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다 선택해 5화

둘 다 선택해 5화


부제 : 수학여행 그 후의 이야기




어느덧 4월, 박씨 형제네에서 지낸 지 벌써 한 달 조금 안되는 시간이 흘렀다. 나름 한 달이 안되는 시간 동안 그들과 지내며 조금씩 나의 안 좋았던 습관이 고쳐갔다.

가장 바뀐 나의 습관은 항상 거르던 아침을 먹기 시작했다.

"뭐야, 오늘은 박도빈이야?"
"그래서 불만 있어?"
"아니, 딱히. 아, 나는 케찹 싫어."
"그냥 주는 대로 먹어."
"응, 계란말이에 뿌리지 마."

자연스레 식탁에 앉아 아침을 준비하는 박도빈을 보며 정신을 차리고 있을 때 누군가 뒤에서 나를 안곤 내 품 안으로 파고든다.

"언제 일어났어."
"방금이요, 박도빈이 괴롭히진 않았어요?"
"괴롭혔어, 계란말이에 케찹 뿌린대. 너무하지?"
"네, 너무하다. 박도빈이 나빴네."
"프라이팬으로 맞기 싫으면 그 입 닥쳐라."

내 목에 파고드는 박이도의 파마머리를 쓰다듬으며 아침을 기다린다. 쓰다듬기 좋은 박이도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으면 어느새 식탁엔 아침이 차려져 있다.

"꽁냥꽁냥 거리지 말고 밥이나 먹지?"
"형이랑 내가 꽁냥꽁냥하니까 부러워?"
"하? 내가? 웃기지 마."
"싸우지마. 아, 박도빈. 케찹 뿌리지 말라고 했잖아."
"박이도랑 꽁냥꽁냥거린 벌이야."

안 부럽다며, 방금 부럽지 않다며? 근데 왜 입술이 나온 건데.

"안 부럽다며?"
"안 부러워."
"근데 왜 심통 부리는 건데."
"심통? 내가? 난 심통 그딴 거 한 줄 모르는데."

박도빈은 자리에서 일어나 박이도의 뒤통수를 세게 치며 자신의 방으로 올라갔다. 맞은 머리를 부여잡는 박이도의 등을 두드려주며 이미 박도빈이 올라간 빈 계단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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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의 수련회, 2학년의 수학여행, 3학년의 졸업여행과 더불어 체육대회가 있는 4월이 시작하였기 때문에 학교는 간만에 소란스러웠다. 아니 평소보다 더욱더 시끄러워졌다는 말이 맞는 건가?
"강수한, 강수한! 대박 사건."
"뭔데."
"1학년 부자 알파 쌍둥이 덕분에 우리 그리스로 수학여행 간대."
"...뭐?"
"1학년은 제주도 5성급 호텔이고 3학년은 유럽 졸업여행! 와, 저번 주에 제주도로 수학여행 간다는 말에 우울했는데."

친구의 말을 듣고 며칠 전 저녁을 먹으면서 박씨 형제와 잠깐 이야기를 나눈 기억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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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담당이었던 이도가 차려준 저녁을 먹다가 이도의 한 질문으로 시작되었다.

"형은 수학여행 어디로 간대요?"
"제주도."
"제주도? 미친, 언제적 수학여행 장소냐? 요즘 중학생들도 제주도로 수학여행 안 간다."

그렇게 말이다, 수학여행이 제주도라니. 젓가락으로 애꿎은 샐러드만 뒤져거렸다. 재미없을 수학여행 생각에 밥 먹는 걸 멈추자 박이도는 문어 소시지 하나를 집어 내 입에 넣어준다.

"형은 가고 싶은 나라 있어요?"
"...음, 그리스?"
"그리스라.. 좋죠, 그리스. 다른 곳은요?"
"글쎄, 해외는 나랑 연이 없어서 다른 나라는 생각 안 나."
"그래요? 한번 생각해봐요. 나중에 놀러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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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는 생각보다 따분했다. 신화가 가득한 나라라서 그런가 우리가 간 곳은 전부 박물관이나 신전, 이런 곳이었다. 딱 학생들이 지겨워 하는 곳들.

"...와 미친, 우리 숙소냐?"
"와..와..미쳤어..!!"
"살다 살다 이런 호텔에 자보네.."

모두가 생각보다 지겨운 일정에 피곤함이 묻은 얼굴로 숙소에 도착했을 땐 입이 벌린 채로 높고 높은 호텔을 올려다봤다.

