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씬 포함) 목소리의 형태 (12)

약속이 까여서 온 거라는 사실은 기가 막히게 알아차렸다. 딱봐도 그랬단 느낌이 보인다며 나를 놀려댔다. 자신도 기분이 나쁠 법한데 원래 좀 긍정적인 성정의 영향으로 시마다는 여전히 기분 좋게 여유로워 보였다. 우리는 결국 또 이렇게 됐다. 차를 끓이고, 똑같은 패턴의 소파에 앉아서 시시껄렁한 에로 영화를 고르고 있었다. 리모컨만 속절없이 내 손길에 여러 번 쓰다듬어졌다.

"왜 병문안 안 왔냐?"

달리 할 말이 없어 그것을 물었다.

"가기 싫어서."

"왜 또..."

"넌 금방 나을 줄 알았어. 근데 누구한테 까인 건데?"

대답하기 싫어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시마다는 저 특유의 관조적인 나른함으로 떠보았다.

"또 섹스하자고 했어?"

"그랬으면 어쩔건데."

"미친놈아. 그만해. 좆 닳아."

좆이 아니라 구멍이라고 얘기해줄 기력조차 없었다. 나는 웃지도 않고 무감각하게 그를 내리보았다. 허리가 떨린 것을 들킨 건 아니겠지 하는 불안감으로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리모컨만 만지작거렸다. 문득 뒷통수가 따끔해져왔다.

"알겠어. 까였는데 이렇게 내 집으로 온 걸 보니까 알겠다고."

"뭘."

귓속말이라도 할 듯 사근사근하게 다가와왔다. 아직 날이 풀리지 않았는데도 얇은 옷 차림인 시마다가 조금씩 닿았다.

"너 나랑 떡치고 싶구나?"

웃기고 있다거나 지랄한다는 말이 재빠르게 나오지 않는다는 건 그만큼 정곡을 잘 찔러내었다는 방증이었다. 아니면 그저 내가 지쳐있는 상태여서 그런 것일지도 몰랐다. 나는 멍한 눈으로 웃었다. 웃을 힘이 안 났는데 이제사 웃었다. 감정적인 기분은 차차 진정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내게는 아무것도 진정되지 않은 상태였다.

"알았으면 이제 어떻게 해줄 건데."

"..."

시마다가 조금 확장된 동공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솔직히 저런 말을 들었다는 현실이 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모든 것이 이상한 한층막으로 덥혀, 내가 전혀 대면하지 않았던 세계를 만드는 감각이었던 것이다. 나는 이것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는 자각을 하지 못했다. 한낱 돌처럼 자리를 지키며 기계적인 반응을 뱉을 뿐이었다.

"왜 웃냐."

"웃기잖아."

정신을 차려보니 웃고 있었다. 계속 웃었다.

"그래. 뭐 해줄까? 뭐하고 싶은데?"

이상한 현실이었다. 아저씨를 거쳐, 카토를 거쳐, 시마다에게 이러고 있으니 문득 그러했다. 모든 것이 애매모호하고, 알기 어려운 현실이 닿았다.

"뽀뽀해줘."

오늘은 운이 좋은 날이었다. 우리는 서로 엄청나게 웃었다. 영문을 모르고 웃기만 하는 사람들처럼 폭소했다. 나는 이성보다 욕구가 먼저 앞서는 사람이었다. 그가 먼저를 점하지 않고, 내가 일단 시마다를 끌고 가 안았다. 키가 나와 비슷했다. 평소라면 뱉었을 이상하게 뭐하는 짓이냐는 물음도 없이 그저 안고만 있는 그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나는 그의 동정심으로 인해 키스도 할 수 있었다. 그 일말의 감정이라도 없었으면 당장에 쫓겨났을 터였다. 이윽고 뜨거운 열감이 직면했다. 나는 키스가 어색한 편이었다. 다른 건 많이 겪어봤음에도 그쪽으로는 많이 안 해봐서 그런 것일지도 몰랐다. 그럼에도 내가 무작정 시마다를 끌고 밀어붙였다. 턱을 잡고 하려고 들자 두 눈은 빤히 나를 내리보았다. 두려움 같은 것은 없었으나 불편해졌다. 얽었던 혀를 풀어내며 나는 무감한 목소리로 물었다.

"별로냐?"

"너 좀 떼봐."

기술이라 할 것도 없이 일관적으로 해대는 움직임과 달랐다. 일단 얽어내고 풀리는 것이 공격적이라 달리 내가 손쓸 것이 없을 정도였다. 시마다는 베타임에도 불구하고 오메가의 성욕을 최대로 끌어내는 능력이 있었다. 때문에 나는 거의 발정난 것처럼 입술에 매달렸다.

"적당히 해. 여기 상처 남아."

"여기까지 그만할게 그러니까."

내가 목을 혀로 쓸어내었다. 조붓한 혀가 울대를 햝자 이윽고 파르르 떨리는 것이 사뭇 귀여웠다. 그의 눈이 내 머리로 내리깔렸다. 방법이 없었다. 이제사 깨달았다. 나는 두 손을 끌어내어 부드럽게 합쳐지도록 만들었다. 자꾸 질척이고 치근덕거리고 있었다. 곧내 시마다는 내 손아귀를 뿌리쳤다. 아까와 다른 냉소적인 태도였다.

"조금만 더."

"발정났어?"

턱이 잡혔다. 목에 가로새긴 핏줄이 점차로 움찔거려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시마다는 내 볼을 툭툭 두드리다가 미소지었다.

"그때랑 변한 게 없다, 너."

"왜 그때는 나랑 안 했어?"

내가 낮은 음성으로 물었다.

"이런 앤 줄 몰랐거든."

내가 침묵했다.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무언가 관찰하는 것 같기도 했다.

"아니다...분명 뭔가 달라졌지. 그때는 못생겼는데."

"뭐야."

"골격이 자란 건지. 오메가니까 그런 건지."

"그러니까 3년이란 시간도 꽤 길다니까. 네가 이렇게 기억을 못할 정도면."

"확실한 건 하나 있는 것 같아. 난 정말 몰랐거든 이런 앤지?"

그리고 거칠게 놓았다. 거의 내동댕이치듯 내려놓은 것에, 잠깐 잡아둔 행위만으로도 다소 얼얼했다. 하여간 한번 잘된 것 같으면 눈치없이 계속 파고들어가는 버릇은 여전했다.

"음란해지셨어."

그가 콘돔을 가져오며 중얼거렸다. 내가 예전에 항상 보아왔던 그 애가 맞을까. 나를 괴롭히던 시마다가 이러다니 믿기지 않았다. 우위를 점하는 태도는 다를 바가 없었지만 그 외로는 꿈이라고 여겨질 정도로 전부 능청스럽고 다정한 채로였다.

"네가 이러니까 이상해."

우리가 유달리 언급하지 않았던 시절의 얘기가 함축적으로 묻어 있었다. 침묵이랄 것도 없이, 시마다는 가볍게 내 바지를 끄르며 말했다.

"난 원래 이랬잖아."

성기의 어스레한 형태가 체득되었다. 묵직한 것이 다리에 닿아왔던 까닭이었다. 그는 줄곧 종용하고 있었다. 욕구를 가감없이 드러내보일 그 마지노선을, 보이지 않는 압박으로 권유했다. 나는 등을 조금 더 숙였다. 마침내 조심성 없이 끄른 바지에 팬티도 함께 딸려나갔다. 한번 본 뒤로, 그 뒤로 쭉 보지 않았던 욕구였다. 그것은 뒤편에서 나를 안고 들어온 시마다에게 갑작스레 잡혔다.

"커. 여기."

손이 슬슬 어루만졌다. 나는 가만히 그것을 내리보며 묵묵했다. 시나브로 그것이 더해가는 크기는 내게 참기 버거운 중압감으로 다가왔다. 딸딸이 쳐주는 거. 거기까진 괜찮다고 생각했다.

"비쩍 골아가지곤. 원래 그런 애들이 크긴 하다만..."

"아, 으...이상한 소리 하네."

"뭐? 이렇게 하니까 좋다고?"

