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한 구토인형들 (8)

8. 김영광

정신병원이라고, 하지. 거길 자진해서 가겠다 하더니 엄마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나를 향해 부드럽게 미소 지었어. 그리고 새 날개 같은 갈비뼈를 한번 슥 보고서 날 안았어. 도립정신병원으로 그래 멀리 한번 가보자 그래. 지켜주실 거야 언제나 네 곁에 계신단다 아빠도 그리고 나도 다른 모든 좋은 사람들도 말야. 거식증 치료가 동반되는 시스템이었으므로 너른 병실 안엔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모였어. 그 사람들에게 별다른 관심은 없었고 그저 플래시 게임이나 독서, 영화 보기에 열중할 따름이었어. 그리고 그것들보다 더 많이 열중하는 행위란 몇 시간이고 다른 사람의 식사 장면을 그저 지켜보는 것. 누구든, 어떤 음식을 먹던 상관없이 그것을 보며, 아무 생각이 없어지는 것. 뇌가 빠지듯 행복해지는 것. 그게 다였어.

수액을 맞는 게 차라리 더, 나으리라고 생각했지.

밥그릇 안에 담긴 흰 쌀밥. 부추무침 계란말이 콩자반 조그만 조기 뭇국.

"그런데 선생님 인생은 왜 이렇게 짧을까요? 아니 왜 이렇게 길까요? 모르겠어요. 선생님은 왜 여기 계시는 건가요? 제가 토를 안할 때 되면 그때 일을 그만두실 거라고, 약속하실 수 있으세요?"

난 그 미친 말들을 다 뱉었고 무관심한 눈이 깡마른 어깨선을 훑더니 싱긋 반달을 그려.

"정상적인 식습관으로 돌아가는 건 좋죠."

좆같은, 그 씹을 수록 단내가 나는 밥알갱이를 입 안에서 굴려도 그것은 결국 다 살집이 되어 나를 움직이고 숨 쉬게 하네. 선생님 더 좆같은 꿈을 꾸게 해주세요 이보다 훨씬 더 좆같은 꿈을요. 나는 약을 먹지 않고 일부러 그걸 토해내고 잠에 들어. 간호사 감시를 피하는 법은 이미 훤히 터득했는걸. 난 부엌이라기 보단 과학실의 느낌이 선명한 곳에서 누군가의 품에 안겨 실습을 받고 있어. 어쩌면 르 꼬르동 블루로 갔어도 난 훌륭한 쉐프가 됐었을 것 같아. 그 사람 손은 너무도 차갑더군. 고기를 만지기 좋게끔.

고기를 만지고 있어 고기를.

갈려 여러 조각으로 분쇄되는 고기, 커터로 세절되는 고기, 원통형 기계에 갈려나가는 고기, 푸딩 충진기에서 꾸역꾸역 나오는 보아뱀의 형태를 띤 고기. 난 그걸 맛보자마자 한여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어. 내장, 씨발, 그거 역겹잖아. 그래서 난 그건 취급 안해. 이 남자도 같은 생각인 것 같아. 그는 이걸 내 입에 진짜 아빠처럼 먹여줘.

국자로 저어, 뼈를 고아 만들 차례인걸. 그 애는 웃고 있지 않아. 그 애의 뼈는 웃고 있지 않아. 공기는 차가워 내쉰 한숨이 그대로 담배 연기처럼 희게 뿜어져나올 정도로. 뼈를 고아 국물을 맛보고. 한때 뼈를 이뤘던 그 몸의 주인이 이종현인걸. 그 사람은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고 다만 그것을 먹길 바라듯, 내게 숟가락을 디밀 따름이야. 그가 요리를 한 건가, 아니면 내가 요리를 한 건가. 애초에 그 애들을 죽인 진짜 주인공은 과연 누구일까?

전상민 전상민의 몸을 다지고 다져도 그 향기는 좆같은 향기는 지워지지 않아. 네가 내게 뭐라 말했더라? 씨발, 씨발 밖에 기억이 나지 않아 아 그 애 고기를 가르려 들어. 내 뒤를 안은 남자가. 붉은 날고기를 그대로 퍼올려, 피가 흐르는 거대한 그것을 내 입에 욱여넣어. 도무지 들어갈 수가 없는 크기임에도 난 그것을 입에 넣고 한 입에 집어삼켜. 흐르는 피를 무시하고서 난 그이의 얼굴을 마주하려 고개를 돌리지.

길고 깡마른 얼굴 더러운 피부. 그분께서 오셨군 메시아께서. 요리를 가르치던 분은 바로 그 분이셨던 듯해.

나는 그대로 꿈에서 깨어나 심한 토기를 느끼고 화장실로 달려가. 그리고 미칠 듯이 토를 뱉어내지. 먹은 게 먼저 색색의 형태로 게워져 나오고 그 다음으로 나오는 것은 오렌지 맛이 나는 위액 뿐이야. 엄마 미안해 미안해 이게 아닌 것 같아.

난 다시 눕고는 눈을 그대로 감아. 뇌는 생각이 없이 비워진 인형의 것을 닮아있어. 웃자 더 크게 웃자 난 그 속에서 웃고 있어. 식탁에서 아직 살을 빼기 전의 내가, 안경을 쓴 앳된 모습의 이종현이, 엄마와 함께.

"영광아, 뭐하니?"

내가 그리로 시선을 돌리고 난 어릴 때의 모습으로 변모해가.

"와서 얼른 밥 먹어!"

거식증 그런 건 없잖아 애초부터 없었던 거잖아 엄마의 손짓에 내가 눈물을 흘리며 그리로 달려가. 같이 밥을 먹는 거야 같이 밥을.

"응!"

깨어나 보이는 것은 병원의 차가운 조명. 그 조명을 받으며, 침대 위로 반듯이 누운 나는 차가운 조명만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어. 웃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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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4-04-15 02:05 | 조회 : 45 목록
작가의 말
구운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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