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의 형태 (7)

나는 문턱에 들어섰다. 아이들의 눈이 내게로 쏠려 있었다. 나와 동행하던 스미히토는 염려의 미소를 지으며 복도를 빠져나갔다. 복도부터 클래스 내부까지 내가 듣지 못하는 소리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았다. 그게 무엇일지, 정말 무엇일까. 나도 알 수 없었다. 단지 어렴풋이 요오쇼오키, 오메가, 강간, 재판 등의 단어가 들려왔다. 무슨 풍경일지 약간 궁금해하며 나는 멍하니 교문을 열었다. 여자애들 두어명이 내 책상을 걸레로 닦아내고 있었다. 그들은 문 소리가 들리자 걸레질을 멈추며 황급히 자기 자리들로 돌아갔다. 곤혹스레 찌푸린 얼굴에 힘들었는지 땀이 조금 나 있었다. 나는 가까이 다가가 내 책상을 가만가만 살펴보았다. 욕설이 흐릿하게 씌워진 책상은 내가 전에 쓰던 것보다 더 더러워진 상태였다. 그래서 그들이 닦아주려고 한 것이거나 아니면. 나는 닦던 걸레를 집어내 다시 닦았다. 흔적이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그럼에도 깨끗하게 잘 닦아낸 편이었다. 이윽고 그 낙서들을 전부 닦아냈다. 걸레를 빨러 화장실에 가는데 만나는 족족 나를 피했다. 날 보자마자 급히 뛰어가면서 자주 힐끔 뒤를 돌아보았다. 무슨 조화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해도 안 갔다. 다만 모두가 날 피하는 광경에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이시다 쇼야가 이지메 가해자라는 사실이 널리 퍼져 학교 애들이 날 피했던 것이 떠올려졌다. 알파에서 오메가로 변화되는 2차 발현도 그때에 겪어서, 알파가 오메가를 괴롭히다가 자기가 오메가로 변해서 된통 교육당했다라는 말이 나돌았었다. 그때는 확실히 흥미로운 얘기였는데, 지금은 뭐가 흥미로워서 그렇게 수근대는지 알 수 없었다. 아니면 현재가 좀 부정적인 시기여서 그럴 수도 있겠다. 다시 교실로 들어서자 아이들의 시선은 한데로 모였다. 또 가위표를 얼굴들에다 붙이게 되는 것 만큼은 싫었다. 반쯤은 그런 것 같다고 여기게 되면서도 나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선생은 교실에 들어서자 약간 긴장한 표정으로 나를 불렀다. 나는 바깥으로 나섰다. 그는 위원회에 도움되는 증언을 해줄 수 있겠냐고 날 설득하려고 부른 것이었다. 어차피 그런 설득은 하지 않아도 증언은 할 것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러겠다고 얼른 대답했다. 그리고 선생님은 나를 걱정해주며 정신과에 다니는 것은 좀 어떻냐고 물었다.

"괜찮습니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선생이 클래스에 관심이 없다는 건 확실해 보였다. 교육장에 관해서도 잘 모르겠지만 그것만은 확실했다. 사실 나는 다른 이야기도 세간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은 기간, 교내에서 이가나현의 대대적인 교육위원회가 모여 대책회의를 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교육위원회의 사람들은 초반에는 은폐하려 시도하다가, 사건이 지역사회에 알려지고 난 후 즈음에 대책을 세우기 시작했다고 했다. 학교가 끝날때까지 사람들은 내가 다가오면 먼 곳으로 피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대했다. 얘기들은 많았다. 강간 사건이 아니라 위원회에만 관계된 얘기만 추려봐도 그랬다. 완전히 무더기로 잡혔고, 마냥 바보같은 얜 줄 알았더니만 대처를 어느 정도 해서 놀랐고, 나에게는 인과응보가 실현됐고, 과장의 감이 있지만 어림잡아 반백명 정도가 위원회에 불려갔고, 결석조치가 내려진 다음날의 교내가 몹시 썰렁할 것 같다는 의견이 주를 이루었다. 그들은 요오쇼오키의 강간 사건, 재판, 사실 진위 여부 얘기나 위원회 얘기도 했다. 때로는 내 과거행적을 조사해보려는 의지가 있는 아이들도 존재했다. 때로는 요오쇼오키를 광적으로 옹호하는 학생들이 시위를 하겠다며, 면회를 가겠다며 소리치고 다녔다. 그리고 그걸 나한테 말하는 학생도 있고, 협박하는 그의 친우들도 더러 있었다. 전부 그럴만 했다. 사건 내용이 보다 자극적인 방식으로 와전되기도 했거니와, 내가 생각해봐도 그것은 몹시도 흥미로운 화젯거리였다. 폭력, 성, 머리로는 거부하면서도 이끌리게 만들기 때문에. 하교할 때까지 그것들은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몽롱한 정신으로 니시미야를 생각하며 걸음하고 있었는데, 한 아이가 깡통을 던져 내 머리 위에 적중시키며 2층으로 가보라고 말했다. 나는 조금의 의문을 품으며 2층으로 향했다. 위원회 관계자들이 한데 모여 커피를 나눠마시고 있는 중이었다. 이윽고 그들은 날 데리고서 응접실로 보이는 널찍한 방으로 이동했다.

"피해학생 진술듣고 의견을 종합한 다음 보호조치를 내릴거야. 그러니까 스스럼없이 전부 말해줘야 해. 알았지? 어머님은 다음주에 시간 되시니? 의견진술 및 질의응답을 실행해야 하는데, 가해자 측은 필요한 경우 안보고 할 수도 있으니까 걱정 말구."

조치 관련 내용을 귀담아 듣다 보니 궁금한 것이 생겨났다. 신고자는 과연 누구일까. 친구들 중 하나거나 어머니일 것이라고만 어렴풋이 짐작될 뿐 갈피는 잡히지 않았다. 학교장은 부들부들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내게 녹차 한 잔을 건넸다. 자신이 직접 탄 것이라고 했다. 그러고선 내 손을 토닥거리고, 무슨 의도인지 모를 그러나 따뜻한 위로를 많이 건네주고 갔다. 아마 이가나현의 대대적인 교육위원회에게 어떤 방식이로든 시달렸을 것이었다. 그런 방면을 생각해보자니 그가 조금 측은하게 느껴졌다.

