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한 구토인형들 (5)

5. 이종현

"둘이 섹스한 거 알지?"

한여울이 그렇게 물은 것에 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청소가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둘의 게이같은 잡담이 귀를 가르고 빤하게 들려왔다. 이 사실을 그대로 전상민에게 고하니, 그 새낀 달리 부정하지도 않고 곧내 인정해왔다.

그딴 미친 사실을 인정해?

전상민이 그러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았으나 근본적으로 이해가 안 가는 건 그 새끼가 먹을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고.

씨발 김영광을 뒤로 따먹은 거였다. 내가 아는 그 말라깽이 병신 호모 김영광을.

"진짜 좆나 깨더라."

"왜."

"아니 좆나 소름 끼치잖아. 김영광이야 원래부터 그런 애였다지만 남들 개무시하고 졸라 패고 다니던 그 새끼가 김영광 후장을 쑤시고 다녔다니까."

"대충 예상갔던데. 좆나 마조히스트 아님 그런 거에 꼴려할 수가 없잖아."

"꼴려한 걸 알았어?"

"표정에서부터 좆나 느끼고 있잖아."

"와...씨발, 좆나, 누가 뚫렸을까."

미친 거 아냐 씨발. 답잖은 조크에 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얘기할 거야?"

"모르겠는데. 전상민이 따로 얘긴 안했는데 만약 떠벌리고 다니면. 좆나 큰일날 거 같아서."

"그래봤자 우리 같은 고딩인데 별 짓 하겠냐?"

"아빠가 사기야 걘. 됐어. 난 그냥 얘기 안하련다..."

한여울은 학습된 무기력이라는 말이 알맞는 태도로 관저하고 섰다. 나 또한 그랬다. 김영광과 나눴던 마지막 말을 떠올리며 필드만 쎄빠지게 뛰었다. 쟨 자존심이란 게 없나 그때 전상민한테 쳐맞았으면서. 한편으론 자신이 오히려 코너로 몰려 김영광 꼴이 날 것을 염려한 나름의 생존방식이라 볼 수 있었다.

나는 가만히 녹이 슨 호루라기를 삑삑 불어내며 생각했다.

진짜 좆같다고.

김영광과는 이전에 같은 초등학교를 다녀 꽤 친했었지만, 내가 전상민과 어울리기 시작한 후로부턴 그냥 모르는 체 그 앨 쪽 주는 데 일조했다. 그리고 내가 꼴릴 때마다 창고에 불러내 영광을 윽박 지르며 화를 풀었다. 그리고 어저께에도 그랬었는데.

섹스하는 게 사실이긴 한가 보았다. 전상민은 최근 그 애에게로 향하지 않고 표적을 다른 애로 삼았다.

이우철이라고 맨날 혼자서 책 읽는 병신 하나.

칸예 새 앨범을 들으며 그런 새끼들 패대기치는 것보다 더 즐거운 일은 없었다.

"그냥 후려버려 그 루이스빌 슬러거로."

전상민이 부추기는 듯한 소리, 아니야 난 진짜로 괜찮거든. 김영광이 뭐라고 하든 한여울이 어떤 짓을 하던 정말 괜찮거든. 사실 좆나 안 파인이다 그래 난 김영광이 토하는 걸 봤다. 먹고 토하는 걸. 역겹기보단 도리어 모든 걸 토해내는 그 과정을 보고서 내가 배고파졌다.

"돌았어 너."

그 앤 굶주림에 늘 시달리는 듯 내가 뭘 먹기라도 하면 뚫어져라 지켜보기만 했고 씨발, 그 꼴을 보자면 나도 동시에 허기가 일었다. 궁금해졌다. 왜 계속 그러고 사는지 이따금씩 김영광 손목에 걸린 그 망할 묵주는 왜 자꾸 여타 예수쟁이들마냥 내 눈을 마주하려 드는지.

"어디 정신병원 가서 치료 받아야 되는 거 아니냐."

김영광에게 물었다. 선뜻 달라진 듯한 눈빛이 날 드디어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런 데로 가기 싫어 무섭거든 난. 좆나 겁 많잖아."

