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의 형태 (3)

향수를 구하라고 했다. 메세지가 가볍게 떠올랐다. 나는 곧 타자를 치는 손을 내렸다. 그리고 다락방 벽틈에 머리를 푹 꺾어 뉘였다. 나도 그것을 뿌리기를 바랐다. 어떤 경로로든 구한 독한 향수를 뿌리고 싶었다. 그래서 내 살냄새를 가릴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 허나 기실 니시미야도 이미 알아차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웬만한 아이들은 그렇게 후각이 좋았다. 특히 그녀는 그 쪽의 기관이 다른 기관보다 더욱 발달돼 있었다.

"밥 먹게 내려와라."

그리고 어머니가 불렀다. 나는 빠르게 컴퓨터를 덮고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 아침과 점심을 굶어 시장한 상태였다. 그릇에서는 금방 뜬 김이 났다. 나는 떠낸 한 술을 비워내며 반대편을 응시했다. 어머니의 얼굴이 무언가 상심한 것 같아 보였다. 입가에 다가가려는 숟가락이 자연스럽게 내려갔다. 어머니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쇼야. 억제제 잃어버렸지?"

"어?"

"..."

어머니나 다른 가족들이 알아차리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 것은 오산이었다. 오메가 같은 사람들의 고유한 살내는 생각보다 강하고 진하다고 전해져오는 것이었다. 다만 그렇기 때문에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 더 어려웠다.

"정말 잃어버린 거 맞아?"

"물론이지."

"그럼 됐어."

어머니가 미약하게 웃었다. 그리고 이어 말했다.

"다음엔 잃어버리지 않게 조심해. 이따가 사줄 거니까 잠깐 기다려."

"아냐. 내 돈으로 살게."

"그럼 남은 날들 동안에는 어떻게 할 건데?"

"그건 버티면 되지."

"뭘 버텨. 그냥 사지."

어머니가 여전히 만류했다. 나는 빠르게 비워낸 밥그릇을 덮고 나머지 식기를 든 채 일어섰다.

"아냐. 애초에 잃어버린 건 내 잘못이고 내가 책임져야 되니까. 난 그만 일어날게. 잘 먹었어요."

자리를 떼려는데 문간에서 초인종이 울렸다. 어색한 상황을 무마하길 내심 바랐던 나는 누군지 확인하지 않고 무작정 문을 열었다. 그는 요오쇼오키였다. 야구 잠바를 헐겁게 걸쳐입고 있었다. 나는 잠시 멍했다. 그가 왜 우리집까지 찾아왔는지 단편적인 의문이 솟았다. 타이밍조차 하필 이런 곤란한 문제로 상의하는 상황이었다. 어쩌면 그가 적절한 순간을 골라 잘 찾아왔다고도 할 수 있었다. 나는 조심히 문지방으로 향했다. 그에게서 얼굴을 내비추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내가 시선을 피한 채 그쪽으로 향하자 어머니는 빠르게 일어섰다.

"누구세요?"

"안녕하세요. 쇼야 친구에요."

요오쇼오키가 먼저 대답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그의 얼굴을 응시하였다. 요오쇼오키의 눈이 나를 빤히 응시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내가 친구가 생겼다는 사실이 맘에 드는지 붉게 달아 화색했다.

"그렇구나. 무슨 일로?"

"같이 과제를 할 게 있어서요. 이시다, 말 안 했어?"

"..."

"쇼야에게 이런 멋진 친구가 있었구나."

"칭찬 감사합니다." 그가 사람 좋게 웃었다. 어머니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서 전형적인 어머니들의 자세로 대화 중이었다.

"어머, 그럼 과제를 같이 어디서...?"

"쇼야 방에서 그냥 저희끼리 해치울게요. 네 방이 다락방이랬지?"

"간식 좀 줄까?"

"괜찮습니다."

요오쇼오키는 특유의 번들거리는 미소로 웃어보이고 난 후 나의 어깨를 감싸쥐었다. 근육이 돋친 팔이 감싸는 그 두터운 느낌에 나는 조금씩 닿아오는 무거움을 감득할 수 있었다.