그가 만든 차로 적당히 입을 적신 후에는, 달리 전달받을 것도 없다고 여겼으므로 문 밖으로 향하려 했다. 문 앞 가까이에 정착한 약간의 말소리들이 들려왔다. 그것은 나의 의지 없이 내게 밀려왔다.

"도대체 왜 지금 난리래?"

"어머니 쪽이 이제 막 이지메 사실 알아서 신고했나 보지, 뭐."

"성하고 관련되면 좀 복잡해지는데...수사기관에도 가야되고. 이지메 없는 학교란 타이틀은 무슨, 그렇게 지켜온 게 이번 일로 완전 깨지겠네."

"야, 근데 진짜 잘생기긴 했다."

"뭐라는 거야. 지금 가까이 있거든?"

깔깔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잠시 후 그것은 차츰 잦아들었다. 머잖아 한 선생님이 새롭게 내실로 밀고들어서 내게로 무슨 꾸러미같은 것을 건넸다. 그새 그녀가 온 것이었다. 종이 몇장이 단정하게 쏟아져내렸다. 촤르륵거리며 듣기 좋은 소리가 조금씩 진동하는 사이에서였다. 나는 무기력하게 볼펜을 받아들었다.

"이시다, 이건 서면으로 하면 돼."

나는 침묵하며 힘없는 필치로 볼펜을 휘갈겼다.

얼마 후 학교폭력에 대한 처치를 내리는 위원회가 열린 날에는, 나는 불가피한 이유를 들어 서면으로 의견을 제출했다. 가해자들에 대해 증언할 때는 내 기억을 떠듬떠듬 들춰 애가 이랬었지 하는 태도로 더듬어보며 그들의 행적을 추적해갔다. 그들의 회의에게는 우선 거부감이 들었다. 어차피 그곳에 가더라도 내가 입을 뗄 것 같진 않았다. 그래서 서면으로만 참석했다. 어머니는 바쁜 몸으로 그곳에까지 참석해주었다. 가해자 측의 부모가 몹시 많이 집결해 있었다고 했다. 보호조치에 대한 심의까지 끝난 날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그래서, 이제 무얼 할 텐가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얼 하는지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앞으로 뭘 할지도 몰랐다. 정말인지 세상은 몇몇의 기함이 합쳐져 이상하고, 그럼에도 그 지경으로 회전하고 있다는 것이 이렇게 강렬하게 체감된 적이 없었나 보았다. 머리엔 두통이 일었다. 조치들이 좀 많이 내 주위를 많이 지나가서 그러는 탓일지도 몰랐다. 나는 요며칠 더욱 심화된 피곤함을 느끼며 나지막하게 요에 누웠다.

