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한 구토인형들 (7)

7. 한여울

트랙을 지켜보는 사람은 나를 포함해 몇 되지 않았다. 눈이 작은 저 아이의 어머니 그리고 여동생으로 보이는 사람들 빼곤, 코치와 나밖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냥 전지훈련일 뿐인데 당연했다. 김영광은 짐짓 불안정한 호흡으로, 그러나 격렬하리만큼 빠르게 전진해나가고 있었다. 요즘엔 그 놈은 부쩍 토를 하지 않았다. 얼굴은 그래서 보기 좋아졌다고들, 선생들도 지나가다 한마디씩 얹곤 했다.

"괜찮아?"

크리스탈 캐슬 노래를 듣고 그 앨 마주하기란 꽤나 이상야릇했다. 뭐가, 라는 시선을 보내듯 김영광의 낯이 아무렇지 않았다. 헤드셋을 집어넣은 내가 빤히 그를 바라보곤 이내 다리를 털어내 일어섰다. 가야겠다고 말하기라도 하듯. 모든 걸 침묵으로 해결하고... 아 우리 둘은 섹스하고선 지독하게 말이 없어져서 그렇다. 요즘은 외려 영광이 먼저 말을 꺼내고 난 잠자코 멍해있는 경우가 많아졌던 것이다.

"..."

"내 말은 토 안하냐는 말이었어."

요즘은 안하지. 머리털에선 아직 물기가 채 가시지 않았음에도 컵라면을 하나 챙겨 떠나며, 영광이 가볍게 뱉었다. 그게 아무런 일도 아니라는 양.

"그게 그렇게 쉽게?"

"이게 언제까지 갈진 나도 모르지."

"하도 떡쳐대서 먹을 시간도 없나 보네, 씨발."

"갑자기 왜 그래. 뭐 맘에 안 들어?"

영광이 짐짓 형식적으로 물었다. 이상하게 마음 속으로부터 내재된 응어리가 이 포인트에서 튀나오는 듯 했다. 그 포인트라 함은 지금 이 새끼가 거식증을 탈출한 데서 생긴 반발인가. 이딴 병으로 배신감 같은 걸 느끼고 싶진 않았는데 난 정말 찌질하기도 해라.

"몰라, 좆나 제대로 돌아가는 게 없어."

"탄수화물 안 먹어서 예민해서 그래. 밥 좀 먹자. 저녁 먹고 들어간다고 말씀 드려."

"뭔 밥이야."

나는 여전히 그 새끼 앞에서 의도적으로 툴툴댔다.

"그럼 여까지 왜 왔는데."

"할 거 없어서."

"학원 쨌다며."

"..."

"짼 보람이 없잖아 밥이라도 먹어."

"뭔 밥이야 씨발 나 아직도 토해 너랑은 다르다고."

알아. 뭐 알아? 근데 웬. 아무튼 갈래 지금이라도 연습 좀 하러 걍 가야겠어.

"다시 안 보여줘?"

"뭐?"

"그떄 화장실에서 보여줬던 거. 나 궁금한데. 관람료 내야 돼?"

"개소리야."

영광을 뒤로하고 싶지 않았다. 고개를 돌리고 걸어서 5분 내지 거리로 떨어져 있는 정류장으로 향해갔다. 쓸데없이 길어 잡념에 잠기게 하는 버스행을 지나고, 씨발, 그 새끼 생각을 했다. 그 새끼와 섹스했던 것. 진짜 똥꼬로 섹스하는 남자가 된 것에 이상한 모순마저 느껴졌다. 그게 난가. 그게 정말 나라고? 말도 안돼. 그리고 김영광이 그 새끼라고? 아니면 김영광의 그 탄수화물 이론이랍시고 던진 게 맞아들었나. 그럼에도 여전히 성마른 낯이 가로막아 말하는 듯 했다. 넌 김영광 사진 보면서 자위하는 게이새끼야. 이 생각과 함께, 그가 전상민과 떡친다는 사실이 다소 꼴받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병신 같아."

다음날 학교에서 박세린이 대뜸 던진 말에 무언가 불길해졌다.

"뭐가."

"걔네 체육관 창고에서 또 섹스하던데. 저렇게 해대다 성병 걸릴 것 같단 말야."

"오늘 점심시간에 체육관에서 뭐 해야 한다 하지 않았나?"

"그거 스쿼시 연습."

이에 나는 불안함을 체득하며 체육관으로 향했다. 아예 걸려버렸으면 하는 마음이 없던 건 아니었으나, 차마 설명하지 못할 이상한 의무감이 나를 그리로 이끌었다. 차라리 다 망신 당했음 그게 낫겠다. 씨발 왜 이런 생각을 하는 거야 모순덩어리가 따로없네. 그리고 이미 열려진 커다랗고 푹신한 문에, 반사적으로 등가엔 식은땀이 맺혔다. 뛰어들어간 현장. 볼만했다. 그리곤 불현듯 그리스 로마 신화 만화책을 읽었던 기억을 더듬었다. 비너스가 전쟁의 신이랑 섹스하다 신들 전체한테 목격당한 상황과, 얼추 그것과 비슷했다.