우리는 내 다락방 쪽으로 향했다. 어머니의 환한 미소를 등진 채로였다. 요오쇼오키는 예의 그 자세로 끄덕이며 줄곧 집 안의 따사로운 조명 속에서 실실거렸다. 실실거린다고 하긴 썩 좋지 았지만 명백한 실실거림이었다. 우린 그녀를 등지고 다락방 문을 먼저 열었다. 내가 적극적이지 않은 몸짓으로 요오쇼오키를 들였다. 어머니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 들어오자 그의 입술은 비틀거리듯 깊숙히 떼여졌다.

"집 존나 좁네."

"..."

"그렇게 언짢아하는 척하지 마."

요오쇼오키가 말했다. 나는 다락방에 거의 주저앉다시피 하며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았다. 내가 여긴 왜 왔냐고 묻자, 발정기를 좀 가라앉혀 주려고 왔다는 식으로 그는 대답했다. 누구의 발정기인지 나는 아주 잠깐 동안 헷갈렸으나 우리 집에선 포유류를 안 키운다는 사실에 머잖아 깨닫게 되었다.

"어떤 방식으로?"

"넌 잘 알 것 같은데."

그가 날 바라보며 또 웃었다. 손이 바지 위로 다가왔다. 잠깐 멍하다가 몽롱한 시선을 들어내어 그의 손을 마주했다. 다시 반복되고 있었다. 요오쇼오키에는 어떻게 그토록 빠르고 가볍게 이런 걸 반복할지 싶은 의문이 들었다.

"발정난 거 알아. 어제 자위했지?"

나는 말의 의도를 깨닫지 못해 피곤한 시선으로 그를 보고만 있었다..

"아니. 했다 해도 어떻게 알아?"

"알고 있어. 너같은 것들은 제 좆 하루라도 안 만지고는 못 배길거야."

일방적으로 나를 알고 있다는 생각이었다. 이윽고 뭐라고 대꾸할 틈 없이 제압이 시작되었다. 요오쇼오키가 빠르게 나를 눕혔다. 어머니가 지금 바로 아래층에서 버젓이 무언가를 만들거나, 요리하거나 혹은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할 정도로 그와 나의 놀이는 현실감이 없었다. 나는 그저 놀이의 이유가 궁금했다. 그리고 그가 왜 이토록 쓸모없는 일에 자신의 힘과 땀을 쏟는지도 내심 궁금했었다. 줄곧 나를 찌르는 일에 열정적으로 대해주었기 때문이었다. 상의를 벗기는 그의 눈은 반짝였다. 저항하고픈 마음은 있었으나 평소에 비해서라도 너무도 피곤하고 몽롱했다.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나는 가슴을 위로 울려퍼지게 하려다 원래로 판판히 되돌려놓았다. 요오쇼오키에게 다시 뺨이나 목을 맞게 되는 일은 싫었던 것이었다. 그러면 아프고 귀찮고 무서웠다. 단순한 감정이 나의 척도를 결정했다. 피부는 아팠다. 쓰리기 일쑤고 따갑고 시렸다. 그는 벗겨내는 게 서툴어 보였다. 하지만 서툴기보단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그냥 거칠다는 말로만 치환 가능했다. 부드러움이 잠시동안 스치고 지나가면 나는 조금씩 잘게 떨었다. 요오쇼오키는 웃었다.

"한번 저항해봐."

"뭐라고?" 그리고도 그 후로는 거리가 먼 침묵이 공기처럼 짖궂게 나를 맴돌았다. 무슨 의미인지 슬슬 짚어보아도 나는 해석할 수 없었다. 내가 따사로운 친절함이라도 요구할 심산으로, 멍하니 그를 바라보다가 눈을 깜빡이기만 했다. 그리고 그 시간쯤 지났으면 어느 정도 굳어버렸으리라 생각됐던 입을 뗐다. 하지만 그가 먼저였다. 버석버석한 나의 입은 생각보다 많은 수분으로 산재해 있었다. 벌렸다.

"저항하면..."

내가 먼저란 말이었다. 나의 눈은 위로 갔다가 아래로의 횡선을 타고 움직였다.

"넌..."

그의 표정이 도외적으로 벌린 입술로 살짝 치환되었다. 그렇다. 왜 그러는 건지 궁금했을 뿐이었다.

