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그 사람 누구야?






정우연은 강시환을 너무 만만하게 봤다. 세계의 흐름? 줄거리의 뼈대? 그런 건 당장 중요한 것이 아니였다. 지금 당장 가장 중요한 것은, 강시환의 공 키워드였다.

‘#집착광공’

굳이 따지자면 집착이라는 말이 붙었을 때부터 의심해야 했다. 강시환은 자신의 것을 쉬이 내어줄만한 인망 있는 사람이 아니였다. 특히 그것이 쓸모가 있다면, 결코 도망가게 두지 않을 것이리라.

“저, 저기, 이사님…….”

손가락으로 책상을 툭툭 치는 강시환의 낯이 어두웠다. 그런 상사의 앞에서 일개 직원이 무얼 할 수 있을까. 품에 서류를 안은 채 울상을 하고 상사를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왜일까.”

“예?”

“왜 갑자기 신여운이 사직서를 던져놓고는 퇴사하겠다는둥, 헛소리를 하는걸까.”

그야 댁의 지랄맞은 성격 때문이겠지! 직원은 속으로 울부짖었다.

어제 있었던 소동은 금새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애초에 조용한 직장에서 그리 떠들썩하게 일을 쳤으니 그럴만도 했다. 이 때, 직원들의 반응은 둘로 나뉘었다. 신 비서님이 존경스럽다, 또는 신 비서님이 걱정된다. 그건 신 비서만 눈치채지 못한 걱정이였다.

“마, 많이 힘드셨던 게 아닐까요?”

“뭐가?”

직원은 입을 벙긋거렸다. 뭐가라니. 순간 차라리 나도 사직서 던지고 나가버릴까, 를 진지하게 고민했다. 눈에서 땀이 날 것 같다. 신 비서님, 이런 놈 곁에서 대체 어떻게 버티셨습니까.

“어……. 막상 비서일을 해보니 일이 너무 많으셨다거나, 체력이 심하게 안 따라왔다거나 아닐까요?”

그러자 강시환은 정말로 의문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평소의 그라면 분명 상대의 정신을 서서히 무너뜨려서라도 포섭해 왔을 텐데, 그런 강시환이 이토록 공을 들이는 이유는 뭘까. 직원은 그게 더 의문스러웠다.

“……확실히 신여운이 마르긴 했어.”

“…예?”

“체력이 안 따라올 만도 하지. 내가 생각이 짧았어.”

“…예?”

“항상 시간 맞춰서 출근하고, 일 보고, 야근에 가끔 있는 회식도 체력이 약한 신여운한테는 부담이였겠지.”

“…….”

그건 다른 직원들도 하고 있습니다만. 얼마 전에 과로로 응급실에 실려간 박 팀장님은 눈에 뵈이지도 않으신가요.

“그래서 내가 어떻게 다시 꾀어오면 좋을까?”

“그, 그건 저도 잘-”

“모른다고 하면 모가지야.”

시발…….

“그, 가족을 이용하는 건 어떨- 헙!”

직원은 자신이 무슨 말을 내뱉는지도 모른 채 지껄이다가 제 입을 틀어막았다. 허공에서 두 눈동자가 또르르 굴러갔다.

그렇구나. 강시환은 만족스럽게 입고리를 올렸다. 평범한 일반인이 그의 미소를 본다면 그저 사랑에 빠지겠지만, 같은 회사에서 미친 듯이 굴려졌던 직원은 달랐다. 왠지 모르게 등줄기로 한기가 스친 기분이였다.

“좋은 조언이였어. 서류는 여기 두고, 오늘은 일찍 퇴근하도록 해.”

직원은 새삼스레 생각했다. 신여운이 돌아오는 날, 분명 자신은 잘릴 것이라고. 그것도 존경해 마지않는 신여운의 손에.



* * *



휴대폰을 조심스레 다시 켜보자 다행히 연락은 더이상 오지 않았다. 그냥 수신 차단을 해버릴걸, 괜히 휴대폰 사용시간만 버린 기분이다. 어쨌든 이제 그런 건 대수롭지 않다.