"겁 많다면서 왜 네가 죽을지도 모른단 건 안 무서워 하는데?"

"왜 갑자기 그러는지 모르겠다."

"뭐가?"

그 말이 기억난다.

"내가 전상민한테 뭔 짓을 당해도 걍 쳐다보기만 했던 애가, 갑자기 내 정신걱정까지 하잖아."

"허..."

"..."

"뭐 맘대로 생각해."

김영광은 이전과는 달리 잘도 달려들었다. 기력 잃은 해골 같던 것보다 낫긴 하지만. 누가 봐도 지금 내 태도가 좀 병신 같단 건 인정했다. 그럼에도 어디 뒤가 틀린 듯 차마 뽑아내지 못한 뿌리의 줄기가 끈질겼다.

나는 지난 2주간 딸도 안 치고, 아니 솔직히 말하면 발기가 안 되는 까닭에 못 치고 있었고 그게 김영광과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진 모르겠지만 어쨌건에 날 거슬리게 했다.

한여울에게 듣긴 했다. 그런 음식 거부하는 병이 있는 애들이 있다고 그게 다 무용 그 좆같은 거 때문이라고. 그래서 한여울도 시리얼을 부엌에서 혼자 퍼먹는 버릇이 생겼다고.

"김영광은 왜? 걔가 춤이라도 추나."

"아니, 걘 그냥 살 빼다가 그런 거 같던데. 이전엔 돼지였잖아."

"전상민은 그런 정신병자 새낄 따먹어서 뭘 하겠단 거야?"

왜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애랑 똥꼬로 섹스를 하는지 의문이었다. 또 두 번째 토를 한 날 전상민에게 약간의 짜증마저 들어왔다. 저 토하는 입으로도 키스를 하고 싶을지, 모르는 건지 아는 건지, 왜 좆도 신경을 안 쓰는지. 급한 대로 급식을 거르고 화장실로 쫓아가 말했다.

"토하지 말고 나와 거깄는 거 알아."

"우웁, 우에..."

"나오라고. 그만 뱉고!"

"..."

"왜 그러는 건데. 진짜 자살하고 싶은 거야? 아님 병원 가서 수액 쳐맞는 거 뭐 그러고 싶은 거야?"

"그만해."

"전상민은 너 이러는 거 아냐? 네 그 입으로 뽀뽀는 하고 싶대?"

김영광이 조용히 문을 열고서 나왔다. 물 내리는 소리와 함께, 침과 토사물로 범벅이 된 턱을 휴지로 문대는 그 새끼가 보였다.

"나 토하는 거 알고 있던 거 아니었어? 갑자기 왜 이러는데."

"죽을까봐 그런다. 죽을까봐."

"내가 뭐 내일 죽어도 닌 별 상관없을 것 같던데 왜."

"그러지 말고 그냥 따라와. 저팔계 가방 뒤져서 나오는 거 대충 먹어."

"왜 그런 걸 먹여?"

저팔계 가방 속 위생까지 신경을 썼다. 아니 유통기한이려나.

"씨발, 영광아. 꽁초 꽂은 딸기우유도 꼬박꼬박 먹던 새끼가 왜 멀쩡한 건 안 먹는다 그러냐. 재떨이로 써서 넣어줘?"

영광의 어깨가 움찔 떨려들었다. 조금만 말에 힘을 줘도 그냥 개처럼 꼬리를 내리는 버릇이 여전했다.

"그냥 따라와 씨발 짜증날려 하네 토 냄새도 좆나 나고..."

"하루에 근데 씨발 나 200칼로리라고."

"그게 뭔데. 그것만 먹고 살게?"

"그래."

"미쳤네. 병원 가봐라."

그쯤 되니 나도 질려서 치료사 역을 자처해주고 싶진 않았다.

"김영광. 너도 정상적으로 살고 싶지 않냐?"

별 생각 없이 던진 말에 그 새낀 병신처럼 벙쪄 있었다. 나는 그대로 그 꼴을 남겨두고 떠났다. 그러고서도 여전히 무감한 전상민의 낯을 보니 가슴 속이 영 좋지 않았다.

