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씬 포함) 목소리의 형태 (10)

나는 그 만남 이후 일주일 후에 시마다를 만나러 갔다. 유원지로 가기는 돈이 아까워서 그냥 집에서 만나자고 했더니 그가 수락했다. 그래서 장국을 미리 끓여놓고 얇은 계란프라이를 만들었다. 모두 금방 요리해 따끈따끈한 상태였다. 그는 그것을 보고는, 양 눈살을 잠시간 찌푸리며 말했다.

"쥐코밥상이네 이거. 계란말이도 못 만들어?"

달리 무슨 대꾸를 해야할지 몰랐다.

"맛은 좋을걸."

"아니. 기름 냄새가 이렇게 진동하는데? 이런 간단한 거 하나도 못 만들고. 니네 어머니는 잘 만들었는데 너는 왜 못하냐?"

"그런 건 유전이 아냐."

"너희 누나는 어떤데?"

"나보다 나빠."

"아니야. 그 누나가 전에 만든 가자미 튀김은 진짜 최고였잖아."

"그거 엄마가 만든 거야."

"내가 그걸 6년 동안이나 몰랐을 거라고 생각하냐?"

나는 불현듯 시마다를 노려보며 말했다.

"주는 대로 먹어라."

"어. 봐봐. 옛날 성질 나온다."

기분이 불편해졌지만 계속 씹었다.

"무슨 옛날?"

"네가 강가에 자의로 뛰어들 때."

그리고 재밌다는 듯 웃는 것을 내가 고개를 들고 빤히 쳐다보았다. 모르진 않았구나 싶었다. 자의가 아닌 오롯이 타의로 뛰어들었다는 걸. 뭘 봐. 발을 툭 쳤다. 나는 그대로 고개를 박고 국을 떠먹었다. 식탁 밑에선 발이 자꾸 닿아왔다. 내 오른발을 밟아 간지러운 곳을 못 긁는 사람처럼 줄곧 꼼지락거리고 있던 것이다. 나는 그것을 알고도 가만히 있었다. 피곤했던 까닭이었다. 더군다나 식사 후에 가질 시간을 위해 조금 허겁지겁 먹고 있었다. 시마다는 못마땅하다는 듯 발을 툭 내쳤다.

"좀 천천히 먹어라."

"무슨 상관이야."

"형이 챙겨주잖아."

어이가 없어서 웃고 나서 뱉었다.

"지랄이야."

빠르게 숟가락을 놀렸더니 가득 찼던 밥그릇은 어느새 거의 전부 비워져 있었다. 나는 주머니 속을 뒤적거리며 조그만 베란다로 향했다. 바람은 시원하게 불었다. 문득 뒤편에서 간지러운 인기척이 닿아왔다. 그리곤 내 허리를 가볍게 쳤다. 이상했다. 과거 타령을 자꾸 하면서 오늘은 왜 이렇게 호의적인 태도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마치 우에노를 막 재회했을 때 같았다. 그도 아무래도 우에노와 같은 마음인 듯 보였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유원지에서 내게 전했던 것처럼 말이다.

"또 이상한 생각 하지?"

내가 두 눈을 피곤하게 치떴다. 야한 영화를 볼까, 과일을 가져올까. 둘 다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나는 다락으로 올라가 영화를 틀었다. 활극 같은 느낌의 에로영화를 관람하며, 나는 담요 속에 파묻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시마다는 말을 엄청나게 많이 했다. 신음소리며 몸매에 관한 불평, 또 요즘 AV에 대한 논평, 제작업체나 배우의 게으름과 이쪽 업계의 장단점 등을 늘어놓았다. 그것을 들으며 순수한 생경함을 느꼈다. 나는 그가 아르바이트하는 모습을 처음 봤을 때 다시 이런 상황이 올 수 있으리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다. 경계심이 왕성해 보였던 까닭이었다. 하기사 원래 이런 애였다. 특정 분야에만 말이 엄청 많아졌다. 우리 집에서 AV 볼 때도 네가 이랬었느냐고 묻자 그는 그런 것 같다며 가볍게 대답했다.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그렇게 좋았던 기억은 흐릿하면서 중학교 때 기억만 선명한 것이 새삼 웃겼다.

"근데 요새는 여기서 자냐?"

