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한 구토인형들 (1)

1. 김영광

"주님, 은혜로이 내려주신 이 음식과 저희를 위해 강복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부르르 떨리는 어깨, 그리고 그 틈새를 반듯이 지켜보는 엄마의 눈이 보여. 노란 조명을 받는 음식들은 먹어야 할 무언가가 아니라, 해부를 받는 전혀 동떨어진 대상처럼만 느껴져서. 난 입가를 늘어뜨리고 멍하니 그것으로 시선을 내리깔지.

"얘, 거울로 너 좀 봐봐."

"..."

"네 팔하고, 네 다리하고, 네 얼굴이며."

그런 것들 좀 보라고. 그리고 아마도, 엄마의 떨리는 목소리가 전해 내려와.

"..."

"영광아, 너 정말."

오산빌라에서 벗어나 북로 6길을 지나. 교문 앞에 도달하면 보이는 푸른 하늘.

살이 빠지게 된 이후부터는 몸에 계속 힘이 없어 학교가 끝나면 곧바로 침대로 가. 그리고 나서 계속되는 추위를 느끼며 잠에 들지. 팔짱을 낀 채로 내부가 자꾸만 삭듯이 덜덜 떨리는 것을 느끼며. 나는 그게 어디서부터 오는지 알 수 없어. 그렇다고 유일한 운동이라 할 수 있는 발걸음 보폭을 조금 더 줄이기엔 무서워서.

코를 찌르는 향수 냄새를 느끼며 도착하자마자 얼굴을 묻어. 잠은 늘 꼬박꼬박 잘 찾아와.

"영광아. 축구 왜 안 끼냐니깐."

"..."

"씨발 영광아 비실비실해가지고."

다리를 차면 아 너 정말로 부서질 것 같아. 그 소리를 많이 듣기도 했었지.

"좀 움직여야지 해골바가지 안 되지."

"왜 자꾸 김영광 꼽주는데?"

박세린이 주변 남자애들 등판에 소리가 나게 손을 대 때리며, 고개를 살짝 젖히며 웃어.

전상민.

전상민 여자친구는 탈색모를 흔들고 다니는 그 여자애 박세린. 그 옆에 있는 늘 박세린을 쫓아다니는 저팔계가 내 등을 잡아. 그리고는 말해.

"얘 존나 웃긴게 이 새끼 너랑 얘기 좀 하면 졸라 뭐라 하지 않냐. 나는 좆도 신경 안 쓰면서."

"너랑 눈 맞을 일이 좆도 없으니까 그렇지."

"아 이 새끼는 눈 맞을 수 있고?"

더러운 소리가 오가.

"영광아 씨발 공 주서오기로 했잖아."

아니, 아냐. 보지 말라고.

빨개지지도 않지만 곧 있으면 빨개질 것 같아. 저팔계가 내 등을 치면 늘 넘어지거든. 그래서 또 넘어졌어. 이럴 때쯤이면 차라리 토하는 게 더 좋겠다고, 뭐 대충 그런 생각이 들어. 급식실에 들어서면 그 이상은 현실이 되지. 스트레스를 받으면 아무것도 안 보이는 척을 하고서 우선 숟가락을 가져다 대기에. 물병을 가져들고 향해 남자아이들 사이에 섞여 잡곡밥과 무슨 고긴지도 모르는 걸 욱여넣고 또 욱여넣고 급하게 버리고 물을 또 마셔.

"씨발, 어딜 가."

가려고 하면 다시 후드 집업 뒷소매를 잡아 이끌어. 토기가, 토기가 부드럽게 이는 듯 해.

"상민아. 나 급하다."

토해내러.

두 시간 내로 처리 못하면 전부 살로 붙는단 걸 알기라도 할까 그 느낌을 영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나는 발걸음이 급해. 아니 어딜 또 그리 급하게 가는데.

"뭔데."

게워내러. 게워내러. 손을 뿌리치려 하지만 남은 힘이 없고 전상민의 악력은 또래 애들과 비교했을 때 과해.

"뭐가 급한데, 씨발."