“신여운! 대체 무슨 소리야, 회사를 그만뒀다니! 심지어 그걸 내가 네 입으로부터도 아니고, 타인한테서 알아야겠어?”

지금 대수로운 건 신여운의 가족관계니까.

“아, 그러니까 강시환이 날 너무 부려먹는다고!”

“이 새끼가 어디서 강시환은 강시환이야! 당장 회사로 돌아가. 퇴사하면 뭘 어떻게 먹고 사려고 그래!”

“내가 알아서 한다니까!”

“네가 뭘 알아서 하는데! 동냥이라도 할거냐?”

“그거라도 해서 빌어먹고 살 수 있다면-”

“이 미친 놈이 무슨 헛소리야!”

끝내 머리끝까지 화가 난 신예성이 멱살을 잡았다. 그럴만도 하다. 신예성은 강시환과 같은 대학을 나와, 형 동생하는 사이니까. 심지어 그 강시환이 동생이라니, 우습기 그지없다.

그러니 신여운 역시 낙하산이다. 신예성이 강시환에게 부탁하여 회사에 집어넣었으니까. 무슨 생각이였는지, 진짜 신여운은 비서 일을 하며 강시환의 미친 성격까지 다 알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곁을 지켰다. 그 끝이 입막음, 또는 죽음이라니, 얘도 참 미련하다.

“너 형이 우스워?”

“우습다, 어쩔래!”

작품 내에서 신예성은 항상 온전한 중립이였다. 강시환이 미친 집착을 하고 돌아다닌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자신과 가족에게 피해가 없었으므로 모르는 척 고개를 돌렸다. 그런 신예성이 중립을 벗어난 것은 동생, 신여운의 실종이였다.

신여운의 실종이 강시환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안 신예성은 눈이 돌아갔다. 강시환부터 찾아가서 멱살을 잡고 주먹을 한 대 날렸으며, 그 후로도 보복당하지 않고 유유히 그를 캐냈다. 일말의 양심이 있었는지 강시환은 신예성을 건드리지 않았다.

긴 이야기의 즉슨, 비록 지금 서로 멱살을 잡고 엎치락 뒷치락거리고 있다지만 적어도 작품 속에서 몇 안되는 정상적인 놈이란 말이다.

“하… 내가 너 때문에 못 산다, 못 살아.”

멱살을 그러잡고 있던 손에 힘이 서서히 풀린다. 신예성이 이마를 짚으며 벽에 몸을 기댔다.

부모님을 일찍 여읜 형제에게 의지할 곳은 서로 뿐이였다. 원래의 나는 다른 가정과 마찮가지로, 부모님에 누나까지 하나 있었다. 그러니 신여운에게 완벽하게 이입하기는 어려웠지만 적어도 지금은 조금 이해가 갈 것 같았다.

“정말 마지막이야, 신여운. 내가 네 뒷바라지 해주는 것도 한계가 있어. 내 돈벌이 해먹기도 힘든데 언제까지 내가 널 도와줄 수 있겠니. 그만 회사로 돌아가. 네 불만은 내가 따로 시환이한테 얘기해볼테니까…….”

“……형. 나 진짜 진지해.”

“그렇게 진지하면 현실 좀 직시해. 너 원래 이렇진 않았잖아. 네 할 일은 다 척척 해내던 애가 이제와서 왜 이래.”

그런 건 정우연도 알고 있다. 신여운은 이런 사람이 아니다. 분명 눈 앞의 신예성 또한 어렴풋이 기시감을 느끼고 있겠지.

하지만 정우연도 이 부분에 있어서는 예민했다. 소설 속 미래를 알고 있는 그에게, 강시환의 비서로 다시 들어간다는 것은 스스로 죽겠다는 것과 같은 말이였다. 그럼에도 제대로 털어놓을 수조차 없으니 억울할 다름이다.