내가 자는 곳을 바꿨다. 다락방 대신 어머니는 나를 더 밀착시켜 보살펴 줄 수 있는 방을 원했고, 그래서 가까운 방에서 요를 깔아 자기로 했다. 그리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정신 상태를 호전시키는 데에 도움이 된다길래 멍한 머리에도 읽으려고 했는데 도무지 읽는 것인지 내가 그냥 멍해있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유익한 시간이었다. 어떤 것들도 방해하지 않는 시간을 바랬었는데 지금 돌이켜 보니 바랬었던 취지에 잘 맞는 시간이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가해자들에 대한 징계가 내려진 날이었다. 가해자들이 생각보다 많고 내 증언과 상황에 따라 내려진 처벌도 달라서 조치를 받는데 혼선이 있었다. 우선 보복금지는 기본적으로 모든 학생들에게 내려진 사항이었고 그 외 징계조치는 봉사, 학교폭력 교육이수, 상담, 출석금지 등 다양했다. 얼추 죄질을 통합시키지 않고 가해의 정도나 나와 가해자 사이 화해의 정도를 알아보아 결정내리는 것이었다. 다행히 클래스를 이동한다거나 하진 않았지만 교생들의 원성이 있었다. 나는 평소처럼 사람이 많이 모인 벤치 말고 고요한 담장을 찾았다. 그리고 주변에 쪼그려 앉았다. 급하게 오느라 도시락은 없었다. 나는 굶어가며 약간의 생각으로 머리를 들끓었다. 교육위원회의 위원들은 그들의 나름으로 징계조치를 내렸을 것이었다. 상황은 부정도 긍정도 아닌 쪽으로 모호해졌다. 나도, 그들도, 시스템 자체도 애쓰려고 부단히 처분을 내리는 것이지만, 또한 애쓰는 것에 실질적 동기가 뭔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그 행동에선 선량한 인간다움이 우러러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니 무슨 마음인지 더욱 고심되었다. 나의 진심이 뭔지 모를 뿐이었다. 난 현재 당장 나에게 원하는 것이 뭔지 몰랐다. 무슨 짓인지, 무슨 일인지 라는 의문만이 뇌리에 찌끄러기로 남아 맴돌았다. 가해자들이 제대로 된 처분을 받는 것일지, 아니면 몇년전처럼 그저 내가 편해지길 바라는 것일지 몰랐다. 후자의 의견을 몇 년 전 내게 묻는다면, 몹시도 자기중심적인 생각이라고 답할 것이었다. 욕지거리가 올라오는 것 같아서 단지 그래서 나는 과격히 머리칼을 매만졌다. 내가 곤란스럽단 걸 누가 봐주길 원하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럼에도 나는 흘러갔다. 교육위원회, 재판, 윤간을 빠르게 지나 3주 정도 더 지나면 가을이었다. 손가락 사이사이로 잡다 만 물결처럼 흐르는 무력감을 감득했다. 다만 이제 그런 것들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다고 홀로 바랄 뿐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생각은 그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바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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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그렇게 지겨운 건지 나도 대답이 되지 않았다. 아무튼 지루하단 말로 표현하기에는 내 정신상태가 지루하지 않았고, 내 정신은 지루함을 느끼고 있었다. 이런 모순에 나는 그냥 지겹다는 말로 답을 대신할 수 밖에야 없었다. 책을 읽는 것도 지겨웠다. 읽히지 않는 문장을 읽으며 불통인 기계를 조립해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억지로 그러는 것이었다. 상담 선생이 독서가 재활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 적은 없으나, 일단 뭐라도 시도해보는 게 좋다고 해 그렇게 한 것이다. 나는 메모장 하나를 가져왔다. 아모크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다. 악필으로 대강 필기한 다음 그것의 뜻을 알아보고 다시 단락을 조금씩 읽어내려갔다. 책을 덮었다. 아모크라는 단어를 안 것 외로는 그 이상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마침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내림에도, 나는 그냥 다른 것, 가령 밖으로 나가 산책하는 편이 더 나으리라고 여겼다. 마침 그들의 새 수사도 진전이 없어서, 마침 정신병원에서의 일은 전부 잊어서 단지 그래서 건강에 도움이 되는 무언갈 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았다. 나는 커다란 우비를 덮어쓰고 바깥에 나섰다. 건강이라니,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나는 며칠 전 니시미야를 만났던 것이다. 그녀와 조금 얘기를 나눈 후, 그녀의 집 안에서 밥을 지어 먹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보이지 않는 장막이 모든 것을 부자연스럽게 만드는 기분이었다. 밖을 나설 때도 그랬다. 모든 것들은 인조적이고 부자연스러웠다. 2m 앞에서 사람을 발견하기까지만 해도 그렇게 느껴졌다. 그 사람들은 처음에는 흐릿해서 잘 띄이지 않았지만, 가까이 갈수록 그 형체는 좀 더 뚜렷해졌다. 여자 한 명과 남자 한 명이 산책로를 벗어난 바깥 라인에서 서로 밀치고 소리지르기를 반복하며 싸우고 있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남자 쪽이 여자를 끌어안아 키스했다. 좀 전까지 격렬하게 싸우던 한 쌍은 서로의 반항 의지도 없이 껴안고 있었다. 하필이면 비가 내리는 날에, 무슨 사정인지 짐작도 안되었지만, 나는 그때까지 그들에게서 시선을 떼놓지 못하고, 이제는 한 1m 쯤 남은 그들 사이의 간격을 좁혀가고 있었다. 일순 남자의 시선은 나에게 향했다. 여자는 애초에 내가 걸어가는 방향의 반대쪽으로 등을 돌리고 있었기에 나를 발견하지 못했다. 키스를 나누는 남자의 눈은 시선을 떼놓지 못하는 나의 눈을 진득하게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시선 또한 그들의 머리칼과 마찬가지로 물에 젖어 번들거렸다. 나는 당혹스러워 눈길을 피했다. 그럼에도 그들 사이의 거리가 20cm 정도밖에 남지 않았을 때 나는 그들을 응시하려는 욕구를 억누를 수 없었다. 고개를 들고 바깥 라인을 쳐다보았다. 남자의 시선은 여전했다. 그는 내가 고개를 들 때까지 쳐다본 것일지, 해소되지 않는 의문을 뒤로하고 이제는 정말 그들 사이를 지나쳐가려 할 때, 남자의 손은 움직였다. 그는 자위를 하고 있었다. 여자는 지나치게 키스에 몰두해 알아채지 못하는 듯 했다. 남자는 나를 응시하며 바지로 덮힌 그곳을 만지작거렸다. 성 도착자로는 보이지 않는, 조금 어둡지만 훤칠하고 깔끔한 그는 그렇게 자위를 했다. 나는 곧장 고개를 돌렸다. 내 볼은 안 달아 있었다. 그저 당혹스러움으로 조금 황당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장막 하나를 덮어씌워놓은 지극히 부자연스러운 광경에서 그 어느 때보다 현실적인 사람들이었다고 여겼다. 그리고 나는 계속해 걸음했다.

그를 다시 만나게 된 건 학교에서였다. 그 남자는 우리 반으로 온 새 전학생이었다. 이름은 타이시 카토였다. 카토는 나를 알아본 듯 아닌 듯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줄곧 나를 바라보았다. 분명 오차는 없이, 비 오는 날 자신의 연인과 싸우다 키스했던 그 남자였다.

"뭐지?" 카토는 가위표가 붙지 않은 매끈한 얼굴으로, 멀겋게 나를 쳐다보다 말했다. 눈은 전구 바로 아래인듯 푸르스름하고 거무스름하도록, 너무 빛나고 따사로웠다. 내게는 햇빛보다 더했다.

나는 되물었다.

"응?"

"이름이 뭔데?"

"이시다 쇼야야."

"너 나 본 적 있구나?"

나는 알지 못할 답답함이 해소된 느낌을 받으며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럴 줄 알았어. 그날 비오는 날에, 산책할 때 우릴 봤지?"

"응."

그는 아주 재밌는 표정으로 웃었다. 그리곤 내 손을 끌어 짧은 순간에 부여잡았다.

"이걸 보면서 내가 뭘했는지 기억나?"

"뭐?" 그의 말은 꼭 단순한 구조로 이루어졌지만 해독하기 버거운 상형문자 같았다.

"내가 널 보면서 딸딸이 쳤잖아."

큰 소리였다. 나는 나의 미간이 살짝 오므려지는 것을 느끼며 앉아있을 뿐이었다.

"기억 안나?"

"기억나."

"이상한 소린데 그날은 그 여자애랑 그냥 싸우고 싶어서 싸웠을 뿐이었어."

"그래."

"그러니까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잠깐만. 우리가 왜 그랬는지는 궁금하지 않지? 비가 오는 날에."

나는 궁금하다고 대답했고 왜 그들이 꼭 그래야만 했는지 알고 싶다고도 말했다.