"뭐?"

"뭘 하고 싶길래..."

"..."

"도대체 뭘 하고 싶어서 그래?"

"..."

"내 생각에 네가 여기서 하고 싶은 건 하나밖에 없어."

짙은 침묵이 지나갔다. 그는 촛불 앞 바람처럼 길게 웃었다. 아랑곳하지 않고, 듣는 척도 않은 건조하게 반쯤 뜬 눈빛으로 한마디 내뱉었다.

"지겨워 보이네." 그는 누구에게나 적용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법한 질문을 던졌다.

"누가 안 지겨워하겠어."

요오쇼오키는 대꾸하듯 던지는 저항에 두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처음 이 방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이러기까지 줄곧 빛났던 열망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욱 위용을 부렸다.

"바로 그거야. 그게 내가 원하던 거란 말이야. 앞으로도 계속해, 이시다."

요오쇼오키는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이상한 사람이었다. 비방의 의도 없이 사실이었다.

"적어도 씹뜰 땐 나한테 그래도 돼."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창녀가 되어보란 얘기잖아."

갑자기 창녀 이야기가 나와서 나는 나와 거리가 먼 그 단어를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왜 나랑 아무 관련도 없는 것마냥 쳐다보느냐고 그가 물었다. 나는 아무 관련이 없으니까 그렇다고 답했다. 분위기는 점차 더럽고 비현실적으로 변질돼 나갔다. 심화되는 손짓은 나와 전혀 무관한 이가 봐도 금세 체득할 수 있을 터였다. 나는 곧게 뻗은 양 팔을 잡혔다. 요오쇼오키는 나의 몸을 벽에 몰고 박았다. 차들이 그러듯 거센 바퀴를 놀려 충돌시켰다. 옷이 벗겨지고 있었다. 갈보처럼 해줘. 나는 느리게 고개를 휘저었다. 뺨을 맞았다. 그리고 나서 나는 강제로 관계했다. 두 번째였다. 마리아의 곡조가 드높여 울리던 날이었다. 다리는 크게 벌리고 입은 작게 맞추고, 대충 쓴 가사라고 생각했는데 이제사 그것의 공들임을 깨달았던 육체였다. 다리는 더 크게 벌리고 입은 덜 작게 맞췄다. 다리는 더 크게 벌리다가 찢어졌고 입가도 찢어졌다. 동요와 잠자리란 의미는 몹시도 다르지만 끝은 똑같았다. 그것은 배드엔딩이었다.

-
나는 결국 독한 향수를 구했다. 그래서 지하철에도 가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구한 게 아니라 받은 것이었다. 요오쇼오키가 정사 후 잠자고 있던 나의 머리맡에 두고 가서 챙긴 것으로,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대로 창녀처럼 화대를 받은 셈인지 의문을 가져보기도 했다. 더 이상한 것은 나는 굳이 부정하지도 않고 그냥 챙겨갔다는 것 정도였다. 그의 말처럼 정말 무언가가 변하는 것 같았다. 허나 뭐가 변하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아마도 윤리관이나 죄책감에 관련된 부분이려니 싶었다. 그때쯤 내게는 유즈루에게 메시지가 왔다.

쇼코한테 허튼 생각 갖지마

내가 아침에도 말했다시피 걔는 너무 착하고 순해서 탈이라고 너같은 것들이 마음을 품을 정도로ㅡ ㅡ

같은 오메가라 해도 혹시나 모르니까

쇼코는 인기가 많으니까

그러니까 그런 생각은 꿈에도 꾸지 마

많이 방해 안 할게

나는 폴더폰을 닫고 계단 쪽을 보았다. 종종거리는 걸음으로 다가오는 사하라와 쇼코가 눈에 띄었다. 사하라는 그새 키가 많이 커져 있는 상태였다. 몇 년만에 여위어졌고, 키는 나와 엇비슷했다. 나는 먼저 다가가 그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 키 많이 컸다."

사하라는 몰라볼 만큼 예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그녀는 한층 밝은 표정으로 맞받아쳤다.

