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한 구토인형들 (2)

2. 전상민

식어 있는 침대에서 눈을 떴다. 박세린은 이미 발코니로 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이따금씩 집으로 들어가기가 지겨울 때면 그 애의 자취방으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나서 다시 여기로 갔다. 내가 하나를 집어들어 나부끼는 흰 셔츠 주변으로 향했다.

"내 얼굴 어떡할 거야. 이따 촬영 가 나. 근데 얼굴이."

묵주를 만지작거리는 영광의 손길을 떠올리며 나는 말했다.

"오늘은 조용히 좀 있자."

나는 피곤했다. 김영광을 그 룸카페 안으로 밀어넣었다. 그 애가 게이인 것으로 알고 있었기에 사실을 알아낸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원래로선 그저 여자를 좋아하는데 그 애가 워낙 나다니는 폼새가 비실하여 그런 것으로 여겼다. 박세린은 한여울과 내기를 하다 술에도 깊이 취해 그랬다며, 거듭 용서를 구했다.

김영광.

중학교 1학년 처음 전학 온 영광은 과체중의 아이였다. 적당한 키에 적당히 통통한 보통의 남자애였다. 그간 쭉 조용히만 지내다, 고등학교 입학식 전의 겨울방학 동안 그 애는 내게 익숙해져왔다.

이따금씩 가는 수영장엔 거의 갈 때마다 먼저 도착해 있었다. 아버지한테 물어보니 매일 트랙 앞에 자리잡아 헤엄치고 있었다는 추가적인 정보를 얻었다.

"얘가 독하구나. 친해?"

"아니오."

얼마인지 몰라도 몇십키로 가량을 뺀 듯 보였다. 저팔계가 이제 국물용 멸치로도 못 쓰일 정도라며 영광을 향해 외쳤다.

"하아..."

영광에게는 특별한 힘이 있었다. 무릎을 꿇고서 떠는 걸 봐야 끝나게 만드는 힘이. 흔히들 자학이라고 부르는 농담을 뱉고 신경을 쓰지 않는 척했다. 자신을 놀림거리로 삼는 애들을 쥐어박지 않았다. 더위를 먹은 닭처럼 비실거리며.

"그래서 그 새끼가 꼴보기가 싫은 거라고."

저팔계가 그 애를 앞에 두고 크게 외친 말에 내가 비식 웃었다. 그 말이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걔가 게이란 건 반 애들도 알음알음 알았다. 행동거지에서부터 태가 나는 편이었다. 한창 혼잡한 주말 7시 중앙동에 나가서 유리창에 자길 보며 머리를 정돈하는 데에는, 어딘가 못내 긁어내리고 싶은 부분 또한 있었다.

제대로 힘을 못 쓰게 만들고 다리를 부러뜨리고 코에서 코피가 나게 하고프고 뭐 그런 걸.

홍조를 조금씩 머금은 얼굴에 곧은 입매 또한 그러한 욕구에 박차를 가했다. 내가 호모포비아인가 하는 의문에 그럴 지도 모르지 생각하고서.

그렇잖아도 마음이 복잡한 터였다. 급작스럽게 화면에는 엄마의 부재중 전화가 떠 있었다. 그것을 그대로 덮어냈다. 백스테이지 모델로 활동했던 오정연으로 기억될 사람이 일 년에 한번씩 전화를 걸었다.

엄마가 현재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우리 가족 중 제대로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아버지는 이혼 후 엄마에 대한 언급을 일체 피했다. 나 또한 찾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볼 때면 술에 취해 웃던 엄마와 나눈 추억 같은 것도 없었다. 그렇게 우리의 모친 오정연은 사업가와의 결혼생활에 실패한 알코올 중독자로서, 잊혀졌다.

다만 기억나는 것은 소름 끼치게 말랐던 몸. 뼈 위에 살가죽이 곧내 붙은 듯 앙상한 그 몸. 이따금씩 밤중에 졸린 눈을 비비어 깨보면 화장실에서 들려오던 구토 소리였다.

그리고는 전연주를 볼 때마다 이따금씩 그 사람이 연상되는 것 정도, 그 뿐이었다. 아버지는 달라지지 않았고, 여전히 방임의 태도를 닮아 무심했다.

아버지와 아빠의 차이가 생각보다 큰 것이었구나.

늘 평생 자신이 그리 부를 수 없다며 연주가 내뱉었다.

"엄마보다 낫잖아."