"그 여자애는 키이로인데, 그다지 중요한 사람은 아니야. 우리 둘 다 단지 서로의 얼굴을 보고 일상적이고 범속적인 것에 조금만 화가 치밀어서 싸우고, 그러다가 갑자기 키스했을 뿐이야. 정말 웃겨. 남한테 이렇게 털어놓는 것도, 우리가 그렇게 제멋대로 끌어안았던 것도. 우리는 어쩔 수 없거든."

"어."

"정말. 정말인데. 보기만 해도 싫어지는 여자야. 아마 그 애도 날 보기만 해도 싫어지는 남자쯤으로 생각할 거야. 나는 그냥 비 오는 날에 싸우는 감정적인 연인을 연출하고 싶었어. 성공적이었고 후에는 누군가 관람해주길 바랐어. 네가 왔어. 그래서 흥분했고 나는 어쩔 수 없었던 거야. 다야."

나는 약간 아리송한 기분으로 말했다.

"정말 이상해."

"그래. 확실히."

"그런데 꼭 자위를 해야했어?"

"정욕이 올라오면 그때그때 풀어야 해."

여전히 빛은 났지만 이제는 인간성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나는 카토가 담배를 피우듯 그 말을 뱉어내는 것을 포착하고는 나름의 연민을 느꼈다.

"그러면 피곤하겠어."

"아니,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만큼 피곤하게 하지 않아. 여자들을 많이 만나거나, 반대로 남자들을 많이 만나거나, 수용해줄 수 없는 일들으로는 내 좆을 만나면 돼. 엄마는 나더러 성 도착증이라 하지만 상관없고, 누가 뭘하든 그녀는 그렇게 병명을 붙여 환자로 만들 인간이니까."

그는 말을 한번에 쏟아내는 경향이 있어 듣는 이가 알아듣기 버거웠다. 나는 힘들었겠다는 말과 함께 호응해주었다. 카토는 자신이 항상 머금던 장난스런 표정을 한층 부풀린 채로 말했다.

"너랑 같이 점심을 먹고 싶은데."

"점심?"

"가져왔어."

카토는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가방을 뒤져 포장된 도시락을 꺼냈다. 비싸 보이는 스시가 나란히 담겨 있었다. 몇몇 것은 질이 좋아보이고, 참돔을 단정하게 얹어놓은 것도 더러 있었다. 그의 종잡을 수 없는 말들과 괴이한 성행위에 대한 불신은 사라지고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단지 호의감이 돋아났다. 이전 어느 책에서 먹을 생각밖에 않는 식충이라며 냉소하던 인물이 있었는데, 그게 나를 보고 하는 말인가 보았다. 그는 지식이 있었고 지식의 갈구보다 섭취의 갈구가 더한 이들을 경멸했다. 나는 잠시 몽롱해졌다. 햇빛의 따사로움이 발목을 근지럽도록 긁었다. 내게는 그를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말을 더듬는 아이보다 더 어렵게 대화하면 어떤가. 좋게 보면 해독할 재미였다. 우리는 아이들이 점심을 먹는 벤치로 나간 후 점심 메뉴 얘기를 좀 더 나누었다. 그는 생각 외로 잘 웃었다. 웃기보다는 이가 보이지 않게 입술만 끌어올려 비식거렸다. 나는 전갱이 튀김을 주고, 그는 참치 초밥을 주었다. 배 부분만 빼놓아 먹는 것처럼 부드러웠다.

"그럼 그 강간당한 애가 너겠네."

내가 알아듣지 못해 되물었다.

"이시다 쇼야. 너 맞잖아."

"어, 그렇지."

"특이하네. 너같이 아리송한 사람은 처음이야."

"내가 오메가인 것도?"

"그런 건 안 중요해."

나는 그에게 감탄하는 듯 보였다.

"와."

"왜."

"그런 사람은 처음 봤어."

그릇은 다 비워져가고 있었다. 카토는 젓가락을 만지작거리며 그것을 입술에 가져다댔다. 나도 얼마 없는 양의 끼니였기에 금방 먹어치웠다.

"담배 피울래?" 그가 제안했다. 주머니에 아무것도 없었다. 라이터도 없었다.

"있어?"

"아니. 갚을테니 사줘."

나는 곤란하다고 말하려다 삼켰다.

"여기."

그가 말없이 타스포를 건넸다. 카토의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나는 대수롭지 않은 심정으로 그것을 받아들고 교문 바깥의 담배자판기로 향했다. 럭키 스트라이크를 뽑고 카토가 있는 곳으로 가 그것을 주었다. 나는 다시 교실로 올라가 필통 안의 연두색 소형 라이터를 꺼낸 뒤 되돌아왔다. 그는 라이터를 받아들고 무료하단 태도로 그것을 딸깍거렸다.

"피워봤어?"

"마일드 세븐은 해봤어도 이건 처음이야."

"나빴다."

"타스포는 누구 거야?"

"내가 만들었어. 기사님 도움 받아서." 그는 그 말을 끝으로 담배를 물다가 기침을 했다. 미끈한 미간이 찌푸려지는 것이 포착되었다. 나는 의문스럽게 그의 비식거리는 입술을 응시했다.

"쓰고 매워."

달고 시원했다.

"안 피워봤어?"

"응. 이번이 처음이야. 다시 하고 싶지 않아." 카토의 입술에선 여전히 익숙치 못한 담배연기와 기침이 조금씩 흘러나왔다.

"너 진짜 이상한 놈이야."

기침이 섞인 목소리가 괘씸하게 말했다.

"나빴어." 켈록거렸다. "해보고 싶어서 부탁한 게 뭐가 이상해."

"익숙하게 부탁해서 처음이 아닐 줄 알았어."

"네게 잘 보이고 싶어서 그토록 피워보고 싶었던 담배의 처녀를 이번에야 땄다는 것도 이상해." 나는 두 눈을 연기 사이로 깜빡거렸다. 말이 자꾸 더부룩하게 나왔다. "굳이 날 위해서 그럴 필요 없어." "아니야. 넌 왠지 담배를 필 것 같았고 또 이러지 않으면 나랑 놀아주지 않을 것 같았어." "나 냄새 나?" "아니야. 냄새는 나지 않는데 담배는 피울 것 같잖아." "난 누구하고도 잘 놀아. 계란처럼 어디 가든 잘 끼어." 카토가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변태 같긴."