그때, 타이밍 더럽게 휴대폰이 울렸다. 신예성의 휴대폰이였다.

방금 전의 다툼으로 기력이 쭉 빠졌는지, 신예성은 비척비척 걸어가 휴대폰을 집어들었다. 전화를 받을 쯔음 일그러져 있던 그의 표정은 서서히 밝아졌다.

“어, 정말? 그래주면 너무 고맙지. 너 밖에 없다. 그럼 부탁할게, 시환아.”

아아 불안하다. 하느님, 부처님, 예수님, 알라신님. 저 스트레스로 부정맥 와서 죽고 싶지는 않아요.

조금은 들뜬 손짓으로 전화를 끊은 신예성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곧 정우연의 어깨를 가볍게 말아쥔 그는 무척 밝은 얼굴이였다.

“시환이가 좀 더 네 편의를 봐주겠대. 계약서도 다시 쓰자더라. 심지어 계약서가 마음에 안 들면 네 입맛대로 갈아엎어도 어느정도 용납해주겠다고 했어. 이 정도면 괜찮잖아, 여운아.”

“……아.”

“회사, 돌아가자.”

더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어린애처럼 물고 늘어질 수도 없는 처지에, 결국 정우연은 울며 겨자먹기로 사직서 제출 3일만에 회사에 재계약서를 쓰러갔다.

차갑게 웃으며 깍지를 끼고 앉은 강시환의 낯짝을 다시 보자니, 배알이 꼴려 미치겠다. 그의 눈빛이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네가 돌아올 줄 알았어.’

알긴 뭘 알아. 짧게 한숨을 내쉬고, 재계약서를 훑었다. 역시 가장 눈에 띄이는 것은 칼퇴와 휴식시간의 제한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신여운은 비서다보니 칼퇴를 할 일이 거의 없다. 밤까지 남아있는 강시환을 도와 일을 처리해야하기 때문이였다. 그런데 칼퇴가 가능하다니. 내가 진짜 신여운이였으면 눈물부터 줄줄 흘렸을거다. 그 뿐만일까? 휴식시간은 아예 제한 자체가 사라졌다. 언제든 원하면 그때가 바로 휴식 시간인 것이다.

이 정도의 특권이 주어졌으니,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 거절하기엔 앞으로 누릴 것들이 너무 아까웠다. 사실 아예 퇴사해버리면 먹고 살 길도 막막한데, 이정도면 그래도 꿈의 직장 아니겠는가.

그러니 정우연은 계획을 조금 수정하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구질구질하게 다시 엮인 인연, 그냥 선동하와 강시환의 사랑을 응원하는 엑스트라가 되기로. 아무것도 아니면서 기묘하게도 존재는 하는, 그런 엑스트라 같은 존재.

스스로 생각해도 웃긴 다짐으로 기분이 미묘해져버린 나머지, 고수하던 무표정이 조금 풀렸다. 강시환은 그런 정우연을 흥미롭다는 듯 관찰했다.

“아 맞다, 신 비서.”

“……예.”

으악, 벌써부터 신 비서란다. 아직 재계약서에 지장 찍지도 않았는데. 이상하게도 익숙한 감각이다. 3일만에 신여운과 동기화라도 된걸까. 의심이 모락모락 피어오를 정도다.

“전에 신 비서가 사직서 냈던 날, 선동하랑 잘 붙어먹어 봐라고 했었지 아마.”

“…….”

아하하, 내가 그런 말을 했던가. 강시환이 무어라고 화낼지 참 기대된다. 반어법적으로 말이다.

기대를 지켜줄 필요는 없는데, 굳이 의뭉스러운 미소를 입에 건 강시환이 압박하려는 듯 내 쪽으로 몸을 젖혔다. 그리고 속삭였다.

“선동하, 그 사람 누구야?”

……어라?



10
이번 화 신고 2021-06-15 01:44 | 조회 : 2,113 목록
작가의 말
사직서

새벽이라기엔 뭣하지만... 비몽사몽하네요^^;;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