"안녕 이시다! 오랜만이네. 어머, 너무 훤칠해져서 못 알아볼 뻔했어. 이렇게 만나본지 너무 오래되어서...이게 몇년만인지 모르겠다. 한 6년쯤 지났나?"

"어, 그쯤 될거야."

"그래, 네말대로 그간 키도 진짜 많이 컸어. 너랑 비슷한 정도인데, 한 170 정도 될까 싶은데. 니시미야는 아직도 작지?"

그 말에 내가 고개를 돌려보았다. 니시미야는 그녀 말대로 여전히 작았다. 실상 달라진 게 없었다. 뻣뻣하고 생동감 있는 솜털과 창백한 피부까지 그대로였다. 달라진 것은 오직 머리 길이 뿐이었다.

"근데 너 홍조가 초등학생 때보다 좀 더 많이 생겼네."

"응?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이건 오메가가 배란기 때 나타나는 증상이야."

내가 배란기란 말을 꺼내기 싫어 끊어 말했다.

"어머, 너 오메가야?"

사하라는 양 눈을 크게 뜬 채로 놀라고 있었다.

"응."

"언제부터?"

"초등학교 졸업할 때. 너 전학 가고 얼마 안가서. 감기처럼 앓더니 발현했어."

"네가 오메가라니 엄청 의외야."

나는 웃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발현 때문인지 예전이랑 엄청 달라졌다. 예전엔 목소리도 크고 활달하고 뭐 그런 애였는데 성숙해진 느낌 아니면 차분해진 느낌이야. 그런 것 같아. 너도 이제 철든 거야?"

그녀가 까르르 웃었다.

"그런 건 아냐. 다만 조금 안 나서게 됐을 뿐이지."

"나서다니, 난 네가 가끔 선생님들하고 애들하고 개그하는 거 웃겼어. 그런 게 나서는 거라면 얼마든지 나서도 좋은데."

"그래..."

긴 웃음소리와 지하철 파장이 울렸다. 나는 줄곧 니시미야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녀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말갛게 웃고 있었다. 정말로 예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 사진으로 찍어낸 것처럼 초등학교 때 그때 모습으로 변함없이 선명하게 남았다. 긴 머리에 단정한 셔츠 차림이었다. 나는 그녀와 대화할 요량으로 걸음 속력을 높였다. 그 뒤 내미는 자그만 손짓으로 수화의 의미가 비춰보였다.

''반가워.''

나도 손짓했다. 니시미야가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래서 이제 어디 갈거야?"

사하라가 빙글 돌았다.

''지도 보여줄게.''

그러고선 니시미야가 전자기기의 뚜껑을 열었다. 나와 사하라는 한데 머리를 모아 그것을 살펴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내가 밀착하자 니시미야의 머리칼에선 줄곧 은은한 샴푸 냄새가 풍겼다. 그것은 조금만 가까이 가도 쉽게 느낄 수 있어 진했다.

"냥냥카페가 어디야?"

''네코 카페야.''

"고양이한테 간식주고 쓰다듬는 그런 거? 고양이털 알러지 있진 않지? 이시다는?"

"난 없어."

"마침 고양이가 보고 싶었던 참이었어. 내가 살고있는 동네는 아직 주변에 그런 것들이 없어서..."

우리는 비교적 떠들썩한 사거리로 향했다. 사람들이 많았다. 건물 입구에선 사람 몇몇이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었다. 이상한 옷이었다. 네코미미 의상을 그대로 입은 채로 우리가 가는 냥냥카페를 홍보하는 사람이 있었다. 고양이 카페라고 했었는지 헷갈렸다. 나는 다시 눈을 깜빡였다. 일순 풀린 시선에 익숙한 낯빛이 띄었다. 그녀는 우에노였다. 흑단같은 머리칼이 따사로운 대기 아래서 잠시간 생생하게 살랑였다. 향기 같은 것이 코를 간질이며 비스킷 냄새가 났다. 그것은 니시미야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산물이었다. 내 걸음은 거기서 멈춰섰다. 니시미야와 사하라는 우에노를 알아보지 못하는 듯한 눈치였다. 우에노가 먼저 전단지를 나눠주며 나와 살갑게 눈을 맞췄다. 살갑다기보단 찰나였다. 이에 그녀들도 횡단을 멈추며 내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그들의 표정은 서로를 직면하자 어느 순간에서인지 미묘하게 달라져 있었다.