내가 일축하면 입술을 지그시 내밀곤 했다. 둥근 눈과 보조개 기묘하게 어머니를 닮은 그것들을 마주하고서.

"아니, 아니야. 어릴 땐 나도 아무것도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그냥 아버지한테 스트레스 받아서 그런 거였잖아. 신혼에 계속 바쁘단 핑계로 바깥에 나도니는데 술 안 마시고 버텨?"

"버텨야지."

우리 엄마라면, 그래야 했다.

"대체 왜 그래? 엄마가 그런 걸 참아줘야 할 의무라도 있다 생각해?... 감정 결여됐나 봐."

문을 바람이 부는 곳처럼 큰 소리가 나게 닫고서 연주가 외쳤다. 김영광 같은 사람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이유도 거기서 기반된 것일까. 늘상 눈빛이 속이 보이지 않을 듯 검어져 있고 오정연의 기색이 가물어 있는 그들. 자신이 우울증이라 주장하던 그런 기색이. 그런 사람들처럼 약한 마음의 피가 속에 내재되었단 것을 인정하기가 꺼려졌다.

"박세린 연락 받지 마. 영광이랑 찐득하게 노느라 바쁘시댄다."

그리거 다시 조명. 방금의 목소리 주인은 이종현이었다.

"이종현, 돌았냐?"

노래방 소파에서 과자를 뜯던 저팔계가 고개를 들고서 외쳤다. 아직은 어두컴컴한 조명 아래 커다랗게 김치 냄새 발라드 반주가 흐르고 타투를 새긴 짧은 다리가 어른거렸다. 김영광의 얼굴이, 너무도 깊이 고개를 숙여 좀처럼 보이지가 않았다.

"박세린 안 불러?"

불현듯 비식대는 한여울의 물음이 울렸다.

"여기 오면 좋아할 텐데 얘도 있고."

한여울이 김영광에게 어깨를 두르며 신경을 긁었다. 붉은 뚜껑을 까고 들이켰다. 그대로 한여울에게 다가가 멱살을 붙잡아 뺨을 한 대 때렸다. 그럼에도 계속 웃음을 띠는 낯.

"상민아, 이게 있잖아."

김영광은 관망한 눈길로 멍하니 우리 둘을 응시하고 있었다.

"야, 한여울. 딴따라야. 넌 콩쿨 준비나 좆빠지게 해 우리 가서 봐줄게."

분위기를 풀고자 개그맨이 건넨 말에, 웃기지 않았지만 내가 이가 보이지 않는 웃음을 지었다. 박세린이 그랬었던 게 왜 생각이 나는지 모를 일이었다. 머리가 조금 아파서 술을 까 들이켰다. 김영광의 벗은 몸이 보고 싶어 스스로 옷을 벗으라 시켰다.

"영광아 씨발 술 좀 마셔라 까까도 먹여줄 때 먹고."

저팔계가 부추겼다.

"김영광."

"..."

"여기로 와."

내가 손가락을 까딱였다. 이런 저런 일이 있어도 우는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랬기에 궁금할 따름이었다. 김영광은 낮게 물었다.

"왜 그러는데."

잘 모르겠다. 내가 팔에 손을 대어 더듬었다. 뼈가 그대로 드러나는 팔목에 딱딱한 가슴 따위를 슥 훑었다. 그 애의 몸에 오돌토돌한 소름이 돋아났다.

"이 새끼 몸 좆나 신기하다."

내가 중얼였다. 생각보다 더 마르다는 건 더더욱 몰랐다. 알 수 없었다. 저팔계의 말처럼 겉보기에 좋지 않다는 것은 고사하고 수영장에서 마지막으로 목격했을 때보다 야위어 있었다.

꼭 오정연 몸 같아.

이렇게 생각하며, 공기 중에 힘없이 드러난 앙상한 팔다리를 바싹 움켜쥐었다.

"영광아."

"왜."

"꼴려?"

영광의 얼굴이 붉어지는 기색 없이 더더욱 창백해졌다. 그 앤 아 그래 화가 날수록 더욱 차게 식었지. 웃음을 터뜨리는 저팔계가 거슬렸다.

"아 씨발 개웃기네 이 게이 새끼 미쳤어!"

"야야, 팬티 벗어봐. 그래, 팬티 벗어봐, 김영광."

영광은 아무런 대꾸 없이 그대로 팬티를 벗어내었다.

"좆나 크네, 이 새끼."

와 씨발. 야 뒷짐지고 서봐. 개미쳤잖아. 이거 찍어야 돼. 영광이 다시 천천히 팬티를 올리고서 몸을 떨었다.