그가 문득 일어섰다. 내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그는 어지러운 방 안을 헤쳐 요가 깔려진 뒤켠으로 향했다. 일순 그것의 마지막 모습을 자각하며 순간적인 불안이 밀려왔다. 안되는데. 땀에 찌든 요, 널브러진 스타킹, 경구 피임약과 젖은 콘돔 따위가 뒹구는 그곳에서는 안됐다. 피에 진득하니 선연하게 물든 그것을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마다는 별다른 티를 내지 않고 담배한 개비를 꺼냈다. 이에 나도 dvd는 엎어두고 그 애가 있는 쪽으로 갔다.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임시로 자는 공간은 역시 정리가 안 되어 더러웠다. 여기에 담배 냄새까지 더해지자니 그가 아닌 다른 사람 앞에서 보여주기 불가능할 정도였다.

"창문 좀 닫아."

내가 말하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은 그가 천천히 쪼그려 앉아 널브러진 스타킹을 들어올려 보았다. 그리고 연기를 내뱉었다.

"이 미친 남창 새끼."

켁켁거리며 웃는 소리가 났다. 문란한 흔적을 보았다 한들 어떻게 그리 빨리 남부끄럽게 칭할 수가 있을까. 이에 내가 비틀거리다시피 걸음을 옮기며 그곳으로 시선을 주었다.

"이건 또 뭐야?"

"여장하는 거 아냐."

내가 뱉어버리듯 재빠르게 말했다.

"뭔 소리야. 찔렸어?"

제 발로 꼬리를 밟았다. 시마다는 고개를 주억이는 나를 보며 또다시 엄청나게 웃었다. 그 특유의 켁켁거리며 목이 막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제법 우스운 모양이었다.

"너 정말 이상하네. 내가 옛날부터 봐와서 그런가. 뭐 지금은 오메가라니까...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여자 왔나 보다, 하고 생각하지 누가 여장이라고 생각하냐고, 걸레 새끼야."

"걸레니 남창이니 그렇게 그만 불러."

"왜 싫어?"

"그렇게 듣고 기분 좋을 사람 어딨어."

"너같은 새끼들."

그렇게 말하며 내 쪽으로 다가오길래, 후에는 바지에 얼굴을 붙이다시피 한 형국이 되었다. 내가 그를 내려다보았다. 오기 전에 술이라도 한 잔 했는지 기분이 몽롱하게 좋아보였다. 그게 이상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점차 표정이 굳어졌다.

"그만 웃어."

"알겠어 표정 풀어. 그만 쳐웃어. 약속이야."

그제사 조금 멍하니 있었다. 시마다는 나조차 민망할 지경으로 한참 동안 내 바지 지퍼 쪽을 쳐다보았다. 담배가 그 쪽에 닿을까봐 긴장하느라 다리에 경련이 올 것 같았다. 시선도 노골적으로 빤해서 더 그랬다.

"뭘 그렇게 봐."

"너 좆 좀 컸는데?"

"미쳤나 진짜."

"형님이 네 고추 좀 보자 오랜만에. 수영장 다닐 때 빼고는 본 적도 없는데. 그때 하도 오래되가지고 기억이 희미하긴 한데 크긴 컸나 보네. 지금도 이 정돈 거 보니까."

손이 닿아왔다. 시마다는 담배를 입에 물고 엉덩이 쪽의 바짓단을 마구 쥐어 당겼다. 내가 머리를 계속해 때려도 떼내어지지 않았다. 외려 더 붙어오더니 마침내 지퍼까지 내려지고, 후에는 팬티까지 훌러덩 벗겨져 있었다. 오메가가 쓸데없이 크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뭐하는 거야."

"..."

손이 붙들려 부들부들 떨렸다. 내가 그것을 제지하려고 움직여대어도 쉼없이 제자리로 돌아오기 일쑤였다.

"섰다."

그가 배시시 웃었다.

섰으면 어쩌게. 말이 목끝까지 올라왔다. 성기가 외부의 공기에 노출된 채 우뚝 서 꼭 붙들린 내 손처럼 가쁘게 떨렸다. 이렇게 마주하는 것이 새삼 오래간만이었다. 씻을 때는 너무 빠르게 지나가버렸고, 섹스할 때도 급히 빨리빨리 지나가길 바랐던 성기가 이 어이없는 상황에서 이토록 길게 지속되었다. 담배 연기가 닿았다. 차라리 중학교 때처럼 얼굴에다 한 모금 뱉지 이건 그때보다 더 심한 강도라고 생각될 수준이었다. 그때는 신체적인 폭력만 존재했지 성적인 접촉은 전무하다시피 했으니까. 지금은 이러다 오랄이라도 할 것 같았다.

"조금 참아."

