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도와줘."

이 말을 김태겸만 들어도 상관 없었는데, 걔네가 가까이에 있어서 아마 다 들은 것 같다.
나는 김태겸에게 기대어서 몸을 더 떨었다.


"설아! 왜 그래... 우리 친구잖아."
"......"
"설이랑 싸워서 화해하려는데 안 만나줘서, 얘들아 좀 자리 비켜줄래?"


전지훈 말을 듣고 온 것 같은 친구들이 별 되도 않는 말을 했다.
진짜 웃기지도 않는다.
나는 김태겸의 옷깃을 슬쩍 잡았다.
김태겸이 움찔하는게 느껴졌다.


"설아, 니 친구야?"

하여운이 갑자기 말을했다.

음... 뭐라고 말을 해야할까? 일단 거의 다 넘어온 이도하가 여기 있으니까, 도박을 해봐도 좋지 않으려나... 안도와주면 거시기라도 차고 도망가지 뭐.


".... 어, 친구야."
"그럼 잘 얘기해봐. 설아"

절대 친구로 안보이지만, 나는 친구라고 거짓말을 하고 앞으로 걸어갔다. 아니 걸어가려했다. 나를 끌고 가는 김태겸의 손만 아니었다면...
아니 근데 애네는 왜 맨날 손목을 잡고 끌고다닌데.... 끈다고 손쉽게 끌려가는것도 자존심 상하네..


"야! 김태겸"

뒤에서 이도하가 소리치며 쫓아오고 있었고, 나머지 애들도 따라오고 있었다.
전지훈의 친구인지, 쫄따구인지 모르겠는 2명은 따라오지는 않는 듯 했다.

"야.. 아퍼.."

김태겸이 나의 손목을 열심히 끌고 가다가, 내가 하는 말에 손목을 풀더니 멈췄다.
그러고는 휙 뒤돌더니 나를 봤다.

.....뭐!....왜?!.....왜 쨰려보냐고..
김태겸과 나를 뒤쫓안온 나머지 애들도 계속 나만 쳐다보고 있었다.

"야, 윤 설"

김태겸이 말을 꺼냈다.

"...왜?"
"너 언제부턴데..?"
"...."

뭔소리야....?

"하.. 저 새끼들이랑 언제부터 아는 사이였는데?"
".....모르겠어, 얼마 안됐어."

사실 진짜 모르긴한데... 뭐 성격 삐뚤어진게 고1때부터니까 아마 그때쯤이겠지..뭐..
모든 아이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몰리는 느낌이 들자 하여운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얘들아 우리 길거리에서 이러지말고, 뭐라도 먹으러가서 애기하는건 어때?"
"그래! 그러자."

성준이 하여운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그렇게 나는 어울리지도 않은 조합으로 햄버거가게에 들어가게 되었다.
주문을 하기 전에 나는 화장실을 먼저 들렸다.
화장실 세면대에서 거울을 보고 있는데, 하여운이 들어왔다.


"윤 설.. 너 원래 되게 멍청하지 않았니? 걸려달라는데로 다 걸려주는 바보였잖아."
"근데? 하고싶은 말이 뭔데?"
"내가 요즘 너무 착하게 군 것 같아서.."

...???얘 머리 안 좋나? 내가 녹음이라도 하면 어쩌려구 막 뱉니...
뭐.. 그런 구식적인 방법을 쓰지는 않지만서도..
근데....뭐?

"착하게? 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설아.. 제발.. 평소처럼 해주라. 그래야지 내가 해야할 일이 줄어드니까."
"...."

진짜 또라이새끼..

갑자기 하여운이 울먹이기 시작하더니 자신의 교복 와이셔츠 단추를 2개 정도 풀고 와이셔츠를 헤집기 시작했다.

".....너 뭐하는ㄱ.."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하여운이 그 꼴로 화장실을 뛰쳐나갔다.
뭔가 이상해서 따라 나갔는데, 하여운이 자리에 가서 울먹이고 있었다.

"설아...미안... 난 그냥 네가 걱정이 되서 그런건데.. 그렇게 내가 손대는게 너가 기분이 나쁜지 몰랐어."

하여운의 저 말에 다들 날 바라보았다.
그래도 김태겸이 원래 개지랄해야 하는 타이밍인데.. 오늘 일이 잘 먹혔나보다.