그런 소리를 대놓고 들어보긴 처음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려든..."

"성 도착증 환자가 할 말은 아니지만."

내게는 몹시 갑작스러운 말이 걸려들었다. 성 도착증이라고 한다면, 그때 산책할 즈음 공개적인 자위를 해댄 것도 어느 정도 납득이 갔다.

"어쩌다 그런 병이 생긴 거야? 어느 학교에서 온 거고?"

그러자 카토는 입꼬리를 죽 늘어뜨리고, 핏발이 선 눈으로 진지하게 나의 어깨를 끌어내렸다. 좀 전까지 비웃듯 비식이던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까 불과 1년 전, 생각해보니 6개월도 채 되지 않은 때 일어난 일이었는데, 그때 여자 하나를 만났어. 키이로보다 예뻤어. 그 애는 센터 시험을 보고, 졸업하거든 나와 동거하겠다고도 했어. 그랬더니 다른 남자랑 만났어. 나보다 키가 더 크고 허리 굵기가 아름드리 나무만 한 남자가 있었는데, 아마 좆도 더 큰 모양인가 봐. 그래서 그 여자애는 나더러 이해해달라는 뉘앙스로 말을 하더라. 그런 뉘앙스였는지 아닌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는 그 말을 듣고 체육관에 가서 다부진 야구방망이 하나를 빌렸어. 그리고 체육관을 나섰지."

"그래서?"

"그걸로 밤새도록 야구를 했지." 그는 내 어깨에 얹힌 자신의 손을 풀고 평소와 똑같은 표정으로 비식거렸다.

"그게 끝인가 보네."

"뭘 기대했길래?"

"네가 야구방망이로 그를 폭행하는 걸 기대하고 있었나봐."

"그래. 야구장에서 야구를 끝마친 후 그를 폭행했어. 피가 났고, 나는 교장실에 가 그곳에서 3시간 정도 엉덩이를 붙이고 있었지. 전학 온 것은 그것 때문이야. 그곳과 가까운 토치고등학교에 부모가 날 보냈어. 그것 때문에 소문도 퍼지고 다니기 곤란할 거라 생각했나 보지. 한번 더 시끄러워지면 군대식 학교에 보내겠다고 했어."

"..."

"나는 그들을 교육했고 부모님은 나를 교육한 셈이야."

"네가 안타깝게 되었어."

내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상관없어. 난 신경쓰지 않아."

"어떻게 그러지."

"다 거짓말이거든."

"뭐?"

"내가 즉석으로 지어낸 사건이야. 그런 일은 없어."

그가 비식거렸다. 하지만 진위여부는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후까지 노상 불분명했다. 나는 그 주 주말에 니시미야의 학교에 가 카토의 이야기를 했다. 담배 얘기만을 빼서 곧이곧대로 전했다. 야한 얘기를 할지 고민이었는데 그냥 그것까지 전했다. 그들은 멍한 표정으로, 꼭 카토의 가짜 이야기를 듣고 난 후의 내 표정처럼 우두망찰해 있었다. 나는 그 이야기와 카토의 태도가 익살스럽다고 느꼈다. 니시미야와 유즈루는 아닌 모양이었다. 그 애들은 좀처럼 익살스럽지 않고 되려 그때 내게 얘기하던 카토처럼 진지해보이는 낯이었다. 유즈루는 카토가 진짜 자신의 경험담을 늘어놓다가 내가 심각해하니까 농담이라고 수습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런 관점은 처음이야."

"그런 쓰레기를 보고 싶으면서도 왠지 그러면 안 될 것 같고..." 유즈루가 그러자 니시미야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걔가 왜 쓰레기야." 내가 물었다.

"왜긴 왜야. 야구방망이로 사람 패서 전학 왔잖아."

"거기까진 거짓말이야."

"거짓말이라고? 켕기는 게 있으니까 그렇게 급하게 농담이라고 얼버무렸겠지." 니시미야의 눈이 세로로 동그래졌다. "정말 그러면 몹시 비극적이야." 나는 엄마가 할 법한 말을 하고서 유즈루 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바보, 정말 그러면 너는 그 애를 피해야지. 안 그래도 휴식이 필요한 상탠데 그런 위험한 놈이랑 붙어있음 안되잖아."

"상관없어."

검은 머리는 쑥 아래로 숙여지더니 엉크러진 머릿결을 다시 꺾어 긁었다.

"남일처럼 보겠다 이거지."

"너 사진작업은 잘 되어 가?"

"그런 건 왜 물어봐. 잘 돼." 나는 유즈루에게 비오는 날 그녀가 찍은 개구리 사진을 봐도 되냐고 물었다. 멍든 시멘트 바닥에서 잠자듯 누워있던 개구리였다. 그녀가 줄이 길고 섬세하도록 목에 걸린 카메라를 손가락으로 훑으며 중얼거렸다. "그냥 찍은 건데. 아무 생각 없이." 아무 생각 없다는 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그냥이라는 것도 나는 잘 모르겠다. 내가 옅게 말했다. "나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떠올라서 보고 싶었어." 마치 성 도착증인 내가 아는 그가 그러듯 갑자기 하고 싶으면 했다. 마리아가 좀 더 크면 왜인지 그런 느낌일 것 같았다. 그 축축하고 미끄덩한 사진이 두 여자의 시야에 가로차자, 니시미야의 손짓은 어렴풋이 보여들었다.

'유즈루도 꼭 개구리같아.'