세게 만지는 게 아무래도 싫었다. 내가 말을 안하니 그런 건지 시마다는 무작정 좋다는 의사로 알아들었다. 하기사 능숙하기야 했다. 얜 적어도 나보다 경험이 많을 테니까. 입학할 때부터 숱하게 오메가들이 꼬여들었고, 특정한 페로몬도 없음에도 단순히 그들에게 인기있을 법한 외견으로 인기를 끌었다. 그러다 보니 그는 길어봤자야 한 3달 정도밖에 사귀지 않고 금세 끝내고 새로운 예쁘장한 오메가로 갈아치웠다. 때로는 남자도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보았자 남자란 말로 치부하기에 여간 예쁜 것이 아니었다. 배우며 가수같은 캐스팅 제의가 이리저리 날라오던 우성 오메가였다. 아마도 그때의 경험이 이렇게 남자와 섹스하는 데에 거부감이 조금 덜하도록 도운 게 아닐까 싶었다.

"하..."

"뭔 생각 하길래 갑자기 눈이 멍해."

"너랑 사겼던 애 생각, 그런 거, 윽, 했어."

"걔를 왜. 누군데?"

"왜, 있잖아...2학년 때, 으! 그 예쁜 남자애."

"걔 우성? 왜. 꼴렸냐. 몰래 딸쳤어?"

손길이 더 세졌다. 왜 이런 변화가 일어나는지, 왜 내가 이런 얘길 꺼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내 나는 유희의 고통에 몸부림치며 차츰 웃었다.

"씨, 발, 웃기고 있어."

"허."

손이 떼어졌다. 일순 분비되는 쾌락으로 제대로 된 정신은 일파만파 퍼져들었다.

"으...!"

"쌌네, 쌌어. 그렇게 좋았나 봐."

"..."

내가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병신같네. 좋으면 좋다고 말을 하지 그랬어. 빌려줄 수 있었을 텐데."

"그냥 더 친해지고 싶은 거 정도였어."

그때마다 그 애와 함께 있던 시마다와 눈이 마주칠라치면, 그는 불현듯 입을 맞추거나 부러 목을 깨물거나 하는 애정행각을 벌였다. 지나친 의식이었는지 모르겠으나, 시선은 늘 나를 향해 꽂혀 있었다. 후에는 그의 요구로 나도 그들 사이에 끼였다. 그때의 시마다는 심심하거나 하면 우리를 엮어놓으며, 은근했던 나의 반응을 즐겼던 것 같다.

"이제 인정해?"

"휴지나 줘."

"이상하긴. 오메가가 오메가를 좋아하는 건 무슨 경우야?"

내가 시마다가 건네는 휴지를 집어들려 하자, 불현듯 그것은 홱 다른 쪽으로 옮겨갔다. 장난치는 거였다. 내가 잡으려고 두 번 더 손을 뻗었다. 하여간 희고 무력하게만 보이는 손아귀가 그렇게나 재빠른 탓에, 전부 실패로 돌아갔다.

"말 안하면 안 줘?"

"그럴 수도 있지."

내가 한번 더 그것으로 향했다. 이번엔 성공이었다. 비교적 빠르게 낚아채 묻어낸 정액을 닦았다. 시마다가 봐줘서 그런 까닭이 더 큰 것 같지만. 그는 이전의 나른한 시선과는 달리 조금 더 생기가 회복된 눈빛으로 나를 살피며 물었다.

"괜히 고추 죽게...왜 걔 얘길 꺼내?"

"조용히 해줘?"

"그런 건 아니고 상대를 꼴리게 하란 말이야. 섹스는 존나 해대면서 그런 분야는 좆도 몰라."

"..."

"어?"

그가 웃었다.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침대로 향한 시마다는 그대로 거기에 앉아 되물었다.

"뭘 해야할지 알 것 같아?"

머리를 쓸어넘기고 그를 내려다보았다. 아니 올려다보았다. 내가 그러고선 무릎을 꿇었던 까닭이었다. 무엇을 원하는지, 체득된 경험의 탓인지 나는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때와 다를 바가 없는 미묘하도록 고압적인 말투에, 그것에 반감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론 제집을 찾은 듯한 안정감을 느꼈다. 내가 팬티를 끌렀다. 그리고 천천히 성기에 입술을 가져다 대어 넣었다. 이전에 러브호텔이나 집에서 그리했던 것처럼 익숙한 식으로 오랄해주었다. 아무래도 느린 속도였다. 그것을 행하며, 점차로 얼굴이 달아올라감이 느껴졌다. 그의 시선이 너무도 의식되기에 그런 까닭이었다. 귀까지 빨개지려는 참에, 별안간 우악스레 머리칼이 잡혔다.

"기분은 좋은데..."

"우읍...!"

"더럽게 못하네."

"컥, 커흑! 윽, 아, 읍...!"

숨쉬기가 버거운 크기였다. 부가적으로, 머리까지 억지로 잡아 격렬하게 박아대니 더욱 힘이 들었다.

"제, 바, 그, 으읍."

무슨 오나홀처럼 써대는군 싶어 덤덤해지려 애썼다. 그러나 윗등에 붙어오는 좋지 않은 경험의 추억은 달리 나의 생각만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것이었다.

"시, 시, 마다...아, 시마다, 아, 아으...윽!"

잘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히 담담할 눈빛이 기저로 깔렸다. 쌀 때까진 끝나지 않을 것이다. 때문에 힘을 주어 빨으려니 불현듯 시마다가 나의 얼굴에게로 옅은 손찌검을 날려왔다. 옅으려면 옅고, 세다면 거센 것이 어린애 어르듯 무던했다. 이윽고 그의 손길은 제 다리 사이로부터 내 얼굴을 거칠게 떼내었다. 나는 순식간에 나가떨어졌다.

"힘 풀어."

"너무 컸어."

가쁜 숨이 여기저기 섞였다. 그저 뺨만 붙잡고 부들대기에는 지금 이러한 상황이 너무도 마음에 들었다.

"잘할게."

"잘할 수 있겠어?"

"응."

"아닌 것 같은데."

왜 그런 외마디를 중얼였던 것일까.

"못할 것 같으면 어떡해."

"뭐라고?"

다른 쪽을 바라보며 어디 새어나오듯 부드럽게 웃었다. 못 알아들은 척 하는 것이 맞았다.

"또 이러네..."

"그만 좀 해라."

"왜 그래?"

"때릴 거면 차라리 섹스 중엔 하지 마.''"

"강간 그거 때문에 그러는 거야?"

서로 할 말 밖에는 주고받지 않는 미묘한 대화에서, 달리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바닥과 얼굴만 번갈아 살펴보았다. 언제 그런 사실을 말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왜 그랬는지 알겠다."

"..."

"이러니까 그렇게 씹질당했지. 중학생 때도 좀 꼬이더니만 언젠가 그럴 줄 알았어."

두 눈이 맹렬히 깜빡였다. 오메가라더니만 확실히 네 냄새는 그래. 그 사람이 했던 말이 어렴풋이 비춰보였다. 갑자기 또 이런 딜레마에 빠지자니 욕구가 금방이라도 싸늘하게 식는 것 같았다.

"내 말은 그런 게 아니잖아."

"아 정말..."

고개가 내 시선에 맞추어 까딱였다. 침을 삼킬 수 없었다. 야릇한 감각이 늘상 면면한 표정에 닿았다.

"그래서 너무 슬프셨어?"

두렵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터였다. 요오쇼오키와 닮아 보이는 것이 몹시도 싫었다. 나는 분명히 안정감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되돌이켜보니 무슨 영문인지 금세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아리송했다.

"..."

"응? 정말..."

"미안해. 잘못했다, 내가. 미안해, 시마다."

내가 갑자기 사과를 하며, 연이어 가쁘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새삼스럽게도, 나는 내가 오늘만큼 이상하게 느껴졌던 날이 없었다.

"정말 이게 뭐야, 쇼야...섹스하다가 괜히 기분도 좆박게."

눈을 번갈아 보며 식은땀을 흘리는 사이, 내가 모르는 사이에, 그가 느릿하게 배를 쓰다듬으며 침대로 올라서고 있었다. 얼추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예상이 가도록 하는 순간이었다. 마치 동물이 기어가듯 불균형하게 그리로 향했다.