웃고는. 아 여자애들이 그렇게 좋으면 말을 하든가. 또 놀러 가는 거 아냐 걔들하고, 어차피.

"뭐 조성령 비키니라도 보여줘?"

"상민아, 제발...나..."

그때쯤 익숙한 음성이 귀 뒤를 스쳐.

"무슨 똥 마려운 개새끼도 아니고. 지랄을..."

대충. 빨리 끝내. 야구부인 이종현이 머리를 툭 치고 지나가. 피부가 주변 사람들관 눈에 띄게 대비될 정도로 희어.

"하여간 눈치 좆도 없지?"

"바로 온다고 나 진짜."

나는 느슨해진 틈을 타 도망을 가고 단숨에 4층으로 향해. 빈 화장실에 들어가 먹은 것을 게워내. 몇 달 전부터는 손가락을 넣지 않아도 금세 나와. 배가 터질 정도로 밀어넣고 쪼그리고는 고개를 순간적으로 젖히는 데서 오는 반응이었어. 입가에 흐르는 액체와 토기를 물로 정돈한 후 비척이며 그곳을 빠져나와.

이종현의 뒷모습이 이젠 생각 나지 않아.

내 기억으로 달랐어.

6학년 때 같은 반일 때 그때 전학을 왔을 때. 그땐 나랑만 다니고 나랑만 어울렸었고 두꺼운 검은 뿔테 안경을 낀 채 회색 페이크삭스를 걸치곤 했는데.

"바로 온다면서 썅년아. 뭔데?"

뒤에는 저팔계랑 7반 개그맨이랑 이종현. 이제 거의 다 뭉친 거나 다름 없어. 오늘 상훈이 오토바이 타고 같이 피시방 가 같이 가 그런데 나는 고개를 저어.

"아니 너희 후레시랑 담배 사러 가는 거잖아."

"응 거기 들렀다가."

"아니 싫어."

"잠깐 해."

전상민이 나를 꼭 잡아.

"싫어."

"영광아 좀 닥쳐봐. 씨발 내가 말하고 있는데."

그 오토바이들이 대열을 이룬 가운데 마지막으로 참여해 저팔계 뒤에 가까이 붙은 이는 한여울.

전교부회장에 무용동아리 부장을 역임함에도 대체적으로 여유로워 보이는 얼굴을 띠고 있어. 한여울을 보면 왜 유난히 내 속이 이상하게 울렁거리는지 알 것 같아.난 그 애완 여타 사람들보다는, 좀 더 낫고, 좀 더 좋은 관계였다고 생각하니까.

그게 벌써 한 달 전의 일이야. 동네 화장실에서 유난히 긴 목을 붙잡고 토를 하던 거. 문도 잠그지 않고서 우선 변기를 부여잡고 헛구역질을 뱉어. 타액이 주위에 흐르고 몸을 떨고 눈에서는 어쩔 수 없이 눈물이 나오지만 그 뒤에 누군가가 있을 때 심장이 떨어진다는 느낌이 약간은 체감될 때.

"씨발, 뭐야."

상대적으로 어울리지 않는 욕설이 물 흐르듯 튀어. 붉게 충혈된 눈이 곧내 터질 것만 같아. 옅고도 조막만한 미소가 눈에 띄어.

한여울이야.

"김영광. 너 나 쫓아왔냐?"

"토하는 소리가 밖에서 나잖아. 크게."

그것만 듣고 바로 왔다니 하며 자꾸만 웃고.

"안 그래도 오늘 망해서 좆같은데 또 좆같은 새끼 하나 붙었네."

"뭐가 망했는데."

"첵스초코 1키로를 우유에 안 말고 세 시간 동안 쳐먹었다 씨발. 뻑뻑하더라."

"왜 그러는 거야?"

"존나 배고팠으니까. 콩쿨 나가야 해서 7일간 먹은 게 탄산수 밖에 없어."

근데, 씨발, 왜 너한테 얘길 하고 있냐? 아니, 그만, 그만. 손을 휘저어 하던 것을 중지시킬 정도로 말이 많았어.

"고개 들어봐."

"왜."

"들으라면 들어."