유즈루는 니시미야와 함께 따사로운 조명 아래 앉아 웃었다. 입을 늘리고 있었다. 지금껏 그녀의 동생이 담아온 어두운 사진들과는 대비되게, 나는 그것이 참 아름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윽고 니시미야는 금붕어 밥을 주겠다고 손짓하며 일어섰다. 나도 일어섰다. 그러자 유즈루의 눈은 한순간 멍해졌다. 어색한 시선을 삼키고선 나는 말없이 다리의 뒷목을 조금 긁어냈다. 내 생각엔 미묘했던 것 같았다. 그녀는 틀어올려 묶은 머리를 찰랑거리며 져가는 하루 속에서 빛났다. 우리는 물이 흐르는 다리로 갔다. 내가 자살시도를 했던 강물과 같은 곳에서 흐르는 것일지도 몰랐다. 색이 비슷했던 까닭이었다. 쇼코는 나를 응시하다가 문득 달이 예쁘다고 말했다. 분명 달이었던 것 같다. 나는 흐린 강물 속의 달을 흘끔거리며 정말 그렇다고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런데 쇼코는 그 말이 아니라고 했다. 그게 아니라며 손으로 가위표를 쳤다. 그럼 무슨 말이었어? 내가 묻자 이번에는 도리어 말없이 쇼코의 눈은 일그러졌다. 무언가 실수를 했나 싶었다. 그녀는 묵묵히 강물에게로 시선을 돌리다가, 후에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집에 갔다. 실수해서 마음을 상하게 한 것 같은데, 집에 돌아가며 돌이켜봐도 도무지 꼬리가 잡히지 않았다. 말대꾸를 좀 잘해줬어야 했나. 나는 나중에라도 물어야 하겠단 생각을 껴안고 조금씩 떨리는 마음으로 되돌아갔다.

나는 그날 꿈을 꿨다.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고개를 숙인 채 행진하고 있었다. 나는 뭔가 죄를 지었고 그래서 마을 사람들에게 내가 죄인이란 사실을 보여지게 하는 벌을 받았다. 죄명은 잘 기억나지 않았다. 나는 죄명을 제외한 모든 것을 뚜렷하게 볼 수 있었다. 내가 아는 사람들의 얼굴들이 스쳐 지나갔다. 관심없는 연예인의 얼굴도 섞여 있었다. 그들은 돌을 던졌다. 나는 극심한 부끄러움을 이유로 신화처럼 급히 녹는 날개도 달아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겐 누군가의 손이 내려준 망치가 수여됐다. 영화나 소설같은 극적인 전개라면 당장 휘둘렀을 것 사이로는 구역질나는 햇살이 따갑게 내리쬐였다. 나는 눈을 찡그리다시피 하고 고개를 돌리려 거듭 시도했던 것이다. 하늘에는 섬뜩한 햇빛이 가득했으므로 구름을 탓할 수는 없었다. 어이없는 꿈은 내가 몇번째고 그것을 휘두르며 사람들을 반대로 두어 허우적거릴 때쯤 깼다. 전화가 울리고 있었다. 나는 요를 밀어내고 기어나와 그것을 집었다. 카토가 건 것이었다. 전 날 그와 번호를 교환했다. 나는 피곤한 목소리로 물었다.

"왜 전화했어?"

"그냥 하고 싶었어."

나는 한쪽 손가락을 버튼에 올려둔 채 잠깐 침묵하다가 말했다.

"너 원래도 이래?"

"네가 생각하는 대로."

"끊어." 내가 짧게 눌렀다. 학교에 와보니 카토가 보이지 않았다. 스쿨백을 보니 왔단 흔적은 있었다. 나는 나카츠카와 함께 1층의 한산한 교실로 내려갔다. 우연히 그가 꺾어지는 모퉁이를 조금 지난 구석 쪽에서 어떤 남학생과 키스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알파 냄새가 코를 찔러 참기가 힘들었다. 그대로 발걸음을 돌리려 했으나 남학생의 눈에는 내가 보여졌다. 그는 소리를 지르고 빠르게 화장실 뒤켠으로 숨어버렸다. 아침에 일어나는 순간부터 나는 내 주위의 환경이 줄곧 특정한 막을 씌운 것처럼 이상하단 자각을 했다. 그러나 그런 자각도 터지듯 사라졌다. 금세였다. 나는 피곤한 정신을 느끼며 카토에게 무슨 말을 건넬지 잠시 고민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생각이 안 나서 그저 멍하니 바라봤다. 눈이 깊고 막은 아랫부분이 실핏줄이 흔하게 그러듯 터져 있었다.

"둘씩이나 왔네. 뭘 할려고."

그는 미묘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평소처럼 마냥 미묘하게 비식거리지 않았다.

"꼭 네게 뭔갈 하려고 온 건 아니라고. 그런데 도대체 뭘 하는 거야! 봐버렸어. 둘이서 온 힘을 다해 혀를 섞으며 키스하는 거. 엄청난 딥키스였지..." 나카츠카가 말했다.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네. 다시 저 애 좀 불러 와봐."

"여기서 그냥 가지 그래."

카토는 무시했다.

"내가 왜?"

"너희들이 오자마자 도망갔으니까."

"그게 꼭 우리 때문이라고만..."

내가 빠르게 카토에게 말했다.

"알았어. 다시 여기로 오면 되지?"