"별 좆같은 일이 다 있으려니깐..."

그 날 밤은 영광과 옛날에 찍은 사진이 남아있지 않나 살폈다. 별 뜻이 있는 건 아니고, 무의식적으로 떠올린것에 불과했다. 먼지 쌓인 사진 속, 살집이 오른 어린 영광은 웃으며 붉은 아이스바를 한 손에 꼭 쥐고 있었다.

그리고는 다시 만났을 때 수영을 한다 들었고. 그땐 영광을 보고도 누군지 몰랐었다. 그러다 몇 번 전상민과 다니며 그 앨 많이도 보니 얼추 알게 된 거지, 몇 번 스쳐가듯 만났다면 아예 영광이란 사실을 알지 못했을 터였다.

좆나, 무슨, 그럼... 그것 때문에 음식에 집착하면서도 먹질 못하는 건가? 무슨 칼로리 제한을 그 지경으로 하고... 내 생각에 그건 별로 의미가 없는 것 같았지만.

"오늘도 200이냐?"

허나 갈수록 말라가는 영광을 그냥 남 보듯 관망하며 지나치기가 뭣했다.

"왜?"

"죽지 말고 먹으라니까."

영광은 제로콜라 한 병을 가방에 꽂아넣고서 말했다.

"먹는 게 죽는 거 같아."

"그때도 말했잖아. 정상적으로 살 생각은 없는 거냐고."

"거기 몸무게 위에 숫자가 더 무서워."

"말할수록 골이 때리네."

내가 영광에게 살풋 가까이 다가갔다. 이렇게 가까워진 적은 또 오랜만인 것 같았다. 덥수룩한 머리칼에 가려진 귀가 빨개짐이 눈에 띄었다. 얘가 게이란 걸 잠깐 까먹고 있던 것 같았다.

"한 입만 먹어."

영광에겐, 호모인데, 같은 남자일 뿐인데, 왜 이다지도 역겹다는 생각이 안 드는지 잘 몰랐다. 무슨 성령의 기도라도 받은 양. 이 새낀 씨발 혼자만 좆나 신성하다니까 그 땀내 나는 남자새끼들 안에서.

"응?... 먹어, 김영광."

말씨는 눈에 띄게 부드러워져 있었다.

"뭘."

"오늘 수요일이야. 치즈돈까스 나온다니까."

김영광이 가만히 고개를 떨구고 침묵했다. 나는 전상민 때문에 그러냐고 목소리를 낮추어 슬쩍 영광을 떠보았다. 그게 무슨 소리야?

"또 잤냐?"

"이제 안해."

"왜."

"내가 섹스하기 싫다고 너무 크게 말하니까... 갑자기 분위기가 좆나 굳어졌어. 전상민, 씨발, 모르겠어. 얼굴 보면 토 나올 것 같아."

너도 좋아서 한 것 아니냐는 말은 조금 아닌 것 같아 왜냐고 물었다.

"그 정도로?"

"내가 말야 취했을 땐 무슨 발정난 개새끼가 따로없어."

"..."

"내가 그렇게 돼선 걔한테 매달렸단 게 좀 어이없는데, 기억은 다 확실하게 나. 근데 술 깨고 나니까 왜 그랬는지도 모르겠고 그냥 미친놈 같아."

게이 둘의 섹스 상담을 해야 한다는 게 약간 좆 같았으나 별다른 생각은 없이 내가 뱉었다.

"현타 온 거야 너."

"그래 그게 맞아 전상민하고 그걸 했다고 하니까 이상하거든. 그 애 행동도 씨발 모든 게 다."

"전상민은 그래서 순순히 안한다고 하냐?"

"일단 그렇지."

"... 그럼 다행이고. 걍 엔조이네. 그러지 말고 밥이나 먹어라."

"왜 자꾸 먹이려 하냐고. 그 섹스가 생각이 나서 밥맛도 좆나게 떨어져."

"좋은 점은 하나도 없었어?"

내가 김영광을 매점으로 끌며 장난스레 물었다.

"뭔."

