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비 교주, 마피아42 (1)

단번에 돈을 끌어모으는 좋은 수단은 사람의 감정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교회에 살다시피 하며 터득한 사실이었다. 솔직하게, 터득할래야 터득할 수 밖에 없는 사실이기도 했다.



나는 일전에 교회에 살았다.



사이비교의 교회였다. 문제적 신앙에 사로잡힌 부모는 순식간에 나를 교회로 몰아냈고 꼬박꼬박 문제적 양육비를 조달했다. 조달해야 할 돈은 매번 늘었지만 다행인 건지 불행인 건지 부모는 늘상 상관 없다는 양 뻔뻔하게 행동해 주었다. 그렇게 삼켜낸 양육비는 고스란히 교주 부부의 뱃속에 들어갔다. 우리 부모는 죽기 직전까지도 모를 사실이었지만, 교회 내부에선 교주 부부에게 폭력을 당했다. 아이들은 특히나 빈도가 숱했다. 무릎이 까이고 뺨에 피가 맺히도록 폭력에 시달리며 허드렛일을 감행했다. 성폭력을 당하는 아이들도 많았다. 변동 없이 운명은 여전히 기구했다. 부모가 교통사고로 전부 죽고 난 후, 시체에 관짝이 덮혀지기가 무섭게 나는 교회에서 쫓겨났다. 말 그대로 내쳐진 것이었다. 돈은 없었다. 옷은 내가 마지막으로 입었던 허름한 티셔츠와 바지가 전부였다. 알거지 상태로 쫓겨났다. 그나마 일기장과 필통, 교과서를 예전 아버지가 사준 가방에 쑤셔넣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부모님이 죽은 것도 죽은 것이거니와 유일한 거처가 없어졌는데, 무미건조한 울보였던 나에게서 눈물 한 방울 도출되지 않는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이상하다. 나는 비가 주억주억 내리는 보도에서 작은 짐가방을 짊어진 채 무작정 걸었다. 흐린 헤드라이트를 달아맨 자동차들이 연신 빵빵대며 경적을 울리고, 나는 나 특유의 무덤덤한 얼굴을 반죽처럼 뭉개놓았다. 빗물에 젖은 얼굴이 우스꽝스럽게 일그러졌다. 좀 웃으라고. 빙신아.



교회에서 얻은 것이야 많았다. 살려면 웃어야 한다는 것. 사람을 불신하라는 것. 사람을 이용해먹으라는 것. 돈을 벌으라는 것. 곧 죽어도 내 집만큼은 찾고 죽으라는 것. 그것들은 사실상 사회에 살아가면서 지대하게 수행해야 할 법칙에 가까웠다.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나는 감성파 염세주의자라는 모순적인 별명을 가지기도 했다.



빗물에 지쳐 몇번이나 넘어지던 아이는 비교적 훌륭하게 성장한 편이었다. 자신이 고쳐야 할 결점을 깨닫고 이제는 입에 경련이 날 정도로 잘 웃는 것이 그랬다. 최소한, 범죄적인 사람으로 성장했다고 한들 나약하진 않으니까 말이었다. 한때 제일 혐오했던 사이비 교주가 된 나는 담배를 자주 피웠고 술도 자주 마셨다. 화도 잘냈고 잘 웃기도 했다. 남에게 호쾌하게 굴었다. 유들거리고 허청허청 걸으며 돈을 양껏 끌어모았다. 교단 앞에서 인류애 넘치는 연설을 지껄이고 난 뒤 욕탕에 술을 채워 여자들과 놀아났다.



내가 창설한 신흥 사이비 종교 진전리교는 창설 이래 최고 기로를 달리는 중이었다. 내가 생각해보아도 그랬다. 지구 종말론을 퍼뜨린다해도 맹신할 신도들이 차고 넘쳤다. 정상인들은 사이비 교주를 안했더라면 대통령도 했을 연설 실력이라며 욕 섞인 찬사도 내뱉기도 했고.



그러나 지루했다.



차라리 어디 훌쩍 떠나버리기나 할까. 다 집워치워 버리고 이탈리아 같은 곳으로 여행이라도 갈까 이상한 발상까지 할 정도로. 한편으로는 나도 이상한 쪽으로 순진한 구석이 남아 있는지라, 그곳으로 가면 정말 진정한 사랑을 만나겠지하며 미친 것처럼 꿈꿔 보기도 하고, 로맨스 영화를 감상하며 훌쩍거리기도 했다. 나와 같이 방탕하게 놀아나는 친구들은 가끔 나의 그런 모습을 보며 미친놈이라 중얼거리기도 하였다.



















