 감싸며 위협적인 말투로 남자에게 말한다.

"손대지마."
"이분이 그 유명한 태일님이시군요. 다들 제 누이보다 아름답다길래 기대했는데 생각보다..."
"오라버니..! 무례한 행동은.."
"볼일 다 봤으면 나가."

날 도와줬던 남자 옆에 있던 여자는 쓸쓸한 표정으로 남자를 데리고 방을 나갔다. 마왕은 날 소파에 앉히고 내 앞에 무릎을 꿇는다.

"그대를 가두면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오히려 그대를 다치게 만들었어. 내가 잘못했다.."
"...안 가둔다고 약속 할 수 있어?"
"약속한다."

진심으로 가득한 눈동자를 가진 마왕을 보니 모든게 절망이라고 느꼈던 것들이 사라졌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에 흩날리는 마왕의 은빛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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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3-08 22:13 | 조회 : 2,340 목록
작가의 말
하얀 손바닥

12분 지나버렸네여.. 죄송합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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