어디에 지졌는지는 말하지 않겠다. 이후 빈 캔 속 꽁초가 떨어졌다. 시마다는 별 말 없이 꽁초를 정리해버리곤 내 성기를 바라보다가 햝았다. 불현듯 고개를 들어 벌어진 일이었다. 그리고 입 안에 넣었다. 넣고서도 계속 바쁘게 혀를 놀렸다. 쉬이 멈추지를 않았다. 오랜만에 오는 성기의 자극에 기분이 좋아졌다. 여자 혀보다 까끌하고 거친 점은 불편했지만, 나중 가서는 그것도 성감대로 오는 자극으로 변모해버렸다.

"아...아."

머리를 잡아야 할까. 잡을 수 없었다. 그렇게 깐족거렸는데 뭐가 문제일지 잠깐 생각했으나 역시 그러기에는 두려웠다. 그즈음도 이때와 같았던 것이다.

"자, 잠깐만, 너무 여기가..."

미묘한 관계 사이에서 양손도 어찌할 줄 모르고 멍청하게 꾹 오므려가며, 때로는 뻣뻣하게 펴가며 시마다의 머리엔 손끝도 대지 않았다. 침을 삼켰다. av를 볼 때도 그러더니 야한 걸 볼 때마다 그런 신체적 반응은 버릇 수준이었다. 목이 아파왔다. 펠라를 받는 사람은 정작 나인데.

"아...! 으...읏..."

입을 떼고 혀를 벌리는 과정에서 보이는 정액이 내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못할 정도로 많았다. 급격하게 기분이 좋았다. 남자랑은 한번도 안 해본 것 같은데 너무 잘했다. 짜증이 날 정도로 잘했다. 미묘하게 성이 풀리지 않는 부분을 다 커버해줄 정도로 그랬다.

"어으 씨알. 오 이러케 마이 싸..."

"괜찮냐?"

그러고서 바로 입을 헹구러 가길래 뭔가 싶었다. 사실 뭐라도 해본 게 아닐까, 무슨 경험이 있다던지. 의문감에 나는 화장실로 향하는 발걸음을 따랐다. 거기서 멍하니 서, 입을 헹구는 그를 도우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너 좆 한번도 안 빨아봤지?"

"어. 어떻게 아냐?"

"반응이 좀 이상해서 혹시 싶었는데. 여자한테만 해주는 애가 펠라를 이렇게 잘한다고? 너 처음 해보는 거 맞아? 진짜로?"

"맞다니까. 나 잘하나?"

시마다는 홀로 해맑았다. 그것이 참 심란했다. 사실 심란할 이유도 없는데, 그 애가 먼저 자처한 것이긴 하지만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기긴 할 것 같았다. 스이몬 초등학교에 재학할 때 겪어본 결과로, 그 놈은 입이 가벼웠다. 풀이라도 발라야 했다.

"이런 건 말하고 다니진 않겠지."

내가 떠보듯 내뱉었다. 사실 내가 원조교제를 하든 원나잇을 하든 남들이 뭐라하건 가족에게 알려지는 것만 아니면 좆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가 이제사 이러는 건 좀 이상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시마다와 이러는 건 정말인지 부끄러웠다.

"그리고 잘한다고 무조건 좋은 게 아냐."

"하긴 너 존나 싸대는 거 보니 걱정되긴 해."

또 기분 좋은 웃음이었다.

"근데 왜 해준 거야."

"왜."

"그렇게...역겨워하는데. 또 넌 여자하고만 하는 것 같은데."

"그냥 궁금해서 해봤어. Av 봐서 꼴리기도 했고. 오메가랑 베타 사인데 역겨울 건 또 뭐가 있어."

"..."

정말 신기했다.

"신기한데 근데? 왜 씨발 이 새끼일까 내가 하필? 여자하고만 하는 거 진짜 맞거든."

저 혼자 갸우뚱하며 자문자답을 했다. 원래부터 남자를 무의식적으로 좋아했던 것이 분명했다. 그다지 예쁘지도 않은 남자인 나와의 성행위를 용인하다니, 더 예쁜 동성 연예인을 좋아해본 적이 있을 거란 확신이 생긴 것이었다. 남자 오메가가 다른 베타 남자나 알파 남자의 정체성을 쉽게 깨부수는 경우를 많이 봤지만, 내게는 그럴만큼 큰 매력이나 사람을 꼬드기는 페로몬이 없었다. 나도 그 진짜 이유가 궁금했지만, 구강성교를 마치고 난 후로는 기운이 쭉 빠지고 말아 그저 건조한 투로 중얼거렸다.

"근데 왜 했냐."

"몰라."