-



4월에 접어들 때쯤 전화가 걸려왔다. 내용은 간단했다. 불법 조직과 결탁하지 않겠냐는 제안이었다. 사업도 확장할 수 있고, 돈도 떼거지로 벌어들일 수 있는 기회라 했다. 술 사업이랑 관련도 되어있어 꼬냑, 아물레 프송, 아란치아 바치레 등 이상한 이름의 술들을 되팔면 돌아오는 이익이 가히 천문학적이라고 주장하며 나를 같은 사업에 묶기를 종용했다. 영입 제의였다. 웅변 실력이 대단하다는 것이 영입 이유였다. 듣기에 외국에서 트리 구조 비슷한 뼈대로 복잡하게 운영하는 조직 같았다. 얼추 듣기만 해도 그러했다.



그런 거 많이 겪어봤는데 피만 봤었다. 삶이 하도 지겹고 건조한지라 그것을 받고도 "안해요."라고 못박아놓곤 끊어버렸다. 짜증이 났다. 무슨 세상의 모든 불법 조직들은 나를 못 괴롭혀 혈안이 난 사람들의 형상화 같았다. 들어갈라치면 수하로 들어간다고 비웃질 않나 담당 변호사를 보고 출입이 금지된다나 뭐라나, 그러며 떠받들여주지 않으니 마음에 들 턱이 없었다. 하여간 불쾌한 짓들을 종일 일삼고 다녔다.



4월에 접어들며 담뱃값이 부쩍 올랐다. 욕을 하며 담배를 피우고 교회 내부에서 악을 쓰며 연설했다. 난 잘 지냈다. 너무 잘 지내고, 지루해서 미쳐버릴 정도로 단조로운 인생을 살았다. 각종 조직의 사장도 만나고, 여자들도 만나고, 마약도 만나고, 경찰서 마약 반장도 만나고, 입술에 피딱지가 얹은 남자 한 명도 만났다. 어딘가 실컷 얻어터지고 맞은 듯 보였던. 남루한 집창촌 주위에서였다. 잠깐 라이터를 빌렸는데 은제에 해골 모습이 귀엽게 박제되어 있었다. 그리고 아래에 무언가 반듯하게 기입되어 있었다. 영어나 스페인어도 아니었다. 아망떼. 연인이라는 뜻이에요. 나는 동공을 부스스 들어올렸다. 알 수 없는 언어의 정체는 이태리어였고, 그때 처음 마주했던 그의 출생지 역시 이탈리아였다. 녀석은 말 그대로 진짜배기 마피아였다.



"이탈리아?"



"..."



그는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어떻게 알았느냐고 추궁하는 눈빛만을 끈덕지게 보내왔다. 조금 어리고 앳되보이는 얼굴이었다.



"이국적으로도 생겼고. 혼혈이지?"



"..."



"야."



"그 교주 맞습니까?"



진짜 이탈리아에서 즉각 내려온 마피아는 어떤 모습인지 궁금해 살피고 있는데 갑자기 질문이었다.



"..."



"진전리교."



"어."



어떻게 알았나 의문이었다. 설마 주변에 소문이라도 짜하게 퍼진 거라면, 뭐 그런 이유라면 납득이 갈만도 했다. 그는 이마에 딸려나온 핏자국을 성성히 닦으며 물었다.



"왜 그렇게 살아요?"



그러더니 뜬금없게도, 집창촌 주위에서 라이터를 빌린 것을 제외하자면 완전 쌩초면이었던 녀석은 내게 그런 시건방진 질문을 건넨 것이었다. 왜 그렇게 사냐니. 그럼 너는 왜 그렇게 얻어터지면서 사는데. 나는 가볍게 응답했다.



"그거 정말 진지하게 물어본 거냐."



"예."



"왜 이렇게 사냐니. 돈이 좋아서 그러는데."



"빚진 게 많으면 어떡해야 합니까?"



또 답해주기 어려운 이상한 질문이었다.



"갚아야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으면?"



이제 무슨 대답을 원하는 건지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가령 집창촌이나 카지노 같은 불법업체에서 잘못 걸려 빚이라도 거나하게 불은 것 같은데, 그쯤에서 동정이나 위로는 건네고 싶지도 않았다.



"죽으면 되지."



"..."