그리고 드러난 턱선을 꾹꾹 매만져 눌렀어.

"뭐하는 건데."

"마사지."

"아, 됐어."

"이거 안하면 턱 사각 되는 거 몰라?"

그걸 듣자 한여울이 좀 조용해졌어.

"아, 좀 살살 해. 그래, 그쯤 하고. 근데 야 너 쫌 익숙해보이는데."

"장인이야. 토하는 데서는."

"너도 해봤냐?"

"뭐."

"이거."

얼추 화장실 칸을 턱짓해.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 짓고.

"안 말해도 알 것 같은데."

"아 어쩐지. 존나 깡말랐더라."

빙긋 웃어.

"딱 우리 학원쌤이 좋아할 몸인데. 내가 그래서 존나 이런 짓을 하고 있는 거야."

말 그만하고 손 닦어.

"피시방 갈래."

"할 줄 아는 게임 없어."

"아예 안해? 그럴 수가 있냐? 공부를 좆나 빡세게 하는 거야?"

"아니. 못해."

"그럼 뭐야, 씨발. 평소에 뭐하는데."

"전상민이랑 노는데, 야마하 타고."

"와, 영광아. 이 호구새끼야. 그걸 그렇게 표현할 수가 있다는 게 존나 놀랍다. 일방적으로 당하는 거겠지."

"기분 나쁜 소리 하지 말고. 네가 하는 것 좀 보여줘봐. 궁금해."

"내가 광대냐?"

"부탁이잖아. 발레는 언제 보러 간 적 있는데 현대무용은 잘 모르겠더라고."

웃음이 풋풋이 베어져나와. 금세 몸을 푸는가 싶더니 내 쪽을 흘끗여.

"촌놈."

배배 꼬고 흔들고 어느 부끄럼도 없이 한산한 공원 단 위에 서 생각보다 건강해보이는 활기를 풍겨. 나는 가질 수 없는 그것을 생생하게 띠고서. 그 앤 아 그래 내 앞에서 그토록 선명한 춤을 추고 있구나.

"그래서 뭐야 이거. 연습한 거야?"

"아니 프리스타일."

"아."

"작품 제목은 뭐로 하냐, 어?"

그런 일이 있었으니 어쩐지 시선만으로 말을 하는 듯 해. 나를 빤하게 바라보다가 찌푸려. 그리고 풀어. 그럼 이제 먹고 토하는 행위를 알아챈 사람은 이종현, 한여울. 전상민과 함께 엮이면 이렇게 된다니까. 눈에 띄게 기민하고 눈치 좋은 아이들은 거기 눈송이처럼 뭉쳐.

일로 와.

네가 무슨 생각 하는지 난 모르겠다 전상민. 이종현에게 들은 바 있어. 토목 공사 현장에서 잔뼈가 굵었겠지. 그래서 그 애의 아버지께선 석재 사업에 뛰어들어 대박을 터뜨렸고.

AMG를 타며 헬스는 또 꼬박 하잖아. 이레즈미를 박고 배가 나온 코뿔소형 인물이라면 오히려 나았을지도 몰라. 피어오르는 열등감을 숨길 단초가 됐을 테니까. 그럼에도 무슨 감정인지 종잡기는 어려워. 헷갈려. 속이 울렁거려. 저팔계가 했던 말 때문에.

"전상민. 그 놈. 같은 남자가 봐도 좆나 핀 인생이고 좆나 멋있긴 하지 씨바 그렇지 않냐?"

여선생들도 대놓고 좆나 빨아주잖아. 저 애한테 몸을 파는 게 더 나을 것이리란 이상한 생각을 하게 돼. 이런 생각에 얽매인단 건 정신병에 걸린 게 틀림없단 반증.

"여 위에 앉아."

가끔 개그맨과 저팔계가 게이인 척 장난을 칠 때마다 더러움을 느껴 하지만 나는 자꾸 힐끗거려.

"아앙, 오빠, 나 돈 많은 남자가 좋더라."

과한 신체적 접촉은 필수불가결인데. 나는 저런 것을 즐기지 않아. 못하는 것일지도 모르지.

"상민아 나 왔어."