나는 나카츠카에게 굳이 올 필요 없다곤 하고 혼자 화장실에 들어가 카토의 입맞춤 상대를 설득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눈을 바닥으로 내리깐 낯으로 또 도망쳐버렸다. 이어줄 생각은 없었으니 상관 없었다. 카토는 그사이 자신의 반으로 되돌아가고 없었다. 아무래도 다른 중요한 성행위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게 되게 자조적이라고 생각했다. 갑자기 야동에서 봤던 장면들이 머릿속에서 연성되었다. 그건 격렬하고 보다 동물적이었다. 야동은 남창인 친구와 친해지며 막 접했던 것들이었다. 쟤 요즘도 딸딸이를 칠까. 내가 중얼거리자 옆에서 멍하던 그가 입을 지퍼 모양으로 다물었다. 좀 전까지는 헤벌렸던 구멍이 보기 좋게 튼실거렸다. 문득 나카츠카가 왜 그는 항상 자기 멋대로 행동하냐고 그랬다. 나는 그 이유를 모르겠지만 그의 말은 사실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자기 멋대로고 개선의 여지가 있지만 줄곧 불확실하게 살아왔던 것이다. 그것은 나나 다른 이들에게 여러모로 좋지 않은 방향으로 인식되었다. 뭐야. 저렇게까지 하는 걸 보니까 너나 쟤나 완전 발정기잖아. 그가 비웃는다기보다 측은한 말투로 우리를 뭉뚱그렸다. 그럼에도 나는 자기가 하고 싶을 때 하고 안하고 싶을 때 하지 않는 카토가 괜찮게 느껴졌다. 남녀노소를 가라지 않고 야한 말을 하거나 섹스하는 것도 이따금씩 곤란했지만 괜찮았다. 외려 그가 가끔씩 끼고 다니는 남자들에, 여자들에 동질감을 느껴서 그가 더욱 좋아졌는지도 몰랐다. 나는 최근 들어서 더욱 새로운 남자들을 많이 만났고, 학교가 끝나 시간이 나면 가끔 어떤 상대나 골라서, 대개 친구의 친구로 이어지는 그들과, 섹스하는 것이 일상으로 굳어졌던 까닭이었다. 목표는 항상 변함없었고 그저 간단했다. 카토가 소개시켜준 여자와 섹스를 하고 그가 알려준 남자들 혹은 여자들과 또 연결돼 러브호텔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게 시작이었던 것이었다. 늘상 부탁하는 구십구 퍼센트의 메이지 초콜렛을 사주면 내가 피워 먹고 이브 생 로랑을 사주면 그것 또한 피워 먹었다. 나와 하고 싶은 감각이었다. 나카츠카 말이 맞았다. 거기서 피어오르는 내용은 전부 같았다. 옷을 벗고 침대로 가서 입맞추고 섹스했다. 콘돔은 주로 내가 샀다. 내가 섹스하는 동안 카토도 여자 혹은 남자와 침대에서 나보다 열정적으로 몸을 섞었다. 그러면 몸이 쉽게 달았다. 히트사이클에는 더 참을 수 없어지기야 했지만 굳이 그런 기간이 아니어도 따듯해지는 게 빈번했다. 뭐든지 함께하는 것이고자 하면 쉽게 달아버렸다. 불완전한 발정기 특유의 염분 있는 홍조를 매달고서 줄곧 허덕였다. 나는 카토처럼 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어쩌면 용기였다. 학교에서 끼고 다닐 것처럼, 그렇지만 나에게는 그만큼 감수하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그래서 코치님과는 마지막 만남 이후 데면데면했다. 그가 보기 싫은 까닭은 아니고 냄새를 알아챌까봐 그랬던 것이었다. 오메가 냄새, 담배 냄새, 남자 향수 냄새 등이었다. 가끔 비린 냄새도 났고 거기엔 알아채면 귀찮아질 부속품이 담겨 있었다. 예를 들면 그가 언급했던 발정기 같은 것들이었다. 나는 그즈음 나카츠카가 학생영화제에 출품할 영화를 만든다고 해서 학교 근처 공원에 모였다. 사실 영화를 만들겠다는 목적은 없어지고 얼굴을 한번씩 보자는 목적으로 변질된 만남이었다. 카토가 걱정이 되었어도 나는 친구들을 불렀다. 토치고등학교 학생이든 외부의 학생이든 상관 없었다. 그래서 니시미야, 우에노, 그녀의 친구이자 이 학교에 다니는 카와이, 스미히토, 톳코타이, 카토의 여자친구인 에다마메가 와 있었다. 유즈루는 다른 사정이 있다며 오지 않았다. 나는 약간 늦었다. 섬찟한 햇빛이 하늘에 가득했으므로 몸은 조금 달아 있었고 상태가 좋지 않았다. 카토와 함께 밀착해있는 에다마메와는 이미 만난 적이 있었다. 개수대는 더러운데도 불구했다. 손수건으로 부채질하는 손길은 내게 일말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스미다 강 부근의 호텔에서 그녀와 섹스했던 게 문득 생각났다. 당연하게도 카토의 소개로 연결지어 만났던 것이 섹스파트너가 아닌 술 파트너로 이어지고, 그게 연장이 됐던 관계였다. 처음 봤을 때는 이상한 줄로만 알았으나 생각보다 괜찮았다. 잠자리 사정과는 철저히 별개의 일으로 그녀는 인간적으로 친해지기에도 아주 매력적이었다. 아무래도 그녀는 베타였고 좆을 박는 나는 오메가였으니 섹스는 서로에게 충분히 만족스럽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때 늦은 파티에서 프랭크 박사와 자넷 흉내를 내며 영화를 보고 후르츠 사와를 나눠마셨다. 사진을 찍었어야 했다. 왜냐하면 나는 자넷이었다. 선택의 까닭으로는 에다마메는 더 화려한 것을 선호했다. 오래된 포르노 영화 같은 벨트 옷은 화려하고 다채로운 인조 종이로 물들어 있었다. 우리는 술을 마실 때면 서먹한 사이가 되지 못했다. 어떻게든 붙었고 서로를 밀착해 일을 벌이기를 즐겼다.

"그걸 다시 입을까?"

니시미야는 가만히 앉아있었고, 카와이와 우에노는 간만에 대면해 신이 나 있었다. 나는 에다마메를 껴안았다. 오늘은 그렇게 일반적인 거리를 두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따뜻한 기운이 번지는 기분이었다. 그녀의 웃음 아래로 카토와의 비 젖은 만남이 얼핏 스쳐지나갔다. 나는, 그냥 그러면 기분이 좋아져. 깡말라 얄팍한 손목이 부드럽게 꺾여들어갔다. 일순 몇 차례의 꾸물거림 뒤 카토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손가락을 만들어 보이며 말했다. 요즘도 야외 자위를 하진 않아. 조금씩 웃는 표정으로 반동하는 고개에 따라 긴 머리칼이 쓸렸다.

"넌 희귀한 케이스야."

