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비 교주, 마피아 4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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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하루가 흘렀다. 유다는 무사했다. 생채기 하나 없이 집에서 사색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곧장 우리를 치료하게 만든 다음, 그 애는 도주할 작전을 세우자고 다짐했다. 하지만 그런 대단한 작전이 감히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우리도 은연 중에 깨닫고 있던 것이다. 바위에 계란치기 격이라는 것을.



"저 자식들한테 걸린 이상 지구 끝까지 도망쳐도 소용은 없을 테지만 그래도 시도는 해봐야 합니다요."

"예. 그렇습니다."

"그러게 왜 굳이...그럼 가서 짐 정리할 거 싸오십시다. 다들 사정은 알겠으니까. 그니까 얼른 짐싸십쇼. 보스하고 42가 그렇게 염불 외던 이탈리아로 가야하지 않겠습니까."



42는 그렇게 바라던 이탈리아로 떠난다 했는데도 정작 불안해보였다. 나는 급박하게 짐을 쌌다. 42는 모든 걸 조직에 두고왔고, 집도 조직인지라 쌀 짐도 없었다. 나는 매장에 가서 녀석에게 필요한 생필품 같은 것들을 사들였다. 교회는 아예 청산을 했다. 지금 상황에서 그깟 교회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일단 확률이 있으면 걸어보기라도 하자는 의지가 중요한 것이었다.



"너도 도박 생활 청산해."

"..."



42는 계속 말이 없었다.



"걱정돼?"

"..."

"내가 끝까지 지켜줄게."

"미안하지만..."

"어?"

"난 이기적입니다."

"뭐?"

"나만 포기하면 되는데 굳이 남을 끌어들이니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야."



그는 한숨을 쉬며 침대 바닥에 몸을 지탱했다.



"난 그냥 해를 끼치지 않고 싶을 뿐입니다. 그것도 사랑하는 사람한테."

"넌 해 하나도 안 끼쳤어."



"..."



그가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마구 두드렸다.



"아! 정말!"

"뭐, 왜, 또 왜."

"모른 척 하는 겁니까, 아니면 진짜로 모르는 겁니까?"

"왜."



"그 새끼들 진즉에 우리 잡았겠죠. 얼마나 큰 조직인데. 그런데 유다도 안 죽인 거 보면 뭔가 감이 오지 않습니까? 그냥 우리 죽일 수도 있고, 언제든..."

"그러면 당장 내일 죽는데 이러면 안돼?"

"네?"

"0.1%라도 우리가 살 확률이 있잖아. 쟤네가 그냥 보내주는 거라면."

"장담건대 절대로 그럴 일 없습니다."

"너가 지금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만약 내일 정말 죽을 것 같아 불안하다면 하고 싶은 거 오늘 새벽에 양껏 해도 돼."

"..."

"아니 잠 많아서 못하려나?"



내가 억지로 웃자 그의 표정도 조금 풀어지는 듯 보였다. 나는 기꺼이 내가 일전 로맨스 영화에서 목격한 것을 그대로 따라하자고 마음 먹었다. 이벤트를 준비했어.



"그럼 하자."

"뭡니까."

"좋아하는 사람 생기면 꼭 해보고 싶었던 거 있어."

"아주 작은 공이네요."

"몸부터 기어가서 이렇게..."

"간지러워요."

"아, 그렇게 하는 게 아냐! 영화에 나오는 건데 밑에서부터 몸의 굴곡을 천천히 따라가서 입에 물리는 거야. 그리고 키스를 하지."

"이렇게?"

"그래, 그렇게."

"괜찮습니다. 이제."

"잘하네..."

"..."



잠깐 시선이 마주쳤다.



"야. 울지 마."







울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어르다가도 나도 눈물 지어서 어이 없게 웃음지었다.



"정말 웃겨. 이럴 일이 없는데..."

"저도 곁에 사람이 생기고 나서야 이런 걸 해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울보도 아니었어."



아침이 밝으면 떠나가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마지막인 것처럼 뒹굴고 마지막인 것처럼 사랑하면 그게 전부 끝이었다.























그리고 아침 차를 타고 가던 길이었다.



그때 떠나지 않았으면 무언가 좀 나아지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오산이었다.