"여보세요, 응. 지금 호텔이야."
( "웬만하면 형 혼자 쓰게 하려고 선생님들께 부탁했는데." )
"아, 그래서 나 혼자구나."
( "형, 외로워요? 외로우면 친구분이랑.." )
"딱히, 혼자라 더 편해."

긴 비행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침대에 누워서 박이도와 통화를 나눴다. 비록 통화요금을 많이 나올지 몰라도 오랜 통화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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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로 수학여행을 2박 3일로 다녀온 그 날, 모두가 부모님의 마중으로 집으로 돌아가고 홀로 공항에 남았다. 외로운 나에게 찾아온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박이도와 박도빈이었다.

"왔어?"
"많이 기다렸어요?"
"별로. 박도빈, 네가 들어주려고?"
"어, 긴 비행으로 피곤할 거 아니야."

딱히 크지도 작지도 않은 검은 캐리어를 끌고 앞서가는 박이도의 뒤를 따라 미리 대기하고 있던 차에 올라탔다. 내 캐리어는 먼저 도착한 박이도가 트렁크에 실었다.

"그리스는 가보니 어때?"
"으음, 그냥 그랬어."
"그럼 밥은요? 입맛엔 맞았어요?"
"그렇게 싫어하던 케찹이 떠오를 정도였으니 많이 별로였다는 뜻이겠지."
"좋아, 그럼 오늘 저녁엔 특별히 케찹 듬뿍 뿌려주지."
"으, 그건 싫은데."

비록 이틀만이지만 편하게 이야기했다. 딱히 재미있던 기억은 없었지만, 뭐가 얘길할게 많았는지, 집에 도착하고도 무려 저녁까지 말이 끊기지 않았다.

"둘 다 잘자."
"형."
"강수한."

동시에 날 부르는 박이도와 박도빈. 둘은 동시에 말한 것도 마음에 안 들었는지 서로 노려보다가 박도빈이 먼저 시선을 가두고 내 어깨를 두른다.

"이틀만인데, 같이 자자"
"형, 저딴 녀석은 무시하고 저랑 자요."
"강수한, 박이도 말 무시해라."
"내가 뭔데, 형한테 이래라 저래라야."
"너야말로 뭔데"

나는 잠시 고민했다. 그냥 저 둘을 무시하고 방에 들어가 잠을 잘 것인지, 아니면 둘 중 한 명을 선택해야 할 것인지.

"선택해, 쟤야 나야."
"형 솔직히 이 자식보단 제가 더 괜찮지 않아요?"

그래, 둘 다 선택하지 않아서 서로 치고받거나 둘 중 한 명만 선택해서 다른 한 명이 시무룩한 걸 보는 것보다 이게 낫지.

"다같이 자지, 뭐."
"....뭐?"
"형, 잠시만요. 다시 생각.."
"저번에 너 침대 되게 넓다며. 거기서 자면 되겠네."
"이러려고 침대 바꾼 거 아닌데요?"
"그럼 그냥 따로 자던가. 어떡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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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지난 새벽 2시, 성인 남자 3명이 누워도 조금 더 남는 침대에 남학생 셋이 누워있다. 가운데에서 잠자고 있는 수한을 제외하고 이도와 도빈은 서로 노려보고 있다.

"형한테서 떨어져라. 너 때문에 형이 제대로 못 자잖아."
"허어, 너 말 잘했다. 네가 가까이 있어. 알고 있냐?"
"더 오지 말라고. 왜 눈치 없게 형이랑 나 사이에 끼어들어서."
"눈치 없는 건 내가 아니라 너야."
"으, 시끄..러워.."

수한은 둘의 싸우는 소리에 시끄러운지 이불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이불 속으로 들어간 수한을 안으며 이도는 도빈에게 싸늘하게 말을 건다.

"네가 시끄럽게 구니까 형이.."
"너나 닥치세요."
"..이게 진짜, 내 방에서 쫒겨나고 싶나.."
"내가 강수한이랑 너만 남기고 순순히 쫒겨날 거 같냐?"

으르렁거리며 싸우지만, 결국엔 수한이 깰까, 소곤거리며 싸우는 이도와 도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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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7-28 16:27 | 조회 : 3,445 목록
작가의 말
하얀 손바닥

요즘 비가 오다가 안 오다가.. 습하고 덥고.. 기분이 추욱 쳐진다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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