김영광은 엎어지듯 전상민 밑에 깔려선 우릴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까지도 기억에 선선이 남게 될만한 그러한 시선으로. 둘의 낯은 눈빛 빼고는 놀랄 정도로 태연해뵀다. 저팔계와 개그맨은 거의 기절하기 직전에 이르러 있었다. 그 누구도 달리, 별다른 말을 꺼낼 수 없었다. 헐거운 차림의 체육 선생이 겨우내 달려와 이를 제지할 따름이었다.

"그거 뭐... 맞지?"

조성령이 머뭇거리다 꺼낸 말이었다. 이에 박세린이 한 마디 얹어내었다.

"생각하는 거 맞아."

마른 영광의 등께가 들썩였다. 차가운 나무판자 위로 붉은 토가 쏠리고 있었다. 영광이 또 토를 했구나 싶어 짐짓 무던해지려 했으나, 그 역겨운 꼴이 나로선 쉽지 않았다. 나도 토를 할 듯 싶어 고개를 돌렸다. 우웨엑, 우읍. 고막에 익숙해진 그 병신같은 소리.

"쟤 토해."

어떤 여자애의 무덤덤한 말 뒤로, 다시 거길 봤을 때였다. 영광은 고개를 푹 수그리고 거의 혼절하기 직전처럼 비틀댔다. 정돈되지 않은 머리칼이 한껏 엉크러져 답답해 보였다. 그대로 노출된 몸 위로 커다란 담요가 덮여지고, 몰려오는 선생들과, 조금 이해는 되지 않는 그러한 대치. 소란이 밀려오고 난 후의 수업이 제대로 진행될 리가 없었다. 흐지부지 공을 맞부딪히곤 온통 그 얘기로 둘러싸인 학교에 남아있는 것에 괴로워했다. 모든 걸 관망하는 시선으로만 바라봤었는데, 그 날은 그럴 수 없었다. 진지하게 두 사람이 부모의 동의하로 정신병원에 보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와서였다.

"좀 일찍 말해주지..."

"그게 뭐 내 잘못이냐? 알았더라도 어차피 알려줄 생각도 없었잖아. 싫다고 노랠 부르던 전상민이 이젠 공식적인 게이새끼가 됐는데 너도 뭐 괜찮잖아."

"김영광은 어쩌고?"

"거기서 그니까 왜 하냐고 미친 것들 아냐."

너도 했었잖아, 라는 말을 하려다 의미가 없어보여 그만두었다.

"뭐 이젠 거의 다 거기서 하지들 않나."

"그래 근데 게이는 처음이지. 저렇게 다 벗은 상태로 걸린 것도. 무슨 막장 스페인 드라마에 나올 것 같은 시추에이션이냐."

그 이후의 상황도 막장 스페인 드라마를 똑 닮은 시추에이션이었다. 뭐 별다른 과장은 아니고, 내가 굳이 그렇게 서술할 이유도 없고 하니 말하는 건데 양으로 따지자면 거의 일주일 분의 토였다. 중간 쯤부터는 슬슬 지겨워질 정도의 기나긴 구토가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누런 위액에 섞인 새 깃털 같은 것이 한 웅큼 떨구어진 것은 덤이었다. 후에는 영광이 입가에 지저분하게 늘어진 토사물을 뚝뚝 떨어뜨린 채로, 비틀거리며 선생들의 부축을 받아 떠났다. 그 모습은 비오던 어느 날 할머니 집 근처에서 보았던 개구리 시체보다 더 역겨운 장면으로 내 뇌리에 남았다. 나 또한 그 새끼처럼 몰려오는 토기를 참을 수 없었다. 나는 변기통으로 달려가 체육시간이 멎자 곧내 구토를 쏟아내었다. 이에 달려온 박세린이 등을 아프게 두드려오며 타박했다.

"무슨 이 새끼고 저 새끼고 다 게워내."

"우욱..."

이종현은 이후에 소식을 듣고는 며칠간 학교를 나오지 않았다. 원체 자주 빠지기도 했으려니 별 생각은 하지 않았으나, 이종현까지 오지 않으니 교내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걷잡을 수 없이 칙칙해졌다. 무슨 전상민이 죽기라도 한 것처럼. 어차피 그 놈 외모나 위상 빼면 관심도 없던 게, 다들 별 지랄을 다 떤다 여겼다. 특히 저팔계랑 개그맨 그 외에 걔랑 노래방을 잘도 다니던 병신새끼들이 그랬다. 어느 여자애들이던 둘 이상 모이면 거의가 그 섹스 얘길 하느라 바빴다. 결론은 대개 어찌 되었든 두 놈 전부 역겹다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며칠 후 전상민이 전학을 간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 사건이 벌어지고선 두 사람 다 코빼기도 모습을 비추지 않더니, 짐은 어느새 전부 회수되어 그들에게로 돌아갔다. 전상민이 전학을 간다는 사실이 기정사실화 되고 나선 영광이 드디어 학교에 모습을 비추었다. 다들 무슨 전염병 환자 보듯 그 새낄 피해다녔다. 직접적인 어떤 피해도 입히지 않았으나, 그 애가 교실 문을 닫아 떠날 때면 아이들이 한데 모였다. 개미친 게이새끼라는 둥, 아직도 토 냄새가 나는 것 같다는 둥 tmz 뺨치게 별 얘기들을 뱉으며. 그게 다였고. 나는 늘 불안하게, 그리고 비겁자처럼 다른 놈들 시선을 두려워하며 영광과 마주하길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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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4-04-15 02:04 | 조회 : 31 목록
작가의 말
구운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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