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화 - 전쟁의 서막




제 4화
-
전쟁의 서막


“큰일 났어! 전쟁! 전쟁이 일어났다고!”

“뭐… 뭐?”

편안히 숙면을 취한 도중에 일어난 봉변이었다. 익숙한 목소리에 벌떡 일어난 도한을 제외하곤 모두가 끙끙 앓으며 몸을 뒤척였다. 아직 네 시도 되지 않았고, 동은 트지 않았다. 그러나 남자아이는 빨리 일어나라며 아이들의 등을 두들기더니 외쳤다.

“지금 태평하게 자고 있을 때가 아냐! 너희들 몰랐어? 연구소가 쳐들어왔다고!”

연구소? 익숙한 단어에 화양은 눈을 번쩍 뜨고 급히 일어났다. 그녀는 잠에 덜 깨어 몸을 몇 번 휘청거리다 남자아이의 멱살을 팍 잡았다. 제발 잘못 들은 것이기를 바라며 속사포 질문들을 쏟아냈다.

“생명의 숲 연구소 말이야? 지금 어디 있는데? 왜 왔는데? 인원은 얼마 정도 돼? 누구랑 싸우고 있어? 무기를 들고 있어? 아, 빨리 좀 말해봐!”

“그… 그게.. 말로 설명하기는 어려워. 나도 들은 거라.. 제1 위험지역에 있다는데 그쪽으로 가보자!”

당황한 남자아이가 머리를 매만지더니 한 마리의 매로 변했다. 도한도 슬그머니 독수리로 변했다. 뒤늦게 일어난 나머지에게 빨리 오르라고 외치며, 화양은 잠옷 바람으로 독수리로 변한 도한의 등에 풀쩍 뛰어올랐다.

“후우‥‥”

시원한 바람이 정신을 개운하게 만들었다. 화양은 연구소 일동이 자신을 찾으러 왔을 거라 확신하며 머리를 정리했다. 도한은 앞으로 나아가는 매를 쫓으며 제2 위험지역의 암벽들 사이사이로 날아올랐다. 제자리걸음도 아니고 무려 뒷걸음인 셈이었다. 방금까지 서 있었던 중심부 산이 이제는 작게 보였다.

“엄마...”

까악? 비스듬히 하강하던 도한이 생뚱맞은 단어에 갸우뚱했다. 화양은 그런 게 있다며 이제는 먼 산인 중심부 산에서 고개를 돌렸다. 올라오느라 고생했던 암벽을 손쉽게 지나고, 온갖 자연환경에 빠져 신나게 뛰놀았던 산들도 하나하나 스쳐 지나갔다.

“‥…연구소 사람들이야, 얼른 숨어!”

선두로 나아가고 있던 매가 참나무 가지로 삭 숨어들었다. 도한도 큰 몸뚱이를 줄이며 가지에 안착했다. 화양은 몇 년 만에 보는 것 같은 연구소 문양을 한참동안이나 응시했다.

연구원 수백 명이 단단히 무장한 군사들 사이 직접 개발한 무기들을 들고 있었다. 그 뒤로 서너 대의 탱크, 군용 자동차, 심지어 헬기까지 따라 붙은 게 보였다. 옆에서 뭔가를 발견한 도한이 분노에 이빨을 갈았다.

“어떻게 저런 악마 같은 짓을...!”

화양은 도한의 시선이 닿은 곳을 쳐다보았다가 놀라 숨을 들이켰다. 여러 종의 수인들이 포획되어 그물망 안에 갇혀 있었다. 옆 가지에서도 분노하는 숨소리가 들렸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순 없어. 수인들을 모아서 연구소와 담판을 지어야 해.”

화양은 작전을 세우는 아이들과 자외선 탐지기로 주위를 파악하는 연구소 그 어느 곳에도 끼지 못했다. 연구소장이 먼저 숲을 공격한 건 명백한 사실이며, 심지어 아무 죄 없는 수인들도 포획했다. 그러나 그는 그녀의 아버지이자 화양의 일생을 같이 지내온 소중한 가족이었다. 의견이 엇갈려 티격태격 대기도 하고, 서로를 미워하는 사이였지만 ‘아버지’라는 한 단어는 모든 걸 푸는 법이었다.