그렇기에 그냥 할 말을 할 따름이야.

"너 아까 나 불렀잖아."

당장에 뺨이 훅 돌아가.

"야 이 씨발새끼야. 너 박세린이랑 어제 어디 갔었냐?"

무슨...

"거기 갔던데."

사거리에 위치한 룸카페. 상호명은 휴식공간. 자각해. 빨간 뚜껑 소주병과 키스. 어렴풋이 섞여들어가는 기억이 존재해.

"너 전상민 좀 닮았네."

담배를 에어포스 밑창으로 비벼끄며 박세린이 중얼였어. 내가 홀로 거기 불러들어간 건 다른 남자애들도 아무도 몰랐어. 학교가 끝나고 전상민이 한여울과 pc방에 간 것을 확인 후 박세린은 휴식공간으로 날 이끌고 갔어. 난 순순했어. 아다여서 궁금했다는 게 단지 그 이유였어.

"있잖아, 너."

"..."

빤히 날 바라봤던, 박세린의 호기를 담은 커다란 눈알.

"게이란 거 진짜야?"

나는 그저 가방에 담긴 술을 호젓이 꺼내들며 물었어.

"누가 그래?"

"전상민."

"병신같은 소리야."

충분히 취하고선 별로 기분 좋지 않은 섹스를 마쳤고 내 좆은 일을 못했어.

"그래도 네가 걜 닮은 게 약간은 좋아."

재차 강조하며 박세린이 구부러뜨리고 재를 톡 털어낸 이오니아가, 뇌리를 스쳐가. 붉은 내 시선은 다시 그리고 내 앞의 전상민에게로 향해.

"아니 쟤는 왜 그러게 거길 단둘이 가자 해 역겹게."

나를 두고 하는 소리란 것이 현실감이 들지 않아. 잠깐은 관망하듯 보고 있던 찰나에 다시 손찌검이 뺨에 맞들어. 손바닥, 뜨겁게 달아오르는 볼, 가누지 못해 쓰러지기 직전에 오른 다리 그리고 통증. 팔을 붙잡아 우두둑 소리가 나게 꺾네. 비명을 지르도록 거센 고통을 맞아. 주먹을 쥐어. 그걸로 뭘 하게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미물에 못잖은 그저 지렁이가 되어, 두어번 즈음 밟아도 꿈틀하지 못해.

그냥 바라봐 전상민의 색이 옅은 눈동자.

"..."

부끄러움에 어느새 한증막의 속살처럼 후끈 달아오른 내가 보여. 몸을 배배 꼬고만 싶어.

"상민아. 미안해. 전상민. 내가 미안하다고."

"..."

"씨발... 상민아... 미안하다고."

나뭇가지같이 힘이 없는 팔다리를 휘저어도 미풍 정도로밖에 여기지 못해. 눈물이 맺히는 게 더 불쌍해보여 그래서 쥐어 짜내려 했는데 씨발 안되잖아.

"뭐가 미안한데? 뭐가."

목을 졸라 벽에다 대어 위로 끌어올려. 조금 더 윗쪽인 벽을 대고 꽂힌 나를 빤히 바라봐.

이종현. 뭘 보고 있는데. 왜 넌 변했는데. 왜 너는 슬슬 야마하를 몰고 이름만 아는 형들과 누나들이 연락처에 늘고 조말론으로 가려지지 않을 담배냄새를 풍기는데.

목줄기를 밀고 들어오는 전상민의 혈맥과 투명한 피부 새에서 체득될 뿐이야.

숨이 막혀와.

그리고 그 옆에 차근한 눈길로 관망하는 한여울. 진위여부를 가리고 싶어하는 마음이 보여. 뭐가 그리 널 불안하게 하냐. 꾹꾹 턱 주변을 누르고, 나를 도대체 알 수 없는 눈길로 꿋꿋이 바라보는데. 그 날 뭣 때문에 자꾸만 손가락을 식도에 쑤셔넣었던 건지 말해줄래? 누구보다도 우리같은 사람들이 제일 잘 알잖아.

눈을 감아버리고 싶어. 눈 앞 여기에 믿기지 않는 풍경을 뒤로하게.

