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사의 마왕님 14화

용사의 마왕님 14화

부제 : 고백



"세이, 좋아해."
"......"

마왕은 아무 말 없이 자기 손으로 제 얼굴을 가리고 뒤돌아선다. 마왕의 그늘진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를 불안감이 생긴다.

"뭐라고 좀 말해봐."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뒤돌아 있던 마왕이 나를 사랑스럽게 쳐다본다. 조금 빨개진 목과 귀 그리고 마왕의 시선 때문에 내 가슴이 간지러워진다.

"그대를 기다리고 있는 인간들에게 다신 돌아가지 못할 거야. 내가 그대를 놔줄 자신이 없거든. 분명 후회할 거다."
"원래 인생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랬어."

나는 마왕의 입술에 짧게 입맞춤을 하고 그를 안았다. 마왕은 충분히 내 뜻을 이해했는지 내 정수리에 입맞춤한다. 평소와 다른 느낌에 얼굴이 붉어졌다.

마왕의 품 안에서 붉어진 얼굴을 거의 식히고 있을 때 뒤에서 누군가 풀을 밟으며 다가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이 표정을 보니 잘 안 됐나 보네."
"오라버니."

남녀 간의 대화 소리에 나도 모르게 흠칫 놀랐다. 설마 전부 다 들었나? 제발 마왕에게 고백한 거 안 들었길, 빌며 마왕의 품에서 벗어나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내 바람과는 다르게 전부 들었는지 상처받은 얼굴을 하며 웃고 있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언제나 마왕님은 절 보지 않으시네요."
"그대가 태일보다 매력이 있었다면 봤겠지."

마왕의 말에 나의 얼굴을 다시 붉어졌고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마왕은 여자가 상처받든 안 받든 상관하지 않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언제 돌아갈 생각이지? 약혼녀 후보라는 명목으론 더는 성에 있지 못 할 텐데."
"안 그래도 누이 안색도 안 좋고 하니 바로 돌아가겠습니다."

남자는 나와 마왕에게 인사를 하고 자신의 여동생과 함께 가버렸다. 이렇게 그녀를 보내도 되는 건가? 엄연히 약혼녀 후보였는데.

혹여나 나중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마왕의 소매를 살짝 잡아당겼다. 내가 무얼 걱정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는 듯이 웃으며 걱정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 손을 뻗었다.

"우리도 슬슬 돌아가지."

마왕과 손을 잡고 방으로 돌아가는 내내 복도에 있던 모든 이들이 자신이 하고 있던 일들을 멈추고 마주 잡고 있는 두 손을 바라보는 많은 시선이 느껴져 괜히 민망해졌다.

민망함에 손을 놓치고 싶었던 마음을 누르며 방에 도착했다. 방에 들어가려는 순간 점심때 만나자고 말하며 돌아가는 마왕의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완전히 마왕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있다가 마왕이 보이지 않자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왔다

"태일, 이제 왔네."
"윈더? 언제 왔어..?!"
"방금 전에. 그보다 아까 봤는데 마왕님이랑 손 잡았던데?"
"오늘부터 사겨. 윈더, 있지.. 나 처음 연애 해보는 건데.."

오랜만에 보는 윈더의 모습을 많이 낯설어 연애 조언을 해달라는 뒷말을 삼켰다. 연애한다는 내 말에 함께 좋아 해줄거라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표정이 굳어져 싸늘한 시선으로 날 응시하고 있었다.

"...윈더?"
"아, 미안... 마왕님이랑 연애, 한다고?"
"...어."
"잘됐다. 축하해."

윈더의 축하한다는 말에 가시가 담겨있다. 내가 무슨 말실수라도 했나? 딱히 없었는데. 윈더는 여전히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은 웃지 않는다.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윈더의 호박색 눈동자가 어느 순간부터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호박색 눈동자는 아무 말없이 날 응시하다가 입을 열었다.

"너는 너와 같은 인간들이랑 사고 싶지 않아?"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아니, 애초에 사람들에게 돌아갈 수 도 없는.."
"갈 수 있다면? 그럼 넌 돌아갈 수 있으면 갈거야?"
"돌아간다고?"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돌아간다? 내가 왜. 자기 황녀 구한다고 날 버린 사람들에게 돌아기 싫어. 무엇보다 그들보다 훨씬 좋은 이들이 여깄는데 내가 왜 돌아가.

"아니. 안 갈.."
"안돼. 안돼, 태일. 너는 돌아가야해."

윈더는 자신의 뜻대로 내가 돌아간다고 하지 않자 나의 어깨를 붙잡으며 강요하기 시작한다. 점점 세지는 윈더의 손 힘에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려던 순간이었다.

"뭐하는 거지? 그 손 당자 치워라."
"...싫다고 하면?"
"그럼 억지로 떼어낼 수 밖에."

방금 전까지 없었던 아델이 내 뒤에 서있었다. 아델이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은 짧은 시간에 윈더의 목을 향했다. 새하얀 윈더의 목은 날카로운 칼날에 찔렸는지 검은 피가 조금씩 흐른다.

"아델 그만! 그러다가 진짜 윈더 다쳐요! 윈더, 괜찮아?!"
"...응."

아델은 혀를 차며 검을 다시 집어넣고 한발자국 뒤로 물러난다. 감은 피를 흐르는 윈더의 목을 살피느라 정신 없던 나에게 윈더가 아델 들릴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잘 생각해봐. 정말 이 곳에 남을건지. 아님 인간들이 사는 곳으로 돌아갈지."
"...다시 말하는 거지만, 나는.."
"마족은 태생부터 인간을 죽이고 싶었는 생물들이야. 그런 자들 사이에 있을 거라고? 태일, 조금만 더 고민해봐."

내 귀에 속삭이는 윈더가 눈에 거슬렸는지 아델은 다시 한번 더 검을 꺼내들었다. 윈더는 웃으며 날카로운 칼을 피해 방을 나갔다.

"저 놈이 무슨 말을 했는지 알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으음, 별 얘기 아닌데.."
"표정 안 좋은거 잘 모르시죠?"
"많, 많이 안 좋은가? 하하.. 난 모르겠네..~"

표정 문제가 아니야. 왜 윈더가 그런 말을 했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해. 아델이 옆에 없을때, 그때 이야기를 나눠야겠어.

하지만 아델은 내가 잠들때까지 내 곁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했다. 마계의 푸른 달이 하늘에 떠있는 깊은 밤.

넓은 침대에서 자고 있는 태일의 모습을 본 아델은 태일이 깨지 않도록 조심히 나와 마왕의 침실로 향했다.

"주군, 보고 드립니다."
"태일을 지키라고 있는 녀석이 보고를 하러 왔다고?"
"주군께서 아셔야할 일이라 급하게 왔습니다."
"별거 아니면.. 하, 말해."
"아까 윈더라는 자가 태일님께 인간계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봤습니다."

손에 들고 있던 와인잔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밝은 회색이었던 카펫 위에 붉은 와인으로 물들어가고 있다.

".....그 놈, 눈동자가 엘프라고 그랬지?"
"네."
"그 놈에 대해서 더 찾아봐.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다."
"알았습니다."

아델이 방에서 나가자 침실에 혼자 남은 마왕은 깨진 와인잔의 작은 조각을 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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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3-20 23:13 | 조회 : 2,220 목록
작가의 말
하얀 손바닥

거의 2주만에 돌아왔네여.. 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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