내가 뭐가 그렇냐고 묻자 카토는 보통 그런 일을 겪으면 그렇게 음란하지 않다고 말했다. 내가 달은 숨소리를 가라앉히며 그 말을 소화시켰다. 뭐라고 말대꾸를 하고 싶었지만 실력이 되지 않아 그냥 가만히 있었다. 에다마메는 솔직하게도, 호텔에서 얌전하게 섹스하는 나보다는 야외에서 관음 자위를 하는 카토가 더 이상한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그러자 요점은 바뀌어 그녀와 그의 이상한 섹스 취향을 발각시키는 겨루기가 되었다.

"어머, 웃기고 있어. 그러면서도 너랑 여자친구랍시고 어울려주는 나를 고마워해, 새끼야."

내가 보는 연인들은 그렇게 이상한 걸로 자주 싸웠다. 전화기를 협탁에 두고 나랑 섹스했던 한 연인도 그랬다. 나중엔 그걸 집어들어야 했었다. 보기에도 충분히 익살스러웠지만 그때쯤 내 상태는 과히 좋지 않았다. 에다마메가 내 홍조를 거론했던 것이 마음에 걸리기도 했다. 그러다가 러브호텔이라도 들르겠어. 그러다 저번같은 망신을 당하면 내 정신에 별로 좋지 않았다.

"이것 봐, 누가 더 진득하게 달라붙으려 하는지만 알아도 누가 더 아까운지는 딱 보일 것 같은데. 그렇지?"

원래 저런 말들이 많이 오고가나 싶었다. 딱히 타격도 없어보이고. 싸우기도 유치하게 싸워서 어린이들 같았다.

"싸울 거면 둘이서만 싸워라."

"왜 이래? 대답이라도 해!"

"오늘은 별로야."

나는 피곤함을 느끼고 니시미야에게로 되돌아갔다. 몸이 잦게 달으니 이상한 일이었다. 히트사이클도 아닌 것 같았다. 감이 그랬다. 주머니들에 손을 찔러넣어 뒤적였다. 아모크, 아모크,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는 단어를 불시로 중얼였다. 그게 억제제를 표현하는 다른 수단처럼 느껴졌던 까닭이었다. 왜일지 모르겠다. 까끌한 표면이 한손에 쑥 들어가도록 튼실했다. 나의 것들은 자꾸만 엎어졌다. 억제제는 받아서 구비되어 있었으나 굳이 복용할 때는 아니었다. 그녀가 손짓을 건넸다. 염려였다.

'왜 그래?'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을 함축해 고개 저었다.

'어디 아파?'

나는 수화로 오늘은 그만 가봐야 될 것 같다고 대답했다. 짧은 손짓이 스쳐지나가고 그녀는 아쉽다는 눈길을 선연하게 비추어왔다. 오늘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도, 니시미야와 그날 밤 다리에서 했던 말의 여부를 물었어야 했다. 안 그래도 그때 회포를 풀지 않아 찝찝한 감정이 배어있었는데, 우습게도 뒤돌고 나서야 생각이 났다. 그것이 아쉽게 되었다. 발걸음을 돌리고 한창 여자에게 영화기술을 설명해주느라 바쁜 나카츠카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먼저 돌아가겠다고 알렸다. 그 말은 예정되어 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튀어나왔다. 사실 거기에 더 남기를 바라지 않았던 까닭이 더 컸다. 그런데 왜 그런단 말인가. 단지 발정기이기 때문이라면 말이다.

왜 이러지?...

나는 자각할 수 있었다. 강렬한 욕구가 일었다. 내 육신이 바라는 것은 고답적인 정사 그 하나 뿐이었다. 그 또한 찰나의 착각일 수 있으나 나는 섹스를 하고 싶었다. 성기는 근질거렸고 남자의 손길에 맡겨지든 내가 그를 끌어안아 감싸든 수동적인 방식이든 능동적인 방식이든 살결을 체득하고 욕망을 감득하고 싶었다. 나는 그때 왜 즐기지 못했을지 돋아난 의문, 그 끝의 답은 자명하면서도 끝내 나는 나의 육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도 정확히 몰랐다. 대충 섹스겠거니 한 생각은 오메가의 발정기라는, 히트사이클이라는 지엽적인 대화로 뭉뚱그려지기 일쑤였다.

나는 두텁게 전화기를 들었다. 얼추 건 전화, 얼추 맞던 상대, 얼추 비슷한 시간대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을 골랐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남자였다. 친구네 집에서 자고 간다고 알린 후 급하게 근처의 모텔로 발걸음을 옮겼다. 발으로 내는 쓴 웃음의 끝은 질퍽했다. 이제는 서두르려고 하는 나를 마주하며 불현듯 불편해졌다. 이 두터운 지반 속에서 해방이라는 글자가 보이지 않았다. 화려한 전광판이 보였다. 몇번이고 해체되어가는 기분은 관계를 맺을 순간마다 여러 번 겪어보았다 한들 그 때마다 내게 패이는 듯 여겨져 여간 낯선 감각인 것이 아니었다. 한산하게 빈 홀에서, 나는 보다 큰 몸짓으로 닳은 어깨를 감싸는 남자를 마주할 수 있었다. 치기로 무장한 어린아이는 아니어도 그가 충족할만한 충분한 양가적 감정을 품는다. 고드름같은 손아귀를 얹힌 채 카드 키를 쥐고 떠났다. 주머니는 불룩했다. 타스포에서 뽑은 실크컷이 들어있을 것이다. 비비고 물으며 숨을 죽였다. 나는 언제나 모든 사람들과의 오락적인 경험에서 그랬듯이 한껏 수축하고 있었다. 익숙해질만도 한 일이 아직도 내 마음 속에서 새롭고 낯설었다. 그래서 나온 결과는 수축되었고, 거기다 구부리며 자신을 숨기는 심장이었다.

"생각보다 어려보이네."

맛있는 음식을 눈앞에 둔 사람처럼 나는 말없이 침만 삼켰다. 목이 떨렸다. 어깨며 허리를 차근차근 뎁히는 손가락 사이는 여전히 고드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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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2-06-06 22:15 | 조회 : 983 목록
작가의 말
구운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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