"뭐 잘못했어?"

그의 손은 차차 나를 끌러냈다. 긴장할 때는 시간이 느렸다. 그럼에도 그의 손아귀는 고상하나 우악스럽지 않은 방식으로, 여전히 빨랐던 것이다. 끝내는 시마다가 나의 상의를 전부 벗겨 나는 그의 앞에서 완전한 나체가 되었다.

"몰라, 모르겠어."

"모르면 돼?"

묻는지 당부하는지 헷갈리는 끝맺음이었다. 웃는 것이 여유로웠다. 울려퍼지는 낱개의 욕구 아래 나는 정신이랄 것 없이 그의 몸에 매달렸다. 쓰다듬는 손길을 생각하자면, 지금 이렇게 침대에서 뒹굴고 있는 상대가 중학교 때의 시마다가 맞나 차마 믿기지 않은 정도였다. 우위관계 또한 확실했고, 지금조차도 그 기묘한 기류에 변질이라곤 찾아볼 수 없지만, 내 딴에 그의 태도를 뒤집을 이유가 하나 정도 있었다. 몸을 섞는다는 것이었다. 그것만은 지금 직면하기에 변하지 않는, 확연한 사실이었다.

"오메가가 맞긴 맞구나."

"..."

내가 조금씩 몸을 꺾었다. 불편하고 벗어나고 싶다는 양 그랬다.

"어딜?"

"여기..."

흰 볼부터 관자놀이까지를 낱낱이 햝아내렸다. 목을 깨물고, 가는 손가락을 입에 넣어 공굴렸다. 몸을 섞는다는 것에서 그런 확신을 느꼈단 건 이유가 있었다. 그의 손길이 눈에 띄게 다정했던 것이었다. 다정한 것인지 단순히 문란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희고 무결한 손아귀에 들어서가며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다만 뜨거운 온도만이 체득될 뿐이었다. 살결과 살결이 맞닿는 까닭에 단순히 그렇게 느꼈다. 고조되는 감각이, 산산이 흐려지는 초점이, 그간 몹시도 갈망해왔던 사람의 몸이었다. 그는 내게로 다가와 다시 몇번이고 젖은 눈꼬리를 햝았다. 원래 잘 젖는 곳인지라 유난히 공을 들였다. 그러다 불현듯 시마다는 입을 떼었다. 밋츨한 숨결이 얼굴에 닿았다. 그리곤 손으로 내 머리를 마구 어지럽히며 물었다.

"넌 내가 왜 그랬는지 알겠어?"

아프게끔 긁어오는 감각에 간지러웠다. 나는 젖은 눈을 열심히 깜빡이며 되물었다.

"뭐가?"

"스스럼없이 남자랑 잔 거 말야."

남자랑. 내가 그 말을 더듬는 순간 육중한 무게감이 몸을 짓누르고 들어왔다. 그가 삽입을 준비하고 있었다.나그저 얼개로 대답하기만 하고 빠르게 해치워버리고 싶을 따름이었다.

"그런 건 별로 안 중요할 텐데."

"안 중요하긴 왜 안 중요해. 너랑 하면서 역겹다고 생각해도 넌 그냥 섹스할 거야?"

시마다가 제 성기를 쓰다듬어가며 물었다. 내가 슬그머니 뒤편을 돌아보았다. 걱정되는 것은 아니라고 되새기며 침 한방울을 삼켜냈다. 발이 조금씩 오므라들었지만 곧내 두 눈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점차 크기를 불려나가는 것이 버겁다고 여겨질 정도였다.

"읏..."

그럼에도 슬쩍 가져다대는 것이 불편했다. 이를 앙다물고는 묵묵히 양 눈을 내리깔았다. 매번 저런 낯으로 미소 짓고 있다가도 단번에 굳는 것이 지금 보이듯 선했다. 그렇지 않음에도, 나에게는 이미 그럴 기세가 보여지고 있었다.

"아니잖아. 그런 거야."

생리적인 신음이 새되게끔 흘렀다. 이를 꾹 깨물고 흘러나오지 않도록 주워 담는 단발성의 소리였다. 엉성한 다리가 자꾸만 부딪혀가며 덜덜 떨었다. 아무래도 덩치에 맞지 않았다. 유난히 가늘고 긴 팔다리를, 시마다는 꼭 그렇게 되새기듯 쓰다듬었다. 가슴이 답답했다. 지나치게 고조되었을 때 나타나는 증상이었다.

"왜, 긴. 흐읏...남자, 좋아하든 여자 좋아하든...나랑만 잔다면 다 좋은 거지."

웃음을 살짝 흘리며 던진 말에 시마다의 눈은 더욱 진득히 가늘어졌다. 그래서 오메가랑 잔다는 것도 별로 신경을 안 썼던 거였다. 이미 오메가니 알파니 이리저리 따지고 있는데 거기다 각박하게 여자와 남자까지 따져가면 어디 섹스 한번 편히 하겠나 싶어서.

"역겹다 여겨도?"

그래도 좋느냐고 물었지만 나로서는 딱히 그것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볼 건덕지가 없었던 것이다.

"무,슨 상관...!"

"이거 중독 증세 아냐?"

자못 심각한 체하는 투였다. 고쳐주고 싶다고, 치료해주고 싶다고 중얼거렸다. 뭐라고 대답할 새 없이 성기가 삽입되었다. 부비다가 조금씩 때를 봐가며 넣는 것이 교활하다고 느껴졌다. 그럼에도 마른 살을 부대끼며 신음을 뱉을 수밖에 없는 원시성이 더욱 교활했다.

"흣, 으윽, 으으."

그는 빤히 내 등 뒤를 바라보다 말했다.

"왜 자꾸 참으려고 하는 걸까?"

"뭘?..."

두툼한 손바닥에 불현듯 허리가 붙들렸다. 힘을 쓸 법도 하였지만 나는 내가 힘없이 흔들리는 상황을 기분 좋게 방관했다. 얼마 만에 힘을 놓고서도 그저 부대끼며 기분이 좋아질 수 있는 상황인지, 다소 반가웠던 까닭인 것 같았다.

"평소엔 그러지도 않았던 새끼가."

어깨에 머리를 묻은 시마다가 눈을 감고 가만히 그렇게 머물러 있었다. 어릴 땐 워낙 잠이 많았었는지 꼭 저렇게 천진하게 잠을 청하곤 했었는데. 그러곤 머리를 간지럽게끔 부비는 것이었다. 섹스하자고 해서 와놓고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것이 많았겠구나, 공연한 심정이었다.

"읏, 아, 이건, 아프잖아."

그의 다음 행동을 멍청하니 기다리다 목덜미가 물렸다.

"뭘 하게...으읏!"

그러다 별안간 박아왔던 것이다. 숨이 막히는 느낌에 갑작스럽게 연이어 마른 기침을 켈록거렸다. 늘 그렇듯이 나의 단편적인 사고로는 예상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따끔하게 욱신거리는 목 부근을 뒤로하고, 자위기구처럼 흔들리며 혀를 깨물어버릴까봐 하는 단순한 걱정으로 그와 몸을 맞대었다. 숨결이 가빠졌다.

"페로몬이 좋네. 너 이상한 소문 났었던 것도 다 이유가 있었구나."

"컥...흡, 내가, 뭐, 흐윽, 잘못했냐? 좀 말해, 으, 읏..."

"네가 스스로 깨달아봐."

"줘...으, 크흣...그만."

왜 그렇게 격하게 해야만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도 참을 만한 고통이라 여겼기에, 또한 나도 좋다고 생각했기에 적당히 꼴리게 만들려 애원했다. 무엇보다 더 이상 시마다의 심기를 거슬리게 하기는 싫었다. 그는 지금만큼은 제대로 섹스에 만족하는 듯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만해...그만해, 라, 아, 파..."

내가 그리 부탁하자, 힘을 좀 빼긴 했어도 여전히 현저하게 욱신거렸다.

"너 근데 진짜..."

"뭐..."

"왜 이렇게 야하지?"

"흐...이상한 소,리..."

"허구한 날 av만 본 주제에."

들쑤시는 방식이 불편했다. 적당히 맞춰준다는 개념은 어느새인가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그저 내 욕구에 충실하게 반응할 뿐이었다.