“잠깐만 얘들아, 내 말 좀 들..”

“이화양!”

화양은 깜짝 놀라 몸을 움츠려들었다. 연구소장이 어느새 화양 쪽으로 자외선 감지기를 갖다 댄 것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 화가 나 얼굴이 벌게진 연구소장이 그녀를 가리켰다. 동시에 가지에 숨어 있던 도한을 비롯한 아이들이 가지에서 뛰어내리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잡아!”

연구소 일동이 대열을 흐트러뜨리며 아이들을 쫓았다. 맨 앞에서 빠르게 달리는 리안과 나무에 올라 팔로 가지를 잡고 펄쩍대는 류현이 선두로 나섰다. 도한은 혜성을 등에 지고 반쯤 날아올랐다. 화양도 달리려 했지만, 바로 옆에서 그물망에 잡혀버린 매 수인 때문에 덩달아 넘어졌다. 다시 벌떡 일어나 달리던 와중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는 고통이 다시 찾아왔다.

“으윽!”

‘왜 하필 지금… 아아….’

이번에는 집중적으로 머리가 어지럽고 뇌가 산산조각 되는 느낌이었다. 저번처럼 힘이 강해지나 싶었으나, 갈수록 고통만 늘어날 뿐 변하는 건 없었다. 뇌가 반으로 쪼개지는 기분이었다. 두피를 쿵쿵 누르며 고통에 물든 비명을 질렀다.

“아아악! 으아아… 흐으-”

“누나, 왜 이래요! 조금만.. 조금만 버티면!”

혜성이 털썩 주저앉은 화양을 들다시피 끌어다 도한의 등에 놓았다. 그리고 동시에 화양은 정말이지, 뇌가 갈라졌다. 단순히 갈라지는 느낌이 아니라 정말 달라져 있었다. 더듬더듬 머리 양 쪽을 짚던 화양은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다.


* * *


손가락 몇 마디를 제외한 모든 곳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뇌는 여전히 갈라지며 뭔가가 자라나고 있었고, 다리에는 감각이 없었다.

“으.. 으으.. 허억!”

화양이 쓰러져 누워 있던 곳은 어두컴컴한 동굴이었다. 밖으로 향하는 출구는 보이지 않았다. 일말의 빛도 없는 공간은 무거운 침묵에 감싸져 있었다. 화양은 머리를 더듬거리다 솟아난 무언가를 발견했다. 뿔처럼 딱딱하고, 긴 무언가가 화양의 머리에 정말로 있었다. 화양은 난생 보지도 들어보지도 못한 이상한 현상에 겁이 솟구쳤다.

“으허엉- 어떡해… 나 어떡해! 머리에 이상한 게 자라났어!”

“뭐? 설마..”

화양은 울며 곁에 있는 아이들을 찾으려 더듬거렸다. 아이들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화양의 머리를 서로 만지려 다툼했다. 결국 리안이 먼저 화양한테 다가와 두피를 만져주었고, 삐죽 튀어나온 무언가를 서툴게 만졌다.

“화양아.”

“훌쩍- 응…?”

“넌 네가.. 인간이라고 확신해?”

순간 화양은 처음 들어본 리안의 진지한 목소리에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뜬금없는 질문에 당황했다. 병이나 증상에 관한 질문도 아니었고, 심지어 화양이 앓고 있다던 희귀병 이야기나 약 이야기도 아니었다. 화양은 도통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며 리안의 어깨를 잡았다.

“그게 무슨 소리야? 대체 왜 그런 질문을 하는 거…”

“넌 인간이 아냐! 네가 기절해 있는 동안 우리들이 생각해 봤어. 넌 대체 왜 지금 성장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진화하고 있는 상태인 수인이라고! 네 머리를 봐, 네 다리를 봐! 뿔이‥‥ 뿔이 자라나고 있잖아...”

뺨을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화양은 손을 벌벌 떨며 계속 자라나는 길쭉한 무언가를 더듬거렸다. 길쭉한 무언가는 이제 머리카락을 뚫고 점차 솟아났다. 설마..