음... 그래서 어쩔까? 뛰쳐나가버려? 근데 그랬다간 쟤가 말도 안돼는 말을 하면 이때동안 나의 고생이 헛수고가 되버리니까...
그래. 너가 울면 나도 울어야지, 뭐. 그렇게 나오면 나도 똫같이 해야지.

"...미안, 놀래서 그랬는데.. 그럴려고 했던게 아니라.."
"..하.."

눈에 눈물방울을 달며 저 말을 하니까, 하여운이 기가차다는 듯이 웃었다.
나는 눈물 한 방울을 떨어트렸다.

"...나 속이 안좋아서 갈게. 주문 안해서 다행이다."
"......"

나는 나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얹었다.

"여운아, 나 이제 백승호한테 관심없어. 그러니까 더 이상 걱정 안해도 돼."
"........뭐?"

조용히 있던, 백승호가 갑자기 말을 했다.

"이제 너 신경 안쓴다고, 그니까 여운이도 괴롭힐 생각없다고. 그니까 미안했어."

애초에 안 괴롭혔지만..
아! 까먹을 뻔..

"김태겸."
"...?"

김태겸이 나를 빤히 봤다.

"고마웠어. 도와줘서, 데리고 나와줘서."

나는 김태겸을 보면서 미소지었다.

"그럼, 가볼게."
"...야!"

김태겸이 불렀지만, 나는 그냥 밖을 나왔다.

"여운아, 나 오늘 못 놀겠어. 너네들끼리 놀고 내일 보자. 미안해."

---------------

"집에 어떻게 가지....?

생각해보니까 집 갈때마다 차에서 잤구나... 어쩐지 길이 새롭더라..
기사님께 다시 전화해봐야 하나...

"...윤 설!"
"???? 너 오늘 놀러가는거 아니었어?"
"...어 너랑 중국어 말하기 짝인데, 너 중국어 완전 못하잖아."

저게 갑자기 디스를 하네...

"그렇긴한데...그래서 뭐?"
"번호 줘. 주말에 만나서 연습하자. 도와줄테니까."
"굳이 주말에 만나야...하나?"

하지만 이도하는 내민 휴대폰을 번호를 찍어줄때까지 치울 생각이 없어보였다.

"....하 알았어. 네가 찍어"

이도하에게 받은 번호로 전화를 걸고나서야 끈질긴 손이 치워졌다.

"너 어디가는데?"
"...집 갈 건데.... 가기전에 뭐 좀 사려고."
"같이 가."
"너.. 여운이는?"
"하.. 나도 뭘 좀 확인하고 싶어서 그러니까, 같이 가자. 너 아팠다며."

내가? 아파? 편두통이 있긴 한데... 아..하긴 얘는.

"그래 같이 가. 그니깐 그건 그만 얘기하자."

우리가 가게 앞에서 얘기하던 도중에 하여운과 나머지 애들이 나왔다.
쟤네는 뭐이리 빨리 다 먹은거야..?
오늘은 더 이상 하여운이랑은 같이 못있겠다. 나는 괜히 옆에 있는 이도하의 팔을 슬쩍 잡으면서 비틀거렸다.


"...야, 윤 설."
"괜찮아, 약간 빈혈기야. 가자."

나는 나를 쳐다보는 시선들 쪽으로 나의 시선을 옮겼다.
그리곤 하여운과 눈을 마주치며 웃어줬다. 표정 가관이네.
이제 하여운도 알지 않을까? 이도하가 누굴 더 신경쓰는지 정도는.

난 오늘부터 이수한으로써의 일기를 쓰기로 했다. 그래서 새 공책을 사기위해 이도하랑 책방으로 가서, 공책을 고르고 있었다.

"왠 공책?
"....아... 그냥 기록해두면 좋으니까."
"..너 설마... 아니야."

쟨 또 무슨 상상을 하는거야....

"이게 괜찮아? 아님 이게 괜찮아?"

나는 2개의 공책을 들고 이도하에게 물어봤다.

"..아, 난 이게 괜찮은 것 같은데?"
"음... 그렇구나."

나는 2개를 다 골랐다. 가게를 나온 후에 나는 공책 한개를 이도하에게 내밀었다.

"자."
"..뭐야? 내꺼야?"
"비밀 지켜줘서 고맙고, 중국어 말하기도 같이 잘해보자는 의미기도 하고... 그리고... 친구니까.."
"....."
"혹시 싫으면, 꼭 가질 필요 없으니까.."
"아니!.. 고마워."