"찍지 마."

"뭐?"

"찍지 말라고."

예상치 못한 반응인 것은 사실이었다.

"이 씨발새끼들아, 왜 남의 좆을 찍고 지랄인데!"

침묵이 흐른 후엔 알맹이 없는 웃음이 터져나왔다. 녀석들은 영광의 입장에선 원망스러울 정도로 적절하게 능청스러웠다.

"와 씨발, 존나 무섭다, 영광아, 진짜."

"그래 서운하게. 뭔 지랄이야."

이종현은 캡모자로 얼굴을 가리고선 화장실 안에서 담배를 피우러 나갔다.

"이종현 저 새끼 또 저런다."

한여울은 소파에 앉아 관망하듯 웃곤 말했다.

"적당히 좀 해, 개역겹네."

가만히 다시 그리로 시선을 돌리니, 갑작스럽게도 어떤 것이 시야를 훅 덮쳐왔다.

"전상민. 이 씨발새끼야."

노래방 탬버린을 붙잡고 힘이 들지 않는 움직임으로 내 쪽을 가격하는, 김영광이었다.

"네가 언제까지 그럴 수 있는지, 나 볼 거야. 그리고 안 그런 날엔, 씨발, 내가 너 죽인다. 죽여버린다, 이 개새끼야."

나는 그런 김영광의 눈동자를 가만히 응시했다. 맑음의 정도가 아주 높아 반사적으로 내가 들여다보이는 그곳. 그리고서 그 애의 팔목을 으스러뜨릴 만한 힘을 주어 꾹 쥐었다. 신음 하나 지르지 않고서 뚫어지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흰자위는 피로 물들어 있듯 붉었다.

그 시선을 차마 마주할 수 없을 때가 되어서 나는 놓았다. 낄낄이는 웃음이 뒤켠에서 터져들었다.

"씨발 개무섭네 영광이."

"아 졸라 웃겨."

순간적으로, 발작이 다가오는 듯 보였던 까닭을 알 수 없었다.

후에 학교에선 김영광이 탁자에 줄곧 머리를 박고 있었다. 저팔계는 좆을 깐 사진을 반 남자애들 반디엠에 돌렸던 까닭이라며 낄낄거렸다. 의식을 안하려고 보지 않으려고 부러 박세린과 함께했다. 휴식공간에 간 건은 이미 머리에서 존재하지 않고 있었다. 점심시간에 그 애는 한여울과 화장실로 들어갔다. 뭘 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보지 않기로 했으니까.

"야, 근데 같이 좀 먹자. 졸라 심심해."

박세린이 우리 무리 애들과 같이 식사를 하길 원했다.

"남는 시간에 창고 가."

내가 먼저 신호를 던졌다. 분리되어 있는 체육관 건물안쪽에 조그만 창고가 있었다. 방금 청소해 깨끗할 것인 그리로 발을 들여 영광의 행적을 잊길 바랐다. 한여울과 무슨 일을 하던, 무슨 감정 속에 있던 내가 상관하지 않는 영역의 일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뻣뻣하다시피 굳은 채 그 애를 계속해 의식했다.

"오늘, 흐으, 왜 그래?"

"뭐가."

"왜 자꾸 나 안 보냐고, 전상민..."

바쁜 시간까지 쪼갰다며 박세린이 내 턱을 붙잡아 살폈다. 그리고 입을 맞추어 혀를 넣었다. 그만하고 싶단 생각이 들어왔으나 손을 허리에 얹고 안았다. 너 신경 안 쓰여? 뭐. 알면서도, 나는 그대로 키스를 하며 침묵을 유지했다. 소위 바람을 피웠다고 애들이 떠들어대는 것을 가지고 더 신경 쓰기엔 귀찮았다. 박세린은 아마 내가 말해줬던 게 기억이 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계속 그래라."

던져낸 어투에 내지른 비명이 동시에 노래방을 메웠었다. 영광의 뺨에는 다시금 조그만 붉은 피가 맺혀들었다.

"네가 그랬다고 내가 널 때릴 것 같아?"

"씨발, 그만해. 김영광한테 그만 좀 해. 차라리 날..."