잃어버려 먹지 못한 약. 혜성이 말했던 수인들의 성장통. 복용하지 않을 시 급격히 늘어나는 신체 능력. 모든 게 퍼즐처럼 깔끔히 맞춰졌지만 화양은 부정했다.

“아… 아냐. 너희들이 잘못 생각하는 거겠지. 백리안! 아니라고 말해! 말해줘!”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링거를 매단 채 병실 생활을 이어가던 엄마, 약을 잘 챙겨먹으라며 그녀를 걱정해주던 연구소장, 볼 때마다 친절히 대해주었던 연구원들. 모든 게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니 순간 헛구역질이 나며 배신감에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아- 아아... 말해! 제발 이게 다 오해하는 거라고 말해...”

손발이 심각하게 떨리며 온몸이 마비되었다. 화양은 의지와는 달리 벌떡 일어나 리안의 멱살을 팍 잡으며 외쳤다.

“백리안, 네 말은 틀렸어! 난 인간이자 희귀병을 앓고 있는 평범한 여자애야! 약해 빠졌고, 조금만 달려도 지치고, 천식 호흡기랑 약을 달고 사는... 그런 애라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리안의 어깨를 최대한의 약력으로 붙잡았다. 리안은 한숨을 푹 내쉬더니 혹시나 하는 화양의 생각을 ‘역시나’로 바꾸었다.

“수차례 목격했어. 연구원들이 연구라는 명목 안에 수인들과 숲 생명체들을 포획하고 잡아가는 장면을. 네가 그 축에 포함되지 않을 것 같아?”

화양은 그녀의 어깨를 흔들며 거짓말이라고, 그렇게 말하라고 외쳤지만 리안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도 이미 체념한 듯 화양과 눈을 마주치는 걸 피했다. 화양은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걸 또다시 느끼며 동굴 밖으로 뛰쳐나갔다.

“화양아. 어디 가!”

화양은 거울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연못이나 샘물을 찾으려 숲을 헤집었다. 마침내 작은 웅덩이 하나를 찾았다. 화양은 흙탕물이 온몸에 튀는 것도 개의치 않으며 웅덩이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아아‥ 아아.. 아아악!”

양쪽 머리에 짧은 검은 뿔이 눈에 띄게 돋아나 있었다. 믿기지 않았다. 화양은 몇 번이나 땅을 치며 손으로 뿔을 빼려 안간힘을 썼다.

“화양아, 하지 마. 그만해. 이러다가 진짜 다쳐!”

“빨리 이거 빼내 줘… 빼내라고!”

리안도 아등바등하며 화양의 손을 뿔에서 떼어내려 버둥거렸다. 입술이 피가 나도록 울음을 참아내고 있었으나 어느새 입 밖으로 서러움의 소리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추스르지 못한 감정들이 한꺼번에 그녀를 벼랑 끝으로 몰아 덮쳤다.

“아아악!!”

수많은 감정들이 뒤섞여, 고통과 슬픔으로 물든 비명을 내질렀다. 그 누구도 화양에게 쉽사리 다가가지 못하고 가만히 서 울음을 들어주었다. 말을 걸었을 때는 몇 분간 지속되던 울음소리가 딸꾹질과 훌쩍이는 소리로 진정되었을 때였다.

“화양아, 괜찮아?”

“…이제 아무도 못 믿겠어. 백신이고 나발이고 전부 다 집어 치우고 싶다고!”

화양은 가지에 앉아 동태를 살피고 있는 도한을 바라보았다. 어깨를 토닥여주는 리안도 바라보았다가, 다시 무거워진 머리를 느꼈다. 분노, 슬픔, 허탈함 등 모든 부정적인 감정들이 교차했으나 단 한 생각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이 상황을 기필코 종결시키겠노라고.

“담판을 지어야 해. 끝장을 내야 한다고.”




“리안아, 너는 달리기가 빠르니 숲의 모든 수인들을 한 곳에 집합시켜. 너라면 할 수 있을 거야.”