전상민.

적당히 해.

질식시켜달라고 한 적 없어. 57kg 몸으로 버둥거리는 건 별 쓸모가 없어.

"...상민아, 상민아. 제발."

내가 힘을 잃고서 식은땀을 흘리며 비실비실 웃음도 흘리고. 그러면 전상민의 눈이 일그러지며 일순 감전에 맞먹는 반응을 일으켜.

"영광아 씨발 왜 쳐웃고, 지랄이야."

손에 들어간 힘이 차차 풀리더니 시야는 아래로 내려가. 머릿속을 메우는 건 복잡한 생각 뿐이야. 그때 건넸던 이종현 말이 진짠 걸지. 둘만 남은 체육 창고에서 먼지 속 튀어나온 실없는 소리도, 얼추 웃으며 받아줬어.

"넌 개새끼가 편하냐?"

이종현이 대뜸 물어온 것에, 그렇잖아도 피곤한 정신을 더 허비하기 싫어서. 그런 것 같다고 중얼이며 난 고개를 끄덕여.

"그런 것 같다고. 그럼 계속 그렇게 개같이 살아. 재롱 부리면서 전상민 아래서 굴르라고."

맞을 것을 감수하고서 주먹을 쥐어 물어.

"어느 누가 계속 그렇게 살고 싶겠냐. 그냥 니 앞이니까 그런 거지."

"..."

"종현아 그러는 너는, 니는 왜 그렇게 됐냐? 왜 그렇게 됐어. 왜 그 새끼 옆에 서서 후까시를 그렇게 잡는데?"

배트가 휘둘러지는 대신 내 쪽으로 날아와. 애꿎은 콘을 맞춰서 그것이 대신 쓰러질 따름이지. 맞출 수 있는데, 일부러 콘 쪽으로 던졌어. 나는 그대로 달려가 힘없이 주먹을 던져.

비실한 타격감.

이종현은 평소처럼 냉소 섞인 피식임도 보이지 않고 날 그대로 깔아서 찍어눌러. 주황색 콘을 잡아 얼굴을 찍으려 하다. 힘없이 감은 내 눈을 사이에 두고, 그대로 멈춰.

"넌 왜 이렇게 됐는데?"

머리칼을 쥐고서 바닥에 사정없이 뒹굴 내쳐지듯. 나는 꼭 그렇게 그 날 차가운 이부자리 안에서 뒹굴었어.

생각이 난단 말이야. 자꾸만 생각이 나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대개 불면으로 끝맺음하지. 그때 박세린과의 섹스를 알게 되었을 때. 전상민의 무감한 낯과 한 군집의 원숭이처럼 실실 웃어대는 다른 새끼들이, 생각나서.

"아아, 아아, 전상민, 이 씨발새끼야. 아프다고. 그만해."

날 새벽 중 공원에 불러선 발길질하고 웃었던 날도 떠올라. 왜, 왜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지는 나도 잘 알고 있어.

"야. 김영광. 씨발, 딴 생각하지 말고."

내 시선은 다시 욕설을 내뱉는 두터운 입술에게로 돌아가. 이종현은, 이따금씩 전상민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곤 해. 지금이 바로 그 경우구나 싶어.

"내가 걜 수 년을 봐오고 이런 사람은 아닌데 전상민은 씨발 그 새끼는 진지하게, 그냥 남 내리꿇게 하는 거에, 남들 모욕 주는 데에 환장했어. 심보가 왜 그런진 모르겠는데."

"그럼 내가 그런 놈 밑에서 어떡하냔 건데."

이종현의 내리깐, 냉혈한 시선이 보여.

"넌 씨발 이미 이미 걔 눈에 난 거야. 눈 밖에 난 건 어쩔 수 없는데 계속 거슬린 건 네 잘못이 아니겠냐?"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 그 날 돈도 뜯기고 있는데 그거 막은 그게 잘못이라고. 그냥 너희가 좆나 양심이 나간 새끼들인 거야."

"김영광, 이 씨발새끼야. 넌 그게 잘못이야."