"오랜만이네."

"누구세요?" 사하라가 물었다.

"나 우에노야. 못 알아보겠어?"

"아...걔구나? 초등학교 때 이시다랑 만날 붙어다니던 얘 맞지?"

니시미야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사하라가 수화로 저 사람이 우에노라고 설명해주자, 그녀의 눈에는 사하라와 같은 당혹감이 떠올랐다. 그래도 그것이 거부감은 아니었다. 다만 나는 거부감이었다.

"가자."

내가 이끌고 가려 하자 사하라가 손사래쳤다.

"어? 왜? 잠깐 얘기 좀 하다가자. 우에노 보는 것도 오랜만인데..."

그러자 우에노가 만류했다.

"괜찮아. 이거 다 나눠줬으니까 나도 이제 너네 가는 곳으로 내려가서 일하면 돼. 너희 고양이 카페에 가지?"

"어. 어떻게 알았어?"

"이 건물에 애들이 놀러갈만한 곳은 거기밖에 없잖아. 다른 데는 당구장이나 기사식당 뿐인데."

"아 참. 그렇네 참."

사하라가 웃었다. 고양이 차림을 한 우에노는 우리에게 붙더니 내 옆에 다가와 섰다. 비스킷 냄새가 끊임없이 코를 간질이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행동에 의문을 느끼며 냥냥카페로 들어섰다. 포근한 고양이들과 카페의 내부 정경과는 대조적으로 나의 마음은 미약하게 불편했다. 가시방석에 앉은 느낌이었다. 언젠가 우에노를 만나게 될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곤혹스러워질 것이라곤 예상하지 않았다. 너무 가벼울 것이라 여겼던 것 때문인지 싶었다. 그래도 니시미야와 사하라와 함께 마주쳐 앞으로도 계속 이 카페에서 이야기하며 보내야 히는 게 불편해서, 어떻게 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

팔꿈치를 툭툭 건드는 감각이 느껴졌다. 니시미야가 수화했다.

''초등학생 때 너랑 친하게 지내던 그 여자애야?''

''응.''

그녀는 단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나는 여전히 그녀를 은연 중에 의식하며, 고양이들은 이미 관심 밖에서 사라진지 오래였다.

"토이레요."

우에노가 길이 낮은 문 뒤에서 이것저것 얘기하다 밖으로 나갔다. 뒷품에 숨긴 담배를 보니 몰래 그것을 피우러 간 것 같았다. 이에 나는 무언가에 이끌린 사람처럼 서서히 일어서 화장실에 가겠다고 했다. 사하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카페를 나와 그대로 걸어나섰다. 나는 흡연실을 찾아 빙 돌았다. 연기가 한겨울 김처럼 모락모락 피워오르고 퍼뜩 눈앞이 따가웠다. 눈밖에 보이지 않았다. 바로 그 속에서 우에노의 방울만한 눈이 나를 똑바로 응시했다. 내가 말하겠다고 먼저 따라나선 것임에도 먼저 꺼낸 쪽은 내가 아니었다. 그녀가 먼저 물었다.

"뭔데?"

"어떻게 지냈나 궁금해서."

"보다시피 지금은 알바 중이야."

"담배는 왜 피워?"

"네 알 바야?"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쟤넨 뭔데? 왜 데리고 왔대?" 그녀가 통로 쪽을 더듬어보다가 이어 말했다. "아니...그것보다. 쟤네가 널 왜 데리고 왔는지가 제일 궁금하다. 네가 쟤넬 괴롭히지 않았어?"

"그래..."

"그럼 왜 쟤네는 자기를 괴롭힌 사람을 데리고 이런 데 와서 하하호호래? 용서라도 했나보지?"

"그런 말은 들은 적 없어."