"읏, 으윽...! 너, 너 콘돔은 낀, 읏!"

"물론이지. 병신이야?"

"하...! 으으..."

점차 거세짐에 따라 마침내 그는 내 안에 사정했다. 몇 번 겪어보아도 쉽사리 익숙해지지 않는 행위 중 하나였다. 곧내 미지근한 감각과 함께, 다리 사이가 뜨끈해졌다. 그가 빼내가자마자 끈덕한 점액성의 체액이 와르르 쏟아져나왔던 것이다. 숨을 고르며 나는 일시적이지 않은 의문들로 머리가 어지러워짐을 느꼈다. 비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장막같은 느낌은 여전했다. 현실인지 현실이 아닌지 분간이 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요즘 들어 더욱 심해진 것이었다.

"너, 읏, 많이 해봤겠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건데?"

"너무 잘하잖아."

"칭찬?"

"응. 칭찬."

"그렇게 뚫리고 다니면서 이상한 데서 순수하네. 안에 싸는 거 처음 해본 새끼처럼..."

기분이 이상했다. 시마다는 계속 나를 바라보다가, 그 시선에 내부가 뜨거워질 때쯤 내게 명령해왔다.

"앞으로 함부로 몸 굴리지 마."

"무슨 뜻이냐?"

"아무하고나 섹스하러 다니지 말라고."

왼팔을 느릿하게 쓰다듬는 손길이 체득되었다. 뭘 원하고 자기한테 뭐가 손해이고 이득이길래 저런 말을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무엇보다 우리는 아무런 사이도 아니었다. 하지만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이전처럼 무르게 행동할 수 없었다. 이미 그러다가 지난 3년간을 호되게 당했지 않은가. 여기서 얼버무리면 계속 유희를 느끼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나는 재빠르게 대꾸했다.

"내가 왜 그래야 돼?"

그리곤 침묵이 흘렀다. 나는 한편으로는 장난스러운 어조로 그 말을 던지면서도 내심 우위를 점한 시마다가 무슨 행동을 취할지 두려웠다. 뭘 기대했던 건지. 아까와는 달리 퍽 다정하게 굴었던 것에서 희망이라도 찾았던 걸까.

"진짜 그때랑 변한 게 없구나, 쇼야."

내게는 그런 점 등이 그가 더 두려워지는 데에 일조했다. 대체적으로 시마다에게는 중간이 없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뭘."

"어떻게 이렇게 주기적으로 사람 꼴받게 하지?"

대뜸 그가 건네주었던 나쁜 말에 관한 쪽지가 떠올랐다.

"뭐 하고 싶단 건데." 뭘. 그런 대답이었다.

"속으로 씹걸레새끼 주제에 그런다고 생각하기?"

시마다의 표정이 익살스럽다는 듯 굳었다.

''너 진짜 재밌다.''

사실 하나도 재미없었던 것을.

쓰다듬었던 팔이 대뜸 우악스레 잡혔다. 나는 그 애를 좋아하는 것임에 확실했다. 그럼에도 이리 퉁명스러워질 수밖에 없는 까닭은 어디에 있을지 몹시 의문스러웠다.

"아 여기서 또 그 얘기 하시겠다."

''걸레새끼 주제에.''

붉은 글씨가 어지러이 떠올랐다. 또 비꼬아버렸다. 그런 식으로, 실은 시마다가 가장 즐기고 있을 그런 식으로 말이다.

"나 잘해보고 싶어."

내가 흔들리는 투로 내뱉었다. 부여잡은 머리가 지끈거렸으므로 곧내 내게 행하는 나의 손길은 멎게 되었다. 시마다의 손아귀는 불현듯 입술 쪽을 지분거렸다.

"어떻게. 왜?"

"좋아. 시마다, 좋아, 네가. 좋아서..."

한입씩 깨무는 숨이 달았다.

"신기하다. 방금까지만 해도 무섭도록 비꼬려 들더니. 달라진 거 없긴 해."

나는 아무말 없이 손아귀에게로 다가가 볼을 부볐다. 흡사 개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이거 일관성 있는 걸레네."

"고쳐볼게. 잘 해볼게."

"얼마나 진실성 있는 말인지 알고 싶어. 그거."

한숨을 쉬었다.

"나도 아무하고나 하러 다니는 거 그만하고 싶다 진짜. 버릇 안 좋게 든 거거든 그거. 그런데 네가 다만, 무슨 생각으로 그런 제안 하는지 몰랐어서...아직 우리가 섹스하는 거랑, 내가 너 일방적으로 이렇게 좋아한다고 하는 거만 빼면 아무런 사이도 아닌 거지만. 그렇지?"

하지만 곧내 그냥 내가 생각하는 것의 정정을 해버렸다.

"정말?"

"..."

"이상하네."

"뭐가?"

"평소에 그렇게 안 했잖아."

"허, 어떻게 아냐?"

"할 말 있으면 똑바로 말해. 돌려말하지 말고."

무슨 말인지 몰라서 곱씹으며 가만히 있었다. 나는 내 몸이 시나브로 반죽이 되어가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차츰 녹아내리고 흘러서 후에는 형체없이 묽어질 것 같았다. 지금 또한 그랬다. 귀에 무슨 반죽이 있는 듯 했다. 안쪽이 뜨거웠다. 기왕 좋아할 거면 알파에게 달려드는 것을, 왜 굳이 베타를 좋아했을까. 어쩌면 내게는 페로몬이니 각인이니 하는 그런 것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을지도 몰랐다.

"..."

"그러니까..."

"..."

"나랑 사귀자고."

잠시간 떨떠름한 침묵이 흘렀다. 부끄럽다거나 그 말이 후회된다거나 하는 심정은 들지 않았다. 다만 그의 대답을 기다리느라 목이 빠질 것 같았을 뿐이었다. 그저 빨리 이 상황을 탈피하기 위한 용도만으로는 그것은 별로 적합하지 않았다.

시마다는 나를 내리보다가 웃는지 정색하는지 모를 미묘한 낯으로 속삭였다. 우리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명백한 속삭임이었다. 나는 그의 손에 맞추어 갑작스럽게 홱 끌려갔다.

"역시 넌 나만 데리고 있어야겠다."

"..."

"너 때문에 내가 정신병 걸리겠다. 응? 약 먹어. 약."

장난스러운 어조였다. 반쯤 제정신에 걸쳐있는 말에 진심이 담겨져있는지 아닌지 확인되지 않았다. 내가 흐리멍덩한 눈을 가늘게 치떴다. 무슨 대응을 해야할지 자동으로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지 좀 생각해봤던 것 같다. 웃어보려고 했지만 차마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재밌었으면서 왜 이래."

"이게 재밌는 것 같아 보여?"

그의 물음에 저절로 그런 것 같다는 대답을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나는 곧내 입을 닫았다. 그리고 딱딱한 시선으로 그의 표정을 훑었다.

"너..."

"응."

장난 치지 말고. 그 말을 덧붙였다. 분명 느끼하다고 생각할 법도 한데, 그 순간만큼은 시마다가 너무 진중해보였던 까닭인지 딴지를 걸 만한 생각이 차마 들지 않았다.

"진짜 사귀고 싶어?"

"물론이지."

아직 확신은 없었지만 그저 엎질러진 물을 담겠다는 그런 심정으로 답했다. 시마다는 나를 뚫어져라 응시하다가 불현듯 잘 심겨진 편백처럼 빙긋 웃었다. 왜 나일지 하는 의문이 없어서 좋았다. 사람으로 하여금 감정을 고무되게 이끄는 미소였다.

"그럼 약속하자."

"뭘."

"앞으로 원나잇 같은 거 하지 않겠다고. 나랑 사귀는 김에 그 버릇도 고쳐봐. 이참에."