오메가라서 그런가? 냄새 때문에? 시마다는 또 저 홀로 의문점을 표하며 그대로 화장실을 빠져나갔다. 그리곤 바로 피곤한 기색으로 더러운 요에 누워버렸다. 처음엔 만류를 하려고 했지만 그냥 그만두었다. 더러울 텐데. 하긴 어디서든지 쿨쿨 잘 자고 원체 잠도 많은 체질이라 이불 같은 것도 없이 그대로 거기서 눈을 감았다. 자나 싶었다. 머리 닿자마자 그렇게 바로 빠르게.

"여기서 자게?"

나는 내심 그러기를 바랐던 것 같다. 음? 그런 소리가 들려왔다. 어림 없게 눈이 다시 번쩍 떠졌다. 전화가 울리고 있었다. 그것을 받아들고는, 시마다는 불현듯 부리나케 일어나 섰다. 그리고선 언제 그랬냐는듯 머리를 만지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손에는 여전히 상대방이 기다리고 있는 전화였다.

"자고 가지 그래."

어느새 조금 굳어진 낯이 거울을 보다 말고 나를 돌아보았다.

"나 빼고 다 시골 올라가서 오늘 집에 아무도 없는데."

"그건 좀."

그가 비스듬히 요 쪽을 가리보았다. 이내 내가 거울을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피임약과 콘돔 따위를 급히 한곳에 쓸어모아 치웠다.

"여기 왜 이렇게 더럽냐. 그래. 그렇게. 치우고 좀 살아 새끼야. 중학교 때처럼 애들이랑 찾아가서 치워주기 전에."

어깨가 움찔했다. 마음의 변화는 별로 없었는데 신체가 먼저 그런 반응을 보인다는 게 신기했다. 그는 사람 좋게 웃으며 그 어깨에다 제 손을 얹었다.

"다음에 또 어디서 만나자. 내 번호 아직 있지? 나 먼저 하기 전에 연락하고."

"응. 가라."

"어. 여보세요?"

시마다가 먼저 뒤돌았다. 굳이 발걸음을 옮길 필요는 없었다. 늘 우리집 구조를 잘 알고 있으니 1층까지 수월히 내려가서 홀로 잘 나갔던 것이다. 급격하게 허전해진 나는 그대로 전화기를 꺼내들었다. 만나서 잘 수 있다면 누구든지 좋을 것만 같았다. 목록을 꾹꾹 내리다가, 적당히 일 없어보이는 한 사람을 골라 집으로 데려왔다. 순전히 홀로 잠들기 싫다는 이유로 기입하기에 너무 유치했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아저씨가 왔다. 요가 깔려 있는 자리는 어느새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다. 시마다가 왔을 때나 이렇게 할 것이라는 후회가 잠깐 들었다. 이윽고 남자는 비어있는 화장실로 돌아가 세수를 하고, 나는 빠르게 하의를 끌렀다. 좆이 조금씩 따끔거렸다. 공기가 새삼스럽게 차가웠다. 시마다와 있을 땐 별로 그러지 않았는데. 나는 한손으로 필요한 것을 전부 끌어모았다.

"가요."

약을 먹고 콘돔을 끼고 처음에는 내가 박고, 후에는 아저씨가 박는 식으로 섹스했다. 그렇게 길게 부대끼면서도 얼른 잠에 들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다. 페로몬이래봐야 상관있을 것 같지만 별로 신경 쓰이진 않았다. 최소한 누가 곁에만 있으면 잠은 잘 수 있다는 확신 뿐이었다. 나는 내 몸의 피로도를 더 높이려 입술을 문대듯 부벼갔다. 그러다 보니 정신이 없었다.

"후으..."

싸고 나서, 다 끝낸 후 기진맥진해 쓰러지다시피 잠에 빠졌다. 나는 손가락을 자주 더듬어가며 옆편에 뉘인 남자의 이물감을 확인했다. 그러면서도 묘하게 현실이라는 느낌이 없었다. 꿈과 현실의 경계를 부유하며 긴 시간을 이불이나 기대어 부비며 흔들려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인기척은 조용하게 일어서버렸다.

"어디 가요?"

내가 잠결에 거의 깨지 못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 짓도 그만해야 하는데. 이상한 소리나 하며 자기 지갑과 전화기를 챙기고 재빠르게 떠났다. 눈을 떴을 때 밖은 아직 어두웠다. 그러면 그렇다. 이내 혼자 자는 감각이 생경해 금세 깨어나버렸다. 베개에는 머리를 뉘었다 떼인 듯한 자국이 반듯하게 남아 있었다. 먼저 갔다. 문자를 보낼까 고민하다가 달리 할 말도 없어 그만두었다.