우리는 우리의 예상대로 붙잡혔고, 유다도 어느정도 예상하고 있던 사실이라 크게 반항하지 않았다. 사실 나도 알고 있었고 42도 알고 있었다. 똑똑한 척은 다 했는데 멍청하게 당했고, 바깥으로 떠났다. 나는 다시 한국 지부로 돌아가야 했고, 42는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집으로 가야 했다.



유다와 나는 두 의자에 같이 묶였고 42는 거꾸로 매달렸다. 그 죄가 더 크다는 것이 고문의 이유였다.



42는 대롱대롱 매달린 자신의 모습을 부정하지도 않았고, 그냥 우리와 더 많은 대화를 하려 시도했다.



"울렁거리지 않아?"



42는 예전이라면 상상도 못할 정도로 밝게 웃으며 답했다.



"응!"



나는 조금 쉰 목소리로 유다에게 말했다.



"유다."

"..."

"궁금한 게 있는데."

"왜요."

"왜 내 밑으로 왔지?"

"마지막인데 그런 게 궁금해요."



"마지막은 아니야."

"예?"

"마지막은 아니야."



2인자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수하가 이 지하실을 찾아들고는 말했다. 손에는 권총을 쥔 채로였다.











"뭐라고 떠드냐. 너 먼저 죽어라."

















[STING-SHAPE OF MY HEART]





무덥다.



우리는 꼬질꼬질했다. 유다가 죽었다.



유다의 시체가 일주일이 되도록 이 좁은 밀실에서 썩어가고 있었다. 마지막이 아니야. 마지막이 아니야. 마지막은 결코 아니다. 42는 거꾸로 매달려 이제는 자기 장기 위치마저 바뀐 거 같다며 우스개소리로 지껄였다. 그가 언제나 늘어놓은 우스개소리가 늘 그렇듯 하나도 웃기지 않았다. 그동안 양잿물도 먹고 차가운 권총도 내 이마에 닿았고 몽둥이질도 당하자 온몸이 으깨진 것 같았다.



목이 말랐다. 수하가 거울을 가져왔다. 보기 싫었는데 그냥 보여줬다. 꼴이 말이 아니었다.



일주일 째 되는 날 2인자가 찾아왔다. 그는 이제 나도 42처럼 거꾸로 묶어놓겠다고 했다. 그리고 실제로도 거꾸로 묶였다. 나도 42와 똑같은 노끈으로, 똑같은 자세로 거꾸로 매달린 것이다. 머리가 핑 돌았다.



"나 부탁이 있어."



42가 다 갈라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사람 목소리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쉬어버린 목소리였다.



2인자가 철창 속 원숭이를 관람하는 것 같은 시선으로 42와 나를 바라보았다. 42가 꿋꿋이 요청했다.



"너한테 죽기 싫어. 이 조직 사람들 손에 죽기 싫어."

"그건 안돼."

"왜."

"누군가 너를 죽여야 해. 망나니 역할은 꼭 필요하다고."

42는 고민도 없이 나를 가리켰다.

"이 사람...."

"얘 손에 죽고 싶다고?"



그가 숙여지지 않는 고개를 구부려 말아 애써 숙였다. 피가 파스스 솟았다.



나는 놀라움에 소리가 나지 않는 목으로 소리를 냈다. 꺽꺽 소리만이 났다. 목에서도, 입에서도, 눈에서도 피가 났다. 몸에 서식하는 9개의 구멍에서 피가 나면 안되는데. 그는 내 손에 권총을 쥐어주었다. 일단 저렇게 간곡히 부탁하니 나도 어쩔 수 없이 그것을 잡았다.



"뭐하는 거야? 뭐하는 거냐고? 난 널 못 죽여."



내 입가에서도 새삼 괴물같은 음성이 났다. 2인자는 날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그렇게 하지. 대신 얘가 널 못죽이면 내가 널 죽여."

"응."



그가 떠나자 나는 전보다 더 크게 소리질렀다.



"뭐하는 거냐고?"

"날 죽여줘."

"안돼."

"난 원수의 손에 죽는 것보다 사랑하는 사람 손에 죽을래."

"입장바꿔 생각해봐. 난 너를 죽이는 입장이라고. 너라면 날 죽일 수 있어?"