리안은 달렸다. 계속해서 필사적으로 달렸다. 체력이 막힘없이 닳았고, 뛰어난 폐활량을 가지고 있음에도 숨이 차올랐다. 어느덧 굵은 빗방울 몇 개가 툭툭 떨어지는가 하더니 비가 억수같이 쏟아 내렸다. 그러나 단 한 번도 무릎을 붙잡고 쉬지 않으며 계속 달렸다.

“내 집이- 죄다 쑥대밭이 되었구나.”

안전지역의 대부분은 이미 연구소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초토화가 되어 수습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리안은 위험지역들에 거주하고 있는 모든 수인들에게 전쟁을 선포한다는 소식을 알렸다.

“결국 이렇게 되는 구나.”

“우리들을 약골로 생각하는 거지 뭐. 이참에 연구소를 박살내버리자고.”

모두들 선뜻 숲이 망가질까 걱정하는 분위기였지만, 그와 다르게 모두 비장한 얼굴을 지으며 참여했다. 리안은 옅은 뿌듯함을 느끼며 저 멀리 날아가는 여러 종류의 수인 새들을 바라보았다. 이제 그녀도 모든 수인들이 모이기로 약속한 제1 위험지역 중앙으로 달려갔다.

“총 얼마 정도 되지?”

“이백 마리. 연구소가 지금 이쪽으로 오고 있다는 거 맞지?”

“응. 근데 많지는 않을 거야. 아군 한 명이 잠입해 있거든.”

각개격파에 제법 박식한 화양의 영리함에 리안은 픽 웃음 지었다. 원래 인간은 저렇게 다 똑똑한가? 아, 이제 수인으로 발현했으니까 인간은 아니군.

“연구소가 먼저 오기까지 기다릴… 어?”

순간 저 멀리에서부터 강렬한 아우라가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수인 몇 백 마리가 고개를 돌려 그들을 향해 걸어오는 누군가를 바라보았다. 그 누군가의 정체에, 리안을 비롯한 수인 모두가 놀라 입을 헤 벌렸다.






“이류현. 너는 연구소 쪽으로 잠입해. 기절시키든지 무력으로 만들든지 간에 어떻게든 수를 줄여.”

“씨이…‥ 왜 나한테만 이런 거 시켜?”

류현은 단단히 무장한 군사들의 등에 꽂힌 총기를 바라보았다. 두려움이 파도치듯 몰려왔지만 어쩔 수 없이 볼멘소리를 내며 나뭇잎 위로 연구원들을 따라 걸었다. 가끔씩 뒤로 뒤처지는 연구원이 있는가 싶으면 곧장 덩굴을 타고 소리 없이 미끄러져 내려갔다.

“크흑! 커- 커헉!”

이유는 간단했다. 아래로 내린 두 다리를 매듭처럼 꼬아 목을 조르는 것. 그렇게 한두 명씩 아무도 모르게 기절해갔고, 류현은 남은 연구원들이 모르게 기절한 사람들을 수풀 뒤로 숨겼다.

“근데 진짜 내가 몰래 잠입해 있는 걸 모르나?”

류현은 십 분 동안 쥐도 새도 모르게 연구원 삼십 명을 기절시켰다. 하나 둘씩 곧이곧대로 쓰러졌지만, 귀청이 찢어지도록 들리는 빗줄기 소리와 이따금 요란스레 울리는 천둥소리가 모든 잡음을 막아주었다.

“아아… 으윽..!”

“좋게 기절시켜 줄 때 좀 자라. 너도 그게 편하잖아.”

“크흐윽…”

가볍게 군사 한 명을 쓰러뜨린 류현이 나뭇가지를 발판 삼아 다시 나무 위로 올랐다. 머리에 쏟아진다고 말하기보다는 때린다고 말할 굵은 빗방울들이 쏟아졌다. 비에 젖은 생쥐 꼴이 된 그는 휘파람을 불며 그제야 눈치 챈 연구원들의 대화를 들었다.

“소장님‥‥ 뭔가 이상합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저희 인원 총합은 삼백 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백 명이 될까 말까 한데요..”

“…!”