"그렇다면 쟤네는 확실히 아직도 바보겠네. 나라면 제 화에 북받쳐서 나 괴롭힌 가해자는 못 데리고 다닐텐데. 어떻게 이리 오랜 시간이 흐른 다음에야 어렵사리 만날 생각도 하고. 하필 이 건물 카페에서." 그녀가 한 템포 끊어 말했다. "너는 근데 쟤네랑 같이 놀면 죄책감 안들어? 내가 앞에서도 말했잖아, 너가 쟤네 괴롭힌 적 있다고. 그럼 너라도 쟤네랑 노는 걸 거부해야 되는 거 아니냐?"

"우에노, 사하라는..."

"뭐. 사하라가 뭐."

우에노가 연기를 내뿜으며 물었다.

"아냐."

"너 설마 사하라는 나말고 너만 괴롭힌 거잖아, 뭐 이런 소리할려고 그런 거니? 이거 웃기네. 오메가 발현하고 성질 죽인 줄 알았는데 성격은 어디 안 가는구나. 너도 결국엔 가해자 아니니. 그니까 이런 척 좀 그만 해. 예전처럼 놀자고."

"네 말은 맞지만 그건 척하는 게 아니야, 우에노."

"그럼 진짜로 성질 죽였어?"

"그렇게 말해야 된다면."

내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자 불현듯 부끄러움이 밀려왔으므로 고개를 수그렸다. 우에노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너도 웃기긴 한가보지? 하긴 성질 죽였다던 인간이 그렇게 피해자들이랑 놀러도 다니고 내가 사하라를 괴롭혔던 걸 들먹이기야 하겠냐." "그래."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찌질한 건 아직도 옛날 때하고 똑같아. 성질도 더러운 데다 찌질한 애였거든. 차라리 사람을 죽인 게 그나마 찌질하지 않아 보이기라도 하지. 지금 오메가인 것도 너 찌질한 거에 한몫 해."

"넌 형질이 뭔데?"

"알파야."

그녀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어쩐지 그래서 그녀를 마주쳤을 때 다리에 힘이 풀렸던 것이었다. 페로몬도 좀 더 짙어진 것 같아 우에노 곁에 있을 때마다 나던 비스킷 냄새가 더욱 진하게 코 주변을 간질였다.

"어쨌든 이렇게 만난것도 반가운데 우리 생각보다 가까운 데 살았었네. 내 전화번호 아직 있지. 그걸로 나 보고싶을 때면 연락해. 가끔 시간날 때 술먹고 놀자."

"어...?"

가만가만 듣다가 마지막 말에 고개가 갸우뚱 기울었다. 지금까지 맹비난만 해온 우에노가 그렇게 말하자니 당황스러웠다. 우에노는 그녀가 학창 시절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길게 웃어보이며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시간날 때 박아줄게."

그 소리에 나는 조금 물러섰다. "무슨 소리야." 우에노의 눈살은 찌푸려졌다.

"너 오메가잖아!"

"네가 알파래도 생식기가 있는 건 아니잖아."

"아오 멍청이 새끼야, 성교육 안 받았냐?"

나는 그것에 대해 더 말하는 것을 포기하고 잘 알아들은 척 했다.

"무슨 말인지 알았는데 그렇다 해도 왜 나를." 그녀가 잘라먹듯이 내 말을 끊으며 받아쳤다. 그리고 길다면 긴 얘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알파라는 결과를 받았을 때 불현듯이 네가 생각나더라. 오메가 발현된 후로부터 욕 쳐먹고 괴롭힌 당했던 너 말이야. 갑자기 네 향기가 생각났어. 네가 발현된 후 학교에 왔을 때 나도 흐릿하게나마 네 향을 맡아본 적 있었는데 굉장히 오묘하더라. 네 향이 하필 내가 우성 알파라는 사실을 자각한 바로 그날 떠오른 거야. 그때 얼마나 꼴렸다고. 완전 흥분 상태가 되가지고, 그래서 그날부터 수소문을 시작했지. 주변 중학교 찾아봤는데 이시다 쇼야라는 학생은 전혀 없더라. 도망치듯 이사 가버린 거지. 나도 그다지 간절한 건 아니어서 그냥 포기했어. 근데 오늘 네 페로몬 냄새가 심하네."

"응?"

"향수 뿌려서 덮었구나? 베타들은 알아채지 못해도 알파들은 다 알아."

"할 말 더 없으면 갈게."

"언제 다시 만날 거야?"