그런 외침을 뱉으며 박세린은 전신을 떨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진 않은 채로. 나는 그녀를 돌아보지 않고 먼저 머리통을 잡아 벽에 눌러 뭉개고 복부에 발길질을 겨눴다. 영광은 신음 소릴 내지 않고서 묵묵했다. 뒤에서 박세린이 던져오는 것들은 아마 과일 껍데기, 큰 것은 백이나 리모컨이나 대강 그 정도였다. 바라보는 눈이 조금 커지더니 다시 제 크기를 되찾았다.

"네가 그랬던 건 기억 나는데 그냥...흐윽!"

"박세린."

"왜, 우읏, 애."

"집중해봐."

내가 속에 박힌 성기를 쳐올리며 중얼였다. 가만히 앞쪽의 등판과, 그 아래에 흔들리는 좆을 내리보며 김영광의 나체를 떠올렸다. 요란한 불빛 아래서 선명했던 기억을. 크다는 건 진심으로 사실이었다. 본인 입으로 자긴 깔린다고 밝혔으니 쭉 쓸 일이 없을 그 좆이 아까웠다.

"흐으, 자기야, 내가, 자기도 알았지?"

그냥 뚝 떼서 내가 거기다 박으면 어떨까 싶었다. 가발을 씌우고 화장을 좀 시키고. 박세린과 애널섹스를 했던 기억을 되살려보면 그 애는 괜찮다고 했는데. 애당초 김영광은 섹스를 해본 적이 있을까.

"내가, 미안해."

맞춰볼 수도 있었다. 정확할 터였다. 여자하고는 한두번 정도, 하나 남자하고의 경험이 전무할 것이라고. 저팔계는 그 앨 보고 아다라고 하며 웃었던 것 같은데.

"흐윽, 그흐, 그런데, 대답으을, 왜애..."

혀로 묵묵히 앞니를 훑어내리며 허릿짓에 힘을 실었다.

"안해..."

어쩌다 이런 생각에 도달한 것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 모르겠다. 우는 얼굴은 부어서 보기 싫은 데가 있었다. 전신은 나뭇가지처럼 딱딱하게 말라 박세린의 말랑한 몸보다 손이 덜 갈 테고. 접시 앞에서 깨작거리는 버릇도 마음에 들어오지 않는 데가 있었다.

"응? 자기야, 흐윽!"

그 몸을 만지고, 눈물이 나는 얼굴을 때렸을 때, 나는 웃고 있었다. 김영광의 맑은 눈에 늘 내가 비춰보여 알 수 있었다. 발기했다. 한 발 빼고 싶었다.

"아아, 자기야, 흐으으! 갑자기, 갑자기 세게 하면!"

우는 얼굴은 부드러워 손이 자주 가는 데가 있었다. 나뭇가지처럼 마른 몸이 좆을 삼키고 정신없이 흔들리고. 깨작거리는 손을 잡아 아이를 대하듯 숟가락을 입술에 대어줄 터였다. 그렇게 하면 된다는 생각에 박세린의 흰 손을 꼭 잡았다. 옅은 신음이 상대의 입가에 조금씩 실려들었다. 하아, 흐으.

"씨발, 싼다."

아버지가 보인 관심이 가벼운 의미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무거운 의미는 아니었다. 네가 이토록 폭행할 것을 미리 알기라도 하듯 적절했다.

"아파...아파."

"..."

의미를 부여하지 말자고 생각했어도 그 애를 영화 속처럼 극본 위에 두고 하나씩 살펴보게 되었다. 나는 자세히 살펴보며 끼워맞춰나가기 시작하는, 초보 중에서도 초보 단계였고.

"아직 그거 생각해?"

불현듯 박세린이 물어왔다.

"뭐가."

룸카페 간 거 말야 하고 말하면 될 것이 머뭇머뭇 러나왔다.

"아니."

한여울은 어떻게 됐는지 궁금해했다. 그것을 왜 궁금해 하느냐고 물었더니 불현듯 그녀의 눈살이 굳었다. 왜냐니. 네가 그 앨 팼다며. 나는 무표정하게 그것을 내리보며 어쩌라고 묻는 듯 고개를 꺾었다. 화가 났나, 살피는 듯한 낯이 어른거렸다.

"일어나."

고개를 끄덕이곤 박세린이 빠르게 치마와 셔츠 품을 정리했다. 시간이 남아돌았는지 내게 붙은 먼지를 털어주며 티를 정리해주었다. 작은 손을 물리게 하고서 나는 창고를 급히 걸어나갔다.

"뭘 그렇게 급하게 가?"

나는 가만히 그것을 바라보다 이내는 체득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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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4-04-15 02:01 | 조회 : 39 목록
작가의 말
구운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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