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응?

처음 들어온 이 집은 구석에 곰팡이가 피어있기도 했다. 그래도 처음으로 사는 대한민국이라 설레기도 했다. 처음엔 부모님 손을 벗어나 사는 거라 월세며, 세금이며, 지리며 공부하는 정말 힘들었지만 지금 내 모습을 보면 그 일이 헛고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먼저 거실과 주방, 화장실을 정리하고 곰팡이와 더러운 부분을 제거하다 보니 이삿짐을 옮겨주는 업체가 도착할 시간이 되었다. 바닥에 앉아 기다리자 기분 좋은 재즈 음악이 휴대폰에서 들렸다.

“여보세요? 네, 아.. 가지고 올라와 주시면 됩니다. 네.”

얼마 안 기다리다 파란 박스와 함께 건장한 남자 하나가 들어왔다. 그 남자는 차례대로 소파, 침대, TV, 책장, 좌식 책상이 들어왔다.

“어디다 놔 드릴까요?”
“침대는 배란다 앞에 놔 주시고요… 소파는 저기 액자가 걸려 있는 벽에 놔 주시고… TV는 소파 앞 벽에, 책장은 TV 받침대로 쓸거에요. 책상은 소파 앞에 놔주세요.”

그는 내가 말한대로 모두 놓았다. 음… 뭔가 허전해서 액자와 화분을 더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에게 콜라를 건네 주고 그가 나가자 배게와 이불을 정돈하고, 책을 책장에 채워놓고 책상에 위에 노트북을 두었다.

“됐다. 이제 액자랑 화분 좀 사러 다녀와야지!”

밖에 나오자 탁 트인 공기에 기분이 좋아졌다. 버스를 타고 자리에 앉았다. 밖의 풍경을 감상하던 중, 뒷자리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야, 저 여자 외국인 아님? 너가 말 걸어!”
"아 진짜 ㅈㄹ! 나 영어 7등급 꼴아박았다고ㅋㅋㅋ"
"됐어, 내가 말 걸어본다ㅋㅋ"

그 여자 하나가 내 어깨를 톡톡 쳤다.

"어... hello? where are you from?"
"Ah... France. Are you korean?"
"어... yes..."
"아 그렇군요. 저 한국말 가능합니다."
"아 씨, 뭐야..."

그 여자는 조용히 욕을 하고는 친구 옆에 앉았다.

"야, 그냥 염색한 한국인 아니냐?"
"그니까 한국말 개잘하던데?"
"아니 한국인이면 한국인이라 할 것이지."
"그니까 개ㅈㄹ 오져ㅋㅋㅋ"

그 여자 둘의 말에 기분이 나빠 외국인 등록증을 손에 쥐고 있었다. 맘 같아선 그걸 보여주고 싶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쪽들, 말이 좀 심하시네.”

어떤 여자가 그 여자들에게 말을 걸었다. 그 여자는 금발 칼단발에 검은 마스크를 쓰고 날카로운 눈매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내 손에 잡혀있던 외국인 등록증을 그 여자들 눈 앞에 들이밀었다.

“보여요? 보이냐고.”
“하, 씨.. 누구신데 그런데요. 갑자기 왜 ㅈㄹ이야…”
“ㅈㄹ하시는 건 그쪽이고요ㅋㅋ 그 전형적인 외국인 보면 말 걸어보라는 그런 사람이네, 그거 외국인 분들께 겁나 민폐인 거 알긴 해요?”

그 순간 버스의 정차 안내음이 들렸고, 여자들은 얼굴을 가리며 빠르게 내렸다. 금발 여자는 내 옆에 앉고는 외국인 등록증을 건네주었다.

“저도 외국인이에요, 그쪽도 이런 취급 받으면 저처럼 행동해요. 그래야 만만하게 안 봐요.”
“아, 네. 감사합니다…”

잠시 간의 침묵이 흐르고 그녀는 그 다음 정류장에서 내렸다.

‘나도 저 사람처럼 될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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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2-07-11 20:23 | 조회 : 435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