늦어도 너무 늦은 상황 파악이었다. 류현은 우왕좌왕거리는 연구소장에 키득거렸다. 한참 연구소장을 관전하고 있던 와중 방심했던 탓일까, 넓은 활엽수 사이로 연구소장의 새카만 눈과 류현의 초롱초롱한 눈이 마주쳤다.

“이크! 끄악!”

류현이 막 뛰어올라 도망치려던 그 때, 연구원 곁 군사 한 명이 포획망을 발사해 류현을 가뒀다. 류현은 포획망을 끊으려 발버둥 쳤지만 그만 나무에서 떨어졌다. 그에게로 다가온 연구소장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너는 그때‥‥”

“아, 이화양 아빠 되냐? 하나도 안 닮았네.”

포획망 속에서도 류현은 평온하게 장난질을 쳐댔다. 연구소장은 류현의 침착함과 대응한다는 듯 무표정의 얼굴을 유지하며 류현에게 조곤조곤 협박했다.

“내 딸은 어디 두고 혼자 있느냐. 죽고 싶지 않다면 당장 말해라!”

“우선 말하기 전에 하나 말해두지. 이미 모든 진실을 밝혀졌어. 이제 걔는 널 믿지 않아. 13년 동안 속인 대가를 받을 준비나 하셔.”

“화양은 그러지 않는다. 내 피가 화양에게 들어 있지 않는다고 해서, 그녀가 내 딸이 되지 않는다는 법은 없단 말이다!”

하! 가볍게 코웃음을 친 류현이 그물망을 거세게 걷어찼다. ‘이게 바로 인간들의 어이없는 심보인가.’라며 중얼거리기도 했다. 점점 거세지는 빗줄기와 들릴락 말락 해진 목소리에 류현은 목소리를 더욱 높였다.

“그건 당신 생각이고. 이화양 생각은 다르겠- 으악!”

연구소장은 류현의 말 따위는 듣지 않고 그물망을 땅바닥에 질질 끌며 마저 길을 걸었다. 류현은 살짝 겁을 먹은 채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기를 빌었다. 빗소리가 거세졌다.





“강태양?”

전쟁을 준비하던 수인들 앞에 나타난 건 다름 아닌 수인들의 왕 강태양이었다. 근처에 있던 까마귀 수인을 비롯한 부하들 모두가 리안 옆에 섰다. 태양은 흐뭇하게 광경을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때가 되었구나. 이참에 확실히 하나 말해두지. 몇 십 년 전부터 우리들의 터전이자 서식처인 이 숲을 그들만의 목적을 위해 이용하려던 것들은 뭐였지?”

“인간들이었습니다!”

“그럼 엉터리 소문을 믿고 수인들을 강제 포획해 사살한 것들은 누구지?”

“생명의 숲 연구소였습니다!”

수인들 모두는 화가 부글부글 끓어올라 저마다 체념한 얼굴을 지었다. 그런 수인들을 총 전력을 파악하듯 바라본 태양이 말을 이었다.

“인간 놈들이 더 이상 설치지 않게! 우리들의 터전과, 동료와, 목숨을 더는 잃지 않게! 연구소를 파괴해야 한다. 이제부터 전쟁이다!”

와아아! 무슨 상황인지는 모르나 어쨌든 연구소와의 싸움이 시작되었다는 것에 흥분한 수인들이 함성을 외쳤다. 상황은 이리 흘러가야 하는 게 맞았고, 강태양은 수인들을 모아준 리안에게 감사를 표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리안의 마음은 내심 좋지 않았다.

“이게 맞는 걸까? 화양아. 답해줘. 정녕 이 선택이 맞는 걸까?”

타앙! 탕! 퍼어엉! 어디선가 인공적인 무기들의 총성과 폭발 소리가 들렸다. 리안을 비롯한 모두가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고 머리를 감싸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러나 태양과 그의 부하들은 포연 사이에서 꿈쩍도 않고 공격 자세를 취했다. 그들과 연구소 일원들이 서로를 마주했다.

“드디어 마주하는군. 저 당당한 낯짝을 벗겨버릴 거다.”

전쟁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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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2-12-06 21:07 | 조회 : 316 목록
작가의 말
SoEy_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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