"아니..."

내가 머리를 쓸으며 중얼거렸다. 지겹다고 생각될 지경에 이르러서도 그만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결국은 이런 식으로 귀결되었다. 허황된 정사, 그러나 결코 후회할 수는 없을 따름이었다. 사실 후회야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몰랐다. 그렇지만 최대한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자기연민이 계속해 몰려왔다. 언제나 다음을 기약하며 사람이 쉽게 바뀌지 않는 것을 체득하는 것만큼이나 기분 나쁜 일은 없다고 여겼다.

그 다음주 주말의 일이었다. 어느새 새해가 밝아왔다. 성인식을 앞두고 성탄절이 매우 빠르게 지나갔던 탓이었다. 마침 나카츠카는 영화제에서 자기가 낸 작품이 우수작으로 선출되었다며 아주 좋아했다. 거기에 나도 잠깐 나오는 것을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하기사 12월은 급히 꾸린 팀이 얼레벌레 그 영화를 같이 작업하는 것으로 흘려보냈으니 말이다. 그것도 그것인데, 최근 주위의 사람들은 코앞까지 밀려온 성인식을 준비하느라 바빴다. 센터시험을 앞둔 학생들도 새 기모노를 장만하러 이런저런 옷가게를 돌아다니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다만 우리집은 예외였다. 누나도 성인식에 딱히 참여하지 않고 졸업을 했는데 이제사 나만 차려입으면 좀 억울하단 이유였다. 억울하단 생각은 없었지만 부러워보이긴 했다. 마침 니시미야가 성인의 날 가족들과 함께 동네 공원에 모여 불꽃놀이를 구경한다고 해서 그런가 보았다. 하긴 내가 무슨 기모노인가 싶었다. 객관적으로 키가 크긴 하지만 멀대같이 크기만 한거니까 별로일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보기에도, 그 애에게는 기모노가 썩 잘 어울렸다. 듣기로는 할머니께 물려받은 것임에도 외려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서 더 아름다워 보였다.

''네 건 안 입어?''

눈을 여기저기 묻힌 옷차림인 니시미야가 선명한 입김을 내쉬며 물었다.

"나? 너무 비싸서."

''그럼 오긴 오는 거야?''

"아니...미안하다. 그렇게 됐어."

실제로도 기본이 수십만엔이니 너무 비쌌다. 물론 피곤해서 그런 것도 있고, 그냥 평범한 옷을 입고 가도 됐지만 아무튼 그런 이유가 제일 컸다. 그런데 내가 그런 말을 내뱉자, 카토는 눈이 동그래져서는 자신이 기모노를 손수 사주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대여라면 모를까 그렇게 만들기 힘든 걸 새로 맞춘다고? 됐어. 어차피 한번 입고 나서 또 입을 일 없을 거..."

"없긴. 너 장가 안 가냐?"

"안 가."

내가 잠자코 볼을 혀로 부풀리며 대꾸했다.

"원래 저렇게 말하는 애들이 제일 먼저 하던데. 오메가들은 더 가기도 쉽고 하잖아. 어차피 그날 할 것도 없이 집에만 있을 애가. 정 없으면 집에 있는 거 줄 테니까 입고 가라."

가기 싫다고 니시미야 앞에서 말할 수는 없어 알겠다고 답하자, 카토는 드디어 성미에 찬 듯 괴상한 웃음소리를 내며 웃었다. 웃더라도 조금씩이라도 웃지 매번 저렇게 별로 익살스럽지 않은 상황에서도 느닷없이 큰 볼륨이 터져나왔다. 저번에는 진지한 분위기에서도 나오키상 수상 작품들에 관한 얘기를 나누다가 저렇게 웃었다. 그리하여 니시미야의 양눈이 천진하게 동그래진 게, 이렇게 크게 웃을 줄은 몰랐다고 말하는 듯 해 내가 더 부끄러워졌다.

"왜 저러는 건지 이해가 안 되네."

그런 건 수화할 필요 없이 얼추 머리에다 빙글빙글 손가락을 돌려주면 의사 전달이 확실하게 되었다. 쇼코가 목도리를 끌어올리며 큭큭 웃었다.

"근데 넌 주말에 뭘 했던 거야?"

그러고 있는데, 그가 갑작스럽게 물었다.

"뭘?"

"주말에 계속 연락이 안 되던데."

"주말에도 연락했냐? 뭔 일 있어서?"

"그냥. 이유 없었어."

''카토 너 이시다가 보고 싶었구나.''