녀석의 표정은 완전히 얼이 빠져 있었다. 미안하지만 감성파 염세주의자라 그런 말을 건네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는 가볍지 않고 정말 진지하게, 21세기의 수많은 현대인들을 우려먹는 웅변가의 심정으로서 조언해준 것 뿐이었다. 도리어 녀석이 고마워해야 할 입장이었다. 녀석은 고개를 휙 돌려 달라붙는 내 시선으로부터 도피했다. 지나가는 행인들 눈에도 척 띄는 혈액을 조금 분출하며 비척비척 걸어나갔다. 입은 양복은 피떡이 되어 있는 상태였다. 약하게 생기진 않았는데 집단린치라도 당한 모양이었다. 걸음이 향하는 곳은 불법 환전소를 겸하고 있는 도박장 앞문이었다. 도박장? 그러고 보니 대충 상황이 판단되었다. 도박 중독인가 보지. 그래서 빚도 밀릴만치 밀려버렸고, 그래서 나락까지 하강한 거고. 나는 해가 저무는 쪽을 향해 발걸음을 돌렸다. 예정대로 집창촌을 지나 파친코에 들르려는데, 그 마피아가 별안간 내 팔을 더럭 감아쥐었다. 진작에 떠난 줄 알았는데 간만에 정말로 별일이었다. 피가 고스란히 묻어났다. 나는 찝찝한 심정으로 난생 구겨본 적 없던 낯을 구겼다.



"뭐야."



"..."



얼빠져 있으면서도 미묘하게 굳은 표정은 그대로였다.



"뭐냐고."



"..."



"야."



"..."



"대답을 해. 잡아놓고 있으면."



"돈."



"무슨."



"돈 좀 주십시오."







그게 42와 내, 우리의 첫만남일 뿐이다.







어이 없었다. 계속 생각나는 것이 무엇보다도 어이 없었다.



돈 좀 달라고? 팔을 잡는 손길을 흘낏 내리보았다. 멍이며 핏자국이 형형했다. 일말의 동정심은 들지 않았다. 도와주고 싶지도 않았다. 잠깐동안 고민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아무 도움 없이 뒤돌아서자마자 미친듯이 생각났다. 피딱지와 함께 부어오른 입술덩이와 이리저리 흘레붙은 셔츠자락이 생생했다. 얼굴, 왜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지는 의문이었다. 정말 그런 일 없었다. 남창이든 창녀든 다 만나봐도 그런 강력한 자력을 지닌 사람은 없었는데 말이었다. 답답하게도, 웃음을 상상할 수 있는 얼굴이 기억나는 것이 아니었다. 몸의 형상만이 뚜렷이 뇌리를 파고들었다. 충분히 괴로웠다.



걱정이 될 지경까지 이르르자 미쳤나 싶었다. 교회 생각도 안나고 연설 생각도 구구절절 나지 않으니 평소와 180도 다른 나였다. 도박장에는 잘 갔겠지, 가서 또 털리고 오거나 린치를 당해 아예 죽을 지경으로까지 도륙난 것 아니겠지 하며 마음이 푹 졸여졌다. 잠깐. 또 왜 걱정하는지. 한숨이 피었다. 이해가 안 갔다.



나는 오늘 받은 쪽지를 찔러넣은 수트 주머니를 뒤졌다. 그는 쪽지 하나를 구깃구깃하게도 건넸다. 전화번호와 이름만이 급하게 적은 듯한 날카로운 필치로 기재되어 있었다. 호기심이 튀어올랐다. 누구일까. 당돌하게 돈을 요청한 데다 한순간의 만남만으로 그렇게도 강렬하게 걱정하게 되는 사람은, 그리고 생각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인지 하는 변명들 말이다. 나는 곧내 담당 변호사인 유다를 불렀다.



"얘가 누군뎁쇼?"



이름과 전화번호만으로도 유다는 용케도 그 마피아를 찾아냈다. 소식통다웠다. 편하게 부르기로 결정했으므로, 내가 앞으로 그를 부를 이름은 고작 42라는 숫자뿐이었다. 그 애는 42였다. 무슨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겠지만, 42는 오늘 내가 거절했던 조직의 수하였다. 전화를 하다가 안한다고 땅땅 못을 박아놓았던 술 거래 조직이 맞았다. 그 조직의 수하 중에서도 아주 끝쪽인 말단이었다.



"이런 애는 왜 찾습니까?"



나는 대답없이 차가운 담배 끝을 입에 물었다. 냉동시켜서 차가워져 오는 것이 맘에 쏙 들었다. 시원한 맛을 물어매고 전화를 걸었다. 하여간 나는 대책이 없었다. 항상 그랬다. 교회에서 쫓겨날 때도 그랬고, 거리에서 구걸할 때도 그랬고, 유다를 고용할 때도 그랬다. 유다는 나더러 과도하게 즉흥적인 사람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나도 인정하는 불림이었다. 즉 제멋대로 목표없이 살아간다는 뜻이었고, 그것 또한 사실이었다.