나는 부끄러운 듯, 머리를 긁적였다.
왜 근데 너가 더 부끄러워하니..?

"내일 보자. 고마워 도하야!"

나는 웃으면서 이름을 불렀다.
끝났지 뭐, 이정도면 그냥 넘어왔다.
박현오도 내가 이름 불러주면서 친해졌는데..아 그 개새끼 생각하니까 우울해진다.

"...윤 설.....!!"
".....응?"
"집 어떻게 갈거야?"

음... 시발 나도 몰라., 길을 몰라...라고 말할 순 없잖아...

"....일단 버스?"
"같이 가."
"....?"
"공책도 받았으니까 데려다줄게."

이도하가 처음으로 날 보면서 웃었다. 와 생긴거 땜에 순간 내가 넘어갈 뻔 했네..
이도하 다정서브공이라더니 진짜 자기사람한텐 다정하구나.
진짜 설이가 있었을 때, 얘기라도 한 번 해봤으면, 좀 좋냐고.. 다정한 나쁜놈아.


---------

"우리 저기서 10번 버스 타야되니까, 얼른 와."
"넌 어떻게 알아?"
"나 너네 집 근처에서 사니까. 넌 백승호 아니면 관심없었겠지만, 난 지나다니면서 너 본적 있으니까."

...하긴 쟤네들 다 돈 있는 집안이었지. 하여운만 빼고..
항상 전통적인 클리셰물이지. 재벌공들이 가난수를 구해주는 그런 할리킹소설물? 이것도 그런 내용이긴 하니까.

나와 이도하는 버스정류장에서도 버스에서도 내려서도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뭔가 어색해서 안하는 느낌과는 달랐다.
우리 집 앞까지 날 데려다줬다. 그러곤 자신의 집으로 걸어갔다.

"도하야, 잘가."
"..응"

빙의 되고나서 엄청 많은 일이 있었는데...왜 이틀밖에 안 지난거지... 너무 피곤하다.
생각보다 계획대로 잘 돼서 다행이야.



-------------

집에 들어갔는데, 가정부 아줌마도 기사님도 아무도 없었다... 뭐지?
...1층 서재에 왜 불이...
난 혹시몰라서 노크를 하고 문을 열었다.

(똑-똑)

"왜 그러냐."

너무나도 쌀쌀한 말투다. 윤 설을 싫어하는건가..
역시 어른이라서 그런지 학교 아이들보다 훨씬 큰 위압감이다.
그래도.... 해보자. 할 수있다!!
나는 꼰대부장도 내편으로 만든 사회생활 만렙 이수한이다... 적어도 이 집의 제일 짱인 아버지는 내 편을 만들어야지..

"아빠..밥 같이 드실래요?"

한국인은 밥심이지.. 밥으로 꼬시자.. 소설 속이라도 밥을 마다하진 않겠지.
"..뭐?"
"제가 준비할게요. 오늘 아주머니도 안 계신 것 같은데, 제가 취미로 요리 공부 하고 있거든요."
"갑자기 무슨 태도냐..일주일 전만해도 출장가는 나한테 카드 안 내놓으면 깽판친다고 협박 아닌 협박 하지 않았냐?"
".....죄송해요.. 그냥 배고프실까봐."

난 일부러 울먹이는 소리를 내며 아버지를 쳐다봤다. 최대한 불쌍하고 초식동물 처럼...
일부러 아버지라고도 안부르고 아빠라고 불렀는데... 아빠.. 불쌍한 내가 안보여??
아버지는 되게 당황한 것 같다. 하긴 윤 설이 어렸을 때부터 많은 비교를 당해서 항상 소심했었지.. 아버지한테 제대로 된 애교도 부려보지도 못하고, 어리광도 안 부려봤을테니까., 윤 설은 가족이 있는데도 가족이 없는 나보다 외로웠을 것 같았다.

"제가 버릇 없게 굴어서 죄송했어요. . 그러니까 같이 밥 먹어주시면 안돼요?"
"....어차피 저녁 안먹었으니까 같이 먹지."
"네! 다 돼면 부를게요."

나는 이수한일 때 배운 비즈니스 웃음을 아버지에게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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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1-05-20 21:52 | 조회 : 2,112 목록
작가의 말
gazimayo

우리도하 감겼다. 큰일났다. 설이한테 감겼다. 맞춤법 지적 감사히 받아요. 대신에 둥글둥글 말투 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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