"형이 간곡하게 부탁하면 죽여줄 수 있어."

"..."

"어서."

"나 자살할 거야."

"그러지 마."



그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거꾸로 흘렀다. 흐른 눈물이 이마를 타고 머리카락 사이로 사라졌다.



"이러니까 우주비행사 된 것 같지 않아? 속도 울렁거리고."

"울지나 말아."

"죽지 말아."

"어차피 난 죽어."

"아냐. 저번에 형을 생포한 데 이유가 있어. 모르긴 모르지만 형은 최소한 살 수 있어. 내가 장담할게."

"말도 안돼."

"제발 자살하지 마."

"너나 죽는 거 부탁하지 마. 자살이나 다를 바 없잖아."

"형, 형은 가능성이 많아. 살 수 있어. 나는 곧 죽고. 방금 말하는 거 들었잖아. 확정이지."



그가 웃었다. 목이 콱 메였다. 목에 아프게 응어리져 넘어가지 않는 덩어리를 꾹 삼켜냈다.



"0.1%라도 있잖아." 내가 말했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

"어쩌다 내가 이렇게 도박도 끊고, 사랑하는 사람 손에도 죽을 수 있고, 그것도 내가 바라던 밀실에서...하고 싶은 것도 이루고...정말 행복하게 죽는 거야."



후회하는 줄 알았는데 후회가 아니었다.



"내가 죽인다고 하지 않았어."

"괜찮아. 어차피 형은 내가 하고 싶은 거라면 다 해주잖아."

"아니야."

"맞아."

"아니야."

"맞아."

"아니야."

"맞아."



하아.



"언제 오는 걸까."

"형. 나는 그런 역겨운 사람 손에 죽기 싫어. 내 친구의 피를 묻힌 손에 그리고...아 이런. 내가 또 이기적인 건가?"

"어."

"싸우다 가기 싫은데."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나는 그렇게 말하며 권총을 떨어뜨렸다. 그의 표정이 아연사색이 되었다. 이제 누군가가 들어오기 전까지 저 총을 다시는 주울 수 없었다,



"형...뭐하는 겨야..."

"아무리 생각해봐도 네 심장이나 머리에 총알을 박아넣는 짓은 못하겠어. 너무...너무 무서워. 네가 그 안광을 잃어버리고 죽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건 너무 무서워."

"난 그 사람한테 죽는 게 더 무섭다고!"

"이미 떨어뜨렸어."



그가 가쁜 숨을 내쉬었다.



"형은 정말 잔인해."

"나도 알아."

"그런데 이러면서도 사랑해서 밉지...안 그래?"



기분이 좋았다. 둥 뜨는 기분이 들었다. 이제 42의 눈에선 주체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눈물이 주륵주륵 쏟아졌다. 수많은 방울이 머리카락으로 몸을 숨겨 울었다. 내가 마지막 말을 뱉으려 했다. 목이 아팠다. 이미 났지만 성대에서 피가 솟구칠 것 같았다. 나는 그럼에도 애써 목을 놀렸다.

사랑해.

소리가 나지 않았다.

입모양도 티가 안 났다. 나도 울고 싶은 심정이다. 마지막으로 죽기 전에 할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하도 절망적이야.



문이 달각 열렸다. 2인자. 나나 42가 여지없이 혐오하는 인간이었다. 우리는 서로 싸워댈 것이 아니라 저 인간을 탓했어야 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결국 죽이지 않았군."



그가 권총을 들었다.



심장이 마구 뛰었다. 나는 눈을 부디 가려달라고 부탁했다. 이유는 사랑하는 사람의 이마나 입, 심장이나 다른 급소 부위에 총알을 박아넣고서 피를 흘리며 죽어있는 모습이 끔찍하도록 싫어서였다.



그는 끝끝내 내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는 42의 곁으로 갔다.



그러더니 내 곁으로 왔다.



그리고 권총을 내 이마에 가져다 대었다.



탕 소리가 울렸다.



마지막으로 목격한 것은 웃으면서 우는 42의 미묘한 얼굴이었다.



입모양이 말했다.



나도.



나는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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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4-04-03 00:03 | 조회 : 184 목록
작가의 말
구운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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