불현듯 니시미야가 그랬다.

"아니야. 그냥 있었어."

"그런 걸 수도 있겠다."

"뭐가 그런 걸 수도...징그러우니까 그만해라."

''니들 서로 엄청 그리워했나보네.''

"왜? 남자 베타는 싫어? 호모잖아, 니."

내가 최대한 아프게끔 카토의 팔꿈치를 쳐댔다. 꺼릴 것이 없다는 말이 덧붙여졌다. 이내 껄끄러운 시선이 닿았다.

"쇼코도 있는데 그런 소릴 해야되냐."

"뭘?"

''아니야, 이시다. 난 괜찮아. 너 그런 성향이라는 거 이미 알고 있었어.''

"그래. 알겠는데..."

그러자 시마다에게 뭐라 내뱉을 것도 없이 절로 입이 다물려졌다. 솔직히 감출 생각은 하나도 없었고 이미 알고 있단 사실도 알았다. 내가 호모란 걸 모르는 게 더 이상했다. 다만 그 애가 그런 말을 내게 하니까 다소 적응이 안되었다. 고백을 하니까 오히려 이전과의 관계보다는 더 부끄러워진 까닭도 있었다. 예전에는 후회가 안됐는데, 이젠 그때 처신을 좀 잘하고 다닐걸 그랬다면서 돌이켜보는 느낌이었다. 이에 나는 뜨거워지는 귀 뒤를 뒤로하고 머뭇거리기만 했다. 무엇이라 말을 꺼내야 할지 나오지 않았다.

"몰라, 그냥 주말에도..."

다 좋은데 올림픽에라도 나간 것처럼 남자를 만나고 섹스를 하는 사실만은 가족이 알 일은 없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중얼거리다 고개를 들어올렸을 때는 섹스라고 묻고 있었다. 동전 모양으로 말아쥔 손가락을 온리팬즈에 올리는 사진처럼 혓바닥에 갖다댔다. 니시미야는 바로 그 앞에 있어 그것을 보지 못했다. 아찔한 상황이었다.

''왜 그래?''

"아냐. 아무것도."

미쳤나. 하여간 카토는 점점 마음에 안 들었다.

-
"그래서 헤어졌다고?"

카토가 에다마메와 결별을 고한 후 겨우 이틀이 지났을 뿐이다. 결과적으로 그 사실을 제일 늦게 알아차린 사람은 나였다. 카토의 입이 여간 무겁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그 애랑 노는 맛에 살았는데 그럼 요즘은 못 만나겠구나. 눈치 대충 보다가 기분 풀리게 식사라도 같이 해야겠다.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다시 붙어다니며 희희낙락할 것 같았다. 그럼에도 눈이 다 녹아가도록 둘의 사이는 이전과 같은 관계로 나아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너희 저번에 영화 찍을 때도 서로 말하는 거 보면 뭔 말을 주고받아도 상처 안 받을 것 같았는데."

"그런 거 때문에가 아니니까 그렇지. 바보."

"뭔데?"

"내가 먼저..."

"헤어지자고 했다고?"

그쯤 되자 슬슬 감이 잡혔다.

"어. 그랬다고."

도쿄에서 오랜만에 고기 좀 같이 썰었는데 헤어졌단다. 마지막이라도 밥은 잘 사주고 싶었는데, 기대에 부응하듯 에다마메는 평소와 달리 왕성하게 먹었다고 했다. 그녀는 정말로 괜찮은 사람이었다. 괜찮다만이 아니라 연애 상대로서든 친구로서든 좋았다.

"네가 다시 그런 애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물론. 안 맞으면 그대로 굿바이지 뭐."

"에다마메는 이름만 이상하지 알고 보면 진심으로 좋은 애가 맞아. 그런데 정말 그런 이유밖에 없어?"

"없어."

"평소엔 잘만 지내다가 왜 그랬냐."

"말했잖아."

"단순히 그런 사실을 갑자기 자각해서라고?"

"우리 다른 얘기 할까."

그가 별안간 굳은 음성으로 말했다. 나는 고루한 심정으로 내리깐 카토의 시선을 따라 쏘아보았다. 일정하게 같은 기분을 유지하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인줄 몰랐다.

"그러든지."

"그래. 네가 그런 얘기 하는 거 좀 불편했거든."

"왜?"

"글쎄?"