무엇을 듣고 있는지도 몰랐지만, 떨리는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시마다는 피곤하다는 듯 대충 걸쳐입은 셔츠 주머니에서 담배 하날 꺼냈다. 그리고 내게도 한 개비 주었다. 우리는 배를 긁으며 나란히 발코니로 향했다. 차가운 밤공기에 담배 연기는 속절없이 무너져 내려갔다. 기분은 이전부터 쭉 붕 떠 있었다. 현실감이라는 것 없이, 두터운 장막이 외부에 계속 씌워있는 듯 보였다. 그럼에도 그를 따라 감정은 점차로 고무되었다. 그럴만 했다. 무엇이 어찌되었든 나는 오늘 시마다의 집으로 갔고 거기서 그와 섹스를 하고 담배를 피웠다. 그 사실이 여전히 내 곁에 맴돌았다. 나로서는 매우 생소하게 느껴졌던 감각이었던 것이다.

"이럴려고 여기 왔구나?"

"고백하려고?"

"그래. 오늘 좀 괜찮았어."

"억제제를 먹어서 그런가..."

"그게 안 먹은 거였어. 웃기긴. 다음엔 먹지 마라."

내가 고개를 돌려 남은 것을 마저 태웠다,

"좋을대로 생각해. 그런데 난 발정나기 싫어."

"웃기긴."

생각보다 괜찮은 기분이었다. 평소 좋아하던 사람한테 사귀자는 고백을 했을 때, 스스럼없이 받아주고 이렇게 같이 태울 것까지 있다는 상황은 여간 운이 좋은 것이 아니었다. 특히 나로서는 더욱 그랬다.

"정말 이게 진짜야?"

내가 별안간 혼이 나간 듯한 어조로 그런 말을 내뱉었다. 시마다는 눈길을 돌려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다가, 정말 그렇다고 정직한 대답을 내놓을 따름이었다.

"진짜지 그럼 가짜겠어. 정신 차려봐. 제정신으로 한 말인 건 맞지?"

"그래. 확실했어."

"그럼 된 거야. 만나고 싶으면 언제든지 연락해."

마치 이 관계를 정의하듯 끝에는 그런 말을 내리붙였다. 내 말 하나로 그렇게 변해버리다니 이상했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하도록 만들었을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거 알아?"

그가 떠보듯 물었다. 손가락이 피아노를 치듯 차례로 난간을 틱틱거렸다.

"너 진짜 맘에 들어."

그게 웃겼다. 농담하는 어투로 던졌다.

"그래그래. 나중에 반지끼고 결혼까지 하셔."

"이러니까 말이다. 이러니까..."

내가 재떨이 삼아 창문 구석에 쭈그러진 캔에 재를 떨궜다. 시마다는 어깨를 꾹 잡고, 놓아주지 않으려는 듯 선언했다.

"다 피웠으면 가."

그런 행동으로 가라고 하니 나의 얼굴에는 계속 그로 인한 익살이 번졌던 것이다.

"어디로."

"집으로."

"그거 알아?" 내가 불쑥 물었다. "우리 사귀자고 하고 네가 받아준지 5분밖에 안 지났어."

"뭔 말 하고 싶은데?"

"태도가 매정하다 이거야."

코웃음을 쳤다. 목 주위를 감아온 팔이 더욱 거세게 감겨왔다. 이래놓고서 집에 가라고 말하자는 것이 재미있었다.

"오늘 기분이 좋으신가봐."

"말이라고 해."

"말도 안했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말이라곤 그렇게 했지만 실제로 그와 사귀게 되었으므로 나로서는 달리 어떤 행동을 보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시마다는 모르겠지만 나는 섹스만 많이 해봤다 뿐이지 그 이상의 인관적인 어떠한 관계로 나아가 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었다. 이미 그도 어느 정도 예측을 하고 있었는지 이건 아무 의미도 없다고 언젠가 넌지시 말했다. 그것에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웃었다.

"걔한테도 알려줘."

누구? 카토 말이야. 엄청나게 화를 냈다. 그러지 않았다. 왠지 엄청나게 화를 낼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러한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축하해."

카토는 담담한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고, 단지 그때와 같이 내가 반죽이 된 것 같다는 불편한 감각만이 싸고돌았다. 시마다가 왜 이렇게 아무 반응이 없느냐고 물으며 내 어깨를 감싸맸다. 그 순간을 어색하고 단단한 기류가 맴돌았던 것으로 표현하고 싶다. 너무 이상한 향이 나는 건 아니겠지 싶어 전신의 페로몬을 살피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되자 카토는 농구수업이 있는 날 남몰래 체육관 창고로 나를 불렀다. 익숙하다는 양 홧홧히 불을 붙이며, 그는 말했다.

"뭐하는 거냐?"

"뭐하는 거냐니. 시마다랑 말야?"

"정말 좋아? 정말 좋냐고."

다소 유아적인 말이었지만, 나로서는 그 말을 들으면서 카토에게 어떤 유아적인 형태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럼 싫어서 그랬겠어. 왜 이러는 거야. 비켜."

"아니."

"뭐냐. 더 할 말 있으면 빨리 해."

두 눈이 들어올려졌다.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말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끊임없이 농축되어 바라고 있는 듯 보였다.

"너 진짜 골 때리는 거 알아?"

"뭐가...?"

"그 새끼랑 지랄도 가지가지네. 구멍 헐어터지게 굴리고 다니던 새끼가 왜 갑자기 한 놈하고 사귄다고 지랄이야. 그것도 알파도 아닌 새끼한테. 다자연애도 아니라니까."

나는 그가 이렇게 격하고 천박해진 적이 있었는지 반추해보았다. 없는 것 같았다.

"몸 함부로 굴리면 베타 하나도 못 사귀냐? 이제 그만하기로 했어. 너야말로 지금 이상해보이는 건 알아? 갑자기 왜 이러는데."

"갑자기."

"네가 뭐길래 이렇게 얘기하는데?"

"뭐냐니...씹새끼야."

별안간 얼굴에선 핏기가 다 빠졌다. 원래도 맹해서는 멀끔하게야 생겼지만은 총기 같은 것은 없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허나 이번에야말로 그 사람 안의 무엇인가가 태세를 전환해버렸던 것이었다. 그리곤 내 양 어깨가 단박에 움켜쥐어졌다. 순간 욕지기가 올라왔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카토를 가지고 반추했던 것 따위가 스르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놔라. 뭐, 씹새끼?"

"그래. 넌 씹새끼야. 씹걸레새끼."

오메가란 족속들은 다 너같은 새끼들밖에 없는 것 같다. 그러고서 욕을 옅게 했다. 항상 만날 때마다 페로몬이니 뭐니 하니 탓하던 원나잇 그 새끼랑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면서 그 향 좀 죽이고 있으라고 말하던.

"뭐하는...!"

카토가 일순 담배를 내 몸에 가져다대려고 하는 것이었다. 원래도 이리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란 것을 알아 조심하려고 했건만 완력이 너무 세서 달리 버둥거리는 것밖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이내 그는 옷을 들어올렸다. 정향이 강하게 풍기더니, 이윽고 살갗이 타오르는 고통이 스쳤다. 카토는 성기와 근접한 내 아랫배 부근을 담뱃불로 지지며, 무어라 글씨를 쓰고 있었다.

"가만히 있어."

"너 진짜...!"

체육관은 학교와 떨어진 구조였으므로 소리를 지른다해도 달리 소용이 없었다. 내가 배로 손을 가져다대며 몇번이고 버둥거리자, 이내 그는 멱살을 잡듯 거세게 내 어깨를 쥐고 외쳤다.

"야!"

꽉 잡은 어깨가 떨렸다. 그의 손에 단단히 감긴 손목이 으스러질 듯 했다.

"좆같이 하네."

"읏..."

그쯤 되자 이 흔적이 영원히 남는다는 것을 앎에도 전신에 힘이 쭉 빠졌다. 내가 이 이상 저항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서일까. 이윽고 나는 몸의 감각으로 그가 무엇을 그리도 빠르고 무성의하게, 어쩌면 한 자 한 자 분노가 담긴 필치로 쓰고 있는지 알아차렸다. 마침내 뒷부분을 마무리할 때, 조금씩 흘러나오던 내 신음은 멈춰들었다. 나는 가만히 카토의 맑은 눈을 바라보며, 단지 흥분을 가라앉히려 물었다.

"한번 창녀는 영원한 창녀라고."

보지는 않았지만 감각으로 읽어낸 흉의 속뜻이었다. 웃기고 있었다. 하나 무어라 따질 기운 따위는 없었다.