그렇게 대책없이 다시 걸어놓은 전화에는 이미 결탁할 사람을 찾았다는 대답만이 돌아왔다. 오늘 매정하게 거절해 놓은 것을 이제사 붙잡다니 내가 생각해도 웃겼다.



"마음에 드는 겁니까?"



"..."



"되도록 건드리지 마십쇼. 술을 거래하는 조직 이름이 주로 프레스까라는 뭐 그런 지들끼리만의 명성을 이어받은 전통 불법업체인데, 얘네 이름처럼 상큼하게 죽어버리기 싫으면 걔네는 건드리지 말라고. 그곳 새끼들은 이미 보스한테 악감정이 있습니다. 그리고 보스가 오늘 만난 42는 도박중독입니다. 그런 애들은 언젠가는 사고를 치기 마련이라고요. 알겠습니까?"



그렇다고 포기할 수가 있나. 나는 턱을 괴고 고개를 돌렸다.



"본업에 열중하십쇼. 사람들 최대한 많이 이곳으로 끌어모으는 게 그겁니다. 열심히. 계획이 없는 사람들은 자기 할 일만 꾸준히 해도 반은 갑니다."



"오늘은 로마의 휴일 보자. 내일은 신도들 상대해줘야 해서 피곤해."



"안봅니다 그런 거."



그렇다고 순순히 포기해줄 내가 아니었다. 뭐든 포기할 것 같았지만 그래도 하고 싶은 것이 생기면 끝까지 가랑이를 잡고 물어지는 그런 류의 끈기만은 존재했다. 어떨 때는 또 나름의 쓸모가 있는 끈기였다. 나는 쪽지에 기재된 전화번호를 눌러 부단히 통화를 시도했다. 시간을 그런 식으로 써보긴 처음이었다. 감정적으로 소비하는 것. 오직 시간을.



"지가 전화번호 줘놓고 안받네."



42는 그러다 새벽쯤에 전화를 걸었다. 이불을 겉에까지 푹 뒤집어엎고 송출되는 티브이 화면 앞에서 잠든 나는 한껏 비몽사몽해 있었다. 바로 옆에서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단골 배우들이 사랑을 맹세하는 중이었다. 주변이 시끄러웠다. 화면에서 흘러나오는 빛 때문에 터무니없이 밝기도 했다.



"뭐야."



나와는 영 달리 뚜렷한 목소리인 녀석의 전화를 받아들었다. 뚜렷하기야 했지만, 목소리가 잔뜩 부어 있었다.



"돈은요."



"전화하자마자 시시하게 그 소리야."



"술 드셨습니까?"

"그냥 졸린 거. 그러게 왜 전화를 새벽에 하냐? 생활리듬 다 깨지게."



"나중에 계좌번호 알려드리겠습니다."



"생초면인 애가 당당하네. 난 너한테 돈주겠다고 말한 적 없는데."

"사이비 교주는 다 부자가 아닙니까?"

"부자라고 해서 돈 막 퍼주는 건 아니지."



생초면인 것도 맞고 대화라곤 오늘 한낮에 나눈 대화가 전부인데 말은 20년지기 친구처럼 술술 흘러나왔다.



"너가 누군지 알아."



"네."

"42."

"맞습니다."

"빚이 얼마야?"

"뒷조사로 그런 건 못 알아냅니까?"



녀석이 요점을 짚었다.



"그래. 한국 돈으로 대략 육천만원? 아마?"

"예."

"그걸 다 갚으라고 했으니 완전 생양아치네..."

"..."

"다 좋은데 나는 잠 좀 잘게. 지금 너무 늦었어."

"네."

"언제 또 보든지 그래."

"네."



나는 전화기를 덮고 눈가를 비볐다. 자식. 뒷조사를 실행한다는 건 어떻게 알았을까. 복잡했다. 됐다, 생각은 그만하자. 나는 멍하니 사랑을 고백하는 배우들을 바라보았다. 전화기를 끄자마자 외로움이 더욱이 실감나게 느껴졌다. 유다도 자기 사택에 갔을 테니 널찍한 저택에 나 홀로였다. 어쩐지 tv는 계속 바쁘게 돌아가는데 그것 때문에 외로움이 배로 증폭되는 듯 했다. 이상해. 정말 이런 기분은 이질감이 들었다. 오늘은 참 이상했다. 아니면 42를 대면하고 나서부터 이런 이상한 일들이 속속들이 벌어지는 것일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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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4-04-02 23:58 | 조회 : 297 목록
작가의 말
구운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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