그러고서 또 낯이 바뀌어 조금씩 누그러든 표정으로 신난 듯 떠드는데 그것이 신기했다. 다음날이 밝아오자, 나는 이레즈미 느낌이 나는 요상한 기모노를 빌렸다. 신식 저택이 몰린 동네 쪽으로 갔는데, 겉에서 보기보다 면적이 넓은 집이라 조금 놀랐다. 그들이 나고야시에서 왔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았다. 어머니는 친절하셨다. 잘 차려진 과일이며 과자를 접시에 담아 가져다 놓았다. 카토는 한 입도 대지 않았다. 나는 잘 먹었다. 내가 녹차맛이 나는 과자를 입술에 들이밀어 씹어먹고 있는데, 문득 그 애가 말했다.

"쇼야, 이건 비밀인데."

"뭐가."

"오래 전부터 생각해왔던 건데 말이다. 군인이 되는 걸 생각 중이야."

"웃기고 있어."

"아빠가 그랬어. 군인이 되라는 거야. 내 성격상 그래야 한댔어."

"무엇 때문에?"

"내가 어느 날 컵을 깨뜨렸을 때, 더러워진 방하고 더러운 내 티셔츠를 번갈아 보면서 그러더라고. 웃기지 않냐?"

그 눈이 올곧아서 별 말을 할 수 없었다. 이 나이가 되도록 진로나 꿈에 관한 부분을 일체 언급하지 않는 것에 대한 은근한 거부감이 몰려와서였다. 기모노나 네것도 사입어. 내가 빙빙 돌려 말했다. 이제 곧 가는데 다, 무엇하는 노릇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넌 뭐할 건데?"

"나야 별 생각 없지."

"아니면 나는 뭔가 사고를 쳐서 다른 곳으로 가던지."

"네가 사고를 치긴 왜 치냐."

"나 왠지 그럴 것 같지 않아. 멍청해가지곤."

나는 그간 그가 해왔던 행동들을 차차 더듬어갔다. 갑작스레 화장실에서 키스한 일, 들려준 과거사, 타스포의 첫 담배...부모님이 엄하신 듯 보이는데 그 때문인지 그 애가 지금까지 했던 행동들은 외려 더 와닿지 않았다.

"네 모든 것들이 너무 급작스러워서..."

"딱 그렇지? 여기서 이러는 것만 봐도 난 원래부터 그런 몸이었던 거야. 그래. 모든 건 거의가 다 말로 뱉어야지 직성이 풀리니까."

그즈음 할 수만 있다면 그의 몸을 안아주고 싶다는 욕구가 스쳐나갔다.

"방금 이상한 생각 했지?"

"아니."

"너 가끔 나 볼 때 시선 엄청 이상한 건 아냐?"

"음흉한 것만 아니라면야 상관 없어."

내가 중얼거렸다. 카토의 표정이 익살스럽게 일그러졌다. 그럼에도 어디 못났다거나 한 건 아니라, 다만 조금 위압감이 있으면서도 동정없이 슬퍼보였다.

"우리 이미 그런 건 다 극복한 사이잖냐."

내가 덤덤하게 턱을 괴었다. 저 말엔 무슨 의미가 담겨있을지, 나는 그런 건 생각도 않고 입속이 텁텁하지 않도록 꺼내어냈다.

"그렇지."

별로 의중이 없어보이자 그는 한입도 대지 않은 접시를 내쪽으로 들이밀며 물었다.

"무슨 생각을 하길래."

"시마다."

나는 원조교제도 뭣도 별로 할 것이 없다 싶으면 그 애를 집으로 불렀다. 사실 부르기 쉬운 상대는 아니고 묘하게 껄끄러운 감도 있지만 그럼에도 그것을 감수할만큼 따분했다. 왜 겨울은, 특히 그 해 겨울은 지겹게도 지나가지 않았던 것인지 아직까지도 의문이었다.

"왜 불러?"

"그냥. 아 그건 됐고. 궁금한 거 그거 계속 물어봐봐. 뭔데."

"왜 수많은 알파며 베타들과의 섹스를 섹스 이상으로 발전시키지 않았냐."

"오?"

"난 그게 그냥 이유가 궁금한데."

시마다가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면서 질문했다. Tv에서 흘러나오는 적나라한 소리를 어느새 부정할 정도로 그것과의 관계는 진득했다. 우리는 너무 조숙해진 감이 있다는 생각을 좀 해보았으나, 그런 것은 아무래도 조숙이 아닌 발정으로 치부해야 할 것 같단 생각이었다.

"말이 좀 어려운 감이 있네."

"뭐가."

"난 그냥 그렇게 하기 싫었어. 알잖냐, 나 좀 병신같은 거."

그렇게 말하고서 시선을 흘러나오는 에로영화에 주었다. 시마다는 가만히 나를 바라보다가 피식 웃고는 말했다.