굽힐 줄 몰라서 그게 잘못이라고들. 그치만 고칠 생각 없어. 그 놈들이 잘못된 건 이미 너무나 자명하기에, 내 생각에 다들 벌을 받아야 해. 난 그냥 하던 공부만 잘하면 된다고. 내가 나중에 다시 복수할 테니까 어떻게든 씨발 다시, 다시. 다시, 다시 교실로 돌아가려 몸을 일으켜.

"김영광."

핏줄이 곧게 뻗은 정상민의 손이 나를 쓰다듬어. 뒤에서 머리칼을 벅벅 긁고 자꾸 털어. 박세린이 어떻게 됐는지 궁금하고 걱정되지만 내 공포가 그것보다 더 크다는 것을 이젠 알아. 그게 다른 양심적 의무를 이길 수 없어. 그래서 난 또다시 입을 닫아. 갑자기 일어나 어지럽네.

빈혈 증상을 보이며 비틀거리곤 입속에 욱여넣겠지. 집에 가서도 냉장고를 열고 나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음식이 어디에 있는지 간절히 찾겠지. 칼로리는 높고 기름이 진 것들 그 많은 것들 중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음식이 어디 있을까.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아. 그럼에도 우선 주머니 안을 채우듯 메우는 거야.

"무슨 일 있어?"

걱정스런 시선이 눈에 띄어. 아니 괜찮아 들킬래야 들킬 수 없을 거야, 그렇게, 무작정 생각했지. 그러다 화장실에 무릎을 꿇고 엎드린 나와 그 뒤를 지키는 시선을 마주한 거야. 도망갈 곳도 없어.

"영광아."

"..."

"언제부터야."

언제부터인지 나도 모르겠는데 엄마는 그렇게 물어. 존스타운 신도 못지 않은 신앙심을 자랑하는 우리 모계다워. 다 죽어가는 내 꼴을 보자마자 그건 네 원죄라는 소릴 지껄이잖아.

아니, 내가 믿는 신께서 언제부터 이렇게 사이비셨나.

문제는 내 고해성사를 받아들이는 그 신부님이겠지.

이제는 너무 많은 21세기 호모소설에 인용되어 지겨울 지경인 레위기 공동번역성서. 거기서 뭐라 했더라 여자랑 떡치듯이 남자랑 자지 말라고...

"마귀가 있어서 그래."

그리고 다시, 내 시선은 나를 떨리는 눈빛으로 내리보는 엄마를 향해. 또 하나님 말씀을 기억하라 그런 소릴 할까 보다 싶었는데 나온 말은 의사를 만나보란 것. 그간 했던 지겨운 의례가 먹히지 않던 건 자각하고 있나 봐.

"병원부터 가."

"병원엔 안 가 절대. 다시 거기로 못 가. 뭐가 그렇게 무서워. 무서운 게 아냐. 다시 그 무거운 물에 쩔은 솜덩어리 같은 살들을 두르고 다니기 싫어 다시 그러기 싫어."

"뭐?"

난 그저 만족하지 않을 뿐이야. 여기서 유지만 하면 만족해. 그게 안되잖아. 여기서 더 마르고 그래서 사람들이 나를 더 걱정해주길 바라. 그러니까 그렇게 말해.

그게 무슨 소리야 넌 좆나게 말랐어.

넌 뼈밖에 없어.

그러지 말고.

자 이것 좀 먹어. 아니 아니 아냐 나는 그럴 순 없는 거야.

내가 내 자신도 제대로 컨트롤할 수 없으면 내 마음대로 되는 게 뭐가 있는데. 어차피 뭐든 게 다 내 마음대로 안되는 판에 몸이라도 내가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어야 돼. 부모님 앞에 두고 더 말할 것이 없어 입을 닫아.

내가 어떻게 그렇게 말해 전상민이며 이종현이며 그 애들이 두려운 걸까. 그런 병신 새끼인 내가 더 무서워서. 나는 점점 더 두려워지는 까닭에 몸을 긁고, 다시 또 긁어. 언젠가 저 애들이 나를 보지 않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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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4-04-15 02:00 | 조회 : 134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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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운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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