"아니 전상민 정도 알파메일이면 게이들 사이에서도 인기 많을 것 같은데."

"게이라고 다 그렇지 않아. 그리고 핵심이 그게 아니잖아 종현아. 난 그냥... 거기서 술 마신 것 자체가 강제적이었다고. 섹스는 강제 정돈 아니었다 해도."

"그래, 목소리 좀 낮추고. 너 섹스했다고 홍보를 하냐."

우리는 각자 먹을 것을 골라 결제했다. 나는 삼각김밥에 육개장, 초코에몽, 메론빵을 한가득 사들였고 영광은 달랑 샐러드 한 팩만을 집어들었다. 그리곤 가방에 쑤셔둔 제로콜라를 꺼내 마셨다.

"그것도 토할 건 아니지?"

"좆나 맛있고 칼로리 높은 걸 토해야지. 이것 좀 까줘."

영광은 몸에 힘이 없어 그것 하나 열지 못했다. 우리는 앉을만한 턱에 아무데나 앉아 그것을 늘어놓았다.

"맛있어?"

"그럭저럭."

"그냥 이거 네가 먹어라."

내가 라면을 퍼다 뚜껑에 담아 건네자 영광이 싫다는 듯 손을 흔들었다. 이러지 마라 종현아 나 진짜 네가 이러는 거 싫어.

"뭐."

"나 갈 거야."

"가긴 어딜 가 빨리 다 쳐먹고 가."

희고 모가지가 긴 손을 붙박였다. 영광은 그것을 꼼지락대다 이내 자리에 앉아 조용히 샐러드 꽁지를 먹었다.

"그러게 병원에 가라니까."

"주말에 갔어, 엄마가 너무 권유해서."

"진짜?"

"입원은 안된다고 버텼고... 그래서 그냥 식이요법 알려주고 약 줬어."

"그래도 여전히 깨작거리긴 하네."

이에 영광이 그건 그리 빠르고 쉽게 고쳐지는 것이 아니라 툴툴거렸다. 그래서 엄마한테 좀 미안했어.

"별 수 있겠냐. 네가 원한 건 아니잖아."

"갑자기 근데 왜 이렇게, 밥 같이 먹고 그러냐. 내가 전상민 섹파가 돼서 그런 거야?"

"솔직히 니네가 어디서 뭘 하고 다니던 좆도 신경 안 쓰여. 떡치는 건 좀 놀랐어도. 플러스 역겨움."

"...그땐 내가 뭐라 불러도 아무 반응 안했잖아."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전에 전혀 안 들던 감정이 들어와서 그냥 되는 대로 말했다. 속이 뜨듯하게 울렁댔던 까닭이었다.

"그건 미안하다 김영광."

영광이 마른 몸을 떨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지금이라도 말한 게 어디야. 그러고서 내가 영광을 다시 발견한 날은 머지 않았다.

해가 저물어갈 때쯤의 방과후 학교 공터에서, 그 앤 풀을 먹인 듯 곧게 서 있었다. 사람이 거의 없다시피 했으므로 나는 거기에 그 애가 있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심지어 웃옷을 완전히 벗은 채로.

또 전상민한테 벗겨져 맞기라도 했나? 그럴 리는 이제 없으리라고 여겼던 터였다.

아니, 무슨.

가까이 다가갈수록 영광의 꼴은 기괴했다. 곧추선 등뼈가 새 날개처럼 뻣뻣이 서곤, 어깨를 부들거리는 모습이.

"뭐하냐?"

일순 영광의 손에서 무언가가 떨어져내렸다. 피가 잔뜩 묻은 깃털 뭉치였다.

뭐야 씨발 이게.

나는 좀 더 가까이 다가가서야 거기 새부리가 달려 있단 것을 알게 되었다. 영광이 뒤를 돌아보았다. 입부터 턱, 목, 가슴에 이르기까지 피가 팔레트처럼 잔뜩 튀어 있었다. 입가에선 채 삐져나오지 못한 깃털들이 나풀거렸다.

영광은 새를 씹어먹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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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4-04-15 02:02 | 조회 : 37 목록
작가의 말
구운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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