"부르고 싶으면 메시지 보내."

내가 문밖을 나서려 했다. 담배 연기가 뒤에서 목덜미를 덮었다. 분명히 나도 주도적으로 물을 말이 있었던 것 같은데 우에노를 보자니 금세 생각이 안 났다.

"왔어?"

사하라가 반갑게 반겼다. 고양이들이 니시미야를 적잖게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니시미야의 몸 주위로 고양이 여럿이 들러붙어 있었다. 먹이가 없는데도 그랬다. 나는 간식까지 내밀어보며 시도했음에도 고양이들은 나를 피했다. 별안간 우에노가 뒤에서 내 어깨를 붙잡았다. 방싯방싯 웃으면서 담배는 다 없었다. 그녀가 뿌렸던 향수 냄새가 좀 더 짙어진 것 같기도 했다.

"걔네가 너 싫어하나 보다."

"우에노 말이 너무 심하네." 사하라가 깔깔 웃었다. 우에노가 말했듯 옛날 일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만 같았다.

"그래, 넌 어차피 고양일 별로 안 좋아했으니까."

사하라가 말했듯 우리는 머지않아 고양이를 좀 쓰다듬어 주고 나서 마지막 인사를 해야 했다. 만지는 걸 좋아하지 않아 시간이 느리게 간 느낌이었다. 우에노는 앞치마인지 무엇인지 모를 것을 털며 손을 흔들어댔다. 그녀는 내게서 내 주소를 얻는 것을 성공했고, 그래서 앞으로 자신이 오토바이를 타거나 아니면 가볍게 자전거를 타고 우리 마을로 올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렇게 말하는 손에는 보청기가 조그맣게 들려 있었다. 나는 그것을 뺏어 쇼코에게 돌려주었다. 그러자 우에노는 평소처럼 하라며 지겹다는 말투로 학을 떼었다.

"근데 내가 아직도 싫어?"

"싫어."

우에노가 티가 나게끔 입술을 삐죽였다.

"흥, 대머리 주제에. 가봐. 쇼야는 꼭 연락하고."

우에노가 그리는 손의 곡선이 완만했다. 나는 얼떨결처럼 대답했다.

"그래."

니시미야는 지하철 주변을 배회하다 사하라와 가슴 사이즈 이야기를 하며 이따금씩 커다랗게 웃었다. 나는 차마 같이 웃을 수 없기도 하고 그런 이야기에 끼어들 수 없어 얼굴만 붉혔다. 그들 역시 변한 것은 토씨 하나 없이 착했다. 사하라는 내가 많이 순하고 조용해진 것 같다며 계속 신기하게 여겼다. 니시미야는 병원에서 만났을 때보다는 나를 좀 더 편하게 대하는 듯 보였다. 나도 덩달아 기분이 편안했다. 그래서 이것저것 얘기도 하고 니시미야에게 청각장애인 학교에 대한 이야기도 여럿 들었다.

''유즈루하고는 연락하니?''

"응."

''둘이서 무슨 얘기 해?''

"그냥 이것저것 사소한 거."

유즈루는 사진기를 좋아하는, 니시미야의 남자친구라고 본인이 주장하고 있었다. 허나 사실 남자친구라는 주장은 나는 반쯤 믿지 않았다. 살결이 유독 여리기도 했고 체구도 작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니시미야."

내가 고개를 흔들자 니시미야도 내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고개를 살풋 흔들었다.

"유즈루가 네 남자친구라는 거 진짜야?"

그러자 니시미야의 눈이 토끼처럼 커다래졌다. 두 눈만 깜빡거렸다. 니시미야는 내 말을 듣고선 숨이 넘어갈 듯 웃었다. 손으로 부드럽게 웃는 입을 가리고선 길게 웃었다.

''아니. 유즈루가 그런 말을 네게 했었니?''

"응."

''유즈루는 아마도 네가 나와 친해지는 걸 경계한 모양이야. 원래 그 애는 낯선 사람이 나랑 친해지면 그러거든.''

"유즈루가 너를 엄청 아끼나봐."

그 말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내가 보기에도 그런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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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2-06-06 21:51 | 조회 : 1,085 목록
작가의 말
구운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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