"나 네가 너무 눈꼴 시려서 순간 진짜 나쁜 말 입으로 생각했어."

"뭔데."

"아니야. 됐어. 들으면 상처받겠네."

"뭔데?"

"됐다니까."

"뭔데!"

"거참 집념 있네."

그는 마지못해 탁상에 놓인 붉은색 수첩을 집어 붉은 볼펜으로 휘갈겼다. 찢어준 종이는 온전치 않아 너덜너덜했다. 감득하기 버거운 글씨를 찌푸린 눈씨로 읽어내렸다.

"너 진짜 재밌다."

나는 미친듯이 웃었다. 그다지 웃기지도 않은데 일부러 더 크게 웃었다. 그러면 진짜 웃긴 것이라고 머리가 인식했기에 그러했다.

"뭐가 그렇게 웃기다고."

"아니, 그냥 그렇잖아. 참, 그래. 이 새낄 카토한테도 소개시켜줘야겠어. 너도 성인식 갈 거냐?"

"아니. 안 간다 안 가."

"재밌을텐데."

"바빠. 일하러 가야 돼. 원래 그런 날이 더 바빠."

그리하여 결론적으로 그날 온 사람은 카토와 나, 니시미야와 유즈루 총 넷 뿐이었다. 그것도 세팅이랍시고 카토가 구해다준 옷을 입고 왔는데, 그들 자매의 어머니는 사정상 오지 못했다. 해외 세미나랬나. 나는 차라리 그 편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마주치면 양측 전부 불편할 것이 눈에 보이듯 선했던 까닭이었다. 전에 유즈루하고 놀았을 때 따귀를 맞았던 기억이 나서 좀 거시기하기도 할 것이고. 우리는 노점상에서 이것저것 사들고 나와 돗자리를 깔고 사람들 틈에 자리잡았다. 그리고서두 불꽃은, 조금씩 터뜨릴 기미를 보이며 숨죽이고 있었다. 그러다 한 10시쯤이 되었을까, 불꽃놀이를 보다 빠져나왔길래, 카토와는 먼저 헤어져 떠났다.

"니시미야는 어디 갔는데?"

"아! 맞다."

내가 고개를 돌려 푸른색 수국 무늬 치맛자락을 찾았다. 또 보자는 말에 고맙다는 수어로 응답했을 때 무언가 수상한 기미를 느꼈어야 했다. 왜 그걸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하여간에 둔감했다. 나는 그대로 쇼코를 쫓아갔다. 유즈루의 카메라를 가지러 가겠다는 핑계였다. 숨가쁘게 걸음을 옮겨가며 어디로 가냐며 물었다. 그러나 대답하지 않고 말없이 문만이 열릴 뿐이었다. 그 애는 다소 서두르고 있었다. 열어둔 창문 새로 비추는 하늘에선 연신 불꽃이 쾅쾅 터지는데, 귀가 너무 바쁘고 아팠다.

거긴 왜 가냐고 묻고 싶었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베란다는 비스듬하게 보이는데, 현란하게 빛이 나는 밤을 배경으로 그 애는 멍하니 발을 꼬았다. 잠깐 불안한 시선으로 집 안을 살펴보았다. 어스름한 빛에 가끔씩 빛날 뿐 몹시 까마득했다. 두 눈을 조심스럽게 깜빡여 시선을 돌렸다. 거꾸로 떨어지고 있었다. 미친듯이 달렸다.

"너..."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현실감이 없다시피 했다. 니시미야의 무표정한 얼굴은 살짝 입술을 벌리고만, 그저 그 모든 것을 관조 중이라는 시선이 닿아왔다. 이윽고 나는 믿기지 않는 상황을 배회해야 했다. 아슬아슬하게 그 애의 팔을 붙잡아 베란다 너머 집 안으로 끌어올렸으나, 외려 그 반동으로 내가 떨어지고 만 것이었다. 어이가 없게도 매일 바라왔던 것은 정작 바라지 않는 시추에이션에서 그렇게 쉽게 이루어졌다. 별다른 감정이 없는 매우 가파른 하늘이 보였다. 마지막으로 보인 것은 그것 뿐이었다. 귀로 체득되는 것은 소리였다. 닫힌 귀를 후비고 들어오도록 커다란 소리였다. 그런 추락 중에 폭죽이 터진다니 낭만적이라고 생각했다. 그 후로는 마지막 쇼코의 집처럼 묵묵히 까마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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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2-06-06 22:19 | 조회 : 823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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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운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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