"다 끝냈어."

"씹새끼."

카토가 어깨를 으쓱했다. 나는 묵묵히 와이셔츠를 들어올려 아랫배를 살폈다. 아크 로열의 영향으로 정향까지 진하게 배었다. 내가 코의 호흡을 살짝 멈추었다. 무엇보다 그것은 다소 흉한 모습으로 지져져 있었다. 시마다에겐 어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어왔다. 따질 기력도 나지 않았다. 그렇게 든다면 그보다 더한 어떤 일이 더 일어날 수도 있겠다는 불안에서였다. 예측할 수가 없는 자식이기에. 카토는 무슨 생각인지 평소 시마다가 할 법한 행동들을, 가령 배를 툭 찬다던지 하는 짓들을 행하며 말했다.

"판판하게 된 게 쓰기 수월하더라."

얘는 정말 이러고 싶을까?

"함부로 씹떠서 미안하네."

내가 이어 말했다.

"주제에 거기다 오메가니까 더 미안한 거고."

어째 꼬투리 잡히는 부분은 다 그 모양이었다. 내가 오메가가 아니었으면 어떤 삶을 살고 있었을지 궁금해한 적은 있지만 만약은 소용이 없었다.

"잘 알아?"

이상했다. 화를 내려고 하니 화가 나지 않았다. 그저 지쳤을 따름이었다.

"씨발, 왜 이렇게 남자고 여자들 다 꼬이게 하는데..."

그런 건 내 의사로 결정한 것이었다. 무슨 상관이냐고 뭐라도 말해야 하는데. 문득 들어온 생각이었다. 한 마디를 지지 말아야 하는데. 그런데 누가 나에게 그런 말을 해주었는지는 도통 기억이 나지 않았다.

"..."

그리고 긴 침묵이 흘렀다. 우리는 지겹다는 의사를 보내듯 익숙히 서로를 흘겨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이걸 알려야 하나. 당연한 수순이었다. 당연하게도 그런 생각이 들어왔다. 알리면 또 내가 그때 겪었던 일을 겪겠지 싶었다. 무엇보다 카토에게 피해가 가고 싶게 하지 않았다. 하여간 나도 이제는 지겹게 느껴질 정도로 무뎠다.

"할 말 다했으면 간다."

그가 뭐라 하는 것을 보기도 전에 나는 빠르게 뒤를 돌았다. 딱히 붙잡지도 않았다. 그가 내 몸을 담뱃불로 지졌음에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이, 그저 무거워진 어깨만을 체득하고서 뒷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아랫배도 물론 욱신거렸지만 아예 그것에 대해선 생각하고 싶지도 않아 제쳐두었다. 다만 마지막으로 궁금할 뿐이었다. 내가 왜 이렇게 되는지 나만 이렇게 살 수 없는 건지, 그런 것들 말이다. 내가 매우 감정의 기복이 심하단 사실은 알고 있으나, 나는 그것으로도 나름의 만족을 갖고 있던 것이었다. 허나 지금은 그게 내 발목이라도 붙잡은 것 같았다. 내가 너무 그들에게 변덕스럽게 굴어왔었다. 이건 그것에 대한 업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은 쉽게 굳어지지 않았다. 의문점만이 주체할 바를 모르고 솟아났다. 이런 생각들이 만연하고, 끊임없이 내 머리를 괴롭히기에 나는 이렇게 길게 걷는 것을 불편해했다. 남들에게는 머릿속을 정리한다는 과정이 이리도 고통스럽게 느껴진 것이다. 때문에, 그날의 걸음은 유달리도 빨랐다.

얼마 뒤 시마다는 섹스를 하자고 나를 불렀다. 담뱃재로 남은 흉을 쓸어내리는데, 대뜸 카토도 함께 와있다는 말을 추가로 덧붙였다. 의문이 생겨 그에게 물었다.

"뭔 일인데?"

"쟤가 셋이서 하재."

나로서는 매우 당황하거나 노했을 상황이지만 이상하게도 그렇게 놀라지도, 화가 나지도 않았다. 카토임에도 불구하고 그랬다. 어차피 이럴 거면 그가 왜 그토록 분노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시마다가 너무도 당연스럽게 그 말을 내뱉자 나로서도 동의하는 마음이 무의식적이게끔 생겨난 것일까. 아닌 것 같았다. 아니면 단순히 내면에서든 외면에서든 차분한 척을 했던 것일지도 몰랐다.

"왜 그런 걸 부탁하지?"

"하고 싶었나보지."

웃으려고 했지만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그리하여 장난스러운 어조로만 속삭였다.

"미친놈. 언젠가 그럴 줄 알았어. 걔 또라이라니까."

"그래도 난 한번 해볼래."

"나야 괜찮긴 한데 나니까 허락해주는 거야. 알긴 알지?"

"알지 너하고 걔한테만 그러는 거야."

"근데 너 나보고 아무나 자러 다니지 말라고 그러지 않았어? 이럴 거면 뭐, 왜 그런 건데?"

"카토가 아무나는 아니잖아."

그러면서 나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그 고백은 역시 아무런 의미도 없는 껍데기같은 말이었던 것이라고 생각하며, 찬찬히 그의 얼굴을 뜯어보았다. 그때와 다를 바도 없지 않는가. 아니. 원나잇도 말야. 그렇게 응수하려 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도무지 그 속내를 예측할 수 없는 낯이었다. 그런 난리를 피워놓고서 쓰리썸을 하자니 분위기가 어색할 것 같아 처음에는 겁부터 집어먹었다. 비록 내가 그와 섹스하길 오랫동안 바라왔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하나 막상 만나보니 막연히 생각한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다. 카토는 그저 정말 섹스만을 하러 온 사람처럼 행동했던 것이다. 대체로 그도 누그러졌고 나도 누그러진 듯 보였다. 담뱃불로 지진 일 따위는 아예 없던 일 같았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적절할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내 섹스파트너들 같은 모습 말이다. 그런 것을 연상케 했다.

"가만히 있기만 하지 말고 씻거나 벗기라도 하지."

시마다가 옷을 끄르며 물었다. 이에 나는 뭐라도 어서 대답했다.

"오늘 내가 원해서 온 건 아니었으니까."

"그래. 내가 조른 거니까. 괜히 애먼 사람 탓하지 말고."

카토가 대응하고 나섰다.

"잘 해."

"그럼 잘하지 못할까봐."

시작하기도 전부터 불안한 기분이었다.

"바라건대 제발 둘이서 싸우지만 말아라."

내 말에, 소파에 앉은 시마다가 콘돔을 뜯으며 답했다.

"그럴 리가. 되려 네가 더 걱정되는데 뭘. 히트사이클은 아니지?"

"어."

"페로몬이 워낙 짙은데."

"원래 그래. 얼른 옷 좀 벗어봐. 너 카토랑 싸웠다며."

"그걸 들었어?"

"들었지. 얘한테."

그러면서 옆에 앉은 카토를 턱짓했다. 그러면서도 반응이 저토록 없는 것에 신기해하며, 나는 순순히 그대로 입고 온 교복을 끌어내렸다. 와이셔츠의 단추를 풀자 조금씩 아랫배의 흉터가 드러났다. 그때는 마냥 선명했던 것이 이제는 뭘 썼는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어지러이 엉겼다. 그것을 저들은 소파에 앉아 무슨 구경이라도 하듯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다고 수치심 같은 것이 들진 않았다. 다만 시마다의 반응이 차츰 염려될 뿐이었다.

"이거였어?"

그러나 재밌다는 듯 웃어버렸다. 그의 반응이 내게 무례한 것 같다는 생각은 했으나 당장 내 감각에 급급할 수밖에 없었다.

"닦아줄까."

시마다가 찬찬히 배를 쓸어내렸다. 지워질 것 같지도 않은데 닦는다면 뭘로 닦지 궁금하기야 했다. 소금물? 사람은 세탁할 수 없지만 말이다.

"아니 필요없어."

"넌 왜 그렇게만 있어?"

별안간 카토가 물었다. 자기가 원하던 반응이 아니라고 하는 것마냥. 나는 늘 그랬다는 양 시치미만 뗐다.

뭘.

"멍청한 건지 무심한 건지..."

"시마다. 나 뭐 잘못했냐?"

"아니? 넌 왜 그래. 이렇게 불러놓고. 자꾸 애먼 사람 괴롭히지 말고 너도 벗어."

"존나 웃겨."

그 말과 함께 카토는 옷을 벗었다. 이젠 모두가 알몸이었다. 카토와 처음 해보는 섹스가 쓰리썸이라니. 안타까움을 뒤로하고 찬찬히 카토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 위를 덮은 속옷을 바라보며, 아무런 미동 없이 나를 내리보는 그의 시선을 느끼며 얼굴을 부볐다.

"이거 서운한데."

시마다가 중얼거렸다. 사귀는 사이에. 사귀는 사이처럼 행동을 해야 말이지. 아님 무서워서 그러나? 이 이상한 감각, 대면하기조차 불편한 삼자 사이에서 어쩌다 보니 이것을 주도해나가고 있는 것이 생경하게 느껴졌다.

"벗겨도 되지?"

그가 턱을 괴고 있다가, 이내 무심한 눈으로 승낙했다.

"벗겨봐."

내가 열심히 그의 속옷을 끌렀다. 이후 느릿하게 다가가, 차츰 그것을 입 안에 담았다. 예상은 했지만 입에 쉽사리 담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내가 주도적이어야 하는 입장이기에 목구멍에 힘을 주어 조금씩 공간을 비워두었다. 그리고 숨이 막히도록 깊게 찔러넣었다.

"읍, 으욱."

다소 급격했기 때문에 금세 생리적인 눈물이 몇 방울 흘러내렸다. 나는 그간 본 av의 기술들을 떠올려가며 행위에 열중했다. 지켜보기만 하던 시마다는 지루한 탓이었는지 불현듯 소파 아래서로 내려왔다. 그리고 내 등 뒤를 어루만졌다. 불길했다. 그는 곧내 내 몸을 살짝 들려 저의 다리 위에 앉혔다. 뼈가 체득되는 감각이 퍽 단단하게도 느껴졌다.

"불편하냐?"

"읍..."

"그렇지, 대답을 못하는구나."

"우웁!"

그 외마디 후 곧바로 강하게 박았다. 목이 조여들었다. 끈적한 감각에, 땀으로 범벅이 된 몸을 끌어가며 뒷편의 시마다가 편하도록 자세를 되잡았다. 벌써부터 힘에 부칠 수야 없었는데. 카토는 도무지 사정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내가 더럽게도 못 빤다고 말했던 누군가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하는 수 없이 조심스럽게 얼굴을 떼내었다. 차츰 흔들렸지만 과하게 격하지 않아 행여 깨물기라도 하는 불상사는 없었다. 나 자신조차 체득이 가능할 정도로 짙은 오메가 페로몬이 조금 걸렸을 따름이었다.

"흡...흐윽."

"시마다."

카토가 낮은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왜."

"어떻게 이 새끼를 구워삶았대."

그의 흰 발은 서서히 나의 성기 쪽으로 향했다. 꽤 발기되어 있었다. 그것에 대고 묵묵히, 사정을 제어하기라도 하듯 부볐다. 부볐다기보단 밟는 것에 더 가까웠다.

"윽...! 아, 카, 토...이거, 이, 것 좀 떼봐."

"거기다 너도 베타잖아."

강한 자극이 부유했다.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듯 그는 입을 삐죽 내밀어 보였다. 그럼에도 달리 귀여워보이지는 않았다.

"글쎄? 얘가 나 먼저, 좋아한다고 그러길래."

시마다는 그렇게 대답하며 깊숙히 나의 내부로 들어왔다. 신음은 설핏 조각내어 자르듯 흘러나오고 있었다. 조루처럼, 곧 사정을 할 것 같은데, 카토의 발은 짓눌리듯 밟아왔다.

"먼저 그랬다고?"

"하, 학, 얼른..."

"그래, 후, 웃기다니까."

"이거...이, 것 좀, 윽..."

내가 카토에게로 손을 뻗었다. 발과는 대조적으로, 요오쇼오키의 손처럼 두텁고 큰 손아귀였다. 드디어 신경을 쓴다는 자각이 들어왔다. 정신없이 박히며 그것 사이에서 흔들리자, 이내 카토는 내 손을 꼭 그러쥐며 말했다.

"누가 걸레새끼라고?"

"흡, 흐읍..."

"이 새끼 뭐야. 내 애인 괴롭히지 마."

시마다가 내 유두에게로 손을 갖다대며 웃었다. 아프게 좋은 감각이었다. 자극은 두 개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분명히 그때보다 나은데도 여전히 아픈 것은 어쩔 수 없나 보았다. 나는 식은땀으로 젖은 얼굴을 주억대며, 애써 더듬거렸다.

"나, 윽, 나, 내가..."

"네가 뭐라고?"

"씹, 걸레, 새끼..."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마침내 발을 떼었다. 압박에 벗어난 성기가 순식간에 물줄기 같은 것을 쏟아내었다. 전부 젖었다. 카토의 배부터 다리까지가 내 정액으로 젖어버렸다. 끈적하기보단 투명한 것에 더 가까웠다. 끝까지 싸내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제사 나는 그의 표정을 파악할 수 있었다.

"아, 아..."

"진짜 분수마냥 싸네. 그러게 왜 그렇게 했어."

"지가 인정을 해야지 별 수 있나."

"내가 다 묻혀가지고. 닦아줄게. 시마다, 휴지 좀 쓴다."

내가 서둘러 일어서 휴지를 뽑아들었다. 그리고 카토의 벗은, 판판한 몸으로 다가가 이리저리 물처럼 튀어버린 정액을 닦아냈다. 홍조가 드는 체질이었다면 나도 모르는 새에 얼굴이 붉어졌을 것이다. 부끄럽진 않았지만 처음 보는 그의 전신이 꽤 생소하게 느껴졌던 까닭이었다.

"괜찮은데."

"아냐."

그는 얼마간 그렇게 빤히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손을 뻗어, 조심히 아랫배 부근을 어루만졌다. 거친 살갗이 닿으니 그만 거기서 뻣뻣이 경직되어가는 느낌이었다. 새삼스럽게 카토의 손은 큼지막했다. 손 하나만으로 내 배 대부분이 가려지는 수준이었으니.

"여기..."

"왜?"

"나도 닦아줘야겠네."

"병주고 약주고 있어."

그가 고개를 돌려보았다. 목소리의 주인은 시마다였다. 카토는 별 거 아니라는 듯 가는 눈으로 그와 나의 배를 번갈아 쳐다보다 웃었다.

"여기 안엔 뭐가 있을까?"

"뭘?"

"맞춰볼까. 맞추면 상 줘. 맛있는 거나."

의도를 알 수 없는 장난에 익숙해질 때가 됐는데, 흔히 저런 사람들의 그런 장난에는 도무지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또...얘 이상한 소리 하네. 그 땐 죽일 듯 달려들더니."

"아기?"

"..."

"지랄한다는 눈으로 보지 말고. 속상하잖아."

"아니야. 내가 그러긴."

"방금 전에 너한테 쌌는데...이게 그럼 여기로, 들어갔겠지. 그 코딱지만하게 작은 거. 하여간 그날, 너랑 섹스한 날 성병에 걸렸다는 진료결과를 받았어."

이에 동공이 팽창되었다.

"뭐라고?"

"농담이야. 뭘 그리 놀라고 그래?"

나는 양발을 뒤로 두세 걸음씩 떼내며 물었다.

"무슨 얘길 하고 싶은 거야?"

"딱히 없으니까 손이나 모아봐. 너만 싸면 불공평하잖아."

"맞지."

시마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빙긋 웃었다. 이놈들은 변태같은 심보로 합심해버렸다.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세 명이서 교제하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겠지만 그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다만 카토가 좀 폭력적이고 종잡을 수가 없는 것 뿐이었다.

"왜 쪼개는데?"

시마다가 웃는 카토에게 물었다. 어투는 날이 서 있었다.

"웃기잖아 이거. 별 걸레짓 같은 게..."

"나 여기서 그만할게."

대뜸 내가 선언했다. 지쳤으므로 대딸까지 할 기력은 남아있지 않았다.

"여기까지 와서?"

카토가 그렇게 물었다. 나는 말없이 잠시간 그를 바라보았다.시마다의 눈은 무심했다. 그것이 어렴풋이 비추어졌다. 나는 비틀거리지 않고, 어린애들의 곧은 걸음으로, 점차 느릿하게 다가가 발꿈치를 들었다. 그리고 얼굴을 부여잡아 키스를 했다. 여전히 실력은 좋지 못했다. 그는 또한 자신의 혀조차 움직이려 들지 않았다. 하지만 힘을 주어 자연스럽게 그의 혀와 섞여들어가게끔 두드리고, 자극하고, 햝아내었다. 마침내 그는 조금씩 움직였다. 땀이 흘렀다. 아. 시마다가 전부 지켜보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허..."

나는 마침내 입을 떼내었다. 기가 막히다는 듯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던 카토는 이번 한번만 봐주겠다는 말이라도 하듯 미소 지어 보였다.

"나름 창부짓도 하고 기특하네."

"여기 베란다가 어디야?"

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시마다는 왼편을 길다랗게 가리켜보였다. 미리 탁자 위에 봐둔 쿨과 라이터를 살짝 집었다. 대충 입을 닦아내었다. 그리곤 빠른 걸음으로 왼편을 향해 발을 굴렸다.

"이거 좀 피울게."

시마다는 평소라면 물을 법한, 왜 나는 안하냐는 뉘앙스의 말도 하지 않고 그러라고 승낙했다. 내가 팔을 조금씩 들어올렸다. 수익게 손을 놀려 불을 붙였다. 어딘지 전전긍긍하는 태도가 전반에 배여 있었다. 한 모금 뱉고 구릿구릿하게 싸늘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 시간이 너무 좋았다. 섹스 후에 가지는 흡연이 너무도 마음에 들어 이것들을 놓지 못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뒷편에선 무언가 재밌는 얘길 했는지 몹시 웃어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정말 끊임이 없네, 진짜."

그냥 고개를 숙이고 난간대에 몸을 기대었다. 그런지가 얼마 되었다고 주머니에 찔러놓은 전화기에선 벨소리가 울려퍼졌다. 여전히 허리는 굽혀둔 채로 그것을 집었다. 누구인지 감이 왔다. 절로 욕망에 흐린 목소리가 부유했다.

"여보세요."

우에노였다.

"뭐해? 지금 어딨어?"

그들이 듣지 못하게끔 더 멀리 앞으로 향하며 대답했다. 바깥 공기는 시리게 차가웠다.

"시마다네 집."

"그래?"

"그래."

"너희 이제 완전히 옛날 사이로 돌아가버렸네."

아직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너 지금 우리가 어떤 사인지 알면 진짜 깜짝 놀라겠다."

"왜? 알려줘."

"비밀이야."

"알려줘!"

"그냥 시마다랑 섹스하다가 저번주부터 사귀기로 했어."

"뭐? 그렇게 빨리? 너희 재회한지 한 달 정도밖에 안 지난 것 같은데."

"나 입원하기 훨씬 전이니까 그것보다 더 길거든."

"그런데 이상하다. 너희 둘이 사귀긴 왜 사겨? 시마다는 호모가 아니잖아."

"나보고 취향개조됐나 보지."

"개소리 하는 거 보니 또 거기서 섹스했나 보다? 아마 담배도 피우고 있으시겠어 지금?"

"그래 어쩜 그리 정확히 맞추냐. 너 우리가 섹스하는 사이인 건 이미 알고 있지 않았어?"

"아니."

나는 웃었다. 기분이 좋아져 전화기를 더욱 바짝 끌어당기고 말했다.

"웃긴 건 여기 카토도 있다."

"뭐? 왜? 걔가 왜 거깄대?"

"쓰리썸이지 뭐."

잠시 소리가 들리지 않아 전화가 끊긴 줄로만 알았다. 그냥 우에노가 잠시 얼어붙은 것 뿐이었다.

"쓰리썸은 무슨 얼어죽을 쓰리썸이야. 너희 사귄다며."

"어떻게 사귀는지 감이 딱 안 오나?"

"그런 거라면...말도 안 돼. 시마다는 원래 자기 거에 집착이 좀 심한 타입 아니었나? 걔 중학교 때 여자친구가 나더러 울면서 막 상담하던데. 아휴, 하여간에 니들도 참 대인배야. 남자들끼리라서 그런가. 나라면 그런 거 절대 용납 못해."

"대인배인게 아니라 다들 별 생각 없어서 그래."

"그게 문제야. 사귄다면서 섹파 시절일 때랑 달라진 게 뭔데?"

"그냥 재밌게 노는 거지."

"이제 곧 센터시험 앞둔 연세신데 재밌게 놀긴 퍽이나."

"왜 이래."

요즘 우에노가 그래서 연락이 없던 것이라고 부가적인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알 사실은 다 알고 있었다. 놓았던 공부를 다시 하느라 죽을맛이라고 했다. 도와주겠다고 나섰더니, 귀찮게 하고 싶지도 않고 도움 받고 싶지도 않겠다며 거절의사만을 받았던 것이었다.

"그래. 존나 예민해보이겠지. 넌 원래 공부도 잘하니까...어휴...맨날 섹스하고 다니면서 공부는 언제 하는 거야."

"나 그렇게 잘하는 편 아니야. 정 그러면 너도 하루에 두 시간만 엄청 집중해서 해봐."

"두 시간 이러네."

그 목소리가 너무 허탈했기 때문에, 또 우에노에게서 그런 모습을 찾아보기는 매우 드문 일이었기에 나는 그 애를 골려주고 싶었다.

"흐흐."

내가 이상하게 웃었다.

그래, 어디 한번 재밌게 놀아봐."

"그래, 끊는다."

색정증. 우에노와 전화를 하면서 별안간 떠오른 단어가 계속 혓바닥 아래를 맴돌았다. 센터시험이니 시마다에 대한 얘기 같은 것은 별로 꽂혀들어오지 않았다.

"누구야?"

시마다가 졸린 눈으로 물었다.

"그냥 친구. 나 이제 그만 가야겠다."

내가 겉옷을 챙기려 하자, 소파에 누워서 잠을 청하는 줄로만 알았던 카토가 벌떡 일어났다.

"네 흉터 닦아줘야 하는데."

"됐어. 안 지워져."

그가 내 배 위 셔츠를 걷어올렸다. 재 흔적이 옅었다. 카토는 그대로 내게 더 가까이 다가가 입을 맞추었다. 억지로 한 것이라 전체적으로 공격적인 혀놀림이 파고들어왔다. 그리고 차차 무릎을 꿇으려 하며 맞춰가는 턱, 목, 가슴, 아랫배 따위를 감득하며 조금씩 몸을 떨었다. 그 걸레같은 말을 뱉었던 혓바닥에 비해 이 살덩이는 너무도 달콤하게 비춰졌던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구하는 사과에 쉽게 넘어갈 리가 없었다.

"괜찮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입을 맞추었다. 그러다 일순 누군가의 지시를 받은 것처럼 멈추더니 나를 올려다보았다. 무릎을 꿇고. 그래도 여전한 기시감이었다. 굴복시키는 느낌이 들기보다는 위를 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려 깔리는 느낌으로 만들었다.

"아..."

숨이 막혀왔다. 옆을 바라보았다. 여지껏 느끼고 있던 뜨거운 시선의 주인은 시마다임이 분명했다. 어느새인가 졸린 기운이 가신 무표정한 낯이었다. 그는 천천히 다가왔다. 내가 무어라 생각이 되지 않을 틈이었다. 비틀거리며, 조금 껄렁한 기세로. 늘 쭉 늘어나있던 팔소매를 걷었다. 그가 영화 속에서 나오는 슬로우 컷처럼 느릿하게 팔을 걷어들고 그것을 후려갈기는 순간 우리를 감싸던 기류도 정말 활극 영화 따위에서처럼 극적으로 변화한다는 감각만이 느껴졌을 따름이었다. 카토의 뺨이 섹스를 거치고 나온 나의 얼굴처럼 붉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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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2-06-06 22:21 | 조회 : 671